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고맙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동료, 선후배, 친구, 사제지간, 이웃, 가족”등의 만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이렇듯 다양한 만남 가운데 목회자와 교우로써의 만남도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개 교회의 목회자로써 연수가 더해지다 보니, 부임 당시 뵈었던 교우분이나 주민분들 중 이미 하늘로 이주하신 분들이 제법 됩니다.
그러한 분들 가운데에는 특별히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분들이 계십니다.
벚꽃이 떨어지고 들꽃들이 만개해지던 5월 중순의 어느 날! 지난해 이맘때 부르심을 받았던 할머니 권사님의 기일이 되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을 찾아보니 5월 말일이었습니다.
따님 권사님께 연락을 드리며 1주기 추모식은 모친께서 반평생을 다니신 저희 교회가 주관했으면 하는데,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시라 했습니다.
그런데 월말이 다 되어감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기에 내심 출석하시는 교회에서 인도하시겠거니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지난 주초 따님으로부터 귀천하신 당일 저녁때 예배를 인도해 주길 요청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권사님이 제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소한 체구에 어쩌다 댁에 심방을 가면 언제나 일을 손에 놓지 않고 무엇이라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우리네 전형적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인근 마을에서 시집을 오신, 그것도 한 시대 앞의 여느 어머니들이 그러셨듯이 신랑의 얼굴도 모른 채 가난한 빈농으로 떠밀리다 시피 출가하신 시린 아픔을 가슴에 담고서 사셨던 어른이었습니다.
그것도 유별난 기억력과 총기가 좋으셨던 모질고도 엄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수십년을 사셨다니 참으로 지난하고도 고초당초 같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십 여년 전 제가 부임 당시에는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셨지만, 이미 좋은 시절을 다 보내신 할머니의 모습이셨습니다.
봄에는 벚꽃 구경과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2-3년은 동행하시더니 더 이상 못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라자 갈수록 멀미가 심해져서 목사님과 교우들께 피해가 된다며 그 이후로는 함께 하지를 못하셨습니다.
추수를 마치고 곳간에 쌀이 있으면 한 포대 갖다 드시라며 살갑도록 챙겨주시던 인정 많으셨던 권사님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 이겨내시질 못하셨습니다.
따님의 돌봄을 받으며 그나마 자택에서 잘 견디시던 권사님은 어느 날 아침, 따님이 갑자기 연락을 하였기에 급히 갔더니 더 이상 가정에서 모시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가신 뒤 산천이 푸르른 오월의 마지막 날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1주기 추모 예배를 자택에서 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자부되시는 분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전달하시는 겁니다.
이미 감사헌금을 드렸기에, 뭐냐고 반문하자 자부의 한마디에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둘째 아드님의 장남이 취업을 한 후 첫 월급을 받았는데, 그중 일부를 할머니께서 다니신 교회에 헌금하길 원했다는 겁니다.
식사를 대접받고 복귀하여 봉투를 자세히 살폈더니, 겉 면에“할머니 고맙습니다.”라며 손주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십대 중반에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월급을 받은 후 할머니와 할머니께서 반평생 다니신 교회를 생각했다는 그 마음이 너무 너무 이쁘고 고마웠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돌봄을 받았던 추억이 할머니께서 떠나신 뒤 새록새록 생각이 났겠지요.
그러고 보니 지난해 권사님의 장례를 마친 후 외손자가 보내온 인사가 생각납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희 할머니 장례 예배로 너무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너무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해 주셔서 할머니도 행복하셨을 것 같아요.“
흐르는 세월을 이길 수 없고, 또 이기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만큼 추해지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시기의 차이일 뿐이지 한번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응해야 함은 이땅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필연입니다.
할머니 권사님 일주년을 추억하며, 누군가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는 인생살이 이길 새삼 생각해 보게 되는 금요일 저녁입니다.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3-14)>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