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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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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두근두근
공기가 무척이나 무거워졌군.
생각보다 빨리 식어버린 나의 울컥한 화 따위가
무색해질 정도로 어색해진 이 분위기..
워쩔껴..
화가 많이 안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분위기는 벌써 벼랑 끝으로 왔구려..
"연습이나 할래!!!"
"죽으면 안돼."
"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니. 아가야..
순간..
아..맞다.
"죽으라고 빌어도 안죽어! 너보다 늦게 죽을거야."
굳은 진도원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
자기 형이라도 생각난걸까.
잊고있었네.
자기는 화낼 줄 모른다고 했던거.
"나 화낸 거 아니야. 장난친거야. 알지?"
"알았다고요.."
저런 얼굴 앞에서 내가 더 큰소리는 못치지.
내가 능구렁이 한마리를 키웠지.
내가 쟤 앞에서 어떤 큰소리를 더 지르겠어.
'♩♩♬♪♪♩'
딩딩
연습실을 자꾸만 울려대는 건반소리.
연습하자고 큰 소리를 쳤건만
곁눈질로 보이는 깡은이 녀석때문에 도통 노래를 못하겠다.
쟤는 그걸 남몰라라 하면서 자꾸만
건반만 가지고 장난을 친다.
"에이씨."
오분을 넘어서 십분간을 침묵 속에서
깡은이의 독수리 타법 연주를 듣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난 연습실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탁 트인다.
"요즘 잘했잖아. 지친거야?"
"...깡은이 있으니까 안나와."
뒤를 쫓아온 진도원이에게
시선을 두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변했다고 해놓고.."
착찹한 마음을 후벼파는 진도원의 말이다.
난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애써 다른 생각으로 진정해보려 했다.
"안된다고..근데..안된다구. 못하겠다구. 노래가 안나와!"
혼잣말이였지만 어느새 짜증을 내 듯
언성을 높여버렸다.
누구 잘못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난 단지 나 스스로에게 실망이 큰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이다.
"왜 해보기도 전에 겁을 내. 도움닫기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닙니까."
"도움닫기는 수십번이나 했어."
....
......휴...
"그런데.."
...
날개를 펴기엔 너무 아파. 아직.
.....
............
.....
...........
"아아..흠흠.."
귀를 타고 오는 음악.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나는 텅 빈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요즘 푹 빠진 노래를 듣자니 가슴이 뛴다.
"잊지마..시간이 흘러도 ~"
이게 아닌데.
목을 가다듬으며..
이젠 망가질대로 망가진 구식 mp3..
돈벌면 mp3부터 예쁜 걸로 바꿔야지..후후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아직 잊지 못해-
지워도 지울 수가 없는 내가 싫어 - "
목소리를 높히다가
다시 웅얼거리기를 반복.
내 앞에 서 있는 아준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급히 이어폰을 빼고
"어..언제 왔냐?"
"노래 무지 잘하네?"
피식 웃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건사.
나 노래 잘하는 거 이제 알았나☜자뻑
"야야! 나 진짜 노래 잘하는 거 같아??"
"어!"
방에서 큰 소리로 대답해주는 건사.
입에 미소가 걸린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준이는 털썩 내 옆에 앉는다.
"열심히네. 요즘."
"응. 어려운 건 있는데.. 그래도 재밌어."
"그러냐."
"아 맞다! 나 내일부터 알바해. 카페에서~"
mp3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오랜만에 대화를 하면 늘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
건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
"넌 요즘 일 잘되가?"
"그렇지, 뭐."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원
신비주의여 뭐여
"야."
"왜."
부시럭부시럭..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잠자코 녀석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져."
이게 뭣이여.
이게..
이게.....
"가지라고? 이걸?"
좋아보이는 이것은..
그니까..
내 왼손에 있는 물건과 같은 물건이다 이거지.
최신형 mp3
"선물이야."
"왜? 내 생일이야?"
"선물이라면 선물이야. 그 고물로 노래듣겠냐."
"이 개새끼가. 암튼..나 진짜 가져도 되는..거?"
끄덕이는 너의 고개.
참 이쁘다.
호호
근데 이거 얼마지?
목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딴 거?
"내가 꼭 너만을 위한 노래를 꼭 불러줄게! 약속한다!!!"
그냥 희거멀건하게 웃어주는 아준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준이니깐
저 웃음의 뜻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건사, 쌩유.
날 응원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복도 많지. 한미소."
조그만 기다려라.
이 언니가 나가신다.
........
......
그 날 밤은 유난히 따뜻한 밤이였다.
따뜻한 꿈을 꾸었다.
하늘을 날아 내가 날아간 높은 그 곳
그 곳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얼굴이 있었다.
목소리도 들었다.
내가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말했다.
난 말했다.
꼭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그 곳에서 다시 엄마와 아빠를 찾겠다고.
...............
........
\ 일주일이 지난 후
"저기.."
"네?"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또각또각..
이틀 전부터 자주 보인다 싶더니.
저 양반 내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진도원 반도 못따라가는 양반이.
..
카페 일에 제법 적응해가는 중이다.
한 번은 넘어지고 손님에게 쥬스를 엎어먹고
입싸움을 하고 그래서 그만 둘 뻔 했지만..
어쨋든 이젠 적응이 됬다고 본다.
최악의 일주일을 겪고나니 이 일도 이젠 내 일인 것 같다.
나 한미소는 적응력이 최고인가.
..이러고 있다.
"수고했어. 미소야."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인사를 하고 난 카페를 나섰다.
툭..
"아.."
어깨충돌.
무슨 벽에 들이댄 것 같잖아.
"괜찮아요?"
"네."
괜찮기는.
얼굴을 올려다보니..
우리 카페에서 오후타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서동호예요. 그쪽은?"
"뭐요."
서동호가 뭔데.
"에?? 이름이요. 통성명..하자는건데.."
"아..아!! 한미소예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이잖아요. 전 스무살이예요."
"네."
뭐 나이까지 서로 알 이유없다고 느낀 나는
목례를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저 아저씨가 뒤에서 나 건방지다고 무지 호박씨 까겠지?
(☜스무살도 아저씨 스물두살 아준이는 친구)
곧장 일이 끝나면 나는 노래를 하러간다.
..
"나왔어!!!!"
"방가방가~"
내가 말을 했던가?
이제 도원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도 노래가 가능하다는 것.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고 자연스럽게 노래를 한다.
하루 하루 노래를 할 수 있다 없다를 고민하는 건 이미 지났다.
요즘은 하루 하루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려고 한다.
기쁘다. 즐겁다.
"아 오늘 일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전화번호 알려 달랬어!"
"씨..나보다 이뻐?"
"이..이뻐가 뭐냐? 또라이."
"그럼 나보다 잘생겼어??"
"그 사람은 옥동자 닮았어."
자기가 옥동자보다는 낫다는 걸 안다는 듯
만족의 미소를 보인다.
"아 졸라 닭살이다?"
계단을 누군가가 걸어 내려온다.
목소리와 말투를 가만히 듣고 있어보니 누군지 알 것 같다.
되게 오랜만에 보는 이 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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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이형!"
"이 새끼는 왜 나더러 우엉이래!"
남우형이 등장하셨다.
"오랜만이다. 우엉아?"
"넌 아직도 내 이름을 제대로 못부르지?"
"크크크.."
아 뭔지는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반갑다는 생각이 들까.
"얘한테 듣자하니 요즘은 노래를 부른다며?"
"니 앞에서는 아직 못불러."
"들어보자고 왔더니..아! 깡은이도 노래 들어봤다던데?"
이 강아지들 입방정.
"그..그건 걔가 엿들은거고."
"조만간 좋은 소식있겠지."
우엉이가 저렇게 이야기를 할 줄도 아는구나.
그러고보니 연습을 한지도 삼주를 넘어 선 것 같다.
우엉이는 여기저기 연습실을 둘러보더니..
코를 찡긋해보인다.
"나도 니 노래 들었어."
"응?"
"열심히 해라. 연습실만 망가뜨리지 말고."
우엉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뱉고는
다시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쟤가 지금 뭐라는거야? 내 노래를.."
"무..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 연습하자. 연습!"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보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모두가 내 노래를 들어 줄 날이 올테니까.
...........
........
"이젠 노래 너무 잘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언제 들려주지?"
"몰라. 너 앞에서는 습관되서 부를 수 있는 것 뿐이야."
닭꼬치를 하나씩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연습 후 담소랄까.
그 날 연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매콤한 닭꼬치를 다 발라먹고나니
집도착.
"거슬려. 언제 이 집에서 나와?"
"이번달 안으로는 나올 생각.."
녀석이 자꾸 닥달하는 것도 있었고
전부터 생각해온 것도 있었다.
근데 이 말을 하면 괜히 씁쓸해진다.
내가 아준와 떨어져서 산다는 생각.....뭐랄까..
