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드라마는 실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허구를 가미해 재구성했습니다."
에피소드 3. [피아노 연쇄 토막살인 사건 - ②]
S# 6. 오후 10시 30분. 나들 역 6번 출구
추워서인지 상당히 많은 노숙자들이 나들 역에 모여 있다. .
정인숙 집 나왔어?
장 순경 엄마, 아빠 없어요.
정인숙 (안쓰러워 하며) 상당히 어려 보이는 데, 불쌍한 년이네. 고향은?
장 순경 전라도 보성이요.
정인숙 나는 성주, 경북 성주.
(담배를 피우며) 술 먹고 들어와서 때리는 남편 때문에,
3개월 된 첫째 딸 안고 집 나왔어
한 2년간 길바닥에서도 지내봤고,
공사장에서 자다가 미친 년 소리 들으며 머리채도 잡혀봤고.
박미경 (옆에서 술을 마시다 끼어들며)
참한 남자 하나 소개 시켜 줄까?
정인숙 여기선 남자가 있어야 돼. 안 그러면 이 남자 저 남자 다 찝쩍거려.
정희경이 담배 한 개피를 장 순경에게 건넨다.
장 순경 임신 3개월 이에요
정인숙 한 개피 정도는 괜찮아. 나도 첫째 가졌을 때 술 담배 다 했는데 뭐
장 순경 딸은 어디 있어요?
정인숙 응, 인천에 있는 친정에 맡겨뒀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내가 키우지 않아서 만나지도 않아
박미경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여긴 ‘껄떡쇠’들 많아.
몸 조심해
철도공사 공안으로 위장한 김 형사와 박 형사가 장 순경과 눈을 맞추고 지나간다.
장 순경 뱃속에 아기가 있는데도 남자가 붙어요?
박미경 (코웃음을 치며)
아이고, 이 동네는 애기를 가졌던 안 가졌던 상관 없어,
(목소리를 낮추며)
그리고, 여기서 술 마시는 건 괜찮은데
누가 다른데 가서 마시자고 꼬시면 따라가선 절대 안 돼.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정인숙 지내 보면, 주변에서 커플 두, 세 쌍은 보일 거야.
여기서 붙어 다니는 남자 여자의 99.9%는 다
역에서 만나서 살림 차리고 애기도 낳는다
박미경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가장 중요한 걸 깜빡 했네.
아침은 7시 반, 점심은 12시 반,
저녁은 예배가 있으면 8시 반에 주고 없는 날은 6시 반.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거리며) 기억해 둬
S# 7. 자정 무렵. 나들 역 대합실과 통로.
노숙자 절반, 막차를 타고 오는 승객들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절반쯤 섞여 있다.
노숙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소주를 마시거나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S# 8. 나들 역 역무원실.
김 팀장과 유 형사가 역무원실 CCTV 화면에 신경을 집중한다.
유 형사 장 순경이 곧잘 하네요.
강력 팀장 (웃으며)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추위와 악취가 만만치 않을 텐데.
역장이 사골 국물에 라면을 끓여서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릇에는 잘 익은 알타리무 김치가 수북이 놓여 있다.
역장 (두 형사를 부르며) 김 팀장님. 라면 좀 드시고 하세요.
야근하면 또 야식 아닙니까?
강력 팀장 (반색하고 다가와 앉는다) 아이고, 역장님.
저희 때문에. 당직까지 일부러 같이 서시고
폐를 끼쳐 드리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역장 (손사래 치며) 아이고 무슨, 그런 섭한 말씀 마세요.
집 사람이 비상 당직 선다고 하니깐. 이렇게 준비해 주더라고요.
알타리무 김치는 그래도 먹을 만 하실 거에요.
집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알타리무 김치만큼은 잘 담가요.
네 사람은 라면을 먹으며, CCTV 화면을 계속 주시한다.
당직 역무원 범인이 빨리 잡혀야지, 노숙자들 사이에서 잠복 근무하는
최 형사님과 장 순경님이 고생을 덜 할 텐데.
박 형사님! 저기 ‘누드 아줌마’!
(CCTV # 24 화면을 가리키며 들뜬 큰 목소리로)
CCTV # 24 화면요.
역장 (화면을 보며 부연 설명을 한다)
저 여자하고 옆에 남자 보이시죠? 둘이 부부에요.
여자가 부부 싸움만 하면 힘이 달리니깐,
꺼떡 하면 속옷까지 훌러덩 벗어 던져서 별명이 ‘누드 아줌마’에요.
늘상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늘 저렇게 붙어 다녀요.
오늘도 ‘토마스의 집’에 둘이 마실 갔다 오는 모양이네.
(알타리무를 한 입 베어 먹는다)
당직 역무원 며칠 전에도 대낮에 난데없는 `누드' 소동이 벌어져서,
대합실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참
저들 부부는 관할 경찰들도 손 들었어요.
박 형사 (탄식하며) 정말 요지경이네요..
역장 (손사래 치며) 그런 건 약과에요.
이른 아침 역사 청소시간에 밖으로 쫓겨난 노숙자 하나가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미리 나와있던 외국인 여성에게 만취상태에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린 적이 있었어요.
지나 가다 이를 목격한 철도공사 공안이 곧바로 이 여성을
우리 사무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죠.
