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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전부 환상이었다
(이 글은 계속해서 다듬어갈 예정입니다. 피드백과 비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아는 신경 회로들의 오케스트라이며 상황 맥락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생성된다.
뇌는 경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신경 가소성).
뇌세포들은 시시각각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자주 소통하는 뇌세포들끼리는 신경회로가 형성되고 특정 신경회로들의 집합은 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습관적 동물이다. 강하게 연결된 신경 회로 때문에 우리는 습관적 사고와 행동을 반복한다. 습관을 통해 우리는 인지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한다.
하지만 습관적 사고에 갇힌 사람들은 지금껏 살아나지 못했다. 변칙적인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습관적인 사고를 견제할 수 있는, 다른 모드의 사고, 즉 고차원적 사고(변칙적 사고, 메타 인지, 상대방 생각 읽기)의 회로가 점차 갖춰졌다. 그리고 각 사고회로들은 언어와 공진화 했다.
덕분에 습관에 의존하다가도 외부/내부 정보를 종합해 변칙적인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적응력이 강해졌다.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하듯 다양한 사고 회로들은 협력하며 조화를 이룬다. 종종 고차원적 사고 회로가 우세해지면서 우리는 사고한다. 언어를 통해 사고할 때도 있다.
자아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들의 총합이 자아다. 뇌세포간 무수한 재잘거림이 자아를 만들어낸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자아는 뇌에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생성된다.
뇌는 기억과 편집을 통해 연속적이고 일관적인 자아 감각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경험한다.
우리는 경험을 기억하며, 기억은 뇌에 새겨진다. 기억은 뇌의 신경회로를 변화시킨다.
경험의 축적은 (특히 자서전 기억) 자아상을 형성하고 성격을 만들어낸다.
우리에게 10가지의 신경회로가 있다고 하자.
친구랑 만날 때, 1,2,3,4,6,8,10 회로가 활성화되고 회사에서는 1,2,3,4,5,7,9번 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하자.
상황 맥락이 다르므로 당연히 활성화되는 신경회로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으로 활성화되는 회로도 있다(1,2,3,4).
이때 공통으로 활성화되는 회로와 뇌의 편집 작업이 우리의 자아 감각에 연속성과 일관성을 부여한다.
우리 눈동자는 이리 저리 안구 운동한다. 카메라가 흔들리면 영상이 흔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세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뇌가 안구 움직임을 반영해 시각 정보를 매끄럽게 편집해서 영상을 재생하기 때문이다.
손뼉을 쳐보자. 우리 뇌는 시각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하기 때문에 손뼉이 맞닿고 나서 소리가 조금 더 늦게 들려와야 한다. 하지만 어쩐지 손뼉을 치는 순간과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이 동시인 것처럼 느낀다. 뇌가 감각 정보 불일치 해소를 위해 편집을 시킨 것이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생존에 유리하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서 뇌는 세상을 멋대로 편집한다.
뇌는 자아로 하여금 세상을 탐색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상대방을 예측하도록 만든다. 이때 자아(어쩌면 언어적 사고의 흐름)가 발생한다.
안정된 자아 감각이 부여되지 않으면 자아는 붕괴될 것이다.
뇌는 기억과 편집을 통해 매끄러우며 일관성 있는 연속적 자아 감각을 부여한다.
(뇌가 주인이고 자아는 일회성 심부름꾼일지도.)
뇌는 조금씩은 엇다른 수많은 자아를 연결짓고 연속성을 부여한다.
자아는 저마다 고유 시간대를 가지며 구별된다.
고정불변의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경회로 자체가 끊임없이 바뀌며, 상황/맥락에 따라 조합되는 신경회로들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 순간순간을 경험하는 자아는 그때그때 바뀐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똑같은 자아를 만들어내는 완전히 같은 두 번의 전기 흐름은 없다.
자아는 저마다의 고유 시간대를 가지며 고유 시간대는 형태도 없이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그 결과 우리는 살아가며 그때 그때 매 순간순간을 경험한다.
아인슈타인이 과거와 미래는 없다고 말했는데 혹시 이 맥락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모든 경험과 감각, 느낌은 뇌의 작용이다.
만약 자아가 언어적 사고의 흐름이라면
언어와 사고는 공진화했다. 사고의 폭발적 혁명은 문자와 언어로부터였다. 뇌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고 회로가 발생했다. 언어와 추상적 사고의 흐름에 자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내적 외적 언어 자극이 확률 요동을 일으켜 평상 시라면 따랐을 습관 대신 다른 행동이 발생하는 것 아닐까? 기존에 유지되던 패턴이 허물어지고 언어적 자극을 받아 문득 새로운 패턴이 형성된 것이다.
언어적 사고 회로 역시 자체적인 되먹임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외부의 자극으로 수정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단어 다음에 올 단어는 베이즈식 통계에 따라 채택된다.
언어를 통해 뇌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언어적 사고 흐름이 자아라면 언어 습관이 나를 만든다.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아웃소싱 하고 반복해서 보고 되뇌임으로써 뇌밖에서 생각한다면 좋은 행동과 생각이 발생할 확률은 올라간다. 뇌가 바뀌고 자아도 바뀐다.
