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이 있습니다. 재판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현실이라면 도대체 세상에서 믿을 곳이 어디인가 싶습니다. 사회에서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그래도 마지막 기대볼 곳이 있다면 법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에서조차 힘에 밀리고 돈에 밀린다면 기댈 곳이 없습니다. 알아도 당하고 몰라도 당하며 살아야 하는 곳,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자신이 힘 없고 백 없는 것을 탓하며 살든지 죽든지 해야 합니다. 우리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억울하면 출세를 해라, 출세를 해.’ 가진 자 반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뭔가 이루어도 이루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점점 더 있는 자 편에 서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도 용 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같은 사회라면 용은 고사하고 뱀조차 나오기 힘듭니다. 나면서부터 경쟁의 도가니로 몰려가는 환경 속에서 소위 일류대 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더 빨리, 더 많이, 더 확실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미 경쟁의 대상이 되기 어려워집니다. 처음부터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은 ‘공평한 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결코 공평하지 못한 현실을 당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하며 발버둥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니게 됩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그런 환경에 처해버립니다.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없습니다.
분명 그는 금수저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좀 특별한 유전자까지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믿고 삽니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남다른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데 거칠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삶을 전쟁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기면 됩니다. 승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승자에게는 그런 권력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패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우군이었다가도 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종종 보는 일입니다. 손을 잡았다가도 경우에 따라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가 ‘로이 콘’ 변호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단한 정치변호사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 바로 이기기 위해서 재판에 들어섭니다. 우리가 흔히 감명 깊게 보고듣는 법정 이야기에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법리에 맞는 논술도 변론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기면 됩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변칙이나 반칙도 불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최종 판결을 하는 재판장도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로이는 말 그대로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 사람의 약점을 세밀하게 조사해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 시점에 찌릅니다.
‘트럼프’가 로이에게서 배운 인생관, 성공관은 자기 인생 속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첫째, 공격 둘째 부인(否認) 셋째 승리 고집. 경기에서도 전쟁에서도 흔히 나오는 전술입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어쩌면 상대방이 당혹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막다른 길에서 뒤돌아 고양이를 공격하는 생쥐와도 같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당황하고 멈칫합니다. 쉴새 없이 공격하여 틈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를 죽이고 결국 뜻밖의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불리한 경우 무조건 모른다고 우기고 아니라고 고집합니다. 상대방은 난감할 뿐입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일입니다. 결국 내가 이겼다고 우깁니다. 거참!
여기는 ‘법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법을 지키지 말고 사람을 지켜야 합니다. 이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 긍정이 될 수도 있고 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법보다는 사람이 우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나라와 사회를 지키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법을 무시하게 되면 자연스레 무질서가 닥칠 것입니다. 아니면 사람이 법이 되어 독재가 이루어집니다. 로이가 자신의 직업을 지키려고 애쓴 부분도 법보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속된 말로 그는 발이 넓었습니다. 정치권의 막강한 사람들과도 연줄이 많았지요. 그래서 아무도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트럼프는 젊어서 운 좋게(?) 로이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도 금수저였기에 가능했습니다. 부자나 권력층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만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남다른 야망을 지니고 있고 추진력까지 가졌습니다. 기댈 곳이 있으니 배짱도 가질 수 있겠지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마어마한 부자가 됩니다. 나아가 잘 아는 대로 최강국의 지도자까지 되었습니다. 다만 걱정스로운 것은 그 힘이 옳은 것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나라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느 정치가나 권세가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자기 힘을 누린 적이 있답니까? 영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를 보았습니다. ‘견습생, 도제’라는 뜻인데 결국 스승을 넘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