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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文學批評 |
명지대학교의 진 태하(陣泰夏) 교수의 한자를 보는 시각... 명지대학교의 진 태하(陣泰夏) 교수는 한자의 형성과정에 우리 민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를 제시하여 국내 언어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 근거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째, 집 가(家) 자는 집 면( ) 자 안에 사람 인(人) 자가 들어가 있어야 당연한데도 돼지 시(豕) 자가 들어가 있다. 왜 그럴까. 중국학자들도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대 한 민족은 뱀이나 해충을 피하기 위하여 집안에 돼지를 키웠다. 제주도의 재래종 돼지의 사육도 그런 습속이 변형된 형태이다. 따라서 집 가(家) 자는 집 안에 돼지를 키웠던 민족, 즉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글자이다. 둘째, 날 일(日) 자는 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해는 둥글게 그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해 안에 까마귀 그림이 들어있다. 수 천 년 전부터 해 가운데 금 까마귀(삼족오)가 있다는 신화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문자를 만든 민족은 그런 금 까마귀 신화를 가진 민족이다. 날 일(日) 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수 만 년 전부터 그러한 신화를 전하여 오는 민족은 한 민족밖에 없다. 그러므로 날 일(日) 자 역시 우리 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이다. 셋째, 클 하(夏) 자는 사람이 정장을 하고 서 있는 모습에서 나왔다. 만물이 크는 것은 여름이므로 '여름'의 뜻으로 바뀌었다. 중국 상대 하(夏)나라의 하(夏) 자는 여름의 의미가 아니고 '크다'는 뜻이다. 문제는 중국에서는 '크다'는 의미로 하(夏)라는 글자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민족만이 크다는 의미의 하(夏) 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클 하(夏)자 역시 한민족이 만든 표의문자이다. 넷째, 다할 진(盡) 자는 손으로 부젓가락을 이용하여 화로 속의 불을 휘휘 젓는 모습에서 나왔다. 불을 휘저으면 꺼지기 때문에 원래는 '꺼지다'는 의미였다. 옛날에는 불이 꺼지면 모두 끝이기 때문에 '다할 진'이 되었다. 화로 속에 불씨를 담아서 그것을 보존하는 생활습속이 면면히 내려오는 민족은 한민족이다. 그러므로 다할 진(盡) 자 역시 우리 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이다. 다섯째, 중국에서는 종자를 나타낼 때 '씨(氏)'라고 쓰지 않고, '씨(氏)'는 그런 의미도 아니다. 오직 성씨만을 '씨(氏)'라고 한다. 그런데도 성씨를 나타낼 때 쓰는 '씨(氏)'자는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는 모습에서 출발하였다. 한족(漢族)이 이 말을 만들었다면 종자를 '씨(氏)'라고 표현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우리말의 '씨(氏)'는 종자와 성씨 모두에 사용된다. '씨(氏)'자 역시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이다. 진태하 교수는 이상과 같이 근거를 제시하면서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의 글이라는 "옛 한글 혹은 동방문자"라고 불러야 옳다고 하였다. 진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특히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여야 할 시점이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한자는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義)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자음을 표기하는 발음부호를 반절음(半切音)이라 한다. 반절음은 한자(漢字)로써 한자의 자음을 표기한 일자일음(一字一音)의 발음부호로써 한자를 창제한 민족의 발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 반절음) 예를 들면 白의 반절음은 박맥절(薄陌切)인데, 박의 'ㅂ'과 맥의 'ㅐ,ㄱ '을 합일한 음으로서 白의 반절음은 '백'이다. --------- 따라서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깝게 발음하는 민족이 한자의 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절음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경우 지나족과 일본인은 백두산의 경우, 백(白)을 지나 일본 각기 바이, 하구로 두(頭)를 또우, 도우로 발음하는 예에서 보듯이 일자 이음으로 발음한다. 다른 예를 보더라도 우리 민족의 발음은 반절음에 거의 가깝고, 지나족의 발음과 일본인의 발음은 반절음과 거리가 멀다. 임 승국은 한자 53,525자의 발음부호인 반음절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이계가 황하문명의 주인공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韓國은 漢(桓)字 문화권의 주인공이다" 『自由』 自由社 1977, pp18-38; 김상일, 『한철학』展望社 1983. p69에서 재인용)-황하 하류는 지금의 산동성 태산(천제 지내는 곳)및 제남시 바로 위를 흐르는 곳으로 동이족의 갑골문((眞書)이 나온 은허유적지인 대문구 문명 유적지가 있는 곳임) 그러나 『단군세기』를 보면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 곧 한자가 있었으나 10가(家) 고을의 말이 대부분 통하지 아니하고, 100리의 국가가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하여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우리민족은 한자의 난해성으로 인하여 한자를 먼저 창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대에 이미 그 사용을 포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중국은 " 주(周)시대 사람 주( )가 대전(大篆)을 정리하고, 진(秦) 시대의 이사(李斯)가 소전(小篆)을 정리하여 크게 발전시켰으며, 전한과 후한에 걸쳐 한자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글자수가 늘어나면서 한자(漢字)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鄭準昌 "국어역사와 심미적 관찰" 한국교열기자회, 『말과 글』,1987 봄호) 그럼으로써 한자가 마치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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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의 원조인 갑골문은 중국이 아닌 동이족의 문자
일반적으로 한문은 중국인이 만든 중국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의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들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주나라 때부터야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즉 주나라 이전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골문자의 발굴로 중원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기록과 물증이 없어 전설 속의 왕조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저 유명한 사마천도 <사기(史記)>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은왕조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입니다.
은나라의 건국시조도,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거기서 나온 한문 또한 동이족의 문자였습니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중국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습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배달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입니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 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한문은 중국의 고리타분한 글자요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비판 속에서, 진짜 기원도 모르면서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온 것은
두 가지 문자의 발명국 후손으로써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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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한자는 우리 글이다' [ 2001-7-2 경향신문 ]
음성언어로서 한국어와 중국어, 문자언어로서 한자와 우리 글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연구서 2권이 출간되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다른 어족에 속한다거나 한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내용이다.
경희대 강사인 김지형 박사(국문학)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박이정)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시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는 몽골, 만주 터키와 같은 알타이어족, 중국은 한장(漢藏)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김박사는 "상고시대 이전에 6개의 언어 집단이 한국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중 일부가 중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한자어 213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재구(이론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해 한국어 300여 개 단어와 비교했다.
예를 들어 '人(인)'자의 중국 상고시대 발음은 '니인'(njin)으로 우리말 '놈''님''남'과 같은 어두자음인 'n' 음가를 갖는다.
또 '河'(하)의 상고시대 재구형 '가르'(gar)도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비슷하다.
김박사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어족을 가르는 차이는 어순과 성조(높낮이)인데 이는 한자가 전래된 상고시대(BC 1세기) 이후의 일이라
음성언어 단계에서는 같은 말로 볼 만한 발음상의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정,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 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 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학계에서도 유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 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날숨과 들숨을 뜻하는 호흡(呼吸)의 경우 우리말로는 소리가 분명히 나가고 들어가지만 중국발음
'후시'는 모두 새는 소리가 되고 만다. 출입(出入)도 중국 발음은 '츄루'로 본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김지형, 박문기씨의 주장은 지금까지 중국문자인 한자를 우리가 빌려 썼다는 일방적인 차용의 관점을 탈피해 두 문화 사이의 영향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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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