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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선여갈(見善如渴)
착한 일을 보기를 마치 목마른 것 같이 하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적극 권장하는 말이다.
見 : 볼 견(見/0)
善 : 착할 선(口/9)
如 : 같을 여(女/3)
渴 : 목마를 갈(氵/9)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도와 건국 초기의 국정 설계에 참여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은 "선한 일을 보면 목마른 것같이 하고, 선한 일이면 모름지기 탐을 내라(見善如渴 善事須貪)"고 권면했다.
그렇다. 선(善)이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열매는 세월과 함께 자란다. 보답을 바라고 선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작은 선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뿌린 자가 그 열매를 거두어 들이는 게 자연섭리요 우주법칙인 것이다.
물론 선한 일은 큰 일만 한다고 빛이 나는 것은 아니다. 한(漢)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임종을 맞아 후계에게 내린 조칙은 시사적이다. "선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선 안되며, 악이 작다고 쉽게 해선 안된다(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무엇을 보고(見) 어떻게 하라는 성어는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유명한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 최영(崔瑩) 장군의 좌우명 견금여석(見金如石) 등 모두 좋은 말이다.
서리 내린 것을 보고 얼음 얼 것을 아는 견상지빙(見霜知冰)은 사소한 것을 보고 변화를 감지한다는 견미지저(見微知著), 견소왈명(見小曰明)과 뜻이 통한다.
여기 좋은 의미의 성어 하나 더 추가하면 선한 일을 앞에 두고선(見善) 목마른 것같이 하라(如渴)는 이 말을 들 수 있다. 좋은 일을 적극 권장하는 말이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실려 전하는 말이다.
가유십도(家有十盜)에서 나왔던 대로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낸 문신 추적(秋適)이 아동들의 학습을 위해 중국 고전에 나온 선현들의 말을 모두 19편으로 나눠 수록했다.
마음을 밝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라는 뜻으로 한문 초학자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운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했다.
이 말은 제일 먼저 나오는 계선편(繼善篇)에 실려 있는데 여기엔 착한 자에게는 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의미의 금언들이 등장한다. 부분을 보자. 중국 고대(古代) 주(周)나라의 명신 강태공(姜太公)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이 말하기를, "선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보듯이 하고, 악한 일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말하기를, 선한 일은 모름지기 탐낼 것이요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태공(太公)의 이름은 상(尙)으로 주(周)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현자(賢者)이다. 위수(渭水)가에서 자신을 알아줄 임금을 만나기 위해 때를 기다리며 곧은 낚시질을 했다고 전한다. 늘그막에 주나라 문왕(文王)에게 발탁돼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신해 천하의 주인이 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선한 일을 눈앞에 보거든 마치 목마를 때 물을 보면 단숨에 물을 벌컥 마시듯이 주저하지 말고 행하고, 악한 말이나 남의 단점과 험담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못 들은체 하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남의 장점이나 칭찬의 말을 듣고 얘기하기 보다는 남의 단점이나 험담에 대해 듣고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보통 우리 속인(俗人)들의 속성(屬性)이다.
요순(堯舜) 시대에 허유(許由)라는 사람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강물에 내려가 자기 귀를 씻었고 그 강가에서 소를 몰고 가던 소부(巢父)라는 사람은 그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이지 않겠다고 소를 끌고 다른 데로 가버렸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이렇듯 악한 말이나 남의 단점이나 험담의 말을 들었을 때는 못들은 체하여 그 말에 동조하거나 그 말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옮긴 남의 험담이나 단점의 말은 비수가 되어 다시 자기 가슴으로 날아와 뜻밖의 화를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주자(朱子)는 "선(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바람의 빠름과 같이 하라"고 했다. 이렇듯 선행(善行)을 함에 있어서는 생각에 머물거나, 크고 작음을 가리거나,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뒤로 미루거나 하지 말고, 목마를 때 물을 본 것처럼 즉시 행하는 강력한 실천적 의지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명(命)하자. 선행(善行)은 주저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 악한 말, 남의 단점이나 험담은 남을 죽이고 나를 죽이니 귓가에 스치는 바람처럼 그대로 흘려보내라. 선한 말, 남의 장점이나 칭찬은 남을 살리고 나를 살리니 적극적으로 하라. 이것이 바로 선덕(善德)을 쌓는 일인 것이다.
견선여갈(見善如渴)
爲善最樂, 道理最大.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요, 도리가 가장 큰 것이다.
