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질서
사거리의 신호등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혼돈의 무질서로 갈팡질팡할 것이다. 신호등은 질서를 세우는 지표이다. 푸른 신호등은 이동을, 붉은 신호등은 정지를 나타내며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삶의 길에 이정표가 없으면 길을 잃고 헤매며 방황하게 된다. 자연의 현상도 계절에 따라 다르며 계절의 순환에 적응하며 산다.
남천 냇가를 따라 노란 꽃이 줄지어 피어 있어 마치 제주도의 유채꽃을 연상케 한다. 냇물에는 철새들이 찾아와 여유롭게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아내고 있다. 그 가녘 한편에는 파크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다. 자연의 피조물들이 어우러져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이 살아간다.
이런 상호 관계의 단절이나 파괴가 무질서의 혼돈으로 이어져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남북으로 갈라진 모습이 그러하다. 긴장과 초조, 불안에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더럽혀 마음 졸이며 버티고 있다. 냉전의 기운이 서려 있으며 전방위적 위기감이 감돌아 일촉즉발의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신의 세상 창조가 혼돈의 무질서한 세계를 갈라놓아 질서를 세웠다. 하늘과 땅을 가르시고 하늘에는 빛 물체를, 땅에는 생물이, 땅 아래에는 물을 가두어 갈라놓았다. 하늘 창공에 나는 새, 땅 위에 사는 생물들, 땅 아래에 사는 물고기가 조화를 이루어 질서 있게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혼돈의 세계를 질서의 세계로 갈라놓음이 창조이다.
신의 창조 질서는 인간 세계에도 들어내 보이셨다. 경전에 의하면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다윗에서 바빌론 유배까지, 유배에서 예수까지가 각각 14대로 구분하고 있다. 또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산 햇수(175), 이사악(180), 야곱(147), 요셉(110)에도 5x5x7, 6x6x5, 7x7x3, 5x5+6x6+7x7의 수에도 질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그들의 삶과 신과의 관계는 상호 계약으로 맺어졌다. 계약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따른다. 우리의 삶에서도 계약을 어기거나 파괴하면 과태료나 위자료가 따른다. 이스라엘 그들이 지키지 않을 때는 벌이 주어졌다. 그들의 구원 역사를 살펴보면 관계 단절(죄)-회개-용서-구원(관계 회복)으로 이끌었다.
법규는 자유를 규제하기보다 질서 유지로 인간 생활에 이로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현대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함에 따라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면 법규도 거기에 맞춰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범에 얽매여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
삶의 한 방편에서 신앙생활은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데 왜 기쁘지 않은가? 교회법의 올무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행위는 양심(성령)에 호소하여 이끄는 데로 따르면 되지 않을까.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 아닌지는 법과 계명에 비추어 질서에 어긋남을 인정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면 죄로 볼 수 없다. 자연의 질서는 물이 흐르듯 순조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