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들어서 이렇게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 열광하고 빠져든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래시계나 태조왕건처럼 거창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도 아니고, 피아노처럼 눈물바다를 일으키는 신파적 멜로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선남선녀의 '드라마틱'한 삼각사랑도 없습니다. 시청률 1위의 드라마도 아닙니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파격의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역입니다. 그동안 피상적이고, 지나치게 센티멘탈하게 그려지진 사건들. 혹은 노골적으로 비하와 멸시의 대상이며, 삐딱한 시선으로 여겨져있는 마이너 인간들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처럼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창조할수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닌듯 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1회부터 20회까지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본것은 아마 이 드라마가 처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길고 늘어지는 스토리, 다수의 주인공들이 나와서 콩쥐팥쥐 레퍼토리를 울궈먹으며 복잡하게 꼬아대는 사랑이야기, 트렌디 드라마. 이런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에, 네 멋..도 처음에는 그런 드라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눈에 양아스러움과 이 쉐이들 삼류군..하는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등장인물들. 구태의연하고 뻣뻣해보이는 이나영의 어색한 초반연기..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 생각이 네 멋..에 대한 열광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 멋..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라스트씬에서 이나영의 웃는 얼굴은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복수는 죽습니다. 아니 이미 죽어있는 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이나영의 웃는 미소로 드라마를 끝내는 것은 일견 무책힘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얼렁뚱땅 시청자의 상상에 드라마의 결말을 떠넘기고 도망가려는 건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어차피 네 멋..은 작가와 연출자의 일방통행으로 만드는 드라마가 아닙니다.우리는 고복수에 전경에, 그리고 송미래에 동화되어있으며, 그들에게 희망의 판타지를 뺏어버리고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결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드라마 제목처럼 네 멋대로 해라는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이제 복수가 살고죽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분명히 가능한 현실세계안에서의 판타지를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복수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주인공의 죽음과 남겨진 자의 눈물이라는 진부한 공식에서 가벼운 신파를 짜내는 것은 이미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네 멋..이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에 반기를 들어오고, 열린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신선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볼때마다 허술한 마무리에 허탈감이 밀려오곤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네 멋..의 결말은 분명히 지난 몇년간 한국 드라마의 라스트 중 최고의 반열에 능히 오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회에서 엇갈리고 엇갈리는 등장인물들의 우연한 만남들도 재미있었습니다. 복수와 경의 이야기에 천착하느라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잘 마무리해주지 못한 것이 옥의 티라고 할수있겠지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극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양동근, 이나영, 공효진 트리오의 능청스런 연기는 발군이라고 해도 좋을것같습니다.
이들의 캐릭터가 생동감있는 것은 바로 마이너의 미학, 세상의 주류와는 거리가 있는 소매치기와 키보디스트..그 주변 사람들도 모두 사회적 주류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입니다. 졸부,사생아,치어리더,스턴트맨,불륜의 주부, 복수심에 불타는 형사 등등....그 속에 전형적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 나름대로의 범위내에서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복수와 경의 주변을 스쳐지나는데 마지막에서 '그리고 모두 착하게 살았다' 따위 해피엔딩적 결말에 반기를 들듯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삐딱하거나 결론지어지지않은 모습으로 마지막 등장을 장식합니다. 미팅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현지,욕과 불평을 입에 달고다니는 미래,악역으로 보이다가 마지막에 간절하게 경을 불러대는 경의 부친 낙관 등 작가는 정해진 틀이 아닌 사람사는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삶의 여러가지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선과 악, 유치함과 진지함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리얼리티와 몽환적 판타지를 동시에 이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일개의 평범한 트렌디 드라마로 전락할수 있었던 네 멋..에 영화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은 연출의 능력도 돋보입니다. 초반에는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지 못했지만, 16부에 복수부친의 죽음을 전후하며 복수의 판타지와 두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여정을 포착해나가는 연출은 말 그대로 텔레비전 영화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배우,작가,연출...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었던 드라마..네 멋대로 해라.. 이 라인업이 언젠가 다시 뭉쳐서 또 한번의 참신한 이야기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줄날이 오리라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