"들어가. 내일 보자."
"잠깐만."
"왜..."
쪽
도원이는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곤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저만치 멀어져갔다.
피식..귀여긴.
집에 발을 들이는 그 짧은 시간에도 난 한숨부터 나온다.
"건사야~ 나왔다~~"
불이 꺼진 거실.
아직 아준이가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난 신발을 벗고는 거실 불을 밝혔다.
현관에는 방금 벗어놓은 듯한 건사의 신발.
"아준아..방에 있어?"
조용하다.
이제 아홉시가 다되어 가니까..
혹시 퇴근하자마자 잠든건가.
난 조심히 아준이의 방 문을 열었다.
"아준아..자냐?"
어두운 방 안
침대 위에 널부러진 건사가 보인다.
옷은 갈아입지도 않고..자는건가.
깔끔떠는 쟤가 무슨 일이래?
살금살금..
"자냐?"
읍..근데 이게 뭐지?
손으로 코를 움켜쥐게 만든다.
알콜향기가 아주 가득하구나.
"시간도 이른데 얼마나 쳐먹은거야.."
절로 고개를 젓게 만든다.
불편해보이는 셔츠 단추를 딱 하나만 더 풀어준다.
탁..
내 손을 가만히 잡아버리는 아준이.
너무 놀라서 목소리도 안나온다.
"아..안잤어?..아니..너 자는데 불편해보여서."
내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뜬다.
얼굴은 오만상으로 찌푸린 채.
"한미소."
"어, 왜?"
".....미소야......."
미..소야??
들어본 적이 없는 말.
난 휘둥그레진 눈으로 녀석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면 다시 눈을 스르르 감는 아준이.
그리곤 손에 힘을 풀어 놓아준다.
"...복잡하다.."
그렇게 아준이는 잠이 드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복잡한걸까.
순간 내 복잡한 머릿속처럼 아준이가 안쓰러웠다.
한참을 녀석 옆에 앉아있다가 난 그렇게 아준이의 방을 나섰다.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하고 또 했다.
...............
........
짹짹짹
참새가 울고
유난히 화창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일어나자마자 건사 방으로 들어가본다.
"어? 나갔나?"
일찍부터 출근한건가?
요즘 이상해지네.
아준이도 느끼고 있는건가.
우리가 떨어져 지낼 그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괜시리 씁쓸함이 몰려오네.
에이 퉤.
떨어져 나가버려라.
이 씁쓸함.
익숙해진 아준이의 아침 밥상에서 밥을 먹고
난 알바를 하러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오늘이 벌써 토요일이네.."
이 말 뜻에는 숨은 여러 의미가 있다.
내일이 알바쉬는 날이라는 의미.
진도원이 나랑 데이트를 하는 날이라는 의미.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라는 의미.
그러나 연습은 쉬지 않는 날이라는 의미.
화창한 아침이지만 역시나 차디찬 겨울바람이 분다.
추위를 벗삼아 난 카페로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기분좋게 인사를 하고 난 두툼한 목도리를 풀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인사 후
제각기 카페를 열기 전 준비를 한다.
왜일까..
유난히 평온한 하루가 될 것만 같다.
난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는다.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을 쓸어낸다.
"모두 집합 - "
사장님이 맛있게 타주시는 커피를 한잔씩 받아들고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지금 시각 9시 53분. 지각생없고 아무런 이상도 없음?"
"네~"
다정다감한 이 분위기가 너무 좋다.
늘 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괜찮다. 이것도.
우리들의 잡담은 계속 되고 있다.
난..
친구가 없다.
이런..된장..청국장..
"미소씨. 일주일을 이제 넘겼는데..쑥쓰럼이 많나봐?"
많긴요..............
누가요, 내가요?
"허허허허허.."
"미소씨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이걸 원했다고요.
매번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은 건 당신들.
쑥쓰럼을 많이 타는 건 당신들.
후후후후.
"열아홉이랬지? 좋겠다~"
"나도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있었나?"
내 나이 열아홉이라는 숫자는 이렇게
대화의 엄청난 주축이 되었고..
"남자친구는 있어?"
"난 쟤랑 사귀는데..혹시 알았나?"
내 남자친구 진도원의 이야기도
주축이 되었었고..
"자자! 10시 30분! 일들 합시다!"
"네!!"
30분 가량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난.
일주일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30분에 요약해 말하려니..
"미소야! 이따가 또 이야기해줘!! 노래연습한다는 거!"
이렇게 내 이야기에 미친자들도 생겼다.(☜ 또 착각..)
하나둘씩 말도 트기 시작했다.
곧 이제 내 매력에 빠져들어 못나오겠지..후후
.............
............................
"아..지금 바뻐..언능 끊자구나."
- 심심해서 눈물나오는데?
학교가 일찍 끝나고나니 할 일이 없어졌나보다.
나말고는 놀아줄 아가 없는지
한심한 왕따쟁이 진도원이는 자꾸만 한시간에 한번씩 전화질이다.
"이따가 놀꺼잖아."
- 그러지말구......나 거기 놀러갈래.
"미..미친. 니가 왜와???"
- 나 우엉형이랑 겜방인데 삼십분 뒤에 도착이다. 거기. 뚝.
뚝..
그렇게 전화는 정말 끊겨졌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얘는 온다는거야?
내가 어디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미소야. 여깄어?"
"아, 네! 곧 나가요!"
주름살 하나를 추가시킨 진도원.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화장실을 벗어났다.
"아...이걸 어쩌면 좋니.."
카운터 한 쪽에 사장님을 중심으로 종업원들이 죄다 모여있다.
손님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나도 사장님 쪽으로 걸어나갔다.
"무슨 일 생겼어요?"
"그러니까..그게.."
"자..! 내가 어떻게든 생각해볼테니깐..일들 해! 손님들 들어오잖아."
사장님이 떠미는 등살에 다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난 그 중 제일 편하게 대화하는 윤미언니에게 물었다.
"왜 그런거예요?"
"오늘 다섯시타임 서동호알지?"
서동호..서동호..
어디서 들어본 이름....
아..!!!!!
"그 노래하는 사람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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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가만히 듣자하니
이런 내용이였다.
우리 카페를 찾는 사람들 중에서는
서동호의 노래를 듣고 싶거나 보고 싶어
그 타임에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어제도 오후 일곱시타임이 아주 대박이였다고.
"아..어제 나 퇴근할 때 그 사람은 노래를 하러 오는거였구나."
내 퇴근 시간은 여섯시.
종종 그 서동호라는 사람과 마주치거나
사람들이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일러준 게 다였기에..
은근 노래실력이 궁금한데...
"근데 걔가 오늘 늦는다네."
"올때까지 시간을 때우면.. "
"문제는 못 올 수도 있대."
"다섯시에 공연있다고 그렇게 말해놨는데.."
"그렇지. 손님들과의 약속에 있어서는.."
서동호가 우리 카페를 뒤흔드는구나. (☜그건 아니다)
"사장님 걱정되시겠다."
"걔 들어오고 매상 좀 올랐다 싶었는데."
윤미 언니는 혀를 끌끌 차며 홀로 들어가버렸다.
곧 다섯시가 다가오는데...
대체 무슨 사정이 있다고 일자리를 펑크까지 낸대?
지가 사장이구만.
뭐 카페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긴 하다. 솔직히.
"주문하시겠어요?"
"아메리카노 하나, 오렌지쥬스 하나요."
"아메리카노, 오렌지쥬스요~"
"네. 근데..이따가 노래하는 사람이 어제 그 분 맞나요?"
"네? 아..그게..아..아마도 그럴 겁니다."
위기에 처한 내가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하고 도망쳐왔지만
당황해 미쳐버릴 지경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는 사장님.
난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고개만을 내저었다.
"진짜 손님이 무지 많네."
같이 일하는 언니들은 땀을 연신 찍어댄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잠깐의 틈따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계바늘은 어느덧 다섯시를 정확히 가르키고 있었다.
..
"결국 안왔네. 서동호..."
"다른 시간대 가수들은 다 안되는건가?"
"갑자기 부르면 그게 불러지겠어?"
종업원들은 하나같이 사장님만을 바라보며
걱정이 담긴 말들로 떠들어댔다.
초조해보이는 사장님이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덩달아 초조해진 우리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리 중에 노래 잘하는 미선씨가 나가보는 건 어때?"
"그러다가 욕먹으면요? 전 노래방 아니면 못해요!"
"그럼...미소는?"
"........네..네?!?!?!?"
우리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시는 오빠님이다.
아까 오전에 다들 급하게 친해지더니..
아니 친한 척 하시더니..
내가 노래를 못하는 병이라는 이야기는 아까
들으신건지 마신건지..
"노래를 잘하니깐 그 남자친구도 도와주고 있는 거 아냐?"
"아...아니..저기..오빠님. 전요......."
