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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살로 가는 길 원문보기 글쓴이: 기도법사
예념미타도량참법 제 4권
4. 왕생전록往生傳錄
『왕생전록往生傳錄』을 지은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가 삼재의 겁에 가까워지고 오탁의 시기에 임하면 지옥에 들어가는 자가 소털처럼 많고 연지蓮池에 태어나는 이는 기린의 뿔처럼 적어집니다. 이 때문에 석가모니 조어장부께서 성스러운 가르침을 남기시어 염부제에서 미타세존께서 말법에 중생들을 제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자비의 광명을 얻어 원력을 섭수하시니 부처님의 힘은 측량하기 어려워서 원을 세우면 반드시 맞아주어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가피를 내리십니다. 우리들이 숙생에 어떤 다행한 인연이 있어서 이 정토문을 만날 수 있었는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바로 참법을 편집하고 이에 왕생한 사적들을 모았으니 절대로 이단異端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을 알고자 하여 우선 왕생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앞의 교에서 이미 인용하여 비교·증명하였으니, 다음에는 왕생전록을 밝히겠습니다. 이것은 교전에서 널리 채록하고 고금을 통하여 의심을 활짝 열어서 풀어주어 규정된 위치를 뛰어넘게 하는 것입니다. 피안의 언덕에 오르면 배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찾아와서 나루터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 말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말하는 뜻을 잘못 오인하여 그곳에 떨어져 후회하는 일이 없습니다. 정토왕생을 구하고자 하면 우선 마땅히 예참을 통해서 우리가 무시로부터 지금까지 지은 죄장을 뽑아서 소멸시켜야 합니다. 다 같이 한결같고 평등하며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삼십육구지불三十六俱胝佛
지심귀명례 서방현재일체제불西方現在一切諸佛
지심귀명례 무량수불無量壽佛
지심귀명례 무량온불無量薀佛
지심귀명례 무량광불無量光佛
지심귀명례 무량당불無量幢佛
지심귀명례 대자재불大自在佛
지심귀명례 대광불大光佛
지심귀명례 광염불光焰佛
지심귀명례 대보당불大寶幢佛
지심귀명례 방광불放光佛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알 같은 부처님께서 서방에 머무시면서 장광설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시고 법문을 섭수하십니다.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마음과 귀를 잘 섭수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들으십시오. 편안할 때나 불안할 때나 어느 때든 부처님을 염하여 부르고 관하여 하루에 일곱 차례, 한 마디 소리에 열 번을 부르고, 경에 의지하여 수지하고, 보고 들음에 기쁘게 따르면 모두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지금의 『왕생전록往生傳錄』과 같이 할 것입니다.
여산廬山 혜원慧遠스님이
백련결사를 하여 왕생하였습니다.
동진東晉의 혜원스님은 안문鴈門사람인데 여산에 거처하면서 승속僧俗 백이십삼인과 백련결사를 하여 정토문을 수행하면서 연화대 가운데 태어나고자 하였습니다. 유민遺民스님이 감응을 찬송하는 글을 짓기를, [한 선인이 구름을 타고 와서 공중에서 법을 청하였는데 혹은 맑은 범패성을 연주하기도 하고 장풍을 몰아오기도 하였습니다. 법사는 맑은 마음으로 관상觀想하여 처음 십년동안 세 번 거룩한 모습을 보았지만 혜원스님은 성품이 깊고 후덕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칠월에 혜원스님은 또 아미타부처님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고 원광 가운데 모든 화신 부처님과 관세음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서 시립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수류와 같은 광명이 열네 줄기로 나누어지고 하나하나의 줄기에서 상하로 물이 흐르면서 자연히 공·무상·무아의 묘법을 연설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십육관경十六觀經』에서 설한 것처럼 부처님께서 혜원법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본원력으로 그대를 안위케 해주기 위해서 왔노라. 칠일 후에 나의 국토에 태어나리라”
그때 불타야사佛馱耶舍스님과 혜지담순慧持曇順스님이 부처님 곁에 있다가 앞을 향해 합장 하면서 혜원법사에게 말하였습니다. “법사께서 정토에 뜻을 둔 것이 우리보다 먼저인데 어찌 오는 것이 그리 늦습니까?”>
혜원스님은 자신이 분명하게 보고서 그 문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고 이곳에 거처하면서 처음에 세 번 거룩한 모습을 보았다. 지금 다시 거룩한 모습을 보았으니 내가 정토에 태어날 것이 분명하다.” 다음날 병들어 누워서 칠 일째에 이르러 거룩한 무리가 멀리서 맞이하러 오자 적연히 천화하셨습니다.]
