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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의 희곡 <시몬 보카네그라>
대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초연판, 주세페 몬타넬리의 추가 작업)
아리고 보이토(개정판)
초연 1857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초연판)
1881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개정판)
배경 14세기 중엽, 이탈리아 제노바와 그 부근
프롤로그와 1막 사이의 시간 간격은 25년
<2020년 12월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 143분 / 한글자막>
취리히 필하모니아 & 취리히 오페라 합창단 연주 / 파비오 루이지 지휘 / 안드레아스 호모키 연출
시몬 보카네그라.....제노바를 위해서 일하는 해적 두목으로 나중에 총독이 됨.......크리스티안 게르하허(바리톤)
야코포 피에스코.....제노바의 귀족으로 나중에 안드레아라는 가명을 씀....................크리스토프 피셰서(베이스)
파올로 알비아니.....금세공사이자 평민파의 실력자로 총독의 최측근 조신이 됨.....니콜라스 브라운리(베이스)
아멜리아....................시몬의 딸로 아멜리아 그리말디라는 이름으로 나옴....................제니퍼 롤리(소프라노)
가브리엘레...............제노바의 귀족...............................................................................................오타르 야르지키아(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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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2020 취리히 오페라 실황
어둡고 묵직한 회전무대로 빚어내는 베르디 남성 오페라의 결정판
14세기 제노바 역사에서 취재한 <시몬 보카네그라>(1857)는 벨칸토 전통에서 출발한 베르디가 중후한 작풍으로 이행하는 시금석이 된 오페라다. 소프라노와 테너 주인공이라는 교과서적 틀을 깨고 바리톤과 베이스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 '남성적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을 특별히 사랑한 베르디는 초연 24년 만인 1881년 전면개정판을 만들었고 오늘날에는 거의 개정판이 사용된다. 본 영상물은 취리히 오페라의 총감독 안드레아스 호모키가 직접 연출한 프로덕션이다. 묵직한 회전무대와 이를 십분 활용한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이 걸작의 장엄한 감동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독일 오페라의 명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도 실력을 발휘했고, 파비오 루이지의 지휘는 지극히 섬세하다.
이 오페라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리구리아 해의 도시국가 제노바는 4대 명문가문이 지배구조를 형성했는데, 피에스키-그리말디 가문 vs. 도리아-스피놀라 가문의 경쟁 구도였다. 귀족에 염증을 느낀 평민파의 지지로 1339년 시몬 보카네그라가 제노바 최초의 총독으로 선출된다. 그는 종신 총독이었으나 1344년 물러났다가 1356년에 다시 복귀했고, 1363년 암살되었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정치적으로 화합과 평화를 추구한 인물이다. 제네바에서 세력간의 갈등은 대부분 귀족인 교황 지지파 '구엘피'와 대체로 평민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 기벨리니'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제노바는 전통적으로 구엘피의 도시였지만 시몬 보카네그라는 기벨리니의 지지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후임자 아도르노는 구엘피에 속했다.
베르디는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를 다수 작곡했는데, <시몬 보카네그라>도 그렇다. 따라서 이 오페라는 남녀간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부녀간의 휴먼드라마에 가깝고, 더 나아가 정치극이다. 따라서 여러 바리톤과 베이스들이 극의 배경인 제노바의 권력을 두고 암투를 벌인다. 극중 그리말디 가문은 추방당한 것으로 설명되는데, 실제로 이 시기에 제노바를 떠난 그리말디 가문은 모나코 대공국의 맹주가 되었다.
연출을 맡은 안드레아스 호모키는 2004년부터 전설적 연출가 발터 펠젠슈타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베를린의 코미셰 오퍼 총감독으로 일했고, 2012년부터 취히리 오페라의 감독으로 옮겨왔다. 그의 부임 이후 취리히 오페라는 연극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모키와 같은 해에 취리히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2021년에 그만 둔 파비오 루이지는 다소 작은 이 극장 무대에 어울리는 지극히 섬세한 지휘로 호평을 받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시몬 보카네그라
주세페 베르디
테너가 우위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시몬 보카네그라〉는 두 명의 바리톤과 두 명의 베이스의 낮은 음역의 남성 성부가 지배적인 오페라이다. 오페라는 어두운 무대 배경에 육중한 음향과 억제된 선율이 지배적으로 흐른다.