"미소가 노래를 좀 잘 부르니?"
이런 경우를 점입가경이라고 그러던가.
사장님 귀는 우리 대화에서 내 이름을 정확히 뽑아내었고,
난 당황한 나머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양손을 열심히 내저을 뿐.
"딱 한곡이라도 좋으니깐 시간 좀 잡아줄 수 있겠어?"
"사..사장님.. 전요. 노래를..사람들 앞에.."
"이 기회야. 한 번 도전해봐. 미소야!"
윤미언니는 지금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응원을 하기 시작했고,
난 목이 바싹 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데..
사장님은 간곡히 부탁을 해온다.
카페 안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워지자
사장님은 황급히 작은 무대 정도로 보이는 곳으로 가셨다.
"언니..나 진짜 못해요. 알잖아요..."
"남자친구 앞에서는 노래한다며~ 화이팅이다!"
"언니..!"
내가 애걸하듯 오빠, 언니들을 바라보지만
다들 그냥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눈빛들 뿐이다.
곧이어 사장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따라 흘러나온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저희 카페를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설마..설마..
하면서도 자꾸 초조해온다.
서동호라는 이 사람이 미워진다.
"너 이거 도와주면 돈을 따블로 받을걸?"
내가 지금 돈때문에 노래부를 입장이 아니라구요.
난 미간을 찌푸리곤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오늘 여기 DH노래를 들으러 오신 분들 참 많으시죠?"
디..에이치 좋아하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가슴팍을 두들겨본다.
그리고 이 와중에..
"어서오세요."
내 남자친구와..그의 친구 우엉군이..
등..장...
"저깄다!!"
하늘이시여..
날 발견하고는 커다랗게 웃어주며
도원이는 천천히 걸어온다.
"그래서..저희 종업원 중에서 한 친구의 노래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사장님의 멘트에 귀를 기울지 않다가 난 그 멘트 하나에
내 고개는 백팔십도로 돌아갔다.
사정은 이미 다 설명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제안을 하시는 사장님.
"어떠세요? 다들 괜찮으세요? 부끄럼이 많은 신입멤버예요."
사..장님...
제발요.
제발..이 양반아..
..
"미소씨를 박수로 맞아주세요."
결국..
사장님께서는 일을 저지르셨고..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 앞에 깜깜해졌다.
애써 힘주어 자리에 서서 난 풀린 눈으로 도원이를 바라보았다.
나만큼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진도원.
"미소야..언능 나가봐."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내 등을 떠밀어댔다.
난 도움의 눈빛으로 진도원을 바라보았고,
이 녀석은 이 상황을 눈치로 알아챘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야..야..얌마!.."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마지막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람들의 박수소리..그리고
주위의 응원소리..
결국 끝까지 오고 말았다.
여기서 내가 뛰쳐나간다면..?
"미소야..잘부탁해."
귀에 소근대는 사장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이미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도원이와 우엉이는 진 테이블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 녀석을 실컷 노려보았고, 주의를 한 번 둘러보았다.
윽...
이놈의 망할 현기증.
"..안녕하세요."
찬바람이 부는 분위기.
난 얌전히 인사를 먼저 꺼냈다.
종업원 사람들은 기대로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한..미소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오고 힘이 되어준다.
자꾸 타는 목때문에 난 목소리를 가다듬느라 바빴다.
시선처리 불안정, 호흡 불안정.
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반주분께서는
나의 곡 선택만을 기다리시고..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노래만을 기다리시고..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내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날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당황한 듯 보였다.
"제가..사실 사람들 앞에서는 노래를 못하는..
그런 모질 병이 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자리에..
저같은 이상자가 올라설 기회가 생겼네요..."
시선을 바닥에 떨군채 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하는 건 그닥 어렵지 않다. 이건 노래가 아니니까.
한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내 이야기에 다시끔 사람들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제가 지금 노래를.....부르게 된다면...그건..
진짜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 되어버립니다요..
아...아니..되어버려요."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눈을 감고 노래를 해야하는 점 이해해주세요."
무슨 자신감이였을까.
지금 여기서 내가 만약 성공한다면..
난 내 자신을 이기고..
앞으로 더 힘든 것들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감기 전 도원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널 그리겠다.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널 위해 노래를 하겠다.
난 그렇게 생각을 했다.
손으로 그려주는 도원이의 하트에 난 피식 웃어버린다.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고 있다.
"봄날은 간다..그 노래 되나요?"
반주자분께서고개를 끄덕여준다.
난 목을 가다듬고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천천히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어둠속에 묻어버린다.
반주가 귀를 타고 천천히 흘러 들어오고..
.......
.....
첫번째 실패..
두번째 실패..
"괜찮아요!!"
"오오!!"
난 눈을 떴다.
사람들은 날 향해 박수를 아낌없이 쳐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날 당연히 꼴사납게 보았지만
난 아무렴 상관없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서로가 처음 보는 사이라는 게 무색할만큼
난...
세번째 다시 첫 반주가 흘러나왔다.
난 다시 눈을 감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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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문득 그리운 날의 -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건 - "
어둠속에서 널 그려.
난 천천히 한소절 한소절 내뱉기 시작했다.
떨리는 심장을 한손으로 움켜쥐곤..
그렇게..
..
"그건 아마 사- 랑도 피고 지는 꽃- 처럼
아름다워서 - 슬프기 때문일거야..
아마도 -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 람들.."
내가 노래를 한다.
오늘도 눈을 감고지만 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어둠에서 그려내어도
노래가 멈추어지지 않는다.
천천히 난 눈을 떠본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 "
잔잔한 조명이 먼저 반긴다.
앞에 보이는 마이크를 더욱 꽉 잡고는
더 열심히..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
여전히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 불안하지만..
그 불안정한 시선을 난 도원이에게로 옮긴다.
..
보고있어?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 람도 피고 지는 꽃- 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너가 그동안 날 믿어준 결과야.
진도원..
도원아.....
"그건 아마 사- 람도 피고 지는 꽃- 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노래가 끝나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져버린다.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소리가 들려온다.
휘파람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난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곤 허겁지겁 무대를 내려왔다.
축축해진 내 유니폼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달려간 곳은 진도원이 있는 곳.
"역시 한미소는."
"에이씨..쪽팔리게 눈물이 나와.."
기대보다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너무나도 잘
그렇게 노래를 불러버려서
보면서 조마조마한 응원을 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있었다.
도원이가 날 안고서 이리저리 휘두르는데..
그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 근데..제법이다..."
서동호가 그렇게 말했다.
내 노래를 듣고 있던 서동호는 나에게 반한 것 같았다.(☜누가 그래)
버트,
난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준
내 멋드러진 남자친구가 있어.
"남자친구야?"
"아..네."
"노래 멋졌어!"
"진짜 미소 다시 봤어!!"
코끝이 괜히 찡해진다.
계속 터져나오는 웃음을 품에 안고
난 도원이와 우엉이와 함께 퇴근을 했다.
참..우..우엉이도 있었구나.
"넌 그러니깐 왜 오셨느냐고요..!"
"내일부터 우리 밴드부 들어올거야. 말거야."
"이제 막 입이 트고 정신이 텄는데..뭔.."
아까부터 별다른 말없이
우엉이는 저러고 있다.
내 노래솜씨가 맘에 들었단 소린가?
...
.......허..허..허허허허허....
내 노래를 들어준다는 기쁨이 이런거구나.
나 오늘만큼은 자만감에 뛰놀고 싶..싶구나.
"바로 내일로 잡자."
"뭘?"
"우리 밴드부 오디션."
"누가 들어가나요? 진도원씨?"
"비..비싸게 굴꺼야?"
..
그 날 우린 근사한 저녁을 먹고..
(☜ 1인분에 3900원짜리 삼겹살이였다..)
난 아이들의 축하를 받았고..
(☜ 스스로를 축하하며..)
노래연습은 물론 너무 순탄하게 잘되었으며..
(☜소주 두잔의 힘)
그렇게 따스한 밤길을 누린 뒤 귀가했다.
"내 룸메잇!!!!!!! 하이방가!!!!!"
"미쳤냐??? 오늘은 상태가 또 왜이리 업됐냐."
"나..........오늘......."
"오늘......."
"노래했어."
"장난하냐."
"한 스무명? 아니다..한 삼십명? 그 대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
"어때. 나 멋지지? 카페 가수 대타였는데.."
쫑알쫑알...
쫑알쫑알..
워쩌구 저쩌구..
씨벙씨벙..
"그래서 결국은..이렇게 기분좋다 이거잖아!!!!"
"말이..길었냐? 하하.. 이 누나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잘했어."
"호호호..너가 엠피삼을 선물로 줘서 그런가봐."
난 너무 기분이 좋아 방방 쇼파 위를 뛰었고
건사의 어깨를 두어번 치고는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옷을 갈아입고는
다시 방을 나서면서도 난 미소 가득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출 필요 뭐있나?
