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광주에 어울리는 광주시립미술관 전경
광주를 흔히 예향이라 부른다. 예부터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이 꽃피고 예술을 향유하며 살던 고장이다. 예향 광주를 만끽하는 아트 트립을 위해 광주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호남고속도로 마지막 관문인 광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불과 10여 분, 어느새 광주시립미술관 앞 주차장이다. 톨게이트에서 가까워 광주 여행의 첫 코스로 삼기 좋고, 광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에 들러도 동선이 맞는다. 첫 목적지라면 광주 아트 트립을 근사하게 시작하고, 마지막이라면 강렬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셈이니 어느 쪽이나 상관없다.
광주시립미술관은 1년 내내 다양한 기획전과 상설전을 연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서울을 제외한 지자체가 최초로 개관한 공립 미술관이다. 미술관과 전시장이 어떻게 다른지 잘 구분하지도 못하던 1992년의 일이다. 광주문화예술회관의 전시실을 단순히 대관용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획·전시·교육할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달라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완성한 미술관이다. 협소한 문화예술회관에서 벗어나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문을 연 때가 2007년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중정에 설치되어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 ‘빨간 구두’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거대한 ‘빨간 구두’와 순백의 항아리에 나비 등 다양한 영상을 입힌 ‘변용된 달항아리’가 여행객을 맞이한다. 아트 트립의 첫 작품으로 더없이 기분 좋은 출발이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면 1·2전시실에서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 2017>이 열린다. 하정웅 선생은 광주시립미술관에 작품 2500여 점을 기증한 주인공이다. 그가 기증한 작품 가운데 해마다 주제를 달리해 <빛>이라는 전시를 연다(<빛 2017>은 오는 2월 25일까지). 3·4전시실에서는 지역 여성 작가 3인을 선정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삶과 예술 그리고 여성>전이 2월 10일까지 이어진다.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 2017>에 선보인 김지수의 ‘공중정원’
광주시립미술관은 광주는 물론 남도 주요 작가의 작품을 소장·연구하며, 지역 출신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도 꾸준히 펼친다. 남도 출신 화가는 허백련, 허건, 손재형, 허림, 오지호, 양수아, 강용운, 배동신, 천경자, 김환기 등이 있으며, 소장품 전시를 통해 이들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인다.
미술을 놀이처럼 즐기는 어린이미술관 내부 모습
아이와 함께라면 1층 서쪽에 위치한 어린이미술관을 놓치지 말자. 알록달록 경쾌한 색채로 꾸민 자동차, 우주선 모양 미끄럼틀, 과학과 예술이 접목된 롤링 볼,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미술 체험실 등으로 꾸며 놀이하듯 예술을 접하는 공간이다. 어린이미술관에서 밖으로 나가면 작가들이 직접 설계하고 만든 놀이기구가 있는 <와글와글어린이놀이터>다. 전시인 동시에 실제 놀이터라는 점이 흥미롭다.
운림동미술관거리 초입에 자리한 국윤미술관 전시실
광주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다. 증심사 아래 위치한 운림동은 미술관이 서너 개 모여 운림동미술관거리라고 불린다. 미술관거리가 시작되는 국윤미술관 앞에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까지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가 보인다. 국윤미술관은 국중효 서양화가와 윤영월 조각가의 성을 따서 만든 곳이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상주하는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해준다.[왼쪽/오른쪽]하얀 건물과 빨간 간판이 인상적인 우제길미술관 / 무등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무등현대미술관
새하얀 건물이 돋보이는 우제길미술관은 증축 설계를 승효상 건축가가 맡았다. 1층은 카페로 사용하고, 지하와 2층에 전시실, 교육실, 회의 공간이 있다. 전시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무등산 풍광이 근사하다. 무등현대미술관은 증심사 가는 버스 종점 인근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은 건물에서 현대미술관이라는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정송규 관장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상설전과 현대미술 관련 기획전이 다채롭게 열린다.
눈 덮인 증심사 대웅전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증심사는 860년(헌안왕 4)에 창건된 고찰이다. 주말이면 무등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절 앞을 숱하게 지나간다. 무등산 정상 부근은 겨우내 새하얀 눈으로 덮여 아이젠 없이 산행하기 힘들지만, 증심사까지 오가는 데는 운동화로 충분하다. 절 아래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이 말년을 보낸 집과 그의 작품을 전시한 의재미술관(2월 15일까지 휴관), 차밭 등 허백련 관련 흔적이 많다.
[왼쪽/오른쪽]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양림동 펭귄마을 /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위쪽에 있는 선교사묘역
계절을 불문하고 여행객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이다. 정크아트로 독특한 분위기가 나는 펭귄마을은 어르신들 걷는 모양이 펭귄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00년이 넘는 기독교 유적과 고택이 어우러지고, 근사한 카페와 맛집, 빵집, 공방이 있다. 양림동관광안내소 옆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보자. 펭귄마을, 양림빵집, 광주양림교회, 오웬기념각, 최승효가옥, 이장우가옥, 우일선 선교사 사택, 선교사묘역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서렸다.
사직공원 정상에 마련된 전망타워에 오르면 광주 시내는 물론 무등산까지 보인다.
선교사묘역에서 호남신학대를 거쳐 언덕을 올라가면 사직공원에 이른다. 사직공원전망타워는 팔각정을 허물고 2015년에 세웠다. 높이 13.7m로 전망대에 오르면 양림동과 도심은 물론, 광주를 둘러싼 무등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밤 10시까지 개방하니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동명동카페거리에서 만난 새우 요리
요즘 광주의 핫 플레이스는 동명동카페거리다.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고, SNS에 자주 등장하면서 젊은 커플 사이에 특히 인기다. 원래 동명동은 학원가다. 지금도 건물 1층은 카페나 식당이 대부분이지만, 2~3층은 학원 간판이 수두룩하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식당, 알록달록한 물건이 진열된 가게, 모던한 게스트하우스 등 걸음을 붙잡는 곳이 많다.
저녁에 더 운치 있는 1913송정역시장
1913송정역시장은 광주 아트 트립의 마침표를 찍기에 적당하다. 푸드 트럭이나 매대가 복잡하게 얽힌 야시장과 달리 참신하게 디자인한 상점, 알전구를 지그재그로 매단 조명, 군더더기 없는 간판이 마치 몬드리안의 구상화를 보듯 깔끔하다. ‘1913송정역시장’ 글자를 공중에 매달아 설치한 것도 색다르다. 종전 시장의 정육점, 채소전, 쌀집, 어물전 등과 함께 2016년 재개장하면서 청년 상인이 차린 카페, 식당, 빵집, 꽃집 같은 세련된 가게가 모여 개성 있는 시장이 되었다. 1913송정역시장은 저녁에 더 운치 있다.
<당일 여행 코스>
광주시립미술관→운림동미술관거리→양림동역사문화마을→1913송정역시장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광주시립미술관→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 증심사→운림동미술관거리→동명동카페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