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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위태로운 거리 결혼은 뜨거운 감자다. 재인은 지금 그것을 꿀떡 삼키는 중이다. 함께 삼켜야 할 돌멩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드레스의 주름 문제를 겨우 극복하고나자, 그녀는 곧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든다는 불만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다. “아이라인이 너무 진하잖아? 양쪽이 짝짝이 아니야? 은수야, 멀리서 한번 봐봐.” 무엇이 그리 불안한 걸까. 전형적인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동안 재인은 연신 구시렁거렸다. 나는 “괜찮아, 예뻐, 정말 예뻐”라는 문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야 했다. 재인의 약혼자에 대해서라면, 별로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재인이 나를 가리키며 “얘가 은수예요. 여러 번 얘기 했잖아요. 내 베스트 프렌드. 집도 먼데 여기까지 와 준 거예요”라고 다소 장황하다싶을 정도의 소개를 늘어놓았는 데도 그는 성의 없이 고개만 까딱하고는 미용실 직원에게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진짜! 몇 번을 말해야 되나. 나는 얼굴에 분 안 바른다니까. 거 참 커뮤니케이션 안 되네.” 남자 몸에 화장품을 대면 교리에 위배되는 종교라도 가졌는지, 재인의 예비신랑은 뽀얀 사진발을 위해 필수조건이라는 일체의 화장을 거부했으며 텁수룩한 머리칼에 젤이나 왁스도 바를 수 없다고 버튕겼다. “저 사람이 원래 좀 고지식해.” 재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가 내게 얼마나 무안해하고 또 미안해하고 있는지 거울 너머의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기, 뭔가가 와. 아, 이 남자였구나 하는 그런 느낌.” 언젠가 재인이 했던 말이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났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발음하던 그 야무진 입매까지도. 괜히 민망해진 기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얼른 맞장구쳤다. “그래. 남자가 자기고집도 좀 있어야지.” “은수야. …정말, 그렇겠지?” 힘없이 되묻는 재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음을 직감했다. 앙상하게 솟은 그녀의 빗장뼈에 손바닥을 얹고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초라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의 전부였다.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지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결혼이란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둘만의 공간을 이루어 오순도순 아옹다옹 행복하게 사는 행위라고 단순하게 정의내리기에는, 몰라도 좋을 여러 가지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나만은 다를 거야’라는 낙관적 기대에 몸을 맡긴 채 무턱대고 풍덩 뛰어들기에 결혼의 강물은 너무 차고 깊어 보인다.
사진 스튜디오는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였다. 혹시 밟기라도 할 세라 두 손으로 재인의 드레스 뒷자락을 치켜들고 조심조심 쫓아 들어가야 했다. 중세유럽왕실의 응접실처럼 꾸며놓은 세트장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재인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섰다.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자기 가방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더니 그녀는 정신없이 가방을 뒤졌다. “딱 한 대만.”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다. 라이터의 주홍 불꽃이 명멸했다. 웨딩드레스로 몸뚱이를 칭칭 감싸고서, 화장실 벽에 엉거주춤 기대선 자세로 담배를 피우는 여자. 내 친구 재인. 그녀가 내뿜는 창백한 연기 때문에 눈이 아렸다. 나는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가 닿으려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가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3부-위태로운 거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재인의 약혼자는 “우리나라 여자들은 아무튼”을 입에 달고 사는 스타일이었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계속 “이런 식당이 바글거리는 게 이해가 안 가. 요즈음 우리나라 여자들은 말이야, 왜들 그렇게 허영심만 있고 자기 몸 편한 것만 생각하고 이기적인지, 원”이라며 혀를 찼다. 물론 재인 옆에 앉은 나라는 존재는 거의 무시하고서 재인을 보며 이야기하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손님 중 절반은 될 듯한 남성 제위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요즈음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잘 모르는 여자 앞에서는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삼가는 추세였다. 그런데 속마음을 대놓고 표출하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이 남자가 도리어 순진한 건지 아니면 그 따위쯤은 초월할 만큼 뻔뻔한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재인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밥만 먹었다. 