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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新幹會)는 일제 최대의 독립운동조직이지만 원희룡 스타일 몇 명에 무너졌다.
-일제 下 최대의 보수*진보 합작 모델의 나약성을 왜 되풀이 하나?-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2/200602070551.html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2/200602080684.html
[요약]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 내 민중들에 독립운동의 구심점은 신간회였다. 그러나, 소련의 돈을 많이 받은 신간회 내 공산주의자에겐 소련이 뭐라 할 때 마음놓고 치워 버릴 수 있는, 신간회는 일종의 방해물이었다. 김일성 치하에 조만식 야당도 이념 연합체로 견디려 했으나, 갈수록 조만식 야당 내에 조만식 지분이 약화되고 김일성 지분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한나라당이 수요모임의 소장파에 시달리는 바탕과 겹쳐진다고 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합작 모델은 한국 현대사에서 오랜 연속성을 가진 체제가 없다. 어쩌면, 신간회가 최고 최대의 수준일 수 있더라도 이 조차도 긴 체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이 투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이념연합체가 있다고 우기는 바탕은 젊은 세대에 괴롭히는 수준에서 ‘망령걸린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1.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대안’이라 내세우는 역사서 저술 팀 구성부터가 불결한 이유는?
교보문고 검색창을 뒤져보니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철’교수와 ‘신형기’교수가 보였다. 류근일 논설위원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5권에 참여한 최장집교수보다도 강경한 ‘강정구’급의 극좌파 정해구교수를 온건한 입장이라고 띄우는 입장과 연장선상이다. 경로우대 사상이라고 노년의 칼럼가를 우대하는 한국 사회의 경향이 있다 해도, 도저히 진실을 아는 이에겐 망국으로 향해가는 ‘거짓’칼럼을 보면서 얼마나 울분이 안 치밀겠는가?
사상적 불순세력을 고발하여 제출을 해도 우파 권력층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김철’ ‘신형기’와 참여자로서 ‘조관자’씨는 100% 좌익이 확실한 불순한 참여자이다. ‘조관자’씨가 윤부식씨의 출판사에 ‘한국사’를 때려잡자는 임지현씨 쫓아다니며 썼던 글 수준은, 애교로 넘어가 주자.
임헌영*김철 편, [변혁주체와 한국 문학](역사비평사, 1989.)의 목차
001. <좌담> 변혁주체와 한국문학 - 4.19이후의변혁운동과 문학....
002. 동학농민전쟁과 역사소설/이상경
003. 신소설을 통해 본 개화파의 변혁주체로서의 한계/양문규
004. 식민지 시대 민족해방운동/김철
005. 일제하 조동운동과 노동소설/김재용
006. 1930년 전후의 농민운동과 그 소설적 형상화/김명인
007. 해방공간 소설의 현실인식과 그 전망/서경석
008. 분단과정의 소설적 표현/황광수
009. 보론-민족해방운동 주체세력의 문학적 형상화/오현주
김철교수는 임헌영교수의 충직한 ‘하수인’이다. 그리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자체가 임헌영교수의 ‘하수인’ 흔적이 너무 많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팀의 국문과 참여자 임헌영교수와 김윤식교수는 앞장 서서 북한문학을 연구했다.
김철교수는 임헌영교수에 ‘하수인됨’으로서의 관계를 1989년에 맺은 이후에, 관계 단절을 공식적으로 보인 바가 없다. 김철교수가 무슨 글을 쓰던간에 임헌영교수의 저작 코드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떠돌았다. 이는 김철교수의 논문을 읽어줘야만 했던 국문과 후속 연구자들에겐 ‘하늘에 뜬 해’처럼 선명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헌영교수는 연세대 박사출신 원광대 김재용교수와도 ‘북한문학연구’로 많이 국문과에 인용되는 책을 남겼다.