좋은 메모 메시지 글은 뇌 밖에서 나를 지원해주는 무기가 된다.
자아의 성질을 서술할 언어가 갖춰지지 않은 것 아닐까.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것처럼.
심부름꾼의 역습
시시각각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자아들을 연결해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뇌다.
우리는 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자아 감각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아를 통해 뇌를 바꾼다. 심부름꾼의 역습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뇌에 속지 말고 원하는 자아상을 생각해 봐라. 언어로 떠오르지 않겠는가?
행복과 평온을 느끼는 자아를 만들어낼 확률을 올려버리자.
상황 맥락을 바꾼다. 내가 원하는 자아상이 더 자주 생성될만한 환경에 들어간다. 환경을 세팅한다.
또는, 뇌를 직접 바꾼다. 원하는 마인드 셋과 생각을 습관화 시킨다.
마인드 셋을 습관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의 주술이다.
글을 읽어라 글로 써봐라 입으로 뱉어봐라.
언어의 주술과 반복을 통한 습관 형성으로 막연한 우연성의 세계에서 필연과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뇌는 내가 바라는 자아상을 더 많이 만들어가고 자아상은 내가 바라는 뇌를 조각해간다. 선순환 고리의 완성이다.
문자를 통해 외부에서 생각해 내 뇌에 자체적으로 변화를 준다.
언어적 주술을 활용해 확률 요동을 발생시킨다.
메타 인지도 결국 언어로 하는 것 아닌가?
언어의 주술, 습관화, 환경 세팅해두기가 자아 공장 뇌를 바꾸는 비법이었나?
자아는 각 고유 시간대에 실재한다(그 형태가 언어적 사고 흐름일까? 언어적 사고 흐름에는 분절 단위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자아를 이어주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기억과 언어다.
내면소통에서 말하는 배경 자아처럼 언어적 사고 흐름과 관련된 회로 중 관찰자 회로. 메타인지를 주관하는 회로는 습관에 잠식된 기억들로 점철된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별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베이즈 통계를 따른다.
뇌 밖에서 사고하는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관찰자 회로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으로 훈련이 가능하다.
자아라는 것이 환상이라고 해도
1.당신이라는 것이 이론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뇌의 마법인 자아 일체감과 자기 통제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2.뇌가 불행과 우울한 자아를 계속해서 찍어내는 공장이 된다면 피해자는 당신이다.
3.뇌가 자아에 연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당신은 계속해서 우울의 메아리에 갇힐 수 있다.
4.뇌와 동침해라. 뇌에 속아 주기도 하면서 뇌를 속여라.
5.행복도 습관이다. 습관은 뇌의 회로에 새겨진다. 점차 강해진다.
6.자기 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자아와 뇌를 만든다. 자기 통제감은 중요하다.
7.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8.감각과 느낌은 확실히 존재한다.
9.세상의 경이를 있는 그대로 느껴라. 지금을 조금 더 만끽하자.
10.자아에 집착하지 말라.
11. 하지만 다음 발생할 자아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발생한 자아와 언어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저자 브루스 후드
출판 중앙북스
발매 2012.10.08.
점점 많은 발견으로 기존의 상식이 뒤엎어지고 있다. 정말 만약 자아라는 것이 자유의지라는 것이 뇌의 장난임에 불구하고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1. 어쩌면 세상은 결정론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론이더라도 양자역학에 따른 우연성 때문에 확률론적 결정론의 세계가 아닐까?
2. 동시에 뇌는 수많은 다른 뇌, 무수히 복잡한 세계와 말도 안 될 정도로 카오스틱하게 상호작용하므로 어떠한 존재도 미래를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없다.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
3. 우리는 그저 맞닥뜨려지는 순간순간을 느끼고 경험할 뿐이다.
4. 우리는 세상을 이야기를 통해 받아들인다.
5.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분해하고 재조합해 미래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것이 미래 일화적 사고다.
6. 건강한 뇌라면 희망찬 미래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에 자아를 앉힌다(긍정적인 미래 일화적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감각, 내가 주인공이라는 감각은 진짜다.
어떻게 보면 앎이라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이끌어주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만화 100M에서 나온 장면과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는 생물이다. 죽는다.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불안에 주저하지 말라. 인생은 원래 항상 잃을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이 생명의 묘미다. 불안은 내가 나를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불안에 지지 말자. 이 우주의 이야기에서 당신이 맡고 싶은 배역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거기에 자그마한 세포들의 오합지졸일뿐인 한 사람의 인생 따위 줘버려라.
매트릭스처럼 자아가 뇌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감각, 사랑의 기쁨, 내 삶의 주인공감은 진짜다. 허상이면 오히려 고맙다. 내 인생 따위 막 퍼줄 수 있으니까. 진실이야 무엇이든 두려움은 삶을 오그라뜨릴 뿐. 언어를 통해 모든 순간의 내 자아에 축복을.
100미터 5
저자 UOTO
출판 학산문화사
발매 2023.06.15.
언어적 사고 흐름에 (내 목소리라는) 자아감이 없으면 조현병.
언어적 사고 흐름이 자아라면 언어 습관이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