함께 모여 수행했던 백이십삼명도 전후로 모두 정토에 왕생한 사실이 모두 비문에 나열되어 있습니다.----『양고승전梁高僧傳』
진나라 궐공闕公이 수행의 과보로
왕생하였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동진의 궐공闕公은 혜원스님의 백련결사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어떤 사람이 백마사에서 기일을 지냈는데 숲에 있는 나무와 전각과 집이 모두 금색이 되면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궐공闕公이다. 바라던 대로 극락보국에 마침내 왕생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수행의 과보가 있음을 보여준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습니다.----『고승전高僧傳』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가
삼매에 들어 왕생하였습니다.
천태지자는 황제로부터 보살계를 내려달라는 청을 받고 산으로 돌아가 일심으로 삼매에 들었습니다. 다음날에 삼매로부터 일어나 제자인 지월智越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허깨비 같은 형질이 내일 아침 해 돋을 무렵에 입멸에 들리라. 너는 성 뒤에서 엄숙하게 향을 수지하고 기다려라. 나는 이 업보로 받은 몸을 바꾸어야겠다.”
천태天台스님이 시상施牀에 이르러 서쪽을 향해서 일념으로 아미타부처님과 두보살을 칭념하고, 정토의 화불化佛과 보살들이 와서 수호해주기를 염하였습니다. 또 시자에게 무량수경을 독송하라고 명하여 일심으로 고요하게 들었습니다. 독경이 끝나자 대중을 돌아보면서 합장하고 찬탄하며 말했습니다. “사십팔원으로 정토를 장엄하니, 연화지와 보배나무로다. 도달하기 쉬우나 사람이 없네. 불타는 수레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일념으로 회개한 사람도 오히려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계와 정을 닦아 성스러운 수행과 도력이 실로 허망하지 않은 사람이야 어찌 왕생할 수 없으리오.” 그리고 제자에게 향과 촉을 많이 켜라고 부촉하고 또 삼의三衣와 발우와 지팡이를 집어서 몸 곁에 놓았습니다. 재식齋食을 올리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두에 능히 반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진실한 재식이다.” 하였습니다. 또 향을 잡고 설근舌根을 깨끗하게 씻고 나서 십여시, 사불생, 십법계, 삼관, 사지, 사무량심, 육바라밀 등의 법을 설하였습니다.
어떤 스님이 그 증득한 것을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대중에게 알려주지 않았더냐. 육근은 청정하게 하고 타인을 위해서 자기가 손해를 보라. 나는 오품의 위에 들었을 뿐이다.” 또 말하시길 “인명이 다하려 할 때 경쇠소리를 들으면 정념이 증장된다. 그대는 경쇠를 울려서 나의 정념을 증장시키라.”하니 즉시에 아미타부처님과 관음, 세지보살들의 성중聖衆이 깃발과 꽃을 들고 맞이하러 오는 것을 보고 아미타부처님의 모습 앞에 단정히 앉아 목숨을 마쳤습니다.
제자들은 스님을 불감암에 모셨는데 나중에 양제가 사신을 보내 기제를 올리려고 석실을 열어보니 다만 빈 걸상만이 있었습니다.----『왕생전록往生傳錄』
후위後魏의 담란曇鸞스님이
신비로움을 보이고 왕생하였습니다.
