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처신하기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슬하에 남매를 둔 어느 어머니는 자녀가 성장해서는 어머니를 함부로 대한다고 서운해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며 집을 나가 혼자 알바를 하며 지냈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딸은 말끝마다 대드는 양상을 보인단다.
이래저래 자녀로부터 무시를 당한다고 여겼던 어머니는 딸에게 함께 상담을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모녀가 내게 상담을 받으러 왔지만, 딸은 비자발적으로 왔기 때문인지 좀처럼 마음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오히려 그 어머니에게 집단상담을 권했다.
개인상담은 한 번에 50분씩 하는 것으로 비자발적일 경우 어쩌다 한두 번은 오더라도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그리하여 몇 회기 내에 성과를 내는 게 어려운데다 자칫하면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다 했다는 식의 면죄부를 주기 쉽다. 이에 비해 5박 6일의 집단상담에는 한 번 참석하면 여러 사람이 50시간 가까이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극을 첨예하게 접할 수 있어 효과를 얻기 쉽다. 자신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체험을 많이 하고, 다양한 자극이 녹아있는 과정에서 자기 문제를 토로하게 될 가능성이 짙다.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 어머니는 5박 6일 동안 진행되는 집단상담에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뿌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가 딸의 눈초리가 무섭다며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해도, 딸은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노려보기나 할 따름이었다.
슬쩍슬쩍 한두 마디씩 하는 말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그 어머니는 툭하면 자녀를 두들겨 패는 식으로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남자를 집에 들였는데, 그는 불같은 성격으로 군기를 잡으며 자녀들을 혼냈다고 한다. 이럴 때 그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자녀들이 버릇없어 굴었기 때문에 혼날 만하다며 그 남자 편을 들었단다.
몇 년 뒤에 어머니가 그 남자와 헤어지긴 했지만, 딸은 그러한 어머니를 삐딱하게 보았다. 어머니가 홀로 고생하며 사는 게 안쓰럽기는 하지만 이상한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며 어머니를 곱게 보지 않았다. 이렇게 갈등하는 모녀에 대해 어떤 사람은 딸의 입장에 서서 어머니가 처세를 잘못했다고 비난하였고, 또 다른 사람은 일찍이 과부가 되어 힘겹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어머니를 딱하게 여기는 등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견해를 보였다.
누구의 불찰이 더 크든 간에 중요한 것은 두 사람 간의 이해와 화합이라고 여겼던 나는 일단 어머니가 딸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불찰이 컸다며 사과하라고 일렀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의 딸이 있는 집안에 외간 남자를 들였다는 자체가 엄청난 불찰이라며 그 어머니를 설득했던 것이다. 어쨌든 딸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던 어머니가 딸에게 고개 숙이며 사과 발언을 해도 딸은 좀처럼 어머니를 향한 싸늘함이 풀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버티었다.
집단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딸은 내게 와서 집단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야 하는데 들쑤셔진 자신의 마음 때문에 겁이 난다고 하였다. 즉 어머니에 대해 더 울화가 치밀어 견디기가 어렵다며 울먹였다.
뭔가 미진해서 그런 마음이 든다고 여긴 나는 그 딸에게 집에 돌아가기 전에 솔직한 심정을 다 토로하라고 권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컷 쏟아내야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장이 시작되자마자 그 딸은 어머니를 향해 그 아저씨가 자기에게 어떤 짓을 하였는지 아느냐고 소리쳤다. 자기를 성폭행하려고 별별 짓을 다 하였다고 폭로하면서 딸을 둔 어머니라는 자가 욕정에 눈이 멀어 외간 남자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말이 되냐며 그 딸은 소리치다 마침내는 복받치는 울음을 쏟아냈다.
이러한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 딸이 그 남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차마 묻지 못하고, 혹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았나 하여 '쿵' 하는 심정일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무겁게 침묵 속에 빠져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침묵했다.
그런데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울고 있는 딸을 향해 그 어머니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딸에게 미안하다고 읊조렸다. 자기가 어리석었다며 마음을 풀라고 하였다. 그러자 집단원들은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엄청난 상처를 받은 딸에게 마음을 풀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는 거였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상대가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어 아우성칠 때는 미안하다거나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감성적인 이야기는 무책임하게 들려 도리어 얄밉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을 더 비루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상대가 더 나댈 수 있는 빌미를 주기나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어머니는 부모의 위치에 있는 자이고, 딸은 자식의 위치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뒤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길길이 뛸 때는 입을 꾹 다물고 비정하리만큼 냉정하게 자신의 직분이나 충실하게 이행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상대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는가 해서다. 어쨌든 진정성을 느끼는 게 중요한데 그것은 짧은 시간 내에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첫댓글 장성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어머니는 자녀들 한테 무시당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성장하는 자녀들 앞에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자녀들을
욱박지르니 어느자녀가 그 어머니를 존중할수 있을가요?
그어머니의 큰 잘못입니다.
더 나이들면 그 어머니를 안보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듭니다.
어른대접을 받으려면 바른행실을 해도
힘들텐데 그어머니는 너무 자녀들을 무시했던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다가 그런 오류를 흔히 범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그 딸이 그만한 것만 해도 큰 다행인 것 같습니다.
보편적으로 그런 환경에 처한 아동은 부모가 그런 짓을 하면 어긋나서 부모 속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고 자신을 던져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 . .
예, 흔히 그렇게 엇나가기 쉽다고 봅니다.
그 정도로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도 다행한 일이지요.
네.그따님은 많이 참고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드님은 어머니 를 이탈하여 독립한
것을 보면 그런셍각이 듭니다
그 딸이 많이 수동적이긴 합니다. 아들은 그나마 힘이 있으니까 독립해 사는 듯합니다.
가족들 모두 상처받은 인간들,,,
서로 찌르고 공격...
더 파멸로 가지않기를...
상처가 치유되기를 ....
좋은 가족관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 정말 다 상처 받고 딱한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자녀들 두었으면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