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행복했던 가정이었다. 효성 지극하였던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아흔이 넘었지만 요양원 같은 곳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아내도 남편을 도와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셨다.
작년에는 아흔 다섯 부친을 지구별에서 보내드렸다. 그런데….
몇 달 전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백세시대에 일흔셋은 너무 젊은 나이였다.
남편 시신 앞에서 아내는 오열할 기력조차 없었다. 너무도 뜻밖에 당한 일이라서….
빈소가 만원이라 첫날은 시신을 영안실에 안치만 해놓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집으로 가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집에 계시는 시어머니께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정신이 혼미해서 일의 앞뒤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의지라도 해야 할 자식들은 그네들 집으로 갔다.
“어머니, 괜찮겠어요?”라고 큰아들이 물었지만, “괜찮아.”라고 말해버린 것이 후회가 됐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데….
장례 치르고 하산하는 날, 남편 친구인 내게 그녀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구순의 시어머니와 두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인데도 말이다.
갑자기 돌변해버린 상황에 마음이 짠했다. 어느 시인의 작품이 떠올랐다.
"예순 살짝 넘긴 며느리가 여든 훌쩍 넘긴 시어매한테 어무이, 나, 오도바이 멘허시험 볼라요
허락해주소 하니 그 시어매, 거 무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얼릉 가서 밭일이나 혀!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 그리 아소,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떠듬떠듬 연필에 침 발라 공부를
허는 데, 멀찌감치 앉아 시래기 손질하며 며느리 꼬라지 쏘아보던 시어매 몸뻬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 읍내 나가 물어물어 안경집 찾아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다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 사 들고
며느리 앞에 툭 던지며 허는 말, 거 눈에 뵈도 못 따는 기 멘허라는디 뵈도 않으믄서 워찌 멘헐
딴댜? 아나 멘허!"
-김수열, 『고부』 전문
원동기 면허 시험 응시를 두고 벌어진 예순 며느리와 팔순 시어머니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 있어야 할 한 남자가 언급되지 않아 씁쓸하다.
아마도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갔나 보다. 그런가 하면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라는
며느리의 말에서는 지난 세월의 인고가 후끈 묻어난다.
그 세월들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섣불리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읍내 안경집에서 시어머니는 만 원짜리 대신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를 집어 드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따지고 보면 고부는 본래 남남이 아니든가.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랴.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
고부간의 세월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친구의 아내도 시인이 노래한 ‘원동기 며느리’처럼 씩씩하게 살았으면 싶다.
첫댓글 구순 시어머니 면 칠순 며느리는 아이로 보일 겁니다.
노인당에 가면 칠순은 명함도 못 내놓습니다.
구순 영감이 칠순 영감을 보고
"자는 어디서 온 누구인고?" 이렇게 묻습니다.
칠순이면 술 심부름에 온갖 청소 잡일에~
더러워서 안 간다고 그러더군요.ㅎ
생각해 보세요. 다섯 살 정도 차이도 깍듯이 해야 하는데 열 살 이상 차이 나면 아버지 뻘입
니다.
그래서 나도 여든 훌쩍 넘어서 갈려고 합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잘 못하면 낭패볼 수가 있습니다.
처서 지나서 오는 더위를 추노호(秋老虎)라 하지요. 낮에는 무덥지근 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ㅎ
친구의 친구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 아니겠소. 입장 바꿔 생각해 봐도 참으로 막막하요.
우짜든지 잘묵고 건강하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