신형기 교수는 1980년대 후반에 극렬 좌경 문학 연구자로 대학가에 이름을 날리다가, [북한문학사](평민사, 2000.)으로 확실히 ‘이종석’의 북한충성도를 월등히 능가하는--텍스트 내부만 살펴보는 이들에게 가장 의아스러운 점은 ‘신형기’교수의 저술의 국가반역성이 ‘이종석’을 여유있게 능가했다는 점이다. 물론, 텍스트에 기록된 내부로만 한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텍스트에 적힌 바 수준이 너무 소홀히 되는 바도 안타깝다-- 저술을 남겼다. 신형기교수의 요즘 생각을 담고 있는 [이야기된 역사](삼인, 2005)의 목차를 교보문고 인터넷으로 와서 검색 해보자.
늘, 보수주의를 비아냥거리는 시점에서 박지향교수가 일관되게 글을 써왔다는 지적은 넘어가자. 김철교수와 신형기교수의 사상지표는 결코 ‘원희룡’과 다른 바가 아니다. 아직도, 한총련의 대학 선배 정체성을 달고 사는 원희룡의 ‘씩씩한 이종석 지지’처럼, 김철교수와 신형기교수는 아직도 분명히 ‘임헌영 학파’의 구성원으로서 명백히 존재한다.
이러한 지적을 소인배 같은 흠집잡기로 알텐데 어림천만에 말씀이다. ‘신간회’의 몰락과 ‘조만식’의 김일성에 대한 패배과정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보수 세력과 조선일보 편집진에 대한 울분어린 원망이 든다.
좌파 잡지는 [창작과 비평]의 백낙청 학파. [실천문학]의 임헌영 학파로 나뉘어지며, 중간지대에 [역사비평]이란 강만길 학파가 존재한다. 문민정부 때 이 셋이 모두 김영삼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권기에 이르러서 이 셋이 모두 다 보수파를 정면공격하는 좌익지식인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결국은, [조선일보]가 우파 다수에게 믿어보라 ‘보증 잘못 섰다’가 우파 다수에게 ‘쪽박’을 선물한 사건인데도, 아직도 임헌영학파 구성원들을 섬기고 있다!! 아마도, 김영삼 대통령 휘하에서 모두 다 품어주었던 조선일보와 보수 세력의 권력적 시대를 그리워하는 비이성적 객기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신간회의 붕괴 과정’과 ‘조만식선생의 몰락과정’과 계파정치로 흔들거리는 한나라당의 닮은 꼴.
신간회의 재탄생 시작을 보기도 전에 붕괴 과정을 설명하는 바를 이해했으면 한다. 우파 네티즌은 게시판에서 공부를 한다 해도 결국은 ‘전문적’일 수 없다. 어떤 우파 인터넷 신문 논설위원이 ‘그람씨’에 대한 아는 체를 하자, 줄줄이 그 표현을 베껴 쓰는 글을 보았다. 속이 미식거릴 정도로 답답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그러한 수준으로서 대단하다고 대부분의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석사의 표현 따오기를 아는 것으로 인정해왔지 않는가? 사실, 공부를 하자고 한다면 물론 자세하게 따져보면 잘못이 많은 부분이라도, 인터넷 백과사전은 충분히 정보 제공을 한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사의 대략 기초 윤곽을 알아야 한다.
고종황제의 비극으로 잠재된 불만이 3*1운동으로 폭발해 버리고, 그 바탕에서 일제가 문화운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탄생은 그러한 배경이다. 1925년 무렵 조선공산당 운동이 시작되어서 ‘건설’과 ‘해체’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독립운동의 중심세력은 ‘신간회’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망명정부’이다. 국내에서 얼마나 독립운동의 기치로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느냐가, 실질적으로 절대다수의 억압받는 민족에겐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신간회가 해소되고 난 이후에는 조선공산당도 사실상 발을 못 붙이게 되었다. 김구선생 중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대와 식민지 시대에서 지하화된 공산주의 운동의 두 갈래를 빼면, 1931년에 전향한 사람들. 1934년에 전향한 사람들. 1937년에 전향한 사람들. 1940년에 전향한 사람들. 1942년에 전향한 사람들.로 차츰 차츰 견뎌내야 할 ‘광야’의 크기에 압도되어서 변절한 엘리트의 연속이 되었다.
