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흐름'과 '변화'다
부처님은 '흐름'이다
부처님은 재세시 인도 서민들의 비참한 민생
그리고 열악한 자연환경에
몸서리쳐지도록 슬퍼하고 괴로워 하셨다
도처에 풍토병의 말라리아,괴질등 도무지 해결하기
난망한 상황,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깊은 명상에 드셔 헤아리셨으니....
부처님은 반항이자 혁명을 꿈꾸셨다
서서히 자신부터 고행과 명상을 통해 일심을 얻은 후
심도있는 법계를 두루 살펴 보셨다.
'흐름'
분명히 역사는 흘러왔고 또 미래 역시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수천년 내려온 인도 민중의 삶,자연환경은
왜 이리 혹독하며, 왜 이리 비참하게 울부짖다 간단 말
인가? 부처님은 스스로 때로 자학하고 때로 울부짖으며
사바를 떠날 바램으로 극한의 고행을 지어가셨으니
결국 중도라는 깨달음을 얻셨다.
그래 흘러가는 것이 역사고 인간삶이라며 그 '흐름'속에
'유익하고 풍요롭고 의미있는 흐름'은 우엇일까
더욱 골똘히 생각에 집중하셨다.
그래 흘러가자
냇물이 소류지안에 갖혀 있다면 곧 적체요,부패다
곧 흘러 흘러 갈지니 드넓은 바다에 이르러 수많은
미물ㆍ중생들을 보며 안목을 넓히고,또한 스스로
무한의 바다를 만행하며 '진정한 의미 곧 자유행복 충만
한 깨달음'의 세계를 알앚채니, 바다에 다다른 냇물은
'위대한 세계,거룩한 마음'의 이치와 근본을 알아채
거듭나고 승화된 자신을 이룰수 있음을 안다할 것시다.
'변화'
변화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모든 부처님들의 생명 에너
지다.변화가 곧 생명이요,에너지요,성장이요,대각이다
왕궁에서 성을 넘는 출가,다양한 삶 섭렵,설산의 고행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완전한 깨달음 즉 안팤을 온전히
보시고,전생 현생 내생을 여지없이 아시며, 일체 중생들
의 실상을 보시어 그들 모두를 제도하시는 '변화'의 여정
은 바로 보살 붇다의 성스럽고 완벽한 모습이었다.
냇물이 자기 냇가를 포기해 바다에 이르듯
부처님도 안락안일의 왕궁을 포기해 해인삼매의
대각을 성취하셨으니 포기와 버림,흐름과 변화는
모든 불심행자의 고귀한 덕목이다.
헌옷을 버려야 새옷을 입듯
누애고치에서 나방이 되듯
'새로운 각성'이란 기존의 나, 기존의 환경과 사고를
내치고 버리는데서 성취의 절반이 이뤄졌다 할 것이다.
흐름과 변화를 두려워 하랴
부지깽이도 닳고 닳으면 버려야 한다
운동아든 옷이든 연장이든 노후되면 폐기해야한다
세상의 변화,나의 흐름 모두를 숙지하니,그 소용돌이를
과감하고 의연히 대처하고 수용하는 자만이 흐름과
변화에서 '진정한 자기,깨달은 자신'을 이룰수 있으니
흐름과 변화에 불심을 적용시켜 '행자의 아름다운 인생'
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고행과 선재동자의 선지식 참방 여정에는
바로 흐름과 변화였다
인연을 고준하게 인식해 '떠남과 안착, 머욺과 떠남'을
자유자재로 회통시키니,그는 바로 진정 중생을 사랑하고
자신을 올곧게 깨달음으로 진격해 나아가는 위대한 행자
만이 가능한 '두렵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인 것이다.
다시말해 물이 얼음되고,얼음이 녹아 물이 되니
고정불변의 시공이 아닌 변화무쌍한 변화 수용과 대처
그 정반합과 색즉공,무유정법의 뜻을 킾히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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