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높이가 19,710피트(5,895m)되는 눈덮힌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은가예 은가이(Ngaje Ngai)"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린다.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아무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E.M. 헤밍웨이 ‘The Snow of Kilimanjaro’ 1938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덮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시:양인자, 작곡:김희갑, 노래: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1985년)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서문과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의 일부분이다. 대학에서 헤밍웨이의 소설을 전공했던 나는 헤밍웨이가 케냐의 국립공원 암보셀리의 산장에서 커피를 즐기면서 바라봤던 킬리만자로 정상을 찾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졸업 후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크게 히트를 치자 언젠가는 꼭 정상에 올라 그 곳에서 헤밍웨이와 조용필을 만나고 킬리만자로의 눈과 표범을 찾아보겠다고 맘먹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만 다섯 식구의 가장의 어깨에 짓눌린 심리적 거리는 도합 16시간을 비행해야 갈 수 있는 지리적 거리보다 훨씬 멀었기에 오랫동안 시도조차 못했다.
킬리만자로는 제주도처럼 화산활동으로 생긴 나홀로 산(standing alone)이다. 케냐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탄자니아에 있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적도에서 불과 205마일(328km)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도 빙하기에 형성된 만년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산이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오를 수 있어 한해 약 3만여명이 등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산병으로 실패하거나, 약 1,000여명이 긴급 구조받고 10여명이 사망한다는 통계가 약간은 망설이게 하는 산이다. 킬리만자로의 세 화산중 가장 먼저 형성된 Shira는 정상이 완전히 무너져 산마루 정도로 변했고, Mawenzi 화산은 침식작용에 따라 날카롭고 높은 바위산으로 등산이 금지되어 있으며, 가장 나중에 분출한 Kibo(우리 기금의 영문로고와 같다) 화산이 킬리만자로의 주봉이고 바로 그 Kibo화산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5,895m, freedom이란 뜻의 우후루(Uhuru Peak)다.
내안에 잠자고 있던 킬리만자로를 다시 불러 온 것은 2015.1월 임금피크제로 편입된 후 두 달 만에 동아마라톤을 완주하면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등 3개 메이저 마라톤 대회 풀코스(42.195km)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때였다. 나는 나에게 ‘이젠 또 뭐를 하지?’라고 물었고 ‘그래 킬리만자로에 가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지난 이른 봄 어느 날 나는 올해의 달력을 넘겨보다가 10월초의 연휴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킬리만자로를 생각했다. 곧바로 해외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통해 알아봤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고 동행할 산우를 찾지 못해 결국 나만의 일정으로 혼자서 가기로 결정했다. 비행기표부터 넉넉한 일정으로 예약하고 여러 등반정보를 검색 끝에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들을 현지에서 grouping해서 등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기타의 스케줄은 여기에 끼워 맞춰 여행계획을 세웠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2박, 탄자니아 아류샤와 모시에서 3박, 킬리만자로 산에서 6박, 아부다비에서 2박의 일정이었다. 7월 중순부터 두달반동안 좋아하는 술도 삼가면서 일주일에 4~5일은 매일 10km씩 뛰고 주말엔 산행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했으며, 황열병과 파상풍, 장티푸스 예방주사 맞고, 여행자보험 가입하면서 준비물을 챙겼다.
드디어 9월 27일 새벽 00시 5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0시간 비행 끝에 아부다비에 도착했고, 세시간 반을 기다려 케냐의 나이로비로 약 5시간을 날아갔다. 다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까지 1시간을 비행했다. 비행도중 조종사의 안내로 창밖으로 멀리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볼 수 있었다. 만년설로 하얗게 빛나는 머리 아래로 구름이 넓게 깔려있는 모습이었다.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설속의 주인공 해리가 죽어가면서 보았던 환상은 저런 모습이었을까?
-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온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그곳이 그가 가고 있는 곳임을 깨달았다 -
9월 29일 오후 5시, Moshi의 호텔에서 가이드 2명이 전체적인 등반 브리핑이 있었다. 동반하는 산행자와 첫 대면한 것이다. 영국출신의 Adam(남, 39세)과 Karen(여, 42세) 커플, 일본인 나쑤코(여, 47세)와 함께하는 산행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기대했지만 단촐한 팀이라 아쉬웠다. 30일 오전 입산허가를 받고 오후 두시경 Longai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으로 6박7일간의 킬리만자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의 자연환경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 쌓인 농경지대에서 작은 나무의 관목지대, 낮은 풀만 생존하는 고산지대, 그리고 화산재 모래와 암석만 존재하는 산악지대로 변해갔다. 동시에 기압과 산소량, 기온은 낮아지고 고산병의 위험은 높아져만 갔다. 고산병은 체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개인차가 있다. 심각한 경우 하산만이 유일한 치료다. 나는 10년전 3,774m밖에 되지 않는 후지산에 올랐다가 심한 두통으로 점심식사도 못했던 경험이 있다.
가이드는 매일 2회씩 혈중산소량과 맥박을 체크하고 다섯 가지 항목(Headache, Appetite, Dizzy, Tired, Sleeping)에 대해 질문하고 상세히 관찰했다. 각 항목을 경증(1점), 중증(2점), 심각(3점)으로 점수를 내서 7점 이상이면 무조건 하산해야 하는데, 나는 고산병을 이기려고 하루에 5리터의 물을 마셨지만 4,000m에서부터 중증의 두통과 경증의 식욕부진에 시달렸다. 산행중 가이드는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와 ‘드링킹 드링킹’을 입에 달고 다니며 등반자들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했다. 특히 수석가이드인 Raymond는 “Hello my friend from Korea, how are you?" 하고 수시로 물었다. 보조 가이드 Maru는 지루하다 싶으면 노래를 불러주고 짖궂은 표정과 농담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5일 아침 7시20분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 피크에 오를 수 있었다.
매일 텐트에서 불편한 잠을 자야만 했다. 이틀 동안은 심한 두통과 식욕부진이 겹쳤고 입에 맞지 않는 식사 때문에 미숫가루와 스낵으로 허기를 달래며, 낮에 찾아오는 너무나 강한 햇볕과 밤에 찾아오는 추위와 싸웠다. 물 반컵으로 양치를 하고 작은 페트병 한통의 물로 세수와 손발을 씻는 요령도 터득했다. 때로는 빈약한 영어실력 탓에 의사소통이 어려워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 산행을 위한 여행은 나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남겼다. 우선은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한 나만의 여행이라서 출장이나 패키지, 가족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자유가 있었다. 6박7일간의 산행에서 가이드 및 포터(17명)들과 킬리만자로의 자연이 나에게 준 감동은 이 모든 것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등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포터와 가이드에게 신발과 옷, 장갑, 스패츠 등의 산행용품을 나눠주고 왔다.
사실 내게는 커다란 아픔이 하나 있다. 군 복무시절 헬리콥터 조종사 선발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하고 의기양양하게 육군항공학교에 입교를 하였지만 입교 2주 만에 스스로 자퇴해버렸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원래 일이란 불가능한 이유는 백가지도 넘고 가능한 이유는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했는데, 그때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는 자괴감이 30여년을 두고 나를 괴롭혀왔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해 나갈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할 것인데, 나는 왜 그런 충동적인 결정으로 쉽게 포기했단 말인가? 두고두고 내 마음의 빚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과거로 남아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If you can take it, you can make it(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는 거야)
나는 지금 하늘을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헬리콥터 조종사로서 하늘을 날지는 못했으니 Sky Diving으로라도 날아보려 한다.
첫댓글 대단하다는 말뿐.
후기를 읽으면 다시 또 아우의 훌륭함에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