평소 누구보다 활기차고 수다스럽고 때론 경망스럽기까지 한 그녀였다. 진한 신부화장, 우아한 올림머리와 지독하게 언밸런스한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맥없이 스테이크를 써는 그녀는 내가 알던 하재인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친구가 납득하기 어려운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어도, 남부지방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마비되어도, 뉴욕의 대중교통이 전면파업에 돌입하여도, 서울의 샐러리맨은 꿋꿋이 출근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월급쟁이들도 그러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그리하여 자그마한 위안이 된다. 월요일 아침은 예고되지 않은 대형사고와 함께 시작했다. 이민정이 황 부장을 도와 진행한 모 중견건설회사의 홍보 브로슈어가 인쇄되어 나왔는데, 글쎄, 그쪽 관계자들이 건물 기공식에 참석해 축하테이프를 자르는 사진의 설명이 잘못된 것이다. 사진 아랫단, 참석자 명단을 나열하는 도중에 ‘부장 김xx’이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그 작달막한 대머리 아저씨의 직함은 부장이 아니라 부사장이었다. 회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안 이사가 그냥 지나갈 리 만무했다. 솔직히 난감한 일이긴 했다. 그 회사와는 이번에 처음으로 거래를 텄을 뿐더러 이번 결과에 따라 정기적 일감을 맡길 만한 여지가 있는 곳이었다. “오 마이 갓. 프로페셔널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실수가 아닌가요?”라고 이민정의 귀에 대고 외치고 싶어 목구멍이 스멀스멀했다. 안 이사의 진부한 표현력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탄 조직원’이었다. 평화 시에는 조직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단단히 결속해야 마땅하고, 위기 시에는 조직의 안녕을 회복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뭉쳐야 옳을 것이다. 허나, 조직의 안녕을 희구하는 마음이 이민정―황 부장 듀오가 처한 곤경에 대해 고소해하는 심정보다 우위에 있는지, 지금 이 순간 나로서는 확답하기 어렵다.
“명백한 저희 쪽 실수잖아요.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죠. 전량 재인쇄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어요.” ―이민정. 지금 이 문제의 원흉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눈치다. 재인쇄 들어가면 네 월급 얼마치를 까야 되는지 알아? “이사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 아랫사람 관리 소홀한 제 불찰입니다. 차후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에, 또…” ―황부장. 횡설수설하는 듯 보이지만, 사건 발생의 책임을 노골적으로 이민정에게 떠넘기겠다는 속셈이 농후하다. 안 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붙여!” 미쳤군. 나는 혀로 아랫입술을 축이며 조용히 탄식했다. ‘부장’ 이라고 인쇄된 부분에 ‘부사장’이라는 글자의 수정테이프를 덧붙이라는 것이 안 이사의 지시였다. 편집부 전 직원들이 파주의 인쇄소로 달려가 날밤을 밝히며 스티커를 붙이는 사태가 벌어질 마당이었다. 이 엄동설한에 왜 엉뚱한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내가, 피박을 덮어 써야 한단 말인가! 그때 난국을 타개할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 아아, 어쩌면 나는 천재일지도 몰랐다. | ||
내가 쭈뼛쭈뼛 입을 열자 다들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 맞다. 우리 회사에 저런 애도 있었지’ 하는 표정들이다. 그럴 만도 하다. 구석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늙은 암너구리처럼 웅크려 앉은 채 회의 내내 입 한번 떼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찍긴 찍는 거예요. …딱 천 부만 고쳐서.”
“아하. 특제하자는 얘기지? 본사 들여보내는 분량만.”
지사 출신인 장 선배가 대번에 내 말을 알아듣고 반색했다. 짐작보다 더 반응이 좋다. 쏟아지는 시선을 받고 있자니 갑자기 이 조직의 주요인사가 된 기분이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장 선배가 내 말을 가로채 청산유수로 떠들어댔다.
“수정테이프 작업해놓으면 솔직히 지저분하잖아요. 신뢰도 안 가고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서로 깨끗하게 넘어가는 거죠. 회사 밖에 뿌리는 책에 뭐라고 되어 있는지 그쪽에서 알 게 뭐예요?”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히야. 오은수 머리 좋네.”
“오 대리가 원래 잔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안 이사와 황 부장이 야유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내 아이디어에 대하여 몹시 솔깃해하는 눈치였다. 일년에 서너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희귀한 상황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잖아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고요.”
이민정이 태클을 걸고 나섰다. “그건 옳지 않아요”라고 눈을 치켜뜨는 이민정에게 “옳지 않긴 뭐가 옳지 않아? 자기가 지금 그런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똑 부러지게 면박을 준 사람은 장 선배였다. 이마까지 온통 벌게진 이민정이 좀 측은해 보였다. 안 이사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천 부는 좀 그렇고, 넉넉하게 천오백 부만 고쳐 찍으라고 해!”