사실상, 국내의 민중들에게 빛이 되었던 것은 ‘조선공산당’이 아니라 ‘신간회’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소련의 지령을 받아서 신간회를 해소지경으로 몰고 간 바탕에 대해서 울분이 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김일성이가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를 건설하고 나아간 공산당만 제대로 된 것이라고 공산주의자의 입장 정리가 된 입장에서, 신간회를 망쳤던 공산주의자들의 줄을 대었던 조선공산당에 대한 그리움은, ‘남로당’계열의 자손들의 몫이라 보면 마땅할 것이다.
소련은 ‘12월 테제’로서 진정하게 소련지휘하에서의 ‘연방민족되기’로서의 일종의 충성도를 요구했고, 신간회 몇 몇 인사들이 ‘원희룡’처럼 분파행동을 하여 신간회를 해소시켰다. 신간회 해소 과정은 신간회 운동의 리더중 1명이었던 소설가 홍명희에 대한 연구에서 거의 전부 드러났다. ‘신간회 해소’란 민중의식의 ‘진공상태’를 [임꺽정]으로 극복하려 했으나, 그 마저도 홍명희는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소련이 자기의 ‘씨다바리’되라고 막대한 자금을 ‘독립운동’하라고 줬다는 사실은, 좌파들의 연구로 많이 들어났다. 그리고, 소련은 말 잘듣는 사람들은 늘 소련본토의 핵심 영역으로 데려가서 사상교육을 시켰다.
일제 시대에 ‘민중들’은 소련 돈 받아먹는 공산주의자와 ‘독립운동’이란 이름으로 민족지도자들이 뭉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신간회’를 만들었지만 사실상 ‘신간회’가 깨진 이유이기도 했다. 독립운동이라 해도 같은 독립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았던 시기를 넘어가게 될 때 닥칠 재난엔, 아무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박명림 교수가 밝혀낸 김일성 하수인에 의한 조만식 야당의 붕괴 과정은 더욱더 비극적이다. 조만식 야당의 붕괴 과정은 한나라당의 요즘과 비슷하다. 이명박시장의 절친한 친구인 박계동의원의 선택과 한겨레신문의 ‘이명박선택’을 보면, 김일성이 미는 조만식 야당의 공산주의자 지분 확장 전략에 조만식 야당이 붕괴되는 과정의 재탕이란 우려로 잠을 못 이루게 된다. 박명림교수는 연구에서 드러낸 바 없으나 갈수록 조만식선생을 받드는 자들의 지분이 줄어들며 조만식 당내에서 ‘김일성부하’들의 지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조만식 정당은 왜 그 상황을 방치했을까?
‘운동권 대통령’은 안된다! 라는 이슈를 제일 먼저 내 걸은 것은 ‘바다를 건너다’이다. 김일성이와 싸우면서 조만식선생은 북한 내 ‘좌우합작 모델’을 분명히 걸었으리라. 역사는 지나놓고 쓰니 박명림교수의 분석에선, 갈수록 줄어드는 당내 조만식선생의 지분에서 김일성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가슴 아리게 드러난다. 한나라당에서 이제 막 ‘역사책’ 들쳐보자고 조선일보 편집진의 시선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보고 배웠어야 마땅하다.
결국, 그 어떠한 좌우 합작 모델도 ‘원희룡 몇 명’에 못 당한다. 좌우합작이라고 권력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권력지분을 정신없이 잃어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조만식 야당 내 머저리 분자들은 당내 親김일성 세력을 쓰고서 김일성세력의 ‘인정’을 기대하는 착각을 분명히 했었으리라.
신간회를 찾아서 나오는 대부분의 역사서는 소련 똘마니 수준에서 12월 테제 입장에서 신간회 붕괴의 합리화 입장에서 적혀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노선이 둘도 없이 소중했더라도, 일제 하 민중들에게 둘도 없는 믿음의 등불이었던 것이 ‘신간회’였다는 주장은 10여년 전에 ‘바다를 건너다’가 사실상 처음이었다고 기억한다. 독립운동사에서 역할과 나아간 바와 결과가 선명하기에, 신간회에 대하여 바다를 건너다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주장은 나올 부분이 거의 없다고 바라본다.