후위 벽곡의 스님 담란은 처음에 자도에 은거하면서 선경仙經 열권을 얻었습니다. 담란스님은 흔연히 기뻐하면서 스스로 신선을 극치의 경지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후에 보리유지스님을 만나서 질문하기를, “불도에 장생長生이 있는가. 늙어서도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보리유지스님이 말하기를 “장생불사는 우리 불도의 가르침이다.”라 하고,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주면서 일렀습니다. “그대가 이 경을 독송하면 삼계육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며, 그 수명은 겁석과 항하의 모래알 같이 된다. 겁석과 항하사의 수는 오히려 한계가 있지만 수명의 양은 무궁하다. 이것이 우리 부처님金仙氏의 장생이다.” 담란은 이 말을 깊이 믿고 드디어 선경仙經을 불사르고 오로지 십육관경을 수행하면서 봄·여름이 지나고 질병에 걸려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위나라 왕이 그 뜻이 고상함을 어여삐 여기고, 스스로 수행하며 남을 교화하여 그 가르침을 전해 널리 퍼짐을 치하하며 신란神鸞이라고 호를 내렸습니다. 어느 날 제자에게 말하기를 “지옥의 모든 고통은 두려워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구품의 정업을 닦지 않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고성으로 아미타불을 칭념해야 한다고 말하고, 서쪽을 향해서 눈을 감고 머리를 조아리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에 승속僧俗이 다 같이 여러 가지 악기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오다가 한참 지난 후에야 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 부처님 오신 날에 승속이 다 함께 그 절에 모였는데, 그 때 담란법사가 공중에 칠보로 된 배를 타고 나타나 도작道綽스님을 손으로 가리키며 “정토에 그대의 당우堂宇가 이미 지어져 있는데 다만 업보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화불과 보살들이 나부끼듯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고 대중이 이에 경탄하면서 큰 신심을 일으켜 복종하였으니 종자가 없는 무리인 일천제一闡提도 또한 복종하였습니다.----『왕생전록往生傳錄』
전당前唐의 소강少康스님이
광명을 놓으며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소강少康스님은 정초에 백마사에 왔다가 전각 가운데서 문자가 여러 차례 광명을 발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알아보니 선도善道스님이 서방에서 화도하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소강少康스님이 “만약 정토에 인연이 있다면 마땅히 이 문자가 다시 광명을 발하게 하리라.” 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명이 번쩍번쩍 빛나면서 장안에 있는 선도스님의 영당影堂에 이르렀습니다. 선도스님이 공중에서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나의 일에 의지해서 모든 유정을 이롭고 즐겁게 하면 그대의 공덕으로 다 같이 극락에 왕생하리라.”
또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그대가 사람들을 교화하려면 신정新定으로 가야 한다.” 하고 말을 마치자 사라졌습니다. 신정은 지금의 엄주인데 그 곳에 이르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강스님은 돈을 얻어 어린 아이를 꾀어서 돈을 주면서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본래 너의 스승이시니 한 번 염하여 부르면 일전을 주겠다.”어린 아이가 그 돈을 얻으려고 힘써서 소리를 내며 염하여 불렀습니다. 몇 달 지난 후에 부처님을 염하여 돈을 얻으려는 어린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말했습니다. “염불 십성十聲을 하면 너에게 돈을 주겠다.” 어린이들이 이와 같이 따라서 염하여 부른지 일 년이 되자 어른과 어린이, 귀하고 천한 이를 가릴 것 없이 소강스님을 보는 사람은 모두 아미타불을 염하여 불렀습니다. 이리하여 염불하는 사람이 도로에 넘치게 되었고 후에 스님은 오룡산에 정토도량을 세웠습니다. 소강스님이 자리에 올라 사람들을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서 아미타불을 선창하고 대중들이 따라하게 하니 선창할 때 대중들이 스님의 입으로부터 부처님 한분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이어서 열 번을 창하면 열 부처님이 나와서 구슬을 이어서 꿰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소강스님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부처님을 보았는가. 부처님을 보면 결정코 정토에 왕생하리라.” 그래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이가 수천 명이었지만 또한 끝내보지 못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후에 대중들에게 “극락에 가려는 마음을 증진시키고 염부제에 염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대들이 지금 광명을 볼 수 있으면 진실로 나의 제자이다.”라고 부촉하고, 기이한 광명을 여러 줄기 발하면서 세상을 떴습니다.----『왕생전록往生傳錄』
계방啓芳스님과 원과圓果스님은
종소리를 듣고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분주의 스님 계방啓芳과 원과圓果 두 법사가 정미로운 마음으로 정토를 관상하기를 일곱 달이 지났는데, 관상하던 중에 다 같이 칠보로 장엄된 큰 연못에 몸이 이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못에는 큰 보배가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여 그 안에 들어가서 관음, 세지 두 보살께서 두 개의 대보련화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아래는 천만이나 되는 연꽃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 아미타부처님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시어 가장 큰 연꽃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는데 이 연꽃들이 번갈아가며 광명을 내어 서로를 비추어 주고 있었습니다. 계방·원과스님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쭈었습니다. “염부제에 있는 중생이 경에 있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염불하면 이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명호를 염하여 부르면 모두가 나의 국토에 태어날 수 있다. 염하여 부르고도 태어나지 못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또 석가모니부처님과 문수보살께서 그 앞에서 정토를 칭찬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큰 전각이 있어 그 전각에 길이 세 개 있고 보배로 계단이 되어 있었는데, 첫 번째 길에는 모두 속인들만 있었고, 두 번째 길에는 승속이 서로 반씩 있었고, 세 번째 길에는 스님들만 있고 속인은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계방스님과 원과스님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길 “이들은 모두 남염부제의 중생들인데 염불하여 마침내 이곳에 태어났느니라. 너희들도 마땅히 스스로 힘쓰도록 하라.” 계방스님과 원과스님은 깨어나서 생생하게 그 문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뒤 다섯 달 후에 병도 없이 번갈아서 종소리를 들었는데 다른 사람은 듣지 못했습니다. 계방스님과 원과스님은 “종소리가 났으니 우리 일이 다하였다.” 하고는 순식간에 두 사람이 함께 열반에 드셨습니다.----『왕생전往生傳』
태주台州의 회옥懷玉스님이
금대金臺를 타고 왕생하였습니다.