이 글은 앞의 글에 붙여 태공이 말하기를, "선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보듯이 하고, 악한 일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선한 일은 모름지기 탐낼 것이요,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爲善最樂, 道理最大)로 보기도 하는데 후한(後漢)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이 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동평헌왕창전(東平獻王蒼傳)에 나온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유창은 후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경서(經書)를 좋아하고 지혜와 아량이 있었다. 유창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형인 명제(明帝)는 그를 매우 사랑하여 즉위하자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임명했다. 명제는 외출할 때나 순시할 때마다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유창은 건무(建武) 15년 동평공(東平公)에 봉해졌고 17년에는 동평왕이 되었다. 유창은 지위가 매우 높았지만 교만하거나 사치를 몰랐다. 또 여색을 탐하는 귀족들의 풍습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동한(東漢)초의 태평성세를 이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영평 11년 동평왕 창이 황궁으로 왔다. 오래간만에 총애하던 동생과 만나니 명제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명제는 동평왕에게 물었다. "집에서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창이 말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蒼曰; 爲善最樂)."
중국의 아동용 학습서인 증광현문(增廣賢文)에도 爲善最樂, 爲惡難逃(위선최락 위악난도)로 소개됐다.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요, 악을 짓고 나서는 도망칠 수가 없다"는 의미다. 줄여서 위선최락(爲善最樂)이라고 한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즐거움이다"는 뜻이다.
후세 사람들은 창을 호례자(好禮者), '예'를 좋아하는 이라고 평했다. 공자(孔子)가 "가난한 속에 즐거워하며 부자가 되어 예법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고 한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논어 학이편)
조선 영조(英祖) 임금 때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이사관(李思觀)은 남돕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충청도에서 고을살이를 하고 있을 때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순행을 하다가 주막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허술한 시골 선비 한 사람이 가족을 이끌고 들어서는데 보니, 등에 업힌 여자아이가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자기 고을 백성인 듯싶어 말을 건넸더니, 서산(瑞山)에 사는 김한구(金漢耈)로 살기가 어려워 서울 친척을 찾아가는 길이라 하였다. 이사관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걸치고 있던 수달피 갖옷을 벗어 그 아이를 덮어 주고 나섰다.
이런 일이 있은 뒤 12년이 흘렀다.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승하(昇遐)하고, 두 번째 왕비로 뽑힌 처녀가 바로 이사관의 도움을 받았던 그 여자 아이로 정순왕후(定順王后) 김씨(金氏)였다.
영조가 하루는 왕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어렸을 때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고 들었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은 없었소? 내가 왕비 대신 후한 보답을 내릴까 하오."
왕비는 평소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사관의 일을 아뢰었다. "별로 생각나는 사람은 없고, 이사관이란 분이 주막집에서 벗어 준 갖옷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임금님을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이사관은 크게 발탁되고, 몇 년 후에는 정승이 될 수 있었다.
견선여갈(見善如渴)
이 성어는 제일 먼저 나오는 계선편(繼善篇)에 실려 있다고 했는데 계선(繼善)이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착한 본성을 이어나간다는 뜻이다. 하늘은 원래 그 자체로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모습을 이어받은 인간 또한 그 선함을 이어나가야 함을 나타내는 말이 계선(繼善)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서 나온 이 말은 결국 선한 일은 목이 마른 자가 물을 갈망하듯이 하되, 악한 일은 절대로 듣지도 말고 하지도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함을 행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태공(太公)이 선을 따르게 하기 위해 한 말인 것 같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
(착한 일을 계속하라)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공자께서 가로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시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 주느니라."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한나라의 소열황제가 임종할 무렵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 가로되,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 하지 말며, 악한 일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 皆自起.
장자 가로되,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 나느니라."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이 가로되, "착한 것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보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가로되,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어 하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馬援曰: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猶餘.
마원이 가로되,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여도 착한 것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동안 악을 행할지라도 악은 그대로 남아 있느니라."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讀; 不如, 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사마온공이 가로되, "돈을 모아 자손에게 넘겨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킨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으니,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느니라."
景行錄曰: 恩義廣施. 人生何處不相逢. 讐怨莫結. 路逢狹處, 難回避.
경행록에 가로되,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곳에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莊子曰: 於我善者, 我亦善之; 於我惡者, 我亦善之. 我旣於人, 無惡人; 能於我, 無惡哉.
장자 가로되,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하였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함이 없느니라."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 福雖未至, 禍者遠矣.
一日行惡, 禍雖未至, 福者遠矣.
行善之人, 如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
行惡之人, 如磨刀之石, 不見其損, 日有所虧.
동악 성제가 내린 가르침에 가로되, "하루 착한 일을 행할지라도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악한 일을 행할지라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갈리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날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으니라.
