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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豊友會 원문보기 글쓴이: 시보네/54
풍기 아리랑 힐끗 바라 본 네비게이션 화면 오른 쪽 상단에 목적지까지 67.3킬로미터를 남겨 두었다는 숫자가 급하게 지워지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산세가 높아졌다. 이제 워밍업을 마친 6월의 소백산 자락은 본격적인 녹음의 절정을 향해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창공은 그들의 경주를 빛내주기 위해 구름 이불을 모조리 걷어 치웠다. 오지랖 넓은 인간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어준 도로는 순백의 햇살을 반사하며 직선으로 뻗어 있었지만 양 쪽에 도열 해 있는 산들은 끝없이 곡선으로 길을 내주며 여유로웠다. 한없이 찔러대도 완만한 비켜섬. 큰 산의 간격이 아리랑 노랫가락처럼 너울너울 평화롭다 내 고향 풍기가 가까워지고 있구나. 온전히 나 혼자 만의 고향 찾아 가는 길. 외롭기보다 긴장이 앞서고, 반가움보다 초조함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내 떠나갈 때나 돌아올 때나, 무심한 얼굴 그대로 말없이 지켜보는 산천. 그 지조 있는 모습에 주눅이 들어서 일까... 순간, 찾아가는 고향엔 날 반겨줄 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방 한 칸 없다는 현실이, 내 마음의 촉각을 가시처럼 찔렀다. 씩씩하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차피 영원한 머무름은 없지 않니? 그 걸 알기에 인간의 빈약한 추억을 품고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내어 주는 곳, 고향! 도시에서 바로 전 옮겨 간 주소지는 기억 할 수 없어도, 46년 전 내 태어난 주소는 절대 잊지 않는 본능적인 기억력의 출발점이자 젖줄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씩씩하자!....그랬다. 나는 쭈삣거리며 고개를 조심스레 내밀었는데.. 화들짝 대문을 열어젖히고 내 손을 잡아끌어준 친구들. 학창시절 그저 이름 석 자만 기억할 뿐, 몇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던 그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날 불러주었다. 너 어떻게 살았느냐 묻지 않고, 어떻게 살 거냐고 따지지 않고 그저 한 고향 사람으로 안아준 선배님들과 스승님들이 있으니, 그 빽을 밑천 삼아 이곳으로 왔다. 오늘은 가보고 싶은 곳이 많고 만나고 싶은 이가 많으니 배가 부른 날이리라. 스승님과 통화를 하고, 남겨진 시간이 넉넉하여 맨 먼저 찾아간 곳. 뒷창락! 30년 전 고무다라를 이고 소녀가 걸어가던 옛 길을 더듬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오거리를 지나 순흥 통로로 접어들어 왼쪽? 아니 오른쪽. 10년 전 모습과 또 달라진 동네 길에 헛갈리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철둑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던 과수원 울타리도 찾을 수 없고, 뒷창락과 풍기고등학교 갈림길에 자리하고 있었던 작은 구멍가게의 흔적도, 그 가게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무성한 느티나무도 치워져 버렸다. 어지간히 변했다한들 좁디좁은 고향동네에서 길을 잃다니.. 내 기억력의 한계가 참으로 얄팍하구나, 싶었다 비썩 마른 소녀가 빨래를 하러 찾아가던 30여 년 전 뒷창락 가는 길은 누군가가 싹 거둬 갔으나, 개울은 살아 있었다. 무너져 가던 다리는 반질반질하게 닦여져 낯선 이름표를 달고 있어 이곳이 그곳인지 방향감각이 헝클어졌지만 어쨌든 다리 밑으로 물줄기는 흐르고 있었다. 10년 전 새벽녘에 찾아 갔던 그 황량한 개울가랑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낯선 모양새가 의심되어 핸드폰으로 도움 요청을 하였더니 거기가 맞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차를 세워 놓고 개울가를 따라 걸어갔다. 그 많던 바윗돌을 도대체 어디로 싣고 가버렸는가. 없던 도로를 만들기 위해 좁혀진 뒷창락엔 돌멩이 대신 잡초가 무성하고, 멱 감던 맑은 물가는 손대는 이 없어 이끼가 검푸렀다. 