이렇게 미치도록 좋은데.
..
난 다시 건사 옆으로 가서 앉았다.
앞에 놓인 귤을 까먹으며 건사와 똑같이 텔레비젼에 시선을 두었다.
"일이 풀리니깐 좋아보여."
"응! 잘 풀리니깐. 나의 전성기인가봐."
내가 히죽거리며 귤 한쪽을 입 안에 넣었다.
침묵 속에서 난 다시 귤 한쪽을 집어 넣었고,
"나갈꺼니?"
"..응?!?!?"
........
...
정적.
그리고 눈을 마주보고 앉은 우리 둘.
왜 이 순간..
잡다구리한 생각이 다 들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집 나간다며. 지금 너 그정도 돈 있다는 거 알아."
"..지금은 아니야."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져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지만 우중충해진 기분으로 난
계속 이유없이 귤을 입안으로 집어 넣었다.
"일년 반. 이제 이년이 다 되어가지."
"..............."
"넌 할 일도 생겼고, 할 수 있는 일도 생겼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건데."
자꾸 나가라고 날 부추기는 듯한 건사의 말에
난 기분이 상해져버렸다.
행복에 겨워 미친 듯 기뻤던 방금 전 일들을 순간 잊은채
그렇게 난 굳은 얼굴로 말대답을 했고..
서로 정적속에서 눈으로만 계속 씨름하기 바빴다.
...
"안나갔으면 좋겠어."
"뭐?"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뱉는 아준이.
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언제든 나가야 한다면..좀 늦었으면 좋겠다."
"에이..짜식. 나도 그러고 싶어. 난 또 내일 당장 나가라고 하는 줄 알았네.."
"지금 이대로가 난 좋아."
"나 당장 나가라고 해도 안나가."
난 미소를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등을 보이며 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왠지 씁쓸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리 늦지도 않을거야.."
"무슨 뜻이냐."
"더 살면 그게 남녀동거지!! 그리고.."
"그리고."
"이런건 나만 괜찮아서는 안될 일이잖아."
더 이야기가 심각해지는 걸 원치않아
난 내 방 문고리를 잡았다.
"남자친구때문에?"
멈칫.
"당연하지. 너 니 여자친구가 딴 남자랑 살면 좋겠냐?"
"이 집에서 나오래?"
"너 왜그러냐? 질투해? 넌 날 너무 좋아한다니깐.."
"좋아해."
"응... 뭐?"
"좋아하는 거 맞어."
"나도 너 좋아하거든요. 건방진..."
쾅.
난 끝까지 진지함으로 마주 할 순 없었다.
방 문 하나로 난 그제서야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장난같은데..
아준이 표정은 왜 그렇게 심각해야만 하는거지.
.....아 심난해..
이 좋은 밤. 잠자기는 또 글렀네.
..........
.......
어쩌면
...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나가야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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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하고나니..
...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
나도 잘 할 수 있는 것이 생겼고
그간 맛보지 못한 행복이란 것도
누릴 수 있겠지.
...
" 지금 다들 날 기다린거야?"
오랜만에 진도원과 그의 아이들이 다들 모였다.
참고로 내 노래를 들어보겠다고.
장난으로 한 소리아니였어?
날 참 당황스럽게 만든다.
정말로 진도원이와 우엉이는 오디션 따위를 열었다.
" 내..내가 니네 밴드부 들어 간다고 결정하지도 않았거든..요?"
" 비싸게 굴지말고 보여줘요. 다 듣고 왔으니깐."
고양아...고양아..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거 지금 도발이더냐.
깡은이는 아무말없이 마이크를 준비하고
반주까지 맞춰준답시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
허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뭐 그렇네. 근데 나 노래할 수 있다는 기쁨 하나로..
" 노래 한곡만 할게. 비싼 노래니까 귀 쫑긋 세워라."
얘들 앞에서 노래 한곡쯤은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깡은이가 알아서 반주를 시작하고
난 반주를 듣고
그 노래를 불러준다.
진도원을 머릿속에 그리면 노래가 쉬워진다.
그간의 망설임이 무색해질 정도로
난 이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하찮은 자퇴생이
트리움이라는 고교 밴드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말도 안되는 오디션이지만
난 노래를 부르고..
그래서 난 기쁘다.
기쁘다. 참.
.............
..........
" 우리가 찾는 가창력의 소유자야!!!!!!!!! 나 누나 너무 좋아!!"
깡은이의 목소리는 내 귀를 미친듯이 뛰어논다.
" 대단한 인재셨네."
낯부끄러운 칭찬을 가만히 듣다가 난 그만 고개를 떨궜다.
아 이 한미소도 겸손의 미덕을 조금은 안다구.
내 노래가 멋진가보다.
사람들이 항상 내 노래를 칭찬해준다.
좋다.
조용하다.
엥?
분위기가 뭔지 모를 침묵에 휘감긴다.
뭐지.
" 난 찬성."
" 나도."
" 응. 뭐. 나름."
니네 서로 원으로 서서 뭐하니.
급회의라도 하는거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 앞에다 놓고 찬성? 반대?
오디션 결과는 원래 긴 상의도 없이 오분 내로 나오는 모양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 ☜내심 마음이 있다)
".. 나참.."
그 때 난 꼬마아가씨의 떨리는 볼살을 보았다.
" 소매치기랑 어떻게 같이 하라는거야.."
일순 오늘따라
얌전하다 싶던 꼬마아가씨는 막말을 뱉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어찌나 귓속을 파고들어오는지..
분위기는 바로 찬물을 끼얹은 듯 변해버린다.
분명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만 들은 게 아니라 다들 들은 모양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그 말 한마디의 의미를 제각기 판단 중인 듯.
침묵은 이어졌다.
" 나은아 도가 지나쳤어."
너무 가라앉은 목소리에
난 정말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진도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더 진지해져 버린 분위기 속에서
난 푸욱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고개들어. 우리한테 죄지은 사람처럼 왜그래요?"
" 아..아니..난 그냥.."
멋지다.
내남친.
하..하하하..하하
" 이제 나쁜 짓 안한단말야. 마음 고쳐먹구 이쁘게 노래도 하는데..
왜들 그래. 설마 그런걸로 미소 못받아준다는 건 아니지?"
조용했다.
정말 까딱하면 내가 지금 누구 지갑이라도 가져간 사람이 된 것처럼.
그렇게 날 향한 눈빛도 공기도 무거워졌다.
분위기는 너무 숙연했다.
" 난 상관없는데. 애초에 그런건 관심없어."
그러나 곧
침묵을 깬 건
의외로 우엉이.. 남우형이였다.
그 말에 난 살짝이나마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우형이를 바라보았다.
나오려는 한숨마져도 난 속으로 삼켜버리고 있었다.
싸가지가 풍만한 꼬마라는 건 일찍이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내 뒷통수를 후려 파버릴 줄은 몰랐는데..
" 넌 알고 있었어?"
" 응.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전자가 고양이, 아니 하진이고
후자가 도원이다.
깡은이는 평소답지 않게 꿀먹은 벙어리처럼
커다래진 눈을 꿈뻑일 뿐이다.
" 난 미소가 잘못된 일을 할때부터 알아왔어.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는 건 미소한테서 알았고
아무래도 좋다는 것도 알았어. 너희들이.."
탁..
난 연습실을 벗어났다.
계단을 두칸씩 밟아가며 올라와 무작정 달렸다.
진도원의 말이 감동적이어서 좋았건 아니건
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고
특히 진도원에게 부끄러워서..
그 자리는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
겨울이라 일찍이 어두워져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오늘따라 더없이 시원한 공기가
날 더 서글프게 만든다.
난 미운오리.
하지만 백조는 될 수가 없다.
그나마 꿈꿔 본 꾀꼬리.
꾀꼬리가 되기엔 난 너무 미운오리다.
" 에라이. 차라리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는 자퇴를 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소매치기를 할 때도
난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이다.
그냥 그렇게 그 순간만큼은 긍정적이려고 했는데..
훗날은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훗날이 오고나니 후회투성이다.
지랄맞게도 날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다.
아니다.
날 이해해주길 바라는 내가 틀렸다.
노력없이 살고자 했던
고작 그 몇 년이 내 똥내나는 과거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제길러..
" 잠을 자자."
난 핸드폰을 꺼버리고
남들처럼 양푼이에 밥을 한가득 비벼먹고
모르겠단 심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 휴
.....
..
잠이 안온다.
...
똑똑..
"................."
자야한다. 나는 자야한다.
끼이익 -
내 방문이 열리는 인기척이 들린다.
건사가 왔나.
자는 줄 알고 나가겠지.
지금은 대화할 기운도 쪼까 딸린다.
" 자?"
"..............."
"..............."
