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대(花代)
글 김광한
화대(花代)란 말 그대로 꽃값을 말하지요. 일제시대 때기생을 배출하던 권번(券番) 이란 곳에서 어린 기생을 데리고 자려면 그에 걸맞는 머리를 얹어주는 값을 지불해야 했는데 많게는 집한채 값, 적게는 쌀가마께나 축내야 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래서 기생은 늙어서도 자신에게 머리 얹어준 남자를 잊지 못한다고 해요.사쿠란이란 일본 유곽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도 이런 대목이 나오지요. 각설(却說)하고,
잡지사란 곳이 원래부터 그 자리가 항상 불안해서 온전한 직장으리고 할 수가 없어요. 저역시 수십군데의 잡지사를 옮겨 다니면서 생계를 간신히 유지 했는데 80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서면서 우리나라의 잡지사를 거의 다 없애버렸어요.그런데 배경이 좋았던지 제가 잘 아는 사장이 판권을 내 역사소설같은 것을 싣는 잡지를 창간을 했는데 거기서 운좋게 제가 편집부장을 맡았어요.월급도 당시로서는 꽤 많았어요. 90만원이었으니까, 요즘 시세로 보면 300만원 정도 될 거에요. 그런데 당시 제 친구 가운데 오래동안 실업자가 되어서 부인이 풀빵 장수로 겨우 풀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이 공부는 시켜야겠는데 풀빵 장수로서는 어림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자리를 하나 마련했어요.
험란한 세상 함께 살자는 취지였지요.사장에게 그 친구의 장점을 이야기 하고 월급도 저보다 십만원정도 더받게 하고 책상도 저보다 더 크고 직책도 편집 실장이라고 저 보다 위의 직책을 주었지요. 처음에는 이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평생 은혜를 잊지 않는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의리 변치 말자고 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자 이 친구가 맘이 변했는지 어니면 작은 잡지사에 편집장이 두명이면 누군가는 한명 정리 할것이라고 앞선 생각을 했던지 저를 뒤에서 있지도 않는 험담을 해요.김부장이 얼굴이 미남자라서 첩을 여기 저기 두고 다닌다는 등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어요.
이런 말이 제 귀에 직원들을 통해 들어와요. 잡지는 1백페에지 내외의 내용이었는데 친구는 내부 일을 하고 저는 바깥 일, 즉 취재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시간이 지나자 사장이 나를 보는 눈이 이상해졌어요.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아주 나쁘게 한 거에요. 그러면 안되는데, 이 친구는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녁늦게 들어간답시고 제게 먼저 퇴근하라면서 토큰(버스표)까지 주어요.저녁에 사무실에 남아서 그 친구는 아는 사람을 불러들여서 술파티를 하고 퇴근한 사장집에 전화를 걸어서
"사장님! 일이 많아서 저희들은 야근을 하고 있습니다. 김부장은 바쁘다면서 먼저 퇴근했어요"
사장이 신통해서
"그래? 김부장 그거 몹쓸 사람이로군"
"원래 그래요 그 친구가 좀..."
하면서 저를 매번 씹는 거에요.
적반하장, 은혜도 모르는 배신자라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제 불찰이었지요. 이 친구는 사무실 건너 충무로 집이라는 방석집에 가서 한판 벌리고 색시를 데리고 위의 여관에 들어가 잠을 자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그러다 보니 출근을 제일먼저 하는거지요.
어느날 아침 사장실로 어떤 아줌마가 찾아와서 사장에게
"여기 이런 사람 있지요?"
하면서 인상착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 친구를 가리키는 거에요"
사징이 왜 그러시냐고 묻자
그 아줌마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아니 술값은 외상을 한다치고 화대값은 줘야지요. 애들 화대값 떼 먹는 사람이 사람이에요?"
사장이 이 말을 듣자 창피하기도 하고 속았다는 생각에 출근 하는 그 친구를 불러
"자네 여기 왜 나왔나. 짐 싸지"
하면서 화를 내자 그 친구 내게 구원의 눈을 보내요. 웬만하면 거들어주겠는데 너무 밉살머리스러워서
"에이, 화대값은 줘야지. 그 아가씨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데 그걸 공짜로.."
자비를 베풀지 못했지요.
개인 회사니까 맘에 안들면 쫓아 내는 거지요.
그래서 목이 잘렸어요.
의인(義人)을 씹는 자는 서서히 먼저 씹히는 거에요
한달후 그 친구가 사는 난곡동, 서울의 가장 외진곳, 그의 가난에 찌든 전세방을 가보니 너무 안되어서 라면 서너박스를 사줬지요.그 친구는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온 거에요.그후, 90년 초에 그 친구는 교툥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50도 안되어서... 인생이란 긴 것같지만 짧고 짧은 것같지만 긴거에요.그 인생을 잘 관리하는 것이 잘 사는 거에요.자신에게 돌아온 평화를 잘 간수해야지그렇지 못할 경우 그 평화는 원래의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