가르릉 가르릉 숨 넘어 가던 개울가는 이제 혈관이 뚫려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나처럼 옛날을 그리워하는가 외로워 보였다. 빨래하는 아낙네의 수다와 자맥질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 부질없는 그리움! 너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반복하며 긴긴 세월을 또 견뎌야 하겠구나.... 돌아서서 한 번 더 바라 본 뒷창락에 어린 내가 빨래를 하며 싱긋 웃어준다. 나도 웃었다 잘 있어... 잘 가. 그리고 또 와... 뒷창락 개울가가 시시해진 오빠들이 멋진 다이빙을 뽐내기 위해 씨근덕거리며 찾아가던 곳 뿌적거리는 고무신에 땀들이 배이면 양 손에 거머쥐고 맨 발로 달음박질치던 흙길. 다리는 보수 공사 중이였고 흙길은 보수 공사가 필요 없는 아스팔트로 견고하게 닦여져 있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내 시선을 낚아채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바로 금선정 소나무였다. 몇 백 년을 견디고도 여전하고, 몇 백년을 더 견뎌도 변함없을 자태. 구부러졌으나 절대 쓰러지지 않을 줏대. 인간사가 가소롭기 그지없는 여유. 그 모든 것을 지 몸통 안에 쓸어 담고 금선정을 호령하고 있는 그 소나무가 나를 보고 아는체 해준다. 드디어 고향 한 자락을 만난 듯 가슴이 뛰었다. “나를 기억 하나요?” “저 아래쪽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소풍을 즐기던 울 어미를 아시나요?” “멋지게 공중 비행을 하며 당신 발밑으로 뛰어 내리던 울 오라비를 본 적 있지요?” 멋진 그의 몸통을 쓰다듬으며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알고말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난 알고 있지.” “당신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이곳에 있으면서,,다른 곳이 그립지 않았나요?” 다시 한 번 그의 멋진 몸매를 어루만지며 묻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결국엔 이곳으로 돌아 올 거라는 걸 아니까.. 난 그냥 이 곳을 지킨단다.” “변함없이 자리지켜주어 감사해요. 그런데 다리가 낡아 보수를 하는 건가요?” “.......새 다리를 세우기 위해 우리 친구 몇몇을 떠나보내야 했단다. 그들의 자리에 넓고 멋진 다리를 세워야 한다고..” “아~그랬군요....속이 상하진 않으신가요? 친구를 떠나게 한 사람들이 밉지 않나요?” 부르르 솔향기를 떨구며 소나무는 한참을 침묵했다. 나는 왠지 미안해졌고 그 마음 탓에 그의 몸을 살며시 안았다. “너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았니.. 우리들이 없으면 사람들이 살 수 없듯이 우리도 그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의미 없는 자리지킴이겠지..다만, 우리의 희생이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길 바랄 뿐이야.” 그의 속 깊은 대답을 듣고 나는 그 곳을 떠났다 내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자 그는 다시 한 번 부르르 솔향기를 털며 솔잎을 흔들어주었다. 6학년 몇 반으로 찾아가면 되느냐는 내 말을 못 알아 들으셨나. 그저 6학년 교실로 오면 된다는 스승의 말을 내가 못 알아들었는가. 이제, 북부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이면 충분할 만큼 아이들이 줄어 있었는데, 그걸 또 내가 몰랐다. 내6학년 그때 그 모습과 별 반 달라진 게 없는 스승의 얼굴에 30년 세월은 길을 잃었나보다. 스승의 얼굴과 농부의 얼굴이 함께 묻어 있는 모습에 헤~하고 풀어지는 마음. 어린 내 후배들이 써 놓은 시를 읽으며 동행을 약속한 친구를 기다렸다. 덜커덕 거리는 스승의 오래 된 차가 왜 그리 푸근하고 다정하던지.. 아마 도시에서 흔한 외제차 따위를 몰고 다닌다면 내 또 다시 스승을 찾아오겠는가.. 오래 머물러 주신 것이 흡사 날 기다려 주신 것 같은 착각에 그저 히~하고 좋았다. 한참을 달려 날 풀어 놓은 곳! 순흥 배점 호수라던가. 햇살과 바람의 애무를 즐기듯 느긋하게 일렁이는 호수를 끼고 팔자 좋게 앉아 있는 찻집이 참으로 태평스러웠다. 