피신시킨 덕에 별다른 불상사가 벌어지지는 않았는데,
제가 옆에서 보는데, 외국인 여성의 몸이 덜덜 떠는데.
S# 9. 아침. 독립문 공원 안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근처 나무 벤치
노숙자가 뒤집어 쓴 이불에서 뭔가 떨어져 벤치 밑 땅을 흥건히 물들인다.
아침 걷기 운동을 하던 부부가 이를 발견한다.
부인 여보! 저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가락으로 벤치를 가리키며)
남편 응? 뭐가? (벤치 아래를 본다)
(말을 더듬으며) 저 저거 사람 피 아냐?
부인은 뒷걸음 치며 물러난다.
S# 10. 오전.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근처 나무 벤치. 사건 현장
유 형사 신종태. 나이 43세. 도봉구 쌍문동
사인은 둔기 가격에 의한 후두부 손상 입니다.
부인과 두 딸이 있고,
봉제 중소기업을 하다가 작년 9월부터 노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력 팀장 (주위를 살피며)
박복순 할머니하고 연결점이 없는데
박 형사 팀장님. 혹시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묻지마 살인’ 아닐까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80세 노숙자를
집단 폭행하지 않았습니까?
유 형사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박복순, 신종태, 둘이 연관성이 안 잡혀요.
노숙자라는 거 외에는,
김 형사 무작정 잠복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러면 어떨까요?
강력 팀장 (김 형사의 얼굴을 보고 재촉하며) 어떻게?
김 형사 ‘마네킹’으로 유인하면?
이불로 마네킹을 감싸서, 벤치 위에 눕혀 놓는 거죠.
놈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와 어두운 곳에 있는 노숙자만을 노려서
살해했으니깐, 우리는 그런 곳에 ‘마네킹’을 갖다 놓는 거죠.
노숙자처럼 위장해서
김 팀장, 김 형사의 볼에 뽀뽀를 하려 달려든다.
무방비로 김 팀장의 뽀뽀 세례를 받은,
김 형사는 뜨악 하며, 바지 뒤춤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내 볼을 닦아낸다.
강력 팀장 (김 형사를 사랑스런 눈으로 보며)
막내가 드디어 하나 해내는 구나!
자. 그럼 각 지구대의 도움을 받아서,
CCTV가 없고 어두운 곳에서 자는 노숙자들을 옮기고,
그 자리에 이불로 감싼 마네킹들을 갖다 놓자구.
S# 11. 새벽 3시.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옥상.
김 형사가 적외선 망원경으로 벤치들을 주시한다.
S# 12. 새벽 3시 20분.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근처 나무 벤치
검은 후드점퍼를 입은 남자가 노숙자로 위장한 마네킹을 응시한다.
수 초 후에 이 남자는 검은 비닐 봉지에서 망치를 꺼내 힘껏 내리친다.
망치를 내리친 남자는 순간 멈칫 하고, 이내 달아나기 시작한다.
S# 13. 새벽 3시 20분.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옥상.
김 형사 (무전기로) 놈이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도망간다.
독립문역 5번 출구 방향!
S# 14. 독립문 역 5번 출구 인근 도로.
박 형사 (놈을 향해 테이저 건을 겨누며) 거기 서!
남자가 서며, 손을 든다.
유 형사가 달려 들어, 놈의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다.
유 형사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S# 15. OO 경찰서 조사실.
김 형사 너 노숙자들 왜 죽였어?
이지태 (대들며) 무슨 노숙자들요? 누가 죽여요?
김 형사 (언성을 높이며) 이 새끼 봐라!
너가 오늘도 노숙자를 죽이려고 망치로 내리친 거 아니야?
봐! CCTV에 녹화된 거!
김 형사가 모니터를 돌려, CCTV 녹화 영상을 보여 준다.
이지태 (기 죽지 않고) 형사님. 저건요.
마네킹이 누워 있길래, 장난 삼아 망치로 그냥 톡 건드린 겁니다.
김 형사 (언성을 높이며) 미친 새끼 지랄 하고 있네.
망치는 왜 들고 다녀? 그리고,
어두운 밤에, 또 이불에 가려서 사람이 누워 있는지,
마네킹이 누워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망치를 휘두르면
살인 미수인 거 몰라?
이지태 (기 죽지 않고) 형사님이 그렇게 말씀 하시니 그런가 보죠.
하지만, 저는 사람 죽이지 않았습니다.
S# 16. 조사실 특수유리 너머 다른 방.
모니터로 이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김 팀장의 얼굴이 어둡다.
옆에 서 있는 유 형사가 먼저 말을 꺼낸다.
유 형사 (모니터를 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팀장님. 쉽지 않겠는데요?
앞서 두 건의 살인사건과 이지태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직접적인 연관성도 입증하기 힘들어요. 현재로서는.
강력 팀장 (유 형사를 보며) 이지태의 집에서 건진 것도 아무 것도 없지?
유 형사 예.
강력 팀장 (입술을 이로 깨물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연다)
우리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았어.
어쨌든 간에 이지태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해!
법원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유 형사 예.
S# 17. 법정.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 한다.
또한 마네킹을 공격한 것은 살인미수가 아니다. 무죄를 선고한다.
다만, 망치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닌 점은 인정하여
‘경범죄 처벌법 3조 2항’에 의거, 8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