운명의 장난
해적인 시몬 보카네그라는 귀족 명문가의 딸 마리아를 사랑하지만 부친 피에스코는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이미 딸(아멜리아)이 있다. 마리아는 피에스코에게 끌려가 집에 감금당하는 중에 죽음을 맞이한다. 시몬은 어린 딸을 홀로 키운다. 어느 날 항해를 하고 돌아와서 어린 딸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한편 귀족파와 평민파의 갈등은 심화되고 해적 시몬은 평민파 대표로 총독이 된다. 25년 후, 시몬은 통치자로 살아가고 피에스코는 안드레아라는 필명을 쓰며 그리말디 가문의 양녀였던 아멜리아와 함께 산다. 한편 총독의 심복 파올로는 아멜리아와 결혼을 원하는데, 시몬이 이를 도우려고 한다. 아멜리아는 시몬에게 자신은 그리말디가 아님을 밝히며 어머니의 초상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초상을 본 시몬은 그녀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몬은 파올로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이에 화가 난 파올로는 아멜리아를 로렌치노 집에 감금한다. 총독이 최고 위원회 회의를 하는 중 폭동이 일어난다. 가브리엘레와 안드레아가 민중들에게 잡혀 들어오는데, 가브리엘레가 로렌치노를 죽였음을 고백하며 배후가 총독일 것이라 짐작하고는 총독에게 달려든다. 아멜리아는 그러한 가브리엘레를 제지하며 배후는 파올로임을 암시한다. 총독이 자신이 배후임을 아는 것에 겁을 먹은 파올로는 시몬의 물병에 독을 탄다. 독약을 먹고 시몬이 잠든 사이, 파올로의 간언에 가브리엘레는 시몬을 죽이려 한다. 이때 아멜리아가 나타나 그를 저지하며 시몬이 자신의 친부임을 밝힌다. 한편 반란을 일으킨 파올로는 사형을 언도받는다. 독약을 마신 시몬의 곁에 피에스코가 다가와 복수의 순간이 왔음을 알린다. 시몬은 피에스코에게 잃어버렸던 딸이 아멜리아임을 밝히며 용서를 구한다. 아멜리아는 안드레아가 자신의 외할아버지임을 알게 되지만, 이 행복한 순간에 시몬은 숨을 거둔다.
실화가 주는 중량감
〈시몬 보카네그라〉는 스페인의 귀족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의 원작 《시몬 보카네그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실제 존재했던 베네치아 총독 시몬 보카네그라의 반평생에 가까운 장대한 일대기이며 그는 파티 도중에 자신의 최측근에 의해 독살 당한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제노바 주재 스페인 영사에서 근무했을 당시, 총독 보카네그라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이를 책으로 옮겼다.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한 정치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오페라는 실화의 비극이 장대한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곳곳에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고 있어 그 무게감을 더한다.
25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역작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과 계약한 베르디는 작품에 대한 열의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희곡의 선택에서부터 줄거리에 이르기까지 베르디는 작품에 철저하게 개입하여 하나의 오페라를 완성하였다. 이렇게 베르디의 손을 거친 이 오페라는, 안타깝게도 초연에 실패하였다.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베르디는 실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작품의 실패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패를 인정한 베르디는 초연 3년이 지난 후 이 작품을 다시 수정할 것을 결심한다. 수정은 단순히 몇몇 장면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수정하는 대공사였다. 이 수정판의 극본은 아리고 보이토가 맡게 되었다. 베르디와 보이토의 개정 작업은 1881년에 끝났는데, 초연으로부터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25년 동안 베르디는 작품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정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25년의 세월은 〈시몬 보카네그라〉 작품의 프롤로그와 1막 사이의 시간과 맞아떨어진다. 우연이든 아니든 25년의 세월 동안 작곡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듬어진 역작이 〈시몬 보카네그라〉이다.
주요 음악
프롤로그 피에스코의 아리아, ‘애처로운 마음이여(Il lacerato spirito)’
시몬과의 결혼 반대로 집에 갇힌 마리아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아의 아버지 피에스코는 딸의 죽음을 접하며 그녀의 죽음이 시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망감에 휩싸인 피에스코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 아리아는 피에스코가 부르는 유일한 아리아로 화성적 색채가 강하며 선율적으로 억제되어 있으며 모놀로그로 가수로서의 표현력이 요구된다.