나간거야. 만거야.
" 이게 어디가 예쁘다고.."
뭐지.
코 끝을 스치는 아른한 알콜향.
달달한 와인을 한잔 했나.
녀석의 나지막한 목소리.
뭔가 불안했다.
그리고 육감이라고 해야하나.
그림자가 느껴지며 얼굴 가까운 곳에서
옅은 숨결도 느껴졌다.
난 눈을 떴다.
.. 그리고 보았다.
녀석의 반쯤 감긴 두 눈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한아준.
서로의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할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너 지금 이 분위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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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되겠다."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코 앞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준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곤 녀석을 피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자리에 일어서는 그 순간까지 아준이는 굳어있었다.
" 진작에 내가 나갔어야 했는데.."
내 말 뜻은 아준이가 더 잘 알겠지.
아준이는 그제서야 몸을 천천히 세워 자리에 일어섰다.
우린 서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어야만 했다.
" 아직 나.."
오랫동안 말을 안해서인지
아준이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어색한 공기를 뚫고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 말도 꺼내지 않았어. 한번도."
"..............."
" 너가..좋아졌다고."
"..............."
" 난 그냥..."
" 한아준."
왠지 이 순간
아준이의 이야기도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계속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어. 네가."
결국 해버렸다. 아준이는.
그리고 난 눈을 감아버렸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난 자리에서 벗어났다.
겉옷을 가지고 조용히 집을 빠져 나왔다.
" 하나가 풀리면 하나가 꼬이고.."
어떻게 된 것이 이 인생은..
" 주고 빼앗아가고.."
꼬인다. 꼬여.
내 손바닥만한 왕사탕 무늬처럼
시장에서 파는 달콤한 꽈베기처럼
뱅뱅뱅.
짜증이 몰린다.
화가 난다.
미친 눈에서 눈물이 난다.
바닥을 뚫어져라 보며 걷고 또 걷는다.
작은 돌멩이들을 차고 또 찬다.
그려..
원래 인생은 왔다리 갔다리.
한미소의 인생에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시련 쯤이야.....
어익후..
" 에잇, 짱나!!!!"
" 뭐가! 내가?"
" 옴마야!!!!!!!!!!!!!!"
난 정말로 놀란거다.
..... 제길러...
".. 너..넌 뭐야!!!!!!!!!!!!!!!"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소리를 친 건 진도원.
심하게 놀라서 더 크게 소리를 치는 건 한미소.
" 뭐가 그렇게 짱나서 길거리에서 소리를 치고 그러냔 말야."
" 넌 대체 여기에 왜 있는건데??"
" 핸드폰도 꺼버리고 나 쌩까는데 그럼 어떻해."
난 너무 놀란 내 못난 가슴을 쓸어 내렸다.
" 쌩깐 거 아니거든. 잠자느라고.."
"................"
" 지..진짜야! 좀 혼자의..그 뭐랄까.."
" 누가 뭐랬나?"
어깨를 으쓱거리는 진도원.
저 똘망한 눈이 사시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누나를 가지고 놀다니.
" 근데 이 어두운 시간에 돌아다녀."
" 킁..그냥 집 안 공기가 탁하길래."
" 고민있구나."
" 고민없거든."
" 있잖아."
" 없어요."
" 없으면 저 위에 별따와봐."
이건 뭐 개소리래.
난 할말을 잃었고 상당히 구겨진 얼굴로
진도원을 밀쳐내고 걸음을 이어갔다.
" 도원아. 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
............
지금 진도원과 한미소는
차가운 의자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다.
참을성없는 진도원은 엉덩이를 붙일 수 없어
결국 구부려 앉았지만.
우린 지금 차디찬 한겨울밤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 거봐!! 춥잖아!"
" 왜~ 맛있잖아."
덤으로 시린 손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들고
그 차디찬 맛을 음미하기 바빴다.
녀석은 먹는둥 마는둥 춥다고 안달이다.
" 근데 아깐 왜 뛰쳐나갔어? 화났어?"
" 아니~"
" 그럼 짜쯩났어?"
" 아니~"
" 그럼 왜?"
그 대답에 난 그냥 미소로 답해주었다.
니가 나에 비해 너무 멋진 남자친구여서 그래서
부끄러워서 뛰쳐나갔다고
그렇게 대답은 못했지만
다시 되묻지않는 진도원이 내 속마음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마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얘들은 모두 찬성했어."
" 안할래. 나."
" 정말이야. 얘들은 그런 거 상관없다고 했어.
너가 너무 성급하게 뛰쳐나가서 놀라고 의아했던 건 얘들인걸?"
" 안할래. 그냥."
" 진짜로..하기 싫어서 그런거야?"
" 그렇다고 하자. 난 경험도 없고 니네 학교 학생도 아니고.."
갑자기 날 향하던 몸을 틀어버리는 녀석.
삐진건가.
그리곤 꿀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했다.
내가 녀석의 얼굴을 살피자
다시 날 바라보는 녀석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내 앞에 앉아
반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고
" 받아주세요. 내 마음입니다."
이게 뭐다냐.
보통 프로포즈할 때 꽃다발 드는 그 포즈아냐.
근데 먹다남은 아이스크림이라니.
이런 쌩뚱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 뭐냐. 장난해?"
" 이걸 받아주면 보컬하는거야."
" 먹다가 남은 걸 나보고 먹으라고?"
" 나 추워. 무릎도 아프고."
난 한참을 어의없는 눈으로 그 녀석을 바라보았다.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 부탁할게."
정말 진심이었다.
녀석은.
적어도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날 필요로 했고 나 또한 녀석이 필요하다면 못할 것도 없었..
에라이..
" 알았어. 대신에 난 먹다 남은 건 안먹어."
" 받아준다는거야?"
"( 끄덕끄덕)"
내 고개짓에 해벌쭉 웃어보이는 진도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반쯤 남은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넣어버렸다.
잘도 먹는구나 하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 쪽'
녀석은 내 볼에 진하게 뽀뽀를 날리고 잽싸게 달아났다.
놀랄 틈도 소리칠 틈도 없이.
내 과거가 어쨋거나
지금의 한미소는 아이들의 시선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즉, 난 이제부터 진도원이 매니져를 맡고 있는
트리움의 보컬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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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아 맞다! 미소야! 그 보컬은..하기로 했어? 얘기 좀 듣자."
" 흠..글쎄요."
난 커다란 미소를 지어주곤 가벼운 목인사를 했다.
카페 사람들은 종종 내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한다.
정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몹시 괴로웠지만.
카페 일이 오늘따라 옴팡지게 일찍 끝났다.
부끄러운 발을 연습실에 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를 수백번.
면상에 철판을 깔고 연습실에 들어갔다.
연습시간보다 난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연습실에는 꼬마아까씨도.. 아니 꼬마싸가지도 일찍 와 날 맞았다.
반갑게 맞은 건 아니고
우린 서로 마주친 걸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 낯짝이 꽤 두꺼우시네요."
" 나?!?!?"
그래.
연습실엔 우리 둘 뿐이다.
성질 드러운 유나은이라고 해도 혼잣말을 존대로 하진 않겠지.
그리고 낯짝이 꽤 두꺼우신 분이라면 한미소겠고..
" 안 올 줄 알았는데."
정적이 흘렀다.
키도 진짜 엄지손가락 만한 게 은근히 사람 속을 긁는다.
" 꼬마야."
" 누가 꼬마야!"
" 아..미안. 그래. 유나은아. 뭐하나만 묻자."
" 말해."
" 왜 나한테만 그렇게 공격적이야?"
난 진심이 듣고 싶어졌다.
자기보다 너무 예쁜 내가 마음에 안든다거나..
홀연히 나타나서 깝치는 내가 싫었다거나..
아니면..
" 내가..니 보컬자리를 빼앗아서 그런거면.."
" 참 너답다."
" 무슨 말이야?"
" 내가 고작 보컬자리때문인 줄 알아? 내 자리를 준 게 아니야."
"..............."
" 거기다가 니 자리도 아니고."
의미심장한 나은이의 말에서 씁쓸한 향이 풍겼다.
미간을 찌푸리는 유나은.
난 그냥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엇다.
원래 니 자리도 아니고..
내 자리도 아니야.
잘 알아듣겠다. 근데 쟤는 자꾸 말을 놓는다.
" 가뜩이나 열받는데.."
"...................."
" 왜...너 같은 얘가..오빠를.."
"...................."
" 갑자기 끼어들어서는.....!!"
유나은은 몹시 흥분해버렸다.
내가 더 부추긴다면 폭발하기 직전이 될 것이다.
마침 그 순간 누가 콧노래를 부르며 연습실 안으로 콩콩 뛰어왔다.
강은태. 역시 늘 해맑은 개구장이같은 녀석.
" 뭐야? 이 분위기는?? 나은이 왜 이렇게 골나쩌여?"
