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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익명게시판 사건 왜 조사 안하나
김용식
작년 12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경찰을 사칭하며 살인 예고 글을 올린 3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21년에는 한 여성 전용 익명 커뮤니티에 본인이 쓴 게시글에 수십 개의 댓글을 스스로 쓴 정황이 발견되어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위의 사건들 말고도 익명 게시판 속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이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 폭언 등 도덕성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는 조금만 검색해도 쏟아져 나온다.
익명 게시판의 순기능은 목숨이 걸려 있거나, 절대다수의 횡포에 맞서 진실을 알리는 등의 활동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투명망토를 두른 채 아무에게나 칼을 휘두르면 안 되는 것처럼, 익명에 숨어 무차별적인 폭언과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 등 타인의 인격을 살해하는 일 역시 용납돼서는 안 된다.
최근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대표인 한동훈과 그의 가족들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온 사건 역시 익명을 악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당원 게시판은 실명 인증 절차를 거쳐 가입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게시글 작성자명이 언제부터인지 김OO, 이OO 식으로 바뀌었으나, 실명을 검색하면 그 이름으로 게시한 글들을 볼 수 있는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고, 한동훈을 띄워주는 수백 개의 게시글 작성자 이름이 ‘한동훈’과 그의 부인과 딸, 장인, 장모 등 가족들 이름과 같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의혹이 불거지자, 이 작성자들이 일제히 활동을 멈춘 정황까지 드러나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동훈계 인사들은 처음엔 동명이인이라더니 이제는 게시판의 익명성을 강조하며, 당무감사나 고소 등의 추가적인 조치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법원 판례들은 익명성이 공익을 침해하거나 공포를 조장하는 도구로 악용될 경우, 법적 조치를 통해 작성자의 실명을 특정하고 책임을 묻는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더욱이 피의자와 피해자로 볼 수 있는 대상이 권력자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충 넘어가게 된다면, 민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들 역시 이 사례를 들어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국민과 당원의 의견이 집중된 집권 여당의 게시판에서, 익명임을 악용해 범죄가 일어났음에도, 친한계 인사들은 그저 한동훈 대표와 그의 가족들이 다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혹시나 중국이나 북한 등의 해커들이 윤-한 갈등을 키워 당정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벌인 국제적 테러라면 어떡하려고들 이러나.
이번 논란은 한동훈 개인의 정치적 위상과 국민의힘 조직 전체의 신뢰를 동시에 시험하는 사건이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떳떳하게 밝히면 될 것이고,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역시 서로에 대한 비방보다는 건설적인 조언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나.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친윤계와 친한계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동훈도 2주일여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고민했으면, 충분한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하루빨리 이번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직접 나서서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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