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영들
마침내 희망의 집을
떠날 때가 됐습니다.
속죄를 하기 위해
지상 영계와 그보다
낮은 영계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죽은지 8-9개월이 지났고,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
지상을 자유로이
왕래할 정도가 됐습니다.
시력과 그 밖의 감각들이
처음보다 많이 좋아져서
또렷이 보고 듣고 말할 수도 있었지요.
그리고 내 주변의 빛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어슴푸레한 밝기가 되었습니다.
단조롭고 답답한 감은 있었지만
그동안 너무 어두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밝기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내가 희망의 집을 떠나
처음 내려간 곳은 지상 영계의
3번째 계에 위치한 공간으로
'황혼의 나라' 라 불렸습니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산 탓에
성장이 정지된 영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요.
그러나 이런 영들도
이전의 안 좋은 습관에 묶여
지상을 떠도는 영들보다는
등급이 높습니다.
내 임무는
황혼의 나라에서도 쾌락의 소굴로
지칭되는 곳에서 시작됐는데요.
쾌락의 소굴이라곤 하지만
이곳의 쾌락은 지상에서
맛 보는 것만큼 덧없지는 않고,
영혼의 타락도 그다지
심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나는 희망의 집에서 배운
가르침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때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유혹들이
더 이상 유혹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러한 쾌락이 안겨주는
만족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어떤 건지도 알기 때문에
욕망을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영들이 지상 인간들의 육체를
완벽히 지배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매우 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럴 경우 지상의 육체는
그 육체의 본래 소유자인 영보다
오히려 육체가 없는 영의 소유물처럼
보일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정신착란의 상당수가
사악한 욕망을 가진
저급한 영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이 영들은 의지가 약하거나
그밖의 문제를 가진 사람의 육체를
노려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요.
고대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연구하여 잘 알고 있었던 반면,
19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잘나고 똑똑한 나머지
이런 현상을 알아
보려고 하지조차 않습니다.
현대인이 쓰레기통에 던져놓은
이 분야의 지식은 다시
발굴해낼 가치가 충분합니다.
인류가 그 지식을 통해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맡은 임무가 여러분에겐
매우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겁니다.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희망의 형제단은
영계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위해 조직된
셀 수 없이 많은
단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들의 활동은 영계의
모든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지요.
가장 낮고 어두운 영역에서부터
가장 높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태양계의 바깥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사슬처럼
낮은 등급의 영이
바로 위 등급의 영들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는 구조를 이룹니다.
유혹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인간이나
영이 있다는 전갈이 들어오면,
가장 적합하게 여겨지는
단원이 파견됩니다
통상적으로
지상에 있을 때 비슷한 유혹에
굴복해본 경험이 있거나,
비슷한 잘못으로 고통을 당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 선발되지요.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종종 무의식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자체가 일종의 기도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신호는 마치 지상에 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데,
지상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영들에겐
매우 절박한 호소력을 지닙니다.
위험에 처한 인간이 직접
도움을 청하진 않았어도,
그와 생전에 가까웠던 영이 대신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우리는
여지없이 도움을 주러갑니다.
우리의 임무는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을 찾아내어
유혹이 극복될 때까지
제어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우리 자신을
하나로 만들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삶과 생각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한동안 공유하게 됩니다.
그처럼 영혼이 겹쳐지는 상태에서는
그사람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의 걱정이
우리 자신의 것이 돼버리므로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되지요.
그러면서 우리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떠 올리게 되고,
그 모든 슬픔과 후회와
쓰라림을 견뎌내야 합니다.
뚜렷하지는 않겠지만
그 사람 쪽에서도
우리의 마음상태를 느낄 수있습니다.
하나가 된 정도가 완벽하고
그 사람이 매우 민감할 경우에는
우리가 한 일을 자기가한 일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아니면 오래전에 잊어버린 일이나
꿈에서 본 일인 줄로 여기기도 합니다.
영계의 영이 지상의 인간을
통제하거나 장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부주의하고 잘못된 생활방식,
혹은 얄팍한 호기심으로 지나치게 깊은
신비를 추구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그 대가로 지상이나
그보다 낮은 영역을 배회하는
저급한 영들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마침내 꼭두각시로 전락해서
그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되기도 합니다.
환경이 깨끗했으면
선하고 순수한 삶을 영위했을
많은 남녀들이 나쁜 환경으로 인해
죄악에 물들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그들에게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들의 몸을 지배하여 이용했던
영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하여
그 육체를 이용하는 사악한 영들은
곱절의 죄를 짓는 셈이라
그야말로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 자신들의 죄에 더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마저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간 셈이므로,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동안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의 나락에 빠지게 되지요
나도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의 육체를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죄악에 굴복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그렇게 하도록 허용됩니다.
또한 지상을 배회하며
유혹하는 영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역할도 하지요.
내가 하는 일은
의지의 힘으로 방벽을 쌓아
사악한 영들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미 저급한
영들의 지배를 받은 전력이 있다면
계속 생각과 암시를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방벽이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지요
그 당시에는 내가
보호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을
안전하게 지킬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도움을 주는 영들의
긴 사슬에서제일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한 단계 높은 영은 그만큼
진보한 상태에 있지요.
각각의 영은 자기 아래의 영이
일을 그르치거나 중도에
헤매지 않도록 도움을 줘야 합니다.
다른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자기부정과 희생의 정신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지상의 영계에 있을 때
내 영의 상태는 나름대로
유리한 이점을 갖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보다
영묘한 파동을 가진 영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나쁜 영들과 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지상에
묶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진보한 영들에 비해
지상의 인간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는 꿈을 통해,
깨어 있을 때는
지속적인 생각의 주입을 통해,
내가 책임진 사람들의 마음에
내 경험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끔찍한 후회와 공포,
처절한 자기혐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지요.
그가 진지하게 이러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때까지
나의 감정을 계속
그렇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독특한
경험들에 대해 더 이상
장황하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전에 빠졌던 것과 같은
죄악의 구렁텅이로부터
여러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속죄를 할 수 있었지요.
나는 그러한 임무에 파견될 때마다
매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해뒤야 할 게 있습니다.
영계에서의 나의 진보가 주변에서
깜짝 놀랄 만큼 빨랐던 이유는,
그리고 나에게 밀어닥친
모든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나타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줬던
그녀의 도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혹의 속삭임이 들려올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을 집중하면
이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요.
간혹 예전의 나처럼
지상의 어두운 영계를 떠도는
불행한 영들을 돕는 일에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우리 형제단의 상징인
별처럼 생긴 작은 불빛을 손에 쥐고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빛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면
바닥에 삼삼오오 웅크려 있거나
구석에서 비참하게 쪼그리고
있는 불행한 영들이 보이곤 했지요.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내가 있었던 희망의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거나,
혹은 자신들보다
비참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영들에겐 각자에게
맞는 치유법이 제시됩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사연이 있고
죄를 지은 이유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