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荒嶺山)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와 연제구, 남구 및 수영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누를 황(黃)을 쓴 황령산(黃嶺山)으로 기록하여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동래부읍지(1832년)》에는 거칠황(荒)을 쓴 황령산(荒嶺山)으로 기록하여 '화지산으로 뻗어나 있으며 마하사가 있다.'고 하였다. 황령산은 동래가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에 동래지방에 있었던 거칠산국(居漆山國)에서 온 산 이름으로 보고 있다. 거칠산국에 있는 산이어서 '거츨뫼'라 했던 것이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거칠'황(荒)', 고개'령(嶺)'의 황령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봉수대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을 계기로 1898년(고종 35년) 그 기능을 상실할 때까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군사적 목적의 중요한 통신시설이였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의하면 황령산 봉수대는 1425년경(세종 7년)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포를 지키는 해안초소 역할을 했던 황령산 봉수대는 간비오산 봉수대와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이다. 대략 30리의 거리마다 산꼭대기에 봉화대를 두고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불을 올렸다.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 산50-1에 위치한 황령산 봉수대(비지정 국방문화유적)는 동으로는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와 연락했고, 서는 엄광산의 구봉 봉수대 북으로는 범어사 계명 봉수대와 연락하는 등 동서남북 봉수대와 연결하도록 되어 있다. 봉수대에는 도별장 1명, 그 밑에 별장(別將) 10명, 감고(監考) 1명, 봉군(烽軍) 100명씩 배치하고, 이들에게는 가까운 곳에 있는 평지인 평전(平田)을 주어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게 하였다. 부산에 있는 여러 봉수대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입시에 그 기능을 발휘한 바 있어 조상들의 향토 사랑과 국토수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우리 고장의 중요한 사적지이다.
<산 행 안 내>
황령산은 해발이 그리 높지않아 가볍게 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령산(荒嶺山)은 부산의 전형적인 도심의 산으로 부산진구, 남구, 수영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427m로 금련산맥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대부분 안산암질로 구성되어 있는 산으로 산정이 비교적 평탄하며 곳에 따라 소규모의 성채경관을 나타내는 기반암이 노출됩니다. 북동쪽으로 금련산이 연결되나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하천의 개석작용에 의해 해체되어 산지로서의 예리한 맛은 없으며 주위에는 곳에 따라 독립구릉이 분포하고 낮은 산등성이도 여러 갈래로 뻗고 있습니다.
황령산은 부산시 진구 양정동과 전포동, 남구 대연동, 수영구 망미동.광안동.남천동,연제구 연산동 등
4개 구 8개동에 걸쳐져 있어 주요 등산로만 해도 30여개에 산행기점은 무려 70개나 된다고 합니다.
첫댓글 참석합니다.
가즈아~ 편백숲으로
갑시당!
아! 800차 산행. 참석합니다.
대장님 다음번이 800회랍니다. 다음번에 거하게 한번 하죠
가 봅시다~
참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