1막 1장 아멜리아의 아리아, ‘새벽 별과 바다는 미소 짓고(Come in quest'ora bruna)’
프롤로그와는 전혀 다른 청아한 분위기의 서주에 이어 나오는 아리아로 그리말디가의 상속녀인 아멜리아가 연인 가브리엘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부르는 아리아이다. 서정적이며 따뜻한 음성이 매력적이다. 이어 가브리엘레가 배를 타고 오면서 하프 반주에 맞춰 세레나데 ‘별 없는 밤’을 부른다. 배에 내린 가브리엘레는 아멜리아와의 재회에 기뻐하며 두 연인은 ‘저 푸른 바다를 보세요’를 함께 부른다.
1막 시몬과 아멜리아의 이중창, ‘저는 그리말디가 아닙니다...울어라!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Non cono una Grimaldi...Figlia! A tal nome io palpito)’
파올로와 결혼시키려는 소식을 접한 아멜리아는 이를 거절하며, 시몬에게 자신이 그리말디가 아님을 밝히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한다. 아멜리아의 말을 들은 시몬은 그녀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되며, 두 사람은 25년 만에 해후한다. 시몬은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너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며, 두 사람은 기쁨과 행복을 노래한다. 오페라에서 부녀의 재회장면으로 가장 감동적인 2중창이다.
1막 2장 시몬의 아리오소, ‘평민이여, 귀족이여(Plebe! Patrizi! Popolo!)’
로렌치노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며 가브리엘레는 총독에게 달려든다. 아멜리아는 이를 저지하며 납치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진범은 따로 있음을 알린다. 소란스러운 중에 시몬은 좌중을 진정시키며, 이탈리아 민족에게 호소하는 아리오소를 부른다. 이 노래의 내용은 실제로 평소 이탈리아 반도의 화합을 주장했던 총독 시몬의 사상이 보이는 대목이다.
2막 가브리엘레의 아리아, ‘가슴이 불타네(Sento avvampar nell’anima)’
파올로는 가브리엘레에게 아멜리아가 총독 궁에 있음을 전하면서 그의 질투심을 부추긴다. 일순간 분노에 사로잡힌 가브리엘레는 정적이자 아버지의 원수였던 시몬을 죽일 결심을 한다. 이 오페라에서 유일한 테너 아리아로 일반적인 아리아가 카바티나-카발레타 순으로 된 것과 달리 초반에 격정적인 분위기에서 조용하고 부드러운 부분으로 이어지는 아리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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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4월 8일 네이버캐스트 / 국립오페라단 자료제공, 이순열 글>
명곡 명연주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이탈리아 역사 속 실존인물 시몬 보카네그라의 삶을 다뤘다
1857년 완성, 1981년 라 스칼라에서 개정판 공연
시몬 보카네그라, 그것은 언 땅에서 봄이 꽃피기를 기원하는 오페라이며, 초연(1857년 3월 25일)도 개정판의 공연(1881년 3월 24일)도 모두 봄에 이루어 졌다. 인간은 수 없는 담을 쌓아놓고 살아왔다. 양반과 상인, 귀족과 평민, 동과 서, 남과 북, 멸시와 오만, 적대와 원한 등 갖가지 장벽이 얼어붙은 삭풍처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타자(他者)야말로 지옥’(L’Enfer, c’est les autres)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제노바에서 평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독에 선출되어, 귀족과 평민의 메울 수 없는 균열과 갈등을 완화시키려 애썼던 실존 인물이었다.
그의 생애를 소재로 쓰여진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의 희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베르디는 1856년 프란체스코 피아베 에게 대본을 의뢰해서 1857년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를 완성했다. 그러나 페니체 극장(베네치아)의 그 초연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 이후, 베르디는 아리고 보이토의 도움을 받아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대본의 전면적인 수정을 원했던 보이토의 의도와는 달리, 베르디의 뜻대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정에 그쳤지만 1881년 스칼라 극장에서 개정판이 공연되었을 때는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초연 이후 25년 간의 수정 작업을 통해 태어난 역작
주인공 중에 테너는 한 사람뿐이고 타이틀롤을 비롯해서 바리톤과 베이스가 주류를 이룬데다, 흐르는 선율과 유려한 아리아로 우리를 사로잡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좀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가라앉아 있지만, 그러기에 시종 극적인 긴장감이 우리를 압도하는 차원 높은 오페라이다.