회옥懷玉스님은 단구丹丘 사람인데 깨끗한 업을 관상하기에 주력하여 사십 년 가까이 하였습니다. 대보 원년에 회옥懷玉스님이 염불을 하다가 홀연히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서방의 거룩한 무리를 보았는데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손에 은대를 가지고와서 회옥스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스님이 “나는 금대를 바라는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은대인가” 라고 말하자 은대도 사라지고 사람도 곧 사라졌습니다. 이에 더욱 힘써서 가행정진하여 삼칠일에 이르자 지난번에 대를 가지고 왔던 사람이 다시 와서 고하기를, “법사께서 힘써 정진하였기 때문에 상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또 말하길, “상품에 왕생하여 반드시 부처님을 뵐 것입니다.”라 하고 가부좌하여 부처님 오시기를 기다리니, 얼마 있지 않아 발꿈치에서 기이한 광명이 나와 방안을 비추고 또 삼일 뒤에 다시 기이한 광명을 발하였습니다.
회옥스님이 말하길, “만약 기이한 향냄새가 나면 나의 업보신이 다한 것이다.” 하고 다음날 게송을 지어서 말하였습니다.
청정하고 고결하여 때가 없으니
연화대에 화생하여 부모가 되리
내가 수도한지 십겁이 지났으니
염부제의 온갖 고통 벗어남을 보여주리라.
일생의 고행이 십겁을 뛰어넘으니
원컨대 사바 떠나 정토에 돌아가리라.
게송을 마치자 사방에서 향기가 났고 제자들은 부처님과 두 보살이 함께 금대를 타고 곁에 있는 천백의 화불과 서쪽으로부터 내려와서 회옥스님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으며, 스님은 공경스럽게 합장하고 미소를 머금은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왕생전往生傳』
상주相州의 도앙道昂스님은
기악소리를 들으며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상주 한릉산의 도앙스님은 뜻을 서방정토에 두고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였습니다. 후에 스스로 목숨이 다함을 알고 봄에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고하기를 ‘팔월 초에 이르러 이별하리라.’ 하였지만 그 말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약한 달이 되어도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가 윗자리에 앉아 공양하는데 몸은 기이한 모습을 머금었고 향로에서는 기이한 향 내음이 나기에 대중을 모아놓고 보살계를 설했는데 그 말씀이 긴요하고 간절하여 듣는 사람이 오싹하였습니다. 이때에 사부대중과 하늘무리 등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도앙스님이 눈을 높이 들어 바라보니 하늘무리가 어지럽고 번잡하게 현악기와 관악기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공중에서 맑은 음성이 먼 곳까지 뻗치면서 대중에게 고告하길, “도솔천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내려와 도앙스님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도앙스님이 말하였습니다. “하늘세상의 길은 생사의 근본이라 본래부터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나는 항상 마음으로 정토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무슨 말인가. 진실로 따를 수 없다.” 말을 마치자 문득 모든 하늘 음악이 위로 올라가서 바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서방의 향화香花와 기악伎樂이 뭉게구름과 같이 가득 차고 비용飛涌하면서 와서는 정수리 위에서 빙빙 도는 것을 모든 대중들이 보았습니다. 도앙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하길, “지금 서방에서 신령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러 왔다. 원하던 일이니 이제 가리라.” 말을 마치고 다만 향로만을 보면서 손을 법상法床에 내려놓고 단정하게 목숨을 마쳤으니, 이때가 정관 칠년 팔월입니다.----『속고승전續高僧傳』
수나라의 두 사미가
동시에 왕생하였습니다.
수나라의 병주 문수현에 있는 개화사에 두 사미가 있었는데 그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미에게 말하였습니다. “형은 정토업을 닦아야지 한가롭게 나날을 보내지 마십시오.” 그 형이 그 말에 따라 함께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며 잠깐 사이에 오 년이 지났습니다.
