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 얼마나 잘 변하는지 모릅니다. 아니, 알지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흔히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고 하는데 사실 그 사이에도 얼마나 기복이 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번 마음먹은 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을 존경하게 됩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감정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교제는 가능한 한 피합니다.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화조차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언제 어떻게 반응이 나올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없으니 교제를 피하려고도 합니다. 친구 되기 어렵습니다. 근래 종종 발생하는 거리 폭력사건에서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람이 감정을 가지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성의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 감정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융합되어 나타나야 삶이 활기차고 생기가 돌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만 산다면 마치 로봇과 사는 맛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감정만 가지고 산다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저곳 매양 쌈질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고 싶다면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어느 한 쪽으로 너무 기울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너무 차가운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너무 욱 하는 사람이라든지 하는 평을 듣게 됩니다.
문제는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같은 사람이 언제는 이랬다가도 언제는 저랬다 하고 다르게 자기를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똑같은 문제 앞에서조차 이랬다가 다른 때 가서는 저랬다 하고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가늠하지요? 어떻게 믿고 거래를 하고, 어떻게 함께 살 수가 있지요? 불안할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 안에 그런 사람이 껴있다면 문제아가 되기 십상입니다. 어울리기 어려울 것이고 같이 일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혹 배우자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가정생활을 꾸려가기 쉽지 않겠지요.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삶 속에 살다가는 심각하게 헤어지기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감에 우리 자신이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사태를 만나 매우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선택이나 결정을 함에 있어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동기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익입니다. 내게 유익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 자존심입니다. 소위 자기 위신을 지킬 수 있는지 따집니다. 셋째 의(義)입니다. 올바른 것을 따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명예이기도 하지요. 소위 정의를 지키고 따르겠다는 신념이고 자신의 삶의 최고 가치의 실현을 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넓게 이야기한다면 인간 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가족이 등장합니다. 사실 현제지간입니다.
변호사 ‘재완’과 ‘지수’(아마도 재혼한 아내인 듯) 그리고 고교생 딸과 갓난아기 하나 - 고급 아파트에 고급 승용차, 남부럽지 않은 집안입니다.
의사 ‘재규’와 프리랜서 아내 ‘연경’ 그리고 고교생 아들과 치매환자 어머니 - 괜찮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역시 남부럽지 않은 중상류급 가정입니다.
변호사인 형 재완은 의보다는 돈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재판에 정의를 구현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승소하여 돈을 버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디선가 듣기도 했지만 재판은 정의를 실혀하기보다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라는 말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실력이 인정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소아과의사 재규는 그래도 인간적인 정을 지니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아내 연경도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며 아들 하나 잘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고 요즘 꼭 그런 거 따지지 않으니 별문제는 안 됩니다. 어쩌면 두 집안 사이에서 그만한 거래도 있었으리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 딸 즉 사촌형제 사이도 괜찮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잘 어울려 지냅니다. 다만 성격은 좀 다릅니다. 아들은 다소 내성적인 반면 딸은 오히려 매우 외향적이고 발랄하며 자기 주장이 확실합니다. 그러면서 해외 유명대학에 유학의 길까지 닦아둡니다.
어느 날 유튜브에 아이들이 노숙자를 폭행하는 장면이 떠올라옵니다. 이미 퍼져서 경찰이 수사에 들어섰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연경이 먼저 보고 아들의 낌새를 살핍니다. 분명 그 보이는 아이들이 아들과 사촌입니다. 그 날 아들이 술에 취해서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 복장이 빨래통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들을 붙들고 사실여부를 따집니다.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넘어갔는데 재규도 알게 됩니다. 아들을 붙잡고 추궁합니다. 엄마가 역성을 들며 부인하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나중에 부자지간이 따로 둘만의 시간을 가집니다. 아들은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녀석이 둘만 있는 줄 알고 떠드는 이야기를 재완이 녹화 저장해둡니다. 놀라지요. 이럴 수가. 죽은 노숙자를 장난삼아 놀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라서 인간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회의가 옵니다. 사람다운 면이 아니라 짐승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생 부부를 불러 사실을 보여주고 경찰에 자수할 것을 제의합니다. 아니 이제 뭔가 제자리를 잡는 듯하였는데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어쩌지요? 영화는 사람을 추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역시 비슷한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대상이 외부인에서 가족으로 옮겨졌습니다. 감정폭발, 살인입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