‘종말은 시작 속에 있다’(The end is in the beginning)는 엘리엇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듯이, 이 오페라의 시작 속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 때문이다. 귀족 피에스코의 딸 마리아는 평민 보카네그라를 사랑한 죄로 아버지에게 유폐되고 만다. 딸을 유폐시킨 아버지인들 편할 리가 없어 ‘애비의 괴로운 마음’(Il lacerate spirito)을 노래하면서 그의 비통함을 토해낸다. 불후의 베이스 알렉산더 키프니스의 노래(1920년 녹음)가 지금도 시공을 초월한 명연주로 남아있다. 유폐된 채 아버지의 저주를 받으면서 딸은 죽어가고, 보카네그라는 세상이 꺼져가는 슬픔에 잠기지만 그 슬픔을 딛고 총독에 선출된다.
25년의 긴 세월이 흐른 후, 아멜리아의 노래(‘이 어두운 새벽에’/ Corne in guest’ora bruna)로 막이 오른다. 그리말디 백작 부부의 양녀 아멜리아는 양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안드레아라는 노인과 함께 살고 있다 . 그 때 가브리엘레의 노래(‘하늘에는 별조차 흐려있고’/Cielo di stele orbato)가 들려온다. 아멜리아와 귀족청년 가브리엘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리고 가브리엘레와 안드레아는 의기 투합하여 보카네그라의 평민정권을 뒤엎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보카네그라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멜리아를 만나러 온다. 동료 파올로와 아멜리아의 혼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멜리아가 자신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실종되었던 딸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 때 보카네그라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부른 ‘내 딸아,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구나’(Figlia! A tal nome io palpito)는 이 오페라의 가장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부녀임이 밝혀지자 아멜리아는 총독 관저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지만, 그 때부터 갈등의 씨는 더욱 커간다. 혼담이 무산되자 아멜리아를 납치하고 보카네그라를 암살하려 하는 파올로, 부녀관계임을 모르고 보카네그라와 아멜리아 사이를 의심한 가브리엘레의 질투, 평민과 귀족 간의 불타오르는 반목과 피를 부르는 증오… 그런 흉흉한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보카네그라는 외친다. “평민이여, 귀족이여, 피투성이 잔인한 역사에 얽힌 사람들이여!”(Plebe! Patrizi! Popolo dalla feroce storia…) 그러나 피를 토하는 듯한 호소도 헛되이 그는 들끓는 소용돌이 속에서 독살되고 만다. 독살자는 가브리엘레나 귀족이 아니라 내부의 적 파올로였다.
갈등의 봉합과 화해를 위해 그토록 애썼던 보카네그라는 가브리엘레를 후임 총독으로 지목하고 딸 아멜리아를 부탁하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햄릿]에서 우리의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하는 것은 숨져가는 햄릿에게 호레이쇼가 작별인사를 고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잘 가시오. 아름다운 왕자여.
천사들이 후르르 날아오르면서 그대에게 영원한 안식을 노래하기를.
Good night, sweet prince.
And the flights of angels sing thee to thy rest.
‘시몬의 영혼에 안식과 평화를!’이라는 군중의 기원과 함께 종이 울릴 때, 호레이쇼의 그 눈물겨운 작별인사가 오버랩되면서 우리의 가슴은 메어질 듯 뜨거운 눈물로 벅차 오른다.
시몬의 안식을 기원하는 그 만종(挽鐘)의 울림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라는 물음, 돈(John Donne)이 제기했던 그 물음을 다시 한번 화두로 내놓는다. 그 화두를 우리가 제대로 반추한다면 시몬이 그토록 바랐던 화해의 봄은 싹터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시몬 보카네그라는 그 만종의 무덤에서 봄의 싹틈을 희구하는 봄의 노래이다. 언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는 잔인한 4월의 봄 노래이다. 연출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무겁고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마지막 장면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이 베르디의 의도였을 것이다. “오라, 봄이여. 한 맺힌 시몬의 넋이 묻힌 그 땅에 봄이여 솟아오라.”고 오열하면서 베르디는 이 오페라의 막을 내린다.