3. 60 넘어서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 몰락한다!! :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이념 연대 모델의 나약성만을 줄창 반복하고도 나아지지 못하는 이유.
신간회가 독자적 재정 능력이 있었다면 반드시 소련 똘마니들을 제압했을 것이다. 또, 조만식 야당이 당내에서 지분이 증대되는 김일성 세력을 찍어내려는 분명한 의지를 선택했다면, 망명노선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찍어내지 못하는 ‘타협주의’를 택했고 그럼으로서 김일성의 조만식 야당 해체 공략에 쉽게 붕괴되었다.
학생운동권들을 다독거리는 대학교수들이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다 인정한다’고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바다를 건너다 는 보수 세력을 휩싸고 도는 60넘어서 배운 유토피아적 꿈꾸기에 대해서, 젊은 세대에 피해를 주기로는 ‘망령’보다도 더 무서운 질병에 걸렸다고 따지기에 앞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시작하고 싶다. 학생운동권들은 논증 결여로서 잘 안되는 영역이 있음을 따지고 지적하여 설득하면 듣는다. 그러나, 60 넘어서 배운 유토피아 기질에 대해서는 아무리 논증으로 알려줘도 백날 똑같은 고집의 반복이다.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는 땅’을 말한다. 대한민국이 강성할 때의 어르신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신차려! 이놈들아!’하고 따끔한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침체 과정에는 어르신들이 주축된 ‘유토피아정신’이 자리한다. 그것도 최악의 스타일인 ‘혁명적 낭만주의’의 그것이며 ‘공상과학’을 현실로 검증하는 과학자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도전에 쌓였다. 아무리 봐도, 한화갑씨에 대한 노무현행정부의 정치생명 종결로 향한 공격은 김대중전대통령의 의지로 보여진다. 일본역사소설에서 자기가 살려면 ‘자식도 죽인다’는 마인드가 작동된 것이라 보여진다. 동교동계 씨까지 말린다고 해봤자 말이 안되는 게 ‘슨상님’의 의지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화갑씨는 김대중전대통령의 그늘 아래를 지키면서 한나라당을 의식한 ‘연대’이야기를 내세운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을 가득채운 좌파 지분을 전제로 한화갑씨의 민주당과 연대를 내세우는 순간, 김일성의 조만식 야당 파괴 작전같은 노림수 라인이 한나라당에 박히게 된다.
보수 세력에서 ‘새 것’이며 ‘전망적’이라고 내세우는 대부분은 김영삼 대통령 좋았을 시절에, 김대중대통령과 어울렸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그것 기준으로 양김 대통령을 괴롭히는 보수 정부를 악당으로 모는 것이다. 그러니, 사상 논리 구조면에서도 우파가 이길 수가 없겠금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어물쩡 두루뭉실한 연대는 ‘사유능력의 결여’를 의미한다. 우파들의 조상들이 좋아했던 ‘연대’모델은 결국은 지도자 능력 결여에 미개한 대중들의 역량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한나라당은 18대 국회에서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트리오를 찍어낼 수 있어야 한다. 찍어내지 못하고서 ‘어설픈 연대 모델’의 감성주의에 시달리면 결국은 ‘신간회 꼴’난다. 신간회에 들어온 공산주의자에겐 소련이 뭐라 할 때 신간회가 방해물이 되듯이, 한나라당에 들어온 좌파에겐 친북좌파 상부가 뭐라 할 때 이념연합체 한나라당은 방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념 연합으로서 뭔가 보여준 것이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미련으로 끝까지 버틸 때 ‘망령’보다도 더 젊은 세대를 괴롭히는 옹고집에 대해서, 뒤엣 말로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이 안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세하게 명료하게 투명하게 보여주던지, 2+2의 답이 4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4가 아닐 것이란 고집을, 젊은 세대는 무조건 믿어라 하지 말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