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공자 가로되,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견선여갈(見善如渴)
착한 것을 보면 목마를 것같이 하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적극 권장하는 말이다.
이웃을 돕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이다. 자원봉사다. 자신도 바쁘고 넉넉하지 않지만 시간과 물질, 재능을 이웃을 위해 스스로 기부하는 일이란 고귀한 삶이라고 하겠다.
자원봉사는 자유의사에 의해, 복지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즉 시민의식을 기초로 지역사회를 위해 보다 살기 좋고 밝은 생활로, 상호연대하면서 구축해가는 끊임없는 활동이다. 마음이 고운, 그래서 표정도 밝아지는 선한 이들의 활동이기에 상찬(賞讚)받아 마땅하다.
주나라 무왕을 도와 건국 초기의 국정 설계에 참여한 강태공 여상(呂尙)은 "선한 일을 보면 목마른 것같이 하고, 선한 일이면 모름지기 탐을 내라(見善如渴 善事須貪)"고 권면했다.
그렇다. 선이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열매는 세월과 함께 자란다. 보답을 바라고 선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작은 선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뿌린 자가 그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게 자연섭리요 우주법칙인 것이다.
물론 선한 일은 큰 일만 한다고 빛이 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의 소열황제가 임종을 맞아 후계에게 내린 조칙은 시사적이다. "선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선 안 되며, 악이 작다고 쉽게 해선 안 된다(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오늘은 '자원봉사자의 날'이다. 굳이 특정일을 정하지 않아도, 우리 민족 우리 풍속에는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자원봉사 전통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시대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꼽을 수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으로써 누구나 다 잘 살 수 있게 해 복지와 삶의 질 향상, 행복을 최고 덕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한데 요즘 일부 인사들은 생색내거나, 사진찍기를 위한 그야말로 '보이기 위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해 자원봉사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자원봉사의 숭고한 뜻을 살리고 확산하는 데 힘써야겠다.
▶️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을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조그만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이르는 말을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말을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말을 견위치명(見危致命),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보고 들은 바가 꼭 같음을 일컫는 말을 견문일치(見聞一致), 착한 일을 보기를 마치 목마른 것같이 하라는 뜻의 말을 견선여갈(見善如渴), 착한 일이나 착한 사람을 보면 그것을 따르라는 뜻의 말을 견선종지(見善從之), 토끼를 발견한 후에 사냥개를 놓아서 잡게 하여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사태의 진전을 관망한 후에 응하여도 좋다는 말을 견토방구(見兔放狗), 보고도 못 먹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탐나는 것이 있더라도 이용할 수 없거나 차지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견이불식(見而不食), 달걀을 보고 닭이 되어 울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성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견란구계(見卵求鷄), 눈으로 직접 보니 들었던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헛된 명성을 비유하는데 사용되는 말을 견불체문(見不逮聞), 보는 것이 탈이란 뜻으로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으면 그만인데 눈으로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우환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견물우환(見物憂患),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기쁘다는 뜻으로 어렸을 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견렵심희(見獵心喜) 등에 쓰인다.
▶️ 善(착할 선)은 ❶회의문자로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다. 신에게 맹세하고 한 재판이란데서 나중에 훌륭한 말이 훌륭함, 좋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善자는 '착하다'나 '사이좋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善자를 보면 양과 눈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답은 '양의 눈망울과 같은'이다. 뜻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식으로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해석될 수 있겠다. 