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살고 싶다
노병철
나이 먹어감에 따라 머리에 든 게 좀 있어야 나름 어른 대접을 받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있어서 그런지 차츰 문자를 고르는 습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냥 쉬운 말을 사용하면 아무 문제없는데 조금은 유식한 척하고도 싶고 해서 사자성어를 억지로 외워서 한 번씩 사용한다. 문제는 겨우 외워놓았는데 막상 사용하려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버벅거리다 일 끝낸다. 그나마 어렴풋이 생각나는 사자성어는 사람 꼴을 더 우습게 만든다. “일사분란(일사불란)”, “명약가관(명약관하)”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다 보니 가방끈이 짧은 것도 아닌데 이런 것도 모르나 싶어 괜히 부끄럽고 쪽 팔린다. 끼리끼리 논다고 대충 이야기해도 다 알아들으니 다행이다. 듣는 이도 모르거나 혹은 대충 그런 뜻이겠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참으로 ‘쉽게 쉽게’ 사는 세상 아닌가. 머리 쓰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 사람들이 이과가 아닌 문과에 왔을 테고, 그래서 글 쓴다고 긁적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공부 끈이 짧지 않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돈만 학교에 갖다 바쳤지, 개뿔 배운 건 없어 항상 무식하다는 소리는 달고 다닌다. 야반도주를 ‘야밤도주’로 알고 사용한 적이 있다. 야반이나 야밤이나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지만 사실 무식의 발로였다. 선생님이 가르쳐줄 때 딴짓하지 않고 배웠어야 하는데 공부 시간에 무협지 읽고 있었거나 선데이 서울에 나오는 벗은 여배우 사진이나 탐독했으니 오죽하겠나.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고 여태 머리 숙이고 살았는데 평생 교직에 계셨던 분들도 틀리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느 가게 팀장이 직원 교육을 한다. 나이가 사십 대쯤으로 보인다. 자기 딴에는 책임자랍시고 목에 핏대를 잔뜩 올린 채 힘주어 말한다.
“목례만 하지 말고 머리를 더 숙여.”
고개만 까딱거리지 말고 손님에게 더 숙여 인사하라는 뜻인데 목례가 아니라 묵례(黙禮)라고 해야 한다. 목례(目禮)는 눈인사를 말하는데 우린 ‘모가지’라는 목에 꽂혀 머리 까딱이는 인사를 목례로 잘못 알고 있다. 괜히 오지랖 넓게 그게 아니라고 지적질 해 봐야 꼰대 소리만 듣지 싶어 혼자 중얼거리다 나온다.
‘염치불구하고’라고 적었기에 ‘염치불고(不顧)’라고 말해주었더니 내 말을 못 믿어서 그런지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한다. 그리곤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내 말을 받아들인다. 염치를 차려야 함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을 말하기에 ‘불구’라는 말이 입에 붙어 그렇게 된다. 묘령의 할머니란 말이 맞을까? 묘령은 방년(芳年)이란 뜻이다. 즉 20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말하는데 묘령의 뜻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이란 뜻으로 잘못 해석하곤 한다.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좋다는 말을 소담스럽다고 하는데 이걸 소박하고 아담하다는 것으로 알고 쓴다. 수북하게 담긴 커다란 홍시를 보고 소담스럽다고 했더니 소담스럽다는 말이 맞지 않는다고 반문할 정도다. 소담이란 단어에서 ‘소’가 작을 소자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참고로 소담은 한자어가 아니다.
“삼오는 장례 다음 날부터 사흘째입니까?”
제일 많이 틀리는 게 이 ‘삼오’란 말이다. ‘삼우(三虞)’를 사람들은 삼오라고 항상 말한다. 우리 엄마처럼 부조를 부주라고 늘 말하듯이 입에 뱄다. 장사 당일 날 지내는 것을 초우, 그리고 재우, 삼우 이렇게 이야기한다. 장례 다음 날부터 하는 것이 아니다.
무식한 내가 이렇게 잘난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문단이란 곳에 들어오고부터이다. 다들 묘사네 형상화니 하면서 글을 쓰는데, 본배 없는 놈이라 글이 영 시원찮다. 그래서 책을 낸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지인분이 왜 책을 안 내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 겨우 한다는 말이 돈이 없어서 못 낸다고 한다. 사실이기도 하고. 명색이 이 나이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글을 잘 못 쓴다는 말을 하기엔 창피하지 않은가.
선배 문인들이 한 번씩 문자를 보내오는데 기가 막힌다. “청안욱필하소서.” 확실한 뜻은 잘 모르지만, 멋진 말이 아닌가. 책 낸 작가들께는 축하드린다는 인사말 대신 “상재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또한 용비어천가에서나 나옴직한 멋지고 찰진 단어 아닌가. 절대 내 머리에선 나올 수 없는 단어들이다. “건필하십시오”, “옥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유식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워낙 불학무식한 인간이라 잘 되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인데도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 사람들과 대충 편하게 살다가고 싶다. 머리 아픈 건 딱 싫어.
첫댓글 ㅎㅎㅎ 저도 머리아픈건 딱 싫어합니다.
그래서 긴 글을 잘 읽지 않는데 노쌤은 재밌게 쓰셨기에 예외로 읽습니다.
잠시 쉬었다 가니 두통이 나았습니다. 김삿갓처럼 또 다른 곳으로 훌쩍 가렵니다. 하하하하~~~~~~~~~
" 공부 시간에 무협지 읽고 있었거나 선데이 서울에 나오는 벗은 여배우 사진이나 탐독했으니 "ㅎㅎ
저는 전교생이 다 하교한 학교에 남아 통금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혼자 <사기>를 읽다가
숙직선생님께 들켰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입시공부하는 줄 아시고
얼마나 기특해 하고 감동하셨는지. 남산파출소 싸이카까지 불러 집에 데려다준 일이 있었답니다.
죄책감에 열심히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문자는 소통을 위한 도구인데 도구에 얽매여서 소통을 잊으면 안된다는 말씀인 듯. 그래서 소통만 제대로 된다면 언어표현에 구예되지 말고 쉽게 살자는 뜻인데, 아예 소통불통이니 속이 뒤집어 질 밖에~. 그래서 이민 가셨다더니 언제 오셨는가요? ^^
반성합니다. 선생님 글은 포복졸도 하게 만듭니다. 저도 포복절도인지 포복졸도인지~모르고 쓰는 말이 많습니다. 즐겁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