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건설의 비화
정주영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1966년 현대건설로 해외 건설 시장을 개척한데 이어 이듬해에는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소형차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목표는 선박을 만드는 중공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변의 반대가 없을 리 만무했다. 경험이나 기술도 없는데다, 천문학적인 투자 자금조차 마련할 길이 없어 모두가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주영은 조선 사업 역시 건설이나 자동차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만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 자금을 해외에서 빌려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는 점이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 4300만 달러의 대출을 요청했다. 이 액수는 당시 현대그룹의 총 자산보다도 많은 거액이었다.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작은 배도만든 경험이 없는 회사에 무엇을 믿고 그 많은 자금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주영은 영국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으로 건너가 선박 건조에 관한 기술 제휴를 얻어낸 후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장들을 찾아다녔다.
영국 은행장들은 선박의 수주 계약서부터 요구했다. 그들 역시 선박에 관한 기술도, 경험도, 자금력도 없는 조선소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정주영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로 달려갔다. 그리스로 달려가 거북선이 그려진 한국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갯벌 사진을 꺼내놓고 세계적인 선박왕인 리바노스 회장과 담판을 벌였다.
“선박이라는 게 뭐겠습니까? 안에 엔진이 있고 바깥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6세기에 ‘거북선’이라고 하는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정주영은 그 자리에서 리바노스 회장으로부터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 받았다. 그리곤 곧장 영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자 이거면 되겠습니까? 이것이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 받은 계약서 입니다.”
정주영이 영국의 바클레이스 은행 부총재를 만나 선박 수주 계약서를 내밀자 그는 매우 놀랍다는 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전공했기에 그 어렵다는 조선소를 굳이 건설하려고 하는 거요?”
정주영은 자신에게 던져진 뜻밖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태연하게 되물었다.
“부총재님, 제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이미 충분히 검토하신 줄 아는데요?”
“그렇소. 당신의 사업계획서는 매우 완벽했습니다.”
그러자 정주영이 다시 말했다.
부총재께서 물으신 제 전공은 바로 그 사업계획서입니다. 어제 오는 길에 옥스퍼드대학교에 잠시 들러 그 사업계획서를 보여주었더니 당장 경제학 박사 학위를 주던걸요.”
결국 정주영은 영국과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당초 액수보다도 많은 1억 달러의 자금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조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달랑 조선소가 들어설 갯벌 사진 한 장과 굳은 의지로 유조선을 수주 받고 자금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최택만 저 한국의 대표급 경영총수의 비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