누구는 이 좋은 풍경을 보겠다고 다리품 팔고 날품 팔아 찾아오는데 이 좋은 호수를 앞마당처럼 끼고 살아 그런가 주인의 얼굴도 찻집처럼 태연자적하다. 옛 기억에 취하고, 오디주 향긋한 주향에 취하고, 스승과 친구의 섬세한 헤아림에 취하는지 심장 한 켠에 따뜻한 물소리가 흐르더니 그만 젖어버린 내 마음..행복해지기 시작했다. 햇살 한 켠에 찻집 한 켠이 도드라지고, 그늘 한 켠에 찻집 또 다른 한 켠이 가라앉은 창가에서 남아 있는 내 인생을 기꺼이 동행해 줄 사람들과 저녁 어스름을 즐기다니..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 다른 스승님과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찻집 돌담을 내려오는데 보랏빛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 온다. “이게 무슨 꽃이죠? 선생님” “붓꽃 아이가~” 붓꽃. 붓꽃이라...혹시 내 고향이기에 볼 수 있는 꽃이라면 무리한 억측일까? 아니다.. 내 사는 도시의 어느 꽃집에서도 붓꽃을 팔거나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팽팽한 잎사귀에 새초롬한 얼굴로 호수를 바라보며 서 있는 보랏빛 꽃 한 송이! 그마저도 도도하기가 호수와 찻집을 닮아 있는 듯 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튿날! 고향 찾아 온 또 다른 친구와 고향을 지키는 친구, 이렇게 셋이 늦은 아침을 먹고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좋은 곳을 안다며 길안내를 하는 친구가 두산동 쪽으로 핸들을 꺽더니 희방사 쪽을 향해 차를 몬다. 정다운 흙 내음에 코를 킁킁거리는데 갑자기 스쳐가는 작은 푯말. 죽령옛길! 영남의 3대 관문 중에 하나인 그 죽령 옛길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하루를 꼬박 걸려서야 고개를 넘었다던 그 길이 단 2분 만에 통과하는 터널과 고속도로에 지 몫을 내주고 초록 깊은 꿈속에 빠져 옛날의 수선스런 나그네들을 만나고 있겠지. 소백산! 참으로 맘도 좋으시다. 줄기줄기 마다 베풀음도 크시다. 자락들은 모두 인간에게 내어 주고 터 닦아 살라더니, 저 살기 편 하려고 뚫고, 찌르고, 깎아대도 노여움이 없으시네. 길은, 늙은 사슴 벗어 놓고 간 뿔인가... 소백산 시인 김순한 님의 희방사 가는 길.. 그 시 안에 사슴 뿔 길을 만나려면 이제 죽령 옛길을 밟아야 하리라. 한참을 오르던 산중턱 길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은 차가 갑자기 좁은 산길로 접어든다. 아슬아슬 현기증 나는 지게길. 우리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듯 우거진 잡초들이 덤벼든다. 이곳에 뭐가 있길래, 수철 대미골이라 불리는 중턱에 도대체 뭐가 살길래, 재촉하는 내 질문에 고향 지키는 내 친구 가보면 알아. 미소만 짓는다. 옷 벗은 장승들 드문드문 초소를 지키듯 세워져 있고 사람이 쌓아놓은 키 작은 돌탑이 보이며 목적지에 닿았음을 눈치 챈 순간, 긴장 되어 조여진 신경을 내려놓는 순간, 아니 차를 세우고 발을 내딛어 정면을 바라본 순간, 아! 하고 탄성이 터지는 그 순간!! 내 앞에 하늘에서 금방 떨어진 듯한 천상의 낙원 한 귀퉁이가 펼쳐져 있었다. 소백산 테두리를 지키는 위용 넘치는 수문장 원시림을 자기 대문처럼 둘러치고, 천상에서 채 걸러지지 못한 찬란한 햇살, 초록 마당에 죄 뿌려 놓고, 흙과 나무를 어울려 투박한 집 대충 빚어 올려놓고, 천지에 온갖 낙엽송, 아름드리 소나무를 정원수로 삼아 넓은 창문으로 그들의 광합성 작용을 사계절 훔쳐보려는 듯, 사람들과 단절된 지상의 낙원이 거기 있었다. 나는 단번에 내 사는 작은 아파트를 버리고 이곳으로 이사 오고 싶어졌다. 희방사 가는 첫 계곡 마을 대미골. 사계절 철쭉과 초원과 단풍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을 꾸미다가 후다닥 쏟아지는 눈발에 찬란한 눈꽃마을 이루어 사람들 가슴을 시리게 한다고... 이런 장관이 소백산 품안에나 있어야지, 어떤 간 큰이가 그 품속으로 기어 들어가 배짱 좋게 사람 냄새를 풍기며 살고 있단 말인가! 긴 수염을 휘날리며 문을 열고 나타난 집주인. 날렵한 도시 인근의 별장 주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마치 깊은 산중을 사슴처럼 쏘다니는 심마니 얼굴, 약초를 일구는 산골 농부의 얼굴이며 도를 닦는 도인의 모양새였다 내치지도 화들짝 반기지도 않으며 구면인 내 친구와 그의 동행인들을 안으로 불러들인다. 