점심시간엔 근처의 일본우동전문점으로 몰려갔다. 이민정이 제 앞의 단무지를 다 먹었기에 슬며시 내 앞의 단무지 그릇을 밀어주었지만, 그녀는 그 뒤부터 단무지 쪽에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잘났다, 정말. 누군 뭐 양심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아나? ‘옳지 않은 일’인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원인을 한번 따져보자. 그녀의 실수가 아니었으면 애초부터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조직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습책을 내놓은 것뿐이다. 그런 선배에게 눈물로 감읍하지는 못할망정 깊은 적의를 드러내다니,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었다. 맘 한구석이 켕겼지만, 그래도 이번 달 월급 값은 했다고, 그렇게 애써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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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카드 사용액은 완만한 W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름신은 2월과 5월, 8월과 11월에 각각 다녀가셨다. 2월에 지른 45만원짜리 가방(내 평생 제일 비싼 가방이다. 질 좋은 가죽이라 앞으로 십년, 아니 오년은 넉넉히 쓸 수 있을 뿐더러 매일매일 들고 다녔으니 벌써 본전 다 뽑은 셈이 아닌가), 5월에 지른 독립기념 세간살이(아껴 사느라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맨 방바닥에서 신문지 덮고 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8월에 지른 괌 여행(친구들과 여름휴가를 맞춰 다녀왔다. 좀 무리하긴 했지만 일년에 한 번, 휴가도 가지 못한다면 아득바득 돈 벌러 다닐 의미가 없지 않은가), 11월의 알파카코트(할인매장에서 작년 제품을 싸게 샀다. 할부가 몇 달 더 남았지만 너무 예쁘고 따뜻해서 입을 때마다 흐뭇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등등이 2005년 내 소비의 증거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삶의 증표들이기도 했다. 나는 소비하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소비하는가.
부-위태로운 거리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 속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이번 사랑에서는, 부디 나에게 그런 허망한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치를 먹은 뒤 김영수에게서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남자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나를 한 번 더 만나본 건지도 모르겠다. 관능을 자극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기쁘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던 여자들하고만 거듭하여 만나온 결과, 2005년 12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요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첫인상이 강렬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놓쳐버린 인연의 숫자를 세어보다가 탄식하고, 그리하여 첫인상이 강렬하지 못한 여자 오은수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애프터 신청을 했으리라. 그렇지만 우리의 만남은 어떤 매듭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끝나 버린 듯하다. 그래, 그것이 정답이라고, 씁쓸하지만 분명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내 옆에 태오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오와 나는 어느새 여느 연인들처럼 데이트하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했다.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 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나와 태오는 첫 번째 단계의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 단계로 막 들어서려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수유리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으며, 그의 부모는 같은 자리에서 10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고, 가벼운 치매 기를 가진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태오는 나에게 세무공무원으로 은퇴한 냉랭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아버지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전업주부 어머니가 있다는 것, 유희라는 이름의 친구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뮤지컬배우 수업을 받고 있으며, 재인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내 눈에는 그 남편감이 영 마뜩치 않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태오가 자신이 중1 때까지 반에서 맨 앞줄에 앉는 꼬맹이였으나 중2 때 무려 20cm가 자라버렸다는 사실을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 나이 때 그룹 소방차의 열혈 팬이었으며 여름방학엔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그들의 숙소까지 찾아간 경험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태오가 “소방차? 그게 누구더라, 이름은 들어봤는데”라고 대꾸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일곱 살 차이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가 돌쟁이 아기였고, 내가 처음으로 남자와 잤을 때 그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는 걸 상기하면 녹슨 화살촉이 허벅지를 스쳐간 것처럼 멍멍해지곤 했다. 우리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해 태오가 영화 ‘킹콩’을 어렵사리 예매해 놓았다고 했다. 성탄 전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라니, 인파에 떠밀려 다닐 생각만으로도 뒷골이 지끈지끈 쑤셔왔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설레지 않고 무덤덤하거나 차라리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지 한 2~3년 되었지만 어린 연인에게 일부러 고백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선물에 대해 고민하다가 폴로랄프로렌에서 민트색의 단정한 옥스퍼드 셔츠를 샀다. 태오의 흰 피부와 썩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큼지막한 구제 털점퍼에 헐렁한 건빵바지를 즐겨 입는 그의 패션 스타일에 서서히 변화를 주어 가고 싶었다. 허리선을 끈으로 묶는 쥐색 정장코트에 파시미나 머플러를 두른 삼십대 여자와 애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태오 입장에서도 이 정도쯤은 기꺼이 맞추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태오의 선물을 받아드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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