프롤로그 / 1330년 경 제노바의 광장
파올로와 피에트로는 유명한 해적인 시몬 보카네그라를 총독으로 선출해 시민들의 힘을 얻기로 공모한다. 비천한 신분의 시몬은 귀족의 딸인 사랑하는 마리아와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제안을 수락한다. 지금 그녀는 시몬의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 야코포 피에스코에 의해 성에 감금되어 있다. 시민들은 시몬을 따를 것을 맹세한다. 시민이 사라지고 피에스코가 나타나 마리아의 죽음을 통곡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그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귀족인 피에스코와의 화해를 위해 돌아온다. 피에스코는 시몬에게 손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시몬은 아기가 사라졌음을 알린다. 피에스코는 시몬을 저주하고, 시몬은 성으로 들어가 마리아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몬은 망연자실하지만 밖으로 나온 그를 군중들은 환호하며 총독으로 맞이한다.
1막 / 25년 후 바닷가 정원
아멜리아 그리말디는 연인인 가브리엘레 아도르노를 기다리고 있다. 가브리엘레가 도착하고 그녀는 평민회의와 귀족회의 간의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그를 염려하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함을 이야기한다. 가브리엘레는 총독이 아멜리아와 파올로를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아멜리아의 후견인인 안드레아(사실은 피에스코가 변장한)에게 축복을 얻는다. 그리고 총독을 타도하기로 결심한다. 아멜리아는 총독을 만나 추방된 의붓형제들의 용서를 구하고 감사해하며 가브리엘레를 향한 사랑과 자신의 외로웠던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멜리아가 시몬에게 죽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여주자 시몬은 그녀가 마리아가 낳은 그들의 딸임을 알고 껴안는다. 시몬은 파올로에게 아멜리아와의 결혼은 포기하라고 한다. 계획에 실패한 파올로와 피에트로는 아멜리아를 납치하기로 한다.
총독궁의 회의실
제노바와 베니스의 조약에 관한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회의실 밖 거리에서 성난 군중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브리엘레가 뛰어들어와 시몬이 아멜리아를 납치하려고 계획했다며 그를 비난한다. 가브리엘레가 시몬을 칼로 찌르려 하자 아멜리아는 자신을 총독의 정부로 의심하고 있는 가브리엘레를 용서해달라고 호소한다. 아멜리아는 자신이 납치된 경위를 설명하고 파올로가 사건에 공모했던 사실을 알린다. 시몬은 이를 지켜보던 분노에 찬 사람들에게 평정을 찾으라고 당부한다. 시몬은 납치 사건 배후의 인물을 저주하라고 파올로에게 명하고 겁에 질린 파올로는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를 반복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2막 / 총독의 방
파올로는 시몬의 잔에 독을 넣는다. 가브리엘레와 안드레아가 들어오고 파올로는 안드레아에게 총독을 암살하자고 설득한다. 그리고 가브리엘레에겐 아멜리아와 총독의 관계를 교묘히 의심받게 말해 그를 부추긴다. 가브리엘레는 질투심에 불타 아멜리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울부짖는다. 그녀가 미처 사정을 설명하기 전에 시몬이 나타나 가브리엘레는 몸을 숨긴다. 아멜리아는 가브리엘레가 없다면 오히려 삶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며 시몬에게 그의 용서를 빈다. 시몬도 그가 뉘우치면 용서하겠다고 한다.