" 오빤 신경쓰지마."
" 왜 이렇게 화났어? 미소누나한테 화내는 중이야? 왜?"
참...
이런 깡은이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오자마자
분위기에 맞지않게 유나은을 놀려대다니.
" 가뜩이나 보컬자리도 빠앗겻는데..
도원오빠 옆자리까지 지가 앉았어! 근데..내가 화 안나게 생겼니???"
너 보컬자리 빼앗긴 것도 화나있던게 맞구나..크크..
...... 근데...
근데...
" 나은이 울어?"
" 짜증나! 잘 어울려서 짜증난다구!!"
싸가지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구나.
아기같은 피부 위로 투명한 눈물이 한방울..두방울..
진심인 것만 같아서..
아니 정말로 저 아이 너무 많이 진도원을 좋아하고 있어서
내 마음도 갑자기 먹먹하다.
애써 눈물을 훔치는 유나은.
몇 분 뒤에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특유의 도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서.
크게 심호흡을 하는 유나은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더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깡은이와 난 눈빛만 교환을 했다.
그리고 한 10분 안으로 모든 아이들이 모였다.
참고로 진도원만 오지 않은 상황이였다.
난 아무래도 어제 일때문에 석연치 않아 시선을 땅에 박았다.
" 앞으로 우리랑 같이 할 사람인데 불편해 하면 되겠어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난 고개를 들어 그 말을 뱉은 고양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침이 꼴까닥 꼴까닥 넘어간다.
" 도원이 말처럼 죄지은 사람처럼 굴지 말아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치덕인다.
하
얘네들 참 좋은 얘들이네.
난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도원은 왜 이렇게 안온다냐.
" 저기..근데 도원이는?"
" 도원이 오늘 안와요. 뭐 알아볼 거 있어서 집에 갔는데.."
" 집에 갔다구?"
" 연락..안했어요?"
그래도 남자친구라는 놈이
여자친구에게 집에 가게 되었다
이런 보고도 안한단 말야?
좋아
연락안한다면 나도 안한다.
궁시렁궁시렁..
" 막대기 들고 받아달라고 설쳐댄게 어젠데.."
" 네?!?!?"
" 아..아냐...아..앞으로 난 뭘 하면 되지?"
소속되어 보컬이 되어주겠다는데
녀석은 연락이 오질 않았다.
진도원이 오지 않은 연습실에서 난 다시끔
노래를 더듬어댔고,
트리움에서의 첫 연습은 정말이지 최악이였다고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
.....
연락이 오지 않는다.
괜히 신경쓰이네.
에라이.
신경끕세. 싹퉁머리없는 녀석 따윈.
' 보증금 300, 월세 30. 깨끗한 원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 원룸을 알아보는 중.
전봇대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건사와는 도저히 한집에 있을 수가 없고
어차피 나 혼자 살 집을 구해야 했으니까..
대체 그 녀석은
내 추한 꼴은 다봐놓고 왜 이제서야
좋다고 그러는건지.
미쳐버리겠네.
" 여보세요. 아 전단지 보고 전화드려요.."
*
" 저녁은 먹었어?"
" 어."
" 그램.."
역시나 최악이다.
난 아주 조용히 아준이의 눈치를 보며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누가 내 콧구멍 근처를 간지럽히는 이 기분.
누가 알리오.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건사는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 아준아."
"............."
문고리를 잡고 걸음을 멈춘 아준이.
난 이때가 기회다 싶었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 이번 주 안으로 짐 뺄게."
...... 딸칵.
내 말을 다 듣긴 들은건지.
녀석은 대답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단단히 기분이 상했나보다.
어쩌지.
밥을 먹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다.
우울한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또 불안한 먹구름이 내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 ♪♩♬♬♪♬♩♬♩♪♪'
오랜만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주시고,
진도원이 아닐까 싶어
기쁜 마음 반. 괘씸한 마음 반.
근데 참 우습게도 전화가 온 건 깡은이.
얘는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 여보세요."
- 누나!!
" 어, 왜~"
- 누나!! 큰일인데요!
" 응?? 무슨 일인데."
다급해보이기는 하나 전혀 무거움이 없는
언제 들어도 밝기만 한 도원이의 목소리.
정말 큰일이 맞을까 의심이 간다.
- 말하지 말랬는데..
" 누가 또 말하지 말래."
- 여기 그러니까..제일병원인데요..
병원이란 말에 순간 심장이 살짝 쿵.
남몰래 통화를 하듯 조심히 말을 뱉는 깡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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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뭐야. 누가 다쳤어?"
- 놀라지마요.. 도원이가..
도원이가..
진도원이가?!?!?!?!?
- 입원해있어요..차랑 쾅..해가지고..
음..?!?!?!
나는 지금 깡은이가 뱉은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나한테 연락도 안하고 집에 간다고 간 녀석이..
" 지금 갈게. 끊어."
교통사고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 녀석이 다쳤다 이거지?
.. 진심 사고쳤구나. 진도원.
내가 진짜 너때문에 오백년은 더 늙는다.
...
.....
*
하얀 건물에 들어서자
내 취향과는 먼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음속으로 침착하자를 반복하며
난 진도원을 찾아나섰다.
병실 앞.
문고리를 쉽게 잡진 못했다.
아무리 내 심장이 강심장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손톱만해진 것 처럼 떨렸다.
꿀꺽
끼이익 -
병실 안 단 하나의 침대.
그 주위에 한 대여섯명 쯤 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멀리서 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침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진도원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 한미소?"
이제야 내가 왔다는 걸 알았는지
우형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 얼굴이 이상하게 안 움직인다.
모든 사람이 날 바라봤고,
난 다시 침을 꿀꺽 삼킨 후
얘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얘들을 비집고 들어가서는..
" 누가 불렀어?"
진도원을 발견했다.
" 야!! 깡은이 너지!!"
아주 멀쩡한 진도원을 발견했다.
멀쩡하다 못해 쌩생한.
목소리가 평소보다 쾌할한.
긴장을 너무 했던 탓일까.
굳어진 내 얼굴은 풀릴 생각을 하지않고..
거기다가 내 무릎팍 쯤에 있는 화가 기어오르고 있다.
" 무..무섭게 왜 그렇게 봐..요? 응?"
겁먹고 존댓말을 하는 진도원부터
내 몸을 흔들어보는 우엉이까지
굳어진 내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녀석들.
분노의 한미소 폭탄이 곧 터질 예정입니다요.
..
3
2
1
" 다 죽어가는 줄 알았잖아!!!!!!!!!!"
긴장이 풀려 눈물 한방울이 토로록.
누가 볼까 무서워 난 옷소매로 급히 닦아 버렸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쳐 병실을 나갔고,
특히 깡은이는 잽싸게 나가버렸다.
" 이..이거 안보여?!?!?! 나 되게 아파!"
가슴팍을 감싼 붕대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제서야 얼굴에 상처도 눈에 들어왔지만...
더 심각한 상태인 줄만 알았다.
기대 이하라 실망스럽지만..
아니..아니.
걱정 이하라 다행스럽지만...
" 아오..아오...."
너무 놀라서 말이다.
너무 심장뛰는 속도가 급변해서 말이다.
아프다.
탕탕.
난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두들겼다.
" 나.. 걱정했구나."
" 아후..."
" 내가 그럴까봐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이 깡은이가!!"
" 이 정도였으면 그렇게 걱정안했어."
" 와..나쁘다."
날 노려보는 진도원.
입술도 앞으로 쭈욱 내빼고
삐친 척을 한다.
나한테 그것이 통할 것으로 보이나.
날 아직도 잘 모르네.
" 많이 아프냐? 손가락에도 붕대했네?"
" 몰라."
" 그래? 알았어. 그럼 난 이만 갈게."
" 아..잠깜만!"
".............."
" 토..토마토쥬스 꺼내주고 가."
귀엽기는.
난 그제서야 실소가 나왔다.
" 꺼내주고만 가면 되지?"
" 같이 먹고 가."
난 옆 냉장고를 열어 토마토쥬스 두 병을 꺼내왔다.
뚜껑을 따서 진도원에게 먼저 건내주고
내 것도 바로 딴 다음 시원하게 들이켜주었다.
그리고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 어떻게 된거야. 어디서 사고났어?"
" 집 근처에서. 핸드폰도 박살났어. 짱나!"
" 으이구. 조심하지. 바보같이."
내 말에 바보같이 실실 쪼개는 진도원.
그럼 덩달아 나도 웃음이 나온다.
아파보이는 진도원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모처럼 정감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머리에 붙은 실밥도 떼어주고..
그렇게 한동안은 서로 말이 없었다.
..
" 아...아....."
갑자기 한쪽 눈을 가리고 아파하는 진도원.
" 왜 그래?"
" 누..눈에 먼지들어간 것 같아."
" 봐봐. 불어줄게."