따뜻한 차 한잔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80년대 초에 이 곳으로 들어와 구순이 다 된 어머니를 모시고 그저 30년 째 살고 있다는 주인은 놀랍게도 연고 하나 없는 외지인이였다. 심심하고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상상. 그는 이미 소백산과 한 몸을 이룬, 말 그대로 자연인이다. 도솔봉 맨얼굴을 언제나 들여다 볼 수 있는 그 넓은 앞마당에서 수십 년 자란 뽕나무를 만나 인사하고 오디를 따서 베어 물으니.... ‘뭔 눈알이 오디 같노?’ 라고 말했던 풋사랑 그 소년이 생각난다 농부가 되었다던가..그도 이곳에서 고향을 지킨다던데.. 고향에 오니 온통 따뜻한 추억. 감사했다. 언제든지 아무 때나 와도 좋다는 조건 없는 약속을 선물로 받고 돌아서서 낙원의 한조각이라도 더 새겨 두기 위해 오래도록 눈도장을 찍었다. 더 보고 싶은 곳을 말하라는 친구의 배려를 다음으로 기약하고 풍기 어귀에 있는 식당을 찾아 백숙을 주문한 후 계곡의 끝자락을 간질여주는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 얼굴을 들여다본다. 왜 그들의 얼굴은 이렇게 편안한지. 수십 년 만에 이제 겨우 한두 번 만남이거늘 어찌 그들의 등을 기대고 잠들어도 욕이 되지 않을 거 같은지.. 타지에서 사람을 만나 이처럼 허물없으려면 서로가 들여야 할 공이 얼마만큼이든가..그 걸 깨닫고 돌아 본 내 고향, 내 친구들..... 소중한 보물을 얻은 나는 부자구나, 했다. 그 날 저녁, 총 7개 반 중에 단 한 분만을 제외한 여섯 분의 스승님들을 모시고 축제가 벌어졌다. 열세 살 제자들이 마흔을 훌쩍 넘겨 지천명을 바라보는 삶의 길 위에서 옛날을 돌아보며 잠시 쉬어 가는 잔치. 스승들의 손을 부여잡고, 떨어져 사는 친구들을 얼싸안고 살아 있음을 확인 하는 마당극. 모두가 주인이자, 손님인 인생사에서 우리들은 아름다운 사람들... 반갑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불빛과 노래 가락에 둘러싸인 회관을 빠져 나오면서, 목적지 ‘집으로’를 입력한 네비게이션을 따라 천천히 풍기를 벗어난다. 급히 몰지 말 것! 어둠에 묻혀가는 풍기가 남원다리 건너편에서 잠을 청하고 있으니 조용할 것. 낮에 본 독산의 여린 대나무 숲도 흔들림을 멈췄을까? 금선정 소나무님은 떠나보낸 친구를 그리워하며 달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실까. 교복을 입고 쏟아져 나오던 금계중학교 내 어린 후배들. 학교가 다른 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저 내 살았던 곳에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여쁜 고향 후배이지.. 그들도 모두 곤하게 잠들었겠지. 도착 직전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달랬던 죽령 터널을 지나자 하늘가 별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여전히 길은 직선으로 뚫려있지만 침묵하며 도열해 있는 산세는 여인네 누운 허리선처럼 완만하다. “저 이제 돌아가요 소백산님..” “당신은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는데, 전 아마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주지 못할 거 같네요” 떠들지 말고 어여 가라는 듯 아무 말씀이 없다 소백산이 나를 보고 참으면서 지내랜다 조이는 매듭일수록 부드럽게 풀어내고 평상시 시간을 아껴 안목을 넓혀 가래 소백산이 나를 보고 ............ ......... ...... ... .. . 또 한번 김순한 님의 시를 떠 올리며 가속 페달에 힘을 주는데 어디 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울림! “잘 가거래이, 또 온나~” 하하! 우리 고향 소백산님도 풍기 사투리를 쓰시네~ 굽이굽이 풀어 놓은 아리랑 고개마다 정다운 우리네 이웃들이 터를 잡고 그 고개를 넘어 넘어 우리들이 떠나 온 곳. 도시의 외곽에서 한번 씩 가빠진 숨고르기를 할 때마다 달려와 안기고 싶은 그 곳. 짧은 방문이였지만 왔다 가니 내가 행복하다. 어느 산꼭대기엔가 넘다가 힘이 드셨나. 비스듬히 누워 내 가는 길 비쳐주던 달님이 후다닥 튀어나와 이렇게 말하신다. 반겨 줄이 없다고 외면하지 말고, 몸 누일 데 없다고 비껴가지 말아라. 너희네 고향, 너희들이 지켜라~ 어째, 잔뜩 벼르다가 하는 말씀 같았다. |
첫댓글 추억 어린 곳 을 찾아보는것도 좋은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