홀로 남은 시몬은 통치자에게 샘물조차 쓴 맛이 난다고 생각하며 잔에 든 물을 마시고 잠에 빠진다. 가브리엘레가 나타나 잠든 시몬을 단검으로 찌르려는 순간 아멜리아가 나타나 이를 말리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마침내 가브리엘레는 아멜리아가 시몬의 딸임을 알게 되고 깨어난 시몬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가브리엘레를 용서한다. 아멜리아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기도한다. 반역자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가브리엘레는 자신이 반역자들을 평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시몬을 보호하며 죽겠다고 말하며 시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시몬은 그에 대한 상으로 아멜리아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3막 / 총독궁
제노바의 반역자들을 진압한 시몬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풀려난 안드레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파올로를 우연히 만나 총독에게 독을 먹인 사실을 알게 된다. 독기운이 퍼져 서서히 죽어가는 시몬이 들어온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피에스코임을 밝히고 아멜리아가 자신의 손녀딸임을 알게 된다. 피에스코는 너무 늦게 알게 된 그 사실에 눈물을 흘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파올로가 시몬의 잔에 독을 넣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일어버린 사랑과 젊음에 대해 탄식하며 죽어가는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시몬은 시위인 가브리엘레를 후계자로 임명한다. 시몬이 죽자 피에스코는 젊은 두 연인을 축복하고 가브리엘레를 시몬의 뒤를 이을 새 총독으로 선포하고 시몬의 죽음을 군중들에게 장엄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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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세페 베르디와 시몬 보카네그라 === <2010 뉴욕 메트 영상물 내지 해설 / 마틴 추시드 / 신혜민 번역>
베르디는 왜 <시몬 보카네그라>에 그토록 끌렸을까? 먼저 이 오페라의 희곡을 쓴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구티에레즈의 작품 '엘 트로바도르'는 베르디에게 막대한 성공을 가져다 준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원작이 되었으며, 이것은 베르디 생전에 단연코 가장 많이 공연되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의 바닷가에 대한, 특별히 <시몬 보카네그라>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주요 도시 제노바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베르디가 <시몬 보카네그라>의 첫 번째 버전(1857년 베네치아에서 초연됨)을 완성하고 난 10년 후부터 그는 매해 겨울을 제노바에서 보내기 시작했으며, 이는 그가 죽기 전까지 30여 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또한 구티에레즈가 <시몬 보카네그라>의 희곡을 완성한 후, 제노바의 스페인 영사가 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작가와 작곡가, 둘의 출생시기는 1년 이내이며(베르디 1813년생, 구티에레즈 1812년생), 베르디의 서신에 구티에레즈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둘은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베르디의 정치적 성향은 이 극의 배경이 스페인이라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주세페 마치니, 주세페 가리발디, 조지 워싱턴을 경모했으며 자기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묘사한 바 있다. 그 예로, 미국 남북전쟁 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마누엘레 무치오와 주고받은 서신에는 그가 노예 제도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시몬 보카네그라가 부와 권력을 가진 귀족에 대항한 제노바 민중에 의해 1339년 선출된 첫 총독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11세기 - 13세기의 십자군 전쟁 기간 동안, 제노바가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이 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인 발달을 꾀한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 주변의 섬들과 북아프리카를 포함, 제노바는 스페인에서 크림반도까지 아우르는 많은 식민지들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제노바의 용감한 선원들 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위인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베르디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좀 더 개인적인 이유 또한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과 같이 <시몬 보카네그라> 역시 시작부터 비극을 암시한다. 프롤로그에서 보카네그라는 평민파 지도자인 파올로와 피에트로 - 이들 이름은 사실 황금과 권력을 상징하는 역설적인 표현 - 에 의해 제노바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정치가가 아닌 바다의 영웅이었던 보카네그라가 총독이 되고자 한 것은 비천한 태생의 그가 귀족 피에스코 가문의 딸 마리아와의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함이었다. 마리아와 보카네그라 사이에는 이미 어린 딸이 있었고, 마리아의 아버지 피에스코는 그들의 사랑을 막기 위해 그녀를 궁에 가두고 만다. 보카네그라가 피에스코와 직면하게 되는 부분은 프롤로그에서 극적, 음악적으로 가장 절정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보카네그라는 마리아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군중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2중창 직전에 피에스코는 딸 마리아의 죽음을 알고서 "괴로운 마음 Il lacerate spirit"을 부르고 무대 뒤의 합창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편 성가를 읊조리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불려지는 이 피에스코의 아리아는 <시몬 보카네그라>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이며, <일 트로바토레>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인, 4막에서의 시편 성가가 나오는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이 2중창에서 보카네그라는 피에스코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에스코는 마리아와의 사이에 난 딸을 주면 그를 받아들이겠노라 하지만, 이미 그 딸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이상의 평화는 없노라 선언한다. 그리고 마리아를 찾으러 피에스코의 궁에 들어간 보카네그라는 이미 숨을 거둔 그녀를 발견한다. 슬픔과 증오로 가득한 그에게 들리는 것은 "시몬 만세! 민중에 의해 선출된 총독이여!"라는 외침과 함께 시몬을 찬양하는 거리의 소리뿐이다.