녀석의 손을 억지로 떼어낸 나는
눈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고
양손으로 얼굴을 잡고 열심히 눈을 살피는데..
신기하게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 연기한거지."
" 응. 먼지 안들어갔어."
당연하다는 듯 말을 뱉고는
진도원은 다시 나에게 다가와 사랑을 퍼부었다.
아프니까 선물이다.
받아라.
내 사랑도.
...
똑똑똑.
" 우리 들어가도 되는거야?!?!?!?!?"
문 밖 깡은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잊고 있었다.
얘들이 우릴 위해 자리를 피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다시 얘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난 민망함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 둘이..오붓한 시간 보냈어~ ?"
" 아니. 너때문에 별로~"
깡은이와 도원이의 바보같은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까는 있었던 것 같은 꼬마싸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병실 안은 금방 시끌한 분위기.
그 때 마침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 아줌마! 도원이가 자꾸 괴롭혀요!!"
" 니가 우리 아들 괴롭히는 거 아니고?"
" 아줌마!!!!"
한 중년의 여자분이신데,
깡은이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진도원의 어머니시구나.
난 뻘쭘함에 자리에서 조심스레 일어서서는
살짝 뒷걸음쳐 자리를 벗어나..
... 려 했는데..
" 어머..혹시 니가 도원이 여친이니?"
".. 여...여친이요?"
아..아하하하하....
이렇게 아주머니는 날 당황시키셨다.
내 당황한 얼굴에 모든 아이들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참 재밌으신 분인가보다.
그걸 모든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 같고.
" 우리 엄마야."
" 아..안녕하세요. 한미소라고 합니다."
" 응 ~ 반가워! 예쁘네~"
왕 뻘쭘.
대화가 끝나자마자 난 아이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 뒤에서 몰래 숨어 보았다.
" 퇴원은 3주 후? 그 쯤이래."
"3 주?? 그럼...방학하고 나선데? 너무 늦어!!!!"
" 의사 선생님 말씀인데 내가 어쩌니?"
" 아..공연도 있는데.."
방학?!?!? 공연계획??!?!
진도원의 말에 귀기울였지만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어머니와 도원이의 대화를 아이들도 모두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고양이에게 오랜만에 말도 걸어볼 겸
질문을 던졌다.
" 무..무슨 공연있어?"
" 언니도 들어왔겠다. 공연하자고 했었거든요."
" 고..공연?!?!?!?!?!?!?!!?"
고양이가 언니라고 부르는게 어색해서 미칠지경인데
것보다 우리가....그러니까 내가..
공연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어색해서
숨이 턱 막혔다.
나의 커다란 목소리 덕에
이번에도 병실 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내 차지였다.
공연이라니!!!!!!!!
고..공연이라니!!!!!!!!!
두근두근
그 단어만으로도 미칠듯이 심장이 뛰어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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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도 할 수 있게 됬으니까 공연도 할 수 있겠지?"
".. 그..그런건가.....흠..난 잘 모르겠네.."
긴장함에 말까지 더듬거리고 마는 나다.
난 영문을 몰라 두 눈만 꿈뻑이는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저 표정...
" 공연..크리스마스 이브공연. 그거 참가했으면 하는데."
이브..이브.......크리스마스 이브라..
오늘이 몇 일이더라?..
12 월....6...아니..7일..아니지..8일이잖아!
" 이..이브면..거의 2주 남았어. 농담 하지마!"
"2 주면 충분히 가능해. 그치?"
진도원이의 저 말에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그냥 으쓱해버린다.
자신있다 이거냐.
꾸준히 연습했다 이거냐.
난...초짜라고!!!!!!!!!!!!!!!!!!!!!!!
" 내가 병원에 있어도 연습을 꾸준히 할 것! 매니져의 명령이시다!"
.........
....
그렇게 일은 벌어졌다.
아니 이미 벌어진 것이도다.
공연..그 가당치도 않은 것을.
.. 뭐 이런 것들이 다있지?
보컬을 하기로 한지 일주일도 안된 나에게
공연 연습을 무턱대고 시킨단 말야?
어깨에 다섯살난 어린 아이가 앉아있는 것만 같다.
연습실에 있어야할 진도원은 병원에 있지만
난 이제 내 연습실마냥 드나들기 시작했다.
축처진 기분으로 첫 연습을 위해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데..
".. 뭐야.."
오늘따라 왜이리 늦게 하교하는 얘들이 많은건지.
분명 다들 집에 가고 한두명 정도 운동장을 거닐 시간에
이삼십명이 교문 앞과 학교 안에 서성인다.
난 뻘쭘함에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참고로 난 이 학교 학생이 아니다.
즉, 이 상황에 교복이 아닌 사람은 나뿐이거니와
무척이나 튀어보일 수 밖에 없다고 나는 고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저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단지
그 이유때문이라고 생각도 했는데 말이다..
아니였나보다.
" 저 여자인가봐!"
누가 그렇게 분명 나를 향해 크게 소리치자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난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그 중 어떤 무리의 아이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은 저돌적이라 당황했지만,
내 뺨을 후려갈길 것만 같은 나쁜 인상들은 아니였다.
그런데 날 뚫어져라 보기만 할 뿐.
이 요상한 쓰리강냉이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고요.....하다.
..
결국 난 슬쩍 그들을 피해 옆으로 지나가려는 했고..
" 언니!"
내가 언..니?..
내나이가 열아홉이니까 언니아니면 동갑내기겠지만
너희들 얼굴은 내가 언니가 아닐텐데!!!
내가 썩은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날 바라보고 있다.
" 그러니까 언니가 보컬인거죠?"
" 트리움 새 보컬맞아요?"
" 소문에 트리움이 부활한다고 하던데!!"
" 그렇게 노래를 잘하신다면서요?"
" 아 저 트리움 팬인데요..유나은이 노래해서 진짜 싫었어요!"
아 귀 아파.
피곤해.
저것들은 지들 할말만 길게 꺼낸다.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하겠는가.
" 하하하..그렇게 됬습니다요."
지금 필요한 건 뭐?
스삐드!!
..
벌써 이렇게 학교에 소문나 버리면
에휴
나같은 외부인은 욕먹기 딱 쉽상인데.
에휴 에휴
난 오래 살겄다.
부담감 아주 팍팍 받는구만. 진짜.
" 부활은 무슨. 이제 시작했구만.."
열심히 해야겠다.
...
.....
" 왔어요?"
" 응 ~"
고양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난 의자에 앉았다.
벌써부터 긴장되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고양이는 우엉이와 무슨 종이 한장을 보며 소근대고 있다.
뭣들 하는건지.
아직도 난 이곳에서 아싸군.
외로운 외기러기 신세여..
" 왔썹!! 하이~~~웰컴!!요!!"
뭐라고 씨부리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마침 그때 깡은이가 연습실을 들어섰다는 건 알았다.
쟤는 쉴틈없이 떠든다니까.
" 야! 조용히 해!"
우엉이 한마디에 그제서야 입을 닫았다.
그리곤 나에게 오라는 손길을 보이는 우엉이.
물론 깡은이에게도 손길을 보였다.
난 어슬렁어슬렁 무거운 몸으로 자리를 옮겼고,
둘이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보던 종이로 눈을 돌렸다.
" 우리가 공연 때 부를 곡들이야."
" 우..우리가.."
" 우리 밴드부 정기공연이 아니라 고교 이브공연이야."
" 그게 뭔데?"
" 이 동네 잘났다 싶은 고등학교 밴드부 얘들이 모여서 하는 공연."
" 그럼 우리 꿀리겠네?"
나의 양념없는 질문에 바로 우엉이는 썩소를 내보인다.
뻘쭘함에 난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 작년에는 참가못했던 공연이야."
...
...............
적막이다..
순간 오디오를 꺼놓은 듯
아무런 소리도 없이 공허감만 가득해했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이면..
너희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몹시 힘들때였겠지.
" 공연은 그리고나서 한번 했는데 반응이 별로였어."
" 그때부터 쭉 공연은 안하는 상태였어요."
괜히 내가 미안해지는 이 분위기.
우엉이와 고양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런 날 더 생각해주는 아이들은 태연한 척..
" 우린 두곡만 부르게 될거야. 앵콜나오면 한곡 더."
" 응.."
" 그딴 목소리로 노래 참 잘나오겠다?"
" 뭐!!!!!!!!!"
" 그래. 그정도는 되야지."
가만 보면 남우형이가 날 가지고 논다.
.. 이런 말미잘같은 놈..
어쨋거나 난 그 종이에 써진 노래들을 쭈욱 보았다.
아 꼬부랑 말들이 유난히도 많네.
그 중 세가지에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아마도 녀석들은 곡을 정한 듯.
" 이 세개는 니 목소리 생각해서 고른 것도 있어.
너 이 세개에서 아는 노래는 있냐?"
