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명(克明) / 신현정
이른 아침 한 떼의 참새들이 날아와서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고 마당을 종종걸음치기도 하고 재잘재잘 하고 한 것이 방금 전이다 아 언제 날아들 갔나 눈 씻고 봐도 한 마리 없다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 시선집 『빨간 우체통 앞에서』 (도훈, 2024.01) -------------------------- * 신현정 시인 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4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대립對立』, 『염소와 풀밭』,『자전거 도둑』,『바보사막』,『난쟁이와 저녁식사를』, 유고시집 『화창한 날』(2010) 서라벌문학상(2003), 한국시문학상(2004), 한국시인협회상(2006), 2009년 10월 지병으로 타계
*****************************************************************************
극명은 무엇인가. 매우 분명함이요, 깊은 속까지 샅샅이 똑똑하게 밝힘이다. 아주 뚜렷함을 본다는 것이니 시인은 이른 아침에 반짝임의, 광채의 현현(顯現)을 보았다는 것이겠다. 참새들이 무리를 지어 와서 가지를, 마당을 옮겨 난다. 그 옮겨 나는 것에는 반짝임이 있다. ‘종종걸음’이나 ‘재잘재잘’이라는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겉의 생김새나 모습, 미미한 움직임, 소리에서도 빛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일 테다. 게다가 참새가 바로 눈앞에 있을 때에만 빛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그 자리에도 빛이 있다. 그래서 시인은 새가 날아가고 남은 빈 가지, 울타리, 쥐똥나무, 마당, 그리고 시인의 내면에서도 반짝임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보면 개개의 존재가 각각 광원(光源)이다. 시인은 시 ‘나비 날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비야 나비야/ 오늘 입고 나온 그 눈부신 옷,/ 그동안 어디다/ 꼭꼭 쟁여두었다가 입고 나왔니.” 이 나비도 마찬가지로 봄빛 같은 반짝임을 입고 있다. 문태준 (시인)
***********************************************************************
극명을 즐기는 시인을 보는 극명도 즐겁구나. 울타리와 쥐똥나무와 마당이 반짝이는 것이 참새가 앉았다 떠난 까닭인 줄 처음 알았다. 설마 노랑턱멧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겠지. 오목눈이가 앉았다 떠난 자리도 반짝이겠지. 참새만 이야기한 탓에 다른 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재미가 쏠쏠하구나. 생명의 온기가 딛고 간 모든 곳이 반짝거리는구나. 새들도 어디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릴까? 77억 사람이 딛고 지나는 지구도 반짝인다고.
- 반칠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