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깜짝 방문, 기다리고 있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포옹을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이 키예프에 머문 시간은 5시간 남짓. 뒤늦게 나온 발표에 따르면 그는 현지 시간으로 열차를 타고 이날 아침 8시에 키예프에 도착했으며, 오후 1시쯤 폴란드로 떠났다.
바이든-젤렌스키 두 정상이 언론의 공개석상에 나선 것은 오전 10시 50분께. 키예프의 대통령궁(마린스키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이날 "(평소와 달리) 기자회견이 우크라이나에서는 생중계되지 않았고, 서방(미국) 언론만 사진을 내보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기자들의 기자회견 참석, 혹은 보도가 원천 배제된 듯한 늬앙스(어조)다.
바이든 미 대통령, 키예프 도착/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기자회견하는 바이든-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현지에서는 독일 일간지 '빌트'의 율리안 로프케(Julian Röpke) 특파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을 처음 '속보'로 타전했고, 그 순간 벨라루스에서 발사체(전투기?)의 이륙을 이유로 수도와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 경보가 발령됐다. 경보가 울린 직후(1분 뒤), 경호원들로 둘러싸인 바이든 대통령 일행이 성 미카엘 대성당(러시아식 표현으로는 미하일로프스키 성당 Михайловский собор, 원래 명칭은 Михайловский Златоверхий монастырь 미하일 황금돔 수도원)을 떠났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의 곁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걷고 있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대통령실)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이 공식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 모습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논란이 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시간에 울린 공습 경보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키예프의 공습 경보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스트라나.ua는 "바이든 대통령이 성 미카엘 대성당을 떠나기 직전, 키예프에 공습 사이렌을 울린 것에 대해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 백악관이 바이든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을 러시아 측에 미리 통보했다는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잘 짜인 각본 냄새가 난다는 수근거림이다. 더욱이 이날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나 전략 폭격기 (이륙)에 대한 공식 정보가 나오지도 않았다.
스트라나.ua는 "방공 정찰 그룹이 비공식적으로 킨잘 극초음속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폭격기가 벨로루시에서 이륙했다고 밝혔지만, 이 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기간에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에서도 평소와는 달리 폭격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사전에 러시아와 '공격 중단'(일시적인 휴전)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이뤄진 게 분명하다고 이 매체가 지적한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이 마지막 일정으로 낮 12시께 현지의 미국대사관을 방문했고, 공습 경보는 대사관 일정을 마친 뒤 오후 1시 7분께 해제됐다. 오후 2시에는 이미 키예프를 떠나 폴란드로 향하고 있었다.
키예프 시내를 걸어
성 미카엘 성당에 도착한 바이든-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서방의) 일부 외신도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키예프 거리를 걷는 장면을 오래 준비된 정치적 연출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장면이 미국 주요 TV에 방영된 20일은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이었다. 또 이날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2014년 '유로마이단'(친서방 반정부 시위) 희생자를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기념일(하늘나라로 간 수백명 영웅들의 날. День Героев Небесной Сотни)이기도 했다. 9년전 그날, 약 50여명의 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키예프에서 진압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워싱턴에서는 연막작전까지 펼쳐졌지만, 일각에서는 그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며칠 전부터 푸틴 대통령의 의회 국정 연설을 뒤엎을 만한 '빅 이벤트'가 개전 1주년에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그의 협의 파트너인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8일 바이든 대통령의 (바르샤바) 연설이 (푸틴 대통령보다) 더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욱 가까이는 그가 키예프에 도착하기 직전인 19일 우크라이나의 볼린 지역에서 키예프-바르샤바 노선의 열차가 탈선했다고 지역 검찰청이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탑승한 특별 열차외에 다른 열차는 (사고를 이유로) 아예 운행을 중단했다는 발표로 들릴 만하다.
이같은 몇가지 징후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짜 키예프에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짐작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국 대통령의 신변 안전 등을 감안할 때 어쩌면 상상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은 "미국 대통령이 전장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쟁 중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방문하긴 했으나, 현지에는 미군이 주변 지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안전을 미군이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키예프와 우크라이나에는 그의 안전을 책임질 미군이 아예 없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전 보좌관은 나중에 "미군이 핵심 기간시설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중인 나라의 수도를, 대통령이 방문한 적은 없다"고 확인했다. 어쩌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스트라나.ua는 "백악관이 사전에 러시아로부터 대통령의 안전 문제에 동의를 얻어야만 했던 게 분명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거친 발언에도 불구하고, 핵심 부서들의 접촉 라인은 그대로 살아있다"고도 했다.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15년 전인 2008년 4월 소위 '오렌지 혁명'으로 집권한 친서방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부시 전 대통령(아들)의 발걸음 이후 처음이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우크라이나를 6번 방문했으며, 마지막 키예프 방문은 퇴임 며칠 전인 2017년 1월이었다.
키예프 도심거리를 꽉 메운 자동차 행렬/사진출처:스트라나.ua
도심 일부는 통행이 차단됐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이날 아침 키예프 도심의 거리가 일부 차단되면서 시작됐다.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이라고 하지만, 도심 거리는 너무나 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렸다. 인터넷에는 대규모 외국 대표단의 도착에 대한 소문이 올라왔고,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도로 사진들도 속속 나타났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날 도착한 이스라엘 의회 대표단과 IMF 주요인사의 방문 때문에 교통 정체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쉽게 믿기는 어려웠다. 키예프 도심 전체가 거의 차단된 걸 보면, 그 정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맞춰 안드레이 멜니크 우크라이나 외무차관이 "핵심 파트너의 키예프 도착과 함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쿨레바 외무장관이 이날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외무장관 회담 참석을 취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또 우크라이나 접경 폴란드 상공에 E-3 센트리 조기경보기와 RC-135W 리벳조인트 정찰기 등 미 정찰기 3대가 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을 동행한 미 백악관 출입 기자들은 키예프 방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밖으로 알릴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비밀 준수(오프 더 레코드?)를 맹세하고, 휴대폰도 빼앗긴 상태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움직이는 기자들은 대통령의 일정을 본사에 보고하거나 송고할 수가 없었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바이든 대통령 일행을 태운 전용기는 워싱턴 시각으로 19일(일) 새벽 4시15분께 워싱턴 인근의 앤드루 공근기지를 이륙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무렵에 미 백악관은 대통령이 20일(월) 밤 워싱턴을 출발해 21일 낮에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가짜 일정표를 배포하는 등 철저하게 연막을 쳤다. 그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에 착륙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