"....................."
이 시건방진 우엉이.
난 녀석을 한번 흘겨보고는 종이를 보고
자신있게 가르켰다.
물론 그 세개 중에서는 아니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는 노래들은 전부 외각.
" 너 이 노래 알아?"
" 어. 이 노래도 알고. 이 노래도."
세개 중에는 딱 한 곡을 가만보니 알 것도 같았다.
그동안 꾸준히 음악을 들어온 덕인가.
후후.
" 얘 진짜 특이해."
이유모를 말과 함께 우엉이는 너털웃음을 보인다.
덩달아 실소를 흘리는 고양이까지.
그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깡은이까지.
내가 뭐가 특이하다고.
" 너가 맨처음 안다는 그 노래."
" 응. 그거 헤드윅OST잖아."
" 올."
" 나 그 영화봤거든."
" 보컬이 남자잖아."
" 알아!!"
" 너가 안다는 노래는 반이상이 남자보컬 노래잖아."
" 안다고!!"
" 넌 남자야?"
....
정적이 흐른지
1 초
2 초
3 초
" 물론 난 여자지."
" 그 노래는 하고 싶어도 너때문에 뺀거야.
예전에 꼭 그 노래는 불렀어."
" 여자키로 해서 부르면 되잖아!"
" 말이 쉽지!! 콱!"
참자. 참자. 참자.
참을 인이 세개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고 했다.
우엉이를 어떻게 요리해먹지.
조려먹으면 그나마 맛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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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가 어쨋든 여자니까..곡도 그거에 맞는게 낫겠지."
" 니네가 고른 것 중에서 아는 노래는 하나밖에 없어."
어느 세월에 내가 새로운 곡을 소화해내겠냐고.
원망스런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허나 어려운건 자기들도 마찬가지라는 듯.
곳곳에서 미세한 한숨만 들린다.
" 나 그 노래 좋아해. 위그 인 어 박스랑 미..미드나이트 라디오."
"Midnight Radio."
원어민처럼 아주 미끄러지는 발음.
남몰래 연습실에 들어온 유나은이의 믿기지않는 발음.
" 영어로 된 가사를 부르겠어요?"
싸가지없는 것은 확실히 유나은이 맞다만
그리 기분나쁜 저도는 아니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
시선은 전혀 마주치지 않았지만
밴드부 생각해서 온 모양.
" 백번도 넘게 들은 노래야. 대에충 부르면 다 노래가 된다니까."
" 가능할 것도 같아. 남자노래 여자노래 그런게 어딨어. 불러보면 되지."
고양이가 그렇게 딱 잘라 이야기를 하자
우엉이도 더이상 아무말 하지않고 생각을 잠시 하더니..
" 연습해보면서 보자. 그럼. 차차."
" 크크 역시 횽아는 야옹이를 못이겨."
깡은이는 혼자 뭐가 그리 재밌다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었다.
우엉이가 고양이의 기에 눌려 사나보구나.
첫연습.
백번을 넘게 들어보았지만 소리내어 불러본 적 없는 노래를
처음으로 소리내어 불러보는 이 순간.
아이들은 많이 했던 곡이라 그러더니만
재빠르게도 다들 튜닝에 정신이 없다.
유나은..?
내 시선이 기분나쁘다는 듯 눈을 내리깐다.
꼬마싸가지는 키보드 앞에 섰다.
" 키보드 필요한 곡이 있으면 가끔 나은이가 도움을 줘요."
" 아..그래."
" 노래도 제법 하고 끼가 있는 녀석이예요."
고양이의 작은 속삭임에
내 눈에도 뭔가 다른 렌즈라도 착용한 듯.
유나은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르게 보이는 기분.
" 시작해볼까."
우엉이의 목소리와 함께 기타반주가 연주된다.
*
" 수고했어."
" 수고하셨습니다요!!!!!!!!!"
첫연습이 끝난 후
다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우리.
악기정리를 각자 하고
물론 난 마이트 정리.
우엉이가 슬쩍 나에게 다가온다.
" 가끔 노래 시작할 때 아직도 망설이는 것 같던데."
".. 그..랬냐?"
" 다시 노래를 못하겠거나 그런건 아니냐?"
" 글쎄 내가 노래를 못하겠단 생각을 언제부턴가 안하게 되던데.."
" 상태 멀쩡?"
" 멀!쩡!"
그래도 나름 내생각..아니지..
저거 밴드부만 생각할 놈이지..
어쨋거나 가끔 저 녀석의 썩소도 괜찮다 싶을 때가 있으니까.
크하..난 인복이 많은 여자니까!
" 가자! 가자! 고기! 고기!"
밥먹으러 간단 말에 제일 신난건 깡은이다.
고기를 태어나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처럼 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같으니 저걸 어째.
" 오늘 고기는 내가 살게."
내 말에 일제히 집중.
" 돈이 남아도냐."
" 뭐 많이 나와봤자지."
.............
.........
" 이모!!! 일인분추가!"
.... 꿀꺼덕..
진짜 진짜 진짜 몰랐다.
" 쟤는 밥이 대체 어디로 들어간다냐."
" 많이 떠들잖아."
식사를 다마친 우리와는 달리
아직도 일인분을 외쳐대는 많이 떠드는 강은태군.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다못해 올라오겠다.
나보다 더한 식욕을 자랑하다니.
쟤는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체..
깡은이는 어느별에서 왔을까.
탁.
" 아 배가 부른 것 같다."
" 배가 아프진 않고?"
" 글쎄.."
그렇게 두시간 후 모든 식사 완료.
" 너때문에 회식한번 하기가 힘들겠다."
" 왜요, 누나?"
" 니 밥그릇을 좀 봐."
" 히히히히히히히.."
히죽거리긴.
어쨋거나 저쨋거나 혼자서 세사람이 먹을만한 양을
먹은 깡은이의 음식값까지 모두해서
생각보다는 많은 가격의 고기값을
울며 겨자먹듯 지불하고 나왔다.
"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어때?"
저 식충이.
뱃속에 거지를 몇 명을 키우는거야.
제길.
" 여기서 찢어지자."
깔끔하게 말을 짤라버리는 나의 센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깡은이가 혼자 떠들거나 말거나 신경을 거둔지 오래..
" 먼저 간다."
우엉이가 그렇게 먼저 인사를 하며 손을 들었고
자연스레 우엉이 옆에 고양이가 세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 나도 집이 저 쪽인데..어..같이....읍.."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뛰어가려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입도 막히고 게다가 제자리걸음.
" 악 퉤퉤..뭐야 손 혀에 닿았잖아!"
" 누나는 집에 바로 가지말고 ..어..! 도원이 병원이라도 들렸다가.."
" 피곤해!"
" 눈치없긴. 둘이 가게 해야지. 거기를 왜 끼어들어요."
으흠?
여전히 나만 모르는건가?
분위기파악이 난 전혀 안되는데.
" 설마 몰랐어요?"
" 그러고보니 말한 적 없다. 누나한테."
" 사귀는 사이예요. 그 둘."
" 크크 저 커플은 누가 사귄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지."
멍 ~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얼라리. 이게 뭔 소리래요.
" 둘이 사귄다고?!?!?!?!?!?!"
..... 맙소사 맙소사..
*
" 말안했나?"
" 나만 모르고 있었어..나만!"
" 우린 당연히 알지. 둘이 벌써 삼년차 커플인데."
" 사....사..삼..삼년..! 삼년?!?!?!?!?!?!?"
백톤짜리 망치에 맞은 듯.
눈이 뒤집어질 지격이다.
이래저래해서 결국 찾은 진도원 병실.
간호해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난 떠들러 온 사람.
오분 전 들은 내용에
너무 놀란 난 극도의 흥분 상태랄까.
그 어울리지 않는 두 남여가..
그러니까 무서운 여자와 무서운 남자가..
" 둘이 데이트도 하긴 해?!?!?!?!?!?"
나에겐 이해가 무척이나 힘든 커플이였도다.
아마도 진도원의 병실을 들어간 순간부터
적어도 십분은 우엉이와 고양이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 한미소는 너무해 - 너무해 - 너무해 -"
" 그거 지금 노래야?"
" 응. 병문안왔으면서 병실만 날뛰고 뭐하는거야? 나 웃겨주려는거야?"
".. 응..그렇다고 생각하자."
그제서야 알았다.
난 병실에 들어와서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날고 싶은 오리처럼 바둥거리고 있었다는 걸.
오리말고..닭으로 하자.
쨋든
그제서야 난 차분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 병문안. 자. 뭐부터할까."
" 뽀뽀부터?"
"... 휴..내가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 응?"
" 너 사고났을때 머리가 다친게 아닐까 싶어서."
나의 진지한 말에
녀석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만 결국 크게 웃어버린다.
역시 쟤는 웃어줘야 내 마음도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