국민적 영웅, 그러나 불행했던 개인의 삶...여기엔 베르디 자기 자신의 삶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젊은 보카네그라가 사랑하는 마리아와 그 딸을 잃었던 것처럼 베르디 또한 젊었을 때 그의 첫 아내와 두 아이를 잃었다.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할 즈음, 그는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세 식구를 모두 떠나 보내야 했다. 베르디는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떠올리며 비통해한 적이 있노라 고백한 적이 있다. 그가 얼마나 보카네그라의 삶에 깊이 공감했을지...!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시몬은 여전히 성공한 리더로서 총독의 자리에 있다. 1막 1장의 클라이맥스는 시몬과 그의 딸 아멜리아가 서로를 알아보고 부르는 2중창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딸을 데려간 유모가 죽은 후, 그녀는 고아원에서 길러져 왔다. 그러다가 그리말디 가의 재산몰수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피에스코는 죽은 딸을 대신하여 아멜리아를 입양한다. 교활한 파올로는 미모와 부를 갖춘 그녀와 결혼하려고 계략을 꾸미지만 자신의 딸 아멜리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몬은 파올로의 뜻에 반대한다. 분노한 파올로는 아멜리아를 납치하여 시몬에게 대항하고, 2막에서는 시몬의 독살을 계획하여 이 오페라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한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1857년 베네치아 초연 당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베르디는 작품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개정판을 레지오 에밀리아(1857)와 나폴리(1858) 무대에 올려 호응을 얻어냈지만, 이어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고배를 마시고 급기야는 상연작 레퍼토리에서 제외되고 만다. 그러나 베르디는 이 작품이 얼마나 특별하고 가치있는가를 확신했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한 예로 아리고 보이토가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 대본을 맡고 싶다 했을 때, 베르디는 보이토가 <시몬 보카네그라>의 대본을 수정해주기만 한다면 그에게 대본을 의뢰하겠다 한 바 있다. 프롤로그와 3막의 시작에 완전히 새롭고 업그레이드된 음악을 추가한 것과 더불어, 베르디는 주저하는 보이토에게 방대한 양의 새로운 가사들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 1막에서, 아멜리아와 가브리엘레의 다가올 결혼을 축복하는 피에스코의 보다 위엄있고 효과적인 장면을 위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영웅 보카네그라와 악당 파올로를 음악적으로, 극적으로 분명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그는 2막을 여는 파올로의 독백 장면을 완전히 다시 씀으로써 이아고에 필적하는 악당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의 첫 버전에서 용감한 지략가로 그려지는 보카네그라는, 수정된 1881년 밀라노 버전의 1막 마지막 의회장면에서 더욱 당당하고 위엄있게 묘사된다. 여기서 보카네그라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14세기 새로운 통일 이탈리아 - 그 중 주요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와 제노바 간의 평화를 바라며, 초기 반란의 진압을 단행한다. 그는 그리고나서 아멜리아를 납치한 비열한 행위에 대해 파올로가 자기자신을 저주하게끔 만든다. 많은 음악적인 변화, 특히 더욱 풍부해진 오케스트레이션은 <시몬 보카네그라>를 수정된 그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완벽한 개정판으로 만들었다.
앞에 언급했던 시몬 보카네그라라는 인물이 작곡가와 개인적인 면에서 관계가 있다는 점을 넘어, 우리는 베르디가 그의 작품에서 얼마나 극적인 요소를 중요시했는가를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해 주요 배역들 사이엔 충분한 동기부여를 가진 확실한 갈등이 있어야 했다. 보카네그라와 피에스코, 그리고 보카네그라와 파올로처럼 말이다. 그는 언제나 보카네그라처럼, 그리고 그의 딸 아멜리아와 그 연인 가브리엘레, 지조있는 피에스코처럼 동정어리고 믿음직한 인물을 추구하였다. 또한 보카네그라가 자신이 총독으로 선출된 것을 알았던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연인 마리아의 죽음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베르디는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효과를 원했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구성은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보다 더 복합적이다. 물론 <일 트로바토레>보다는 덜 하지만…. 베르디는 전작에서처럼 장엄한 음악을 만드는 것에 고취되었다. 특히 1857년 3월 이 작품의 세계 초연이 있은 24년 후인 1881년 3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의 개정판 첫 공연에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것은 마침내 전세계에 연주되고 있는 <시몬 보카네그라>의 버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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