보통 착하고 선한 사람을 일컬어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善자는 그러한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目자 대신 言(말씀 언)자가 쓰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였다. 이후 善자는 변화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善(선)은 (1)착하고 올바르고 어질고 좋음 (2)정리(正理)를 따름. 양심이 있고 도덕을 갖춤 (3)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理想)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착하다 ②좋다 ③훌륭하다 ④잘하다 ⑤옳게 여기다 ⑥아끼다 ⑦친하다 ⑧사이좋다 ⑨착하고 정당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악할 악(惡)이다. 용례로는 착한 것과 악한 것을 선악(善惡), 선량한 마음이나 착한 마음을 선의(善意), 좋은 길로 올바르게 인도함을 선도(善道), 착하고 어진 벗을 선우(善友), 깨우치고 이끌어서 착하게 되도록 만듦을 선화(善化), 친절하게 잘 대접함을 선대(善待), 착하고 바른 덕행을 선덕(善德), 착한 마음을 선심(善心), 이웃 또는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지냄을 선린(善隣), 잘 막아냄을 선방(善防), 착하고 어짐을 선량(善良),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착하고 어진 행실을 선행(善行), 유종의 미를 거둠을 선종(善終), 잘못을 고쳐 좋게 함을 개선(改善), 가장 좋음이나 가장 적합함을 최선(最善), 자기 혼자만이 선으로 생각되는 바를 행하는 일을 독선(獨善), 본심에서가 아니라 겉으로만 하는 착한 일 또는 그것을 함을 위선(僞善), 착한 일을 여러 번 함을 적선(積善), 최선의 다음 정도를 차선(次善), 더할 수 없이 착함이나 지극히 착함을 지선(至善), 선의를 베풂을 자선(慈善), 서로 친하고 사이가 좋음을 친선(親善), 착하지 아니함을 불선(不善), 친구 사이에 옳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함을 책선(責善), 나쁜 짓을 고쳐 착하게 됨을 천선(遷善),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 불교에 귀의한 남녀 또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선남선녀(善男善女),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뜻으로 후환이 없도록 그 사물의 다루는 방법을 정한다는 말로서 뒤처리를 잘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을 선후처치(善後處置),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무엇이나 내 몸가짐에 대한 깨우침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 남을 공경하여 오래 잘 사귐을 이르는 말을 선여인교(善與人交), 부처에게 아무리 공양을 잘 하여도 아무 공덕이 없다는 뜻으로 남을 위하여 힘써 일을 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소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선공무덕(善供無德),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잘함을 일컫는 말을 선시선종(善始善終), 착한 원인에 착한 결과라는 뜻으로 선업을 닦으면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좋은 업과를 받음을 이르는 말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사람의 타고난 성품에 따라서 여러 가지 선하고 공교롭게 쓰는 수단이나 방법을 일컫는 말을 선교방편(善巧方便), 이웃 나라와의 친선을 꾀하여 취하는 외교 정책을 일컫는 말을 선린외교(善隣外交), 뒷 갈망을 잘 하여야 하는 계획 또는 뒤처리 방법을 일컫는 말을 선후지책(善後之策), 선과 악이 서로 반씩 섞임을 이르는 말을 선악상반(善惡相半), 백성의 사정을 잘 살펴서 정치를 잘 함을 일컫는 말을 선치민정(善治民情), 이웃 나라 또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잘 사귄다는 뜻으로 외교 상 이웃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는 일을 이르는 말을 선린우호(善隣友好)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喝(꾸짖을 갈, 목이 멜 애)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曷(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喝(갈, 애)은 ①꾸짖다 ②(큰소리로)나무라다 ③으르다(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다), 위협하다 ④고함치다, 외치다 ⑤벽제(辟除)하다(구종驅從 별배別陪가 잡인의 통행을 금하던 일) ⑥장단을 맞추다 ⑦큰소리, 그리고 ⓐ목이 메다(애) ⓑ소리를 죽여 울다(애) ⓒ목쉰 소리, 목이 잠긴 소리(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꾸짖을 핵(劾), 꾸짖을 질(叱), 꾸짖을 가(呵), 꾸짖을 타(咤), 꾸짖을 매(罵), 꾸짖을 힐(詰), 꾸짖을 견(譴), 꾸짖을 책(責)이다. 용례로는 어름장을 놓아 억지로 빼앗음을 갈취(喝取),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해낸 사람이나 그 행위에 대해 칭찬이나 찬양의 뜻으로 큰소리를 지르는 것을 갈채(喝采), 큰 소리로 꾸짖어 길을 치움을 갈도(喝道), 남을 큰 소리로 꾸짖음으로 사설을 배격하고 진리를 밝혀 깨침을 갈파(喝破), 큰소리로 말함 또는 큰소리로 호통을 침을 갈기(喝起), 큰소리를 치며 공갈함을 갈책(喝嘖), 남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자아내게 하려고 을러서 무섭게 함을 공갈(恐喝), 큰 소리로 꾸짖음을 일갈(一喝), 큰 소리로 꾸짖음을 가갈(呵喝), 큰 소리로 꾸짖음이나 호통침을 대갈(大喝), 큰 소리를 질러 지휘함을 휘갈(揮喝), 거짓 공갈함을 허갈(虛喝), 으르고 다잡음을 협갈(脅喝), 자기의 말이나 뜻을 남에게 전하거나 또는 남의 말이나 뜻을 그대로 전달함을 전갈(傳喝), 크게 소리쳐 꾸짖음을 포갈(咆喝), 큰 소리 치면서 공갈함을 동갈(哃喝), 크게 외쳐 꾸짖는 한마디의 소리를 이르는 말을 대갈일성(大喝一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