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내 나이 칠십 고희(古稀)를 앞두고 있다. 이제 우리의 평균 수명이 팔십을 훌쩍 뛰어넘는다고는 하지만 고희를 맞고 보니, 무언가를 새롭게 꿈꾸는 일이 예전보다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갈 일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의 크기가 자꾸 작아진다 싶을 때면 중학교 1학년 영어 수업 때 배운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떠올린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흔히들 야망이라는 단어에서 꿈이나 희망보다는 무언가 부적절하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야망은 우리말 그대로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을 뜻한다. 나는 야망의 뜻에 원대한 꿈은 물론 그 꿈을 이뤄낼 구체적 계획 그리고 목적까지 들어있어서 더 좋았다. 나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이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 무모하게도 직장생활 한 번 안 해보고 이십대 후반부터 무작정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경험이 있는 것도 물려받은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매일매일 벼랑 끝에 매달린 듯했지만 하루하루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에 전혀 힘든 줄을 몰랐다.
물론 나에게도 어려움과 시련은 많았다. 첫 사업으로 크레파스와 색연필 등을 만들었는데, '초보자의 행운'이었는지 사업이 꽤 잘되었다. 하지만 공장에 큰불이 나는 바람에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무슨 기개였는지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도 젊음이 있으니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이후 조선기자재를 비롯한 여러 사업체를 거쳐 자동차 부품회사를 설립했다. 결국 1억 달러 수출의 탑을 쌓고 18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등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기술력을 인정받아도 고유 브랜드가 없는 주문자부착생산(OEM) 방식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게 바로 '골든블루'라는 위스키였다. 지금은 전체 위스키 시장에서 3위에 오를 정도로 기염을 토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2009년 국내 최초의 36.5도 저도 위스키로 개발된 골든블루는 당시 심각한 경영난으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새로운 자본에 인수되지 않으면 수많은 직원이 실업자가 될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것이 바로 2011년 내가 골든블루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다국적 주류기업의 양대 체제 아래 많은 대기업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주류업계에서 향토 위스키를 개발해낸 배짱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OEM 방식이나 다국적 회사의 로컬 브랜드가 아닌 국내 기술력으로 자체 개발한, 게다가 부산 지역의 향토 브랜드라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부산에서 기업을 하며 그동안 크고 작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나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다는 도전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도 됐다.
그러나 주변의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새로운 업종보다는 하던 일에 집중하라는 우려 섞인 충고도 많았다. 이렇듯 주변의 수많은 반대와 우려 속에 인수한 골든블루는 2년 후 흑자로 돌아섰고, 지금 한국 위스키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 내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이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할 수 없다는 소박한(?) 생각에 함께하게 된 골든블루는 큰 자랑이자 기쁨이 되었다. 향토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부산을 비롯해 서울 대구 등 전국구 브랜드로 도약했고 나아가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골든블루는 젊은 시절부터 꿈꿔온 내 야망에 다시 불을 지펴주었다. 이제는 살아갈 날이 더 적기는 하지만 꿈의 크기는 작아질 수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꿈꾼다. 골든블루가 저 거대 다국적 주류기업들을 제치고 부산을 대표하는,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나가는 꿈 말이다.
"당신이 만약 백발의 노인이 아니고, 사회보조금으로 연명해야 할 처지도 아니고, 천 번을 넘게 거절당할 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든 잘해낼 것입니다." 68살의 나이에 백 달러 조금 넘는 사회보조금으로 연명해야 했던, 하지만 천 번 넘게 거절당해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은 세계적인 닭튀김 전문점 KFC를 만든 커넬 샌더스가 한 말이다.
내 비록 고희를 앞두고 있지만 오늘도 손주들에게 말한다. "Boys be ambitious! Girls be ambitious!" 그리고 오늘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Seniors be ambitious!" 꿈이 있는 한, 꿈을 꾸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는 죽는 날까지 꿈꾸는 할배로 살고 싶다.
골든블루 회장
첫댓글 그대와 나의
마음속에 감추어져있는 안테나를 높이세워
사람에게서부터, 그리고 신에게로부터
아름다움,희망,기쁨,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습니다.
-청춘 /사무엘 울만-
저도 한 가지 새로운 일 시작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