나이 많은 사미가 먼저 죽어 정토에 왕생하였는데, 아미타부처님께서 백가지 보배와 자금색으로 된 연화대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우러러 예를 올린 다음 기쁜 마음을 못 이겨 즉시에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제자에게 나이 어린 동학同學이 있는데 지금 염부제에 있습니다. 함께 정토업을 행하여 이 국토에 태어나게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시길, “너는 본래 무심으로 나의 명호를 염하여 불렀다. 이것은 그가 너에게 가르친 것이니 어찌 그를 의심하겠느냐. 그대를 놓아 줄테니 다시 돌아가서 부지런히 정업을 행하여 나의 명호를 정념하여 삼 년 이후에 그와 함께 오라.”
사미는 다시 살아났고 어린 사미는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말씀을 전해 듣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두 사미는 심안이 밝게 열려서 즉시에 아미타불과 여러 거룩한 무리들이 대지를 진동시키며 맞으러 오는 것을 보았으며, 또 허공에 하늘 꽃이 가득 찬 것을 보았습니다. 두 사미는 이를 보고 나서 홀연히 병도 없이 같은 시간에 목숨을 마치고 함께 정토에 왕생하였습니다. ----『왕생전往生傳』
명주明州의 가구可久스님은
믿은 과보로 왕생하였습니다.
명주의 가구스님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기 때문에 구법화라고 불렸습니다. 평생 동안 정토업을 닦았는데 나이 여든한 살에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가 다시 살아나서 정토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십육관경에서 설한 것과 동일했습니다. “정토에 가서 연화대를 보았더니 합생자合生者의 이름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한 자금대에는 송나라의 광교원廣教院이 법화경을 익혀서 그 가운데 앉을 것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또 다른 금대에는 명주의 손자 십이랑十二郞이 그 가운데 합생合生할 것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또 한 금대에는 구법화久法華라고 표시되어 있고, 또 한 은대에는 명주의 서도고徐道姑라고 표시되어 있더라.” 라는 말을 마치고 다시 천화하였습니다.
오 년이 지나서 서도고가 죽자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찼고 또 십이 년이 지나서 손자인 십이랑이 죽자 하늘 음악이 허공에 가득 찼습니다.----『왕생전往生傳』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이 왕생하였으니 오늘날 스님 된 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출가인이다. 생사를 요달하는 것이 본분이니 이와 같이 티끌 세계인 속세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하루아침에 죽음이 도래하면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세간의 선업을 짓는다 해도 생사윤회를 면할 수 없다. 만약 정토를 수행하면 속히 생사를 벗어나 면전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뵐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출가사를 마치는 것이다. 또 나아가 이로써 다른 이를 교화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을 스님이라 한다.>
이 말을 반드시 믿고 따라서 행하면 이익이 무궁하여 반드시 상품에 왕생할 것이니 다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
지심귀명례 구류손불拘樓孫佛
지심귀명례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지심귀명례 가섭불迦葉佛
지심귀명례 사자불師子佛
지심귀명례 명염불明炎佛
지심귀명례 모니불牟尼佛
지심귀명례 묘화불妙華佛
지심귀명례 화씨불華氏佛
지심귀명례 선숙불善宿佛
지심귀명례 도사불導師佛
지심귀명례 대비불大臂佛
지심귀명례 대력불大力佛
지심귀명례 숙왕불宿王佛
지심귀명례 수약불修藥佛
지심귀명례 명상불名相佛
지심귀명례 대명불大明佛
지심귀명례 염견불炎肩佛
지심귀명례 조요불照曜佛
지심귀명례 일장불日藏佛
지심귀명례 월씨불月氏佛
지심귀명례 중염불衆炎佛
지심귀명례 선명불善明佛
지심귀명례 무우불無憂佛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장안長安의 정진淨眞스님이
수기授記를 받고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장안의 정진淨眞비구니스님은 적선사에 거주하면서 납의衲衣를 입고 걸식을 하여 일생 동안 화를 내지 않고 금강경 십만 번을 독송하고 전심으로 정진하여 염불하였습니다. 현경顯慶 오년 칠월에 병이 들어 제자에게 말하길, “오일 안에 아미타부처님과 관음, 세지보살과 셀 수 없이 많은 스님들을 열 번 보리니, 여래께서 광명을 놓아 나의 몸과 실내를 모두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또 극락국토를 장엄하는 일을 두 번 보리니, 보배 누각이 있고, 연못에는 온갖 색깔의 연화가 피어 물에 떠 있고 금모래와 공덕수가 있으며 여러 하늘의 동자들이 연못에서 유희하면서 자욱하고 특수한 향기를 맡느니라. 또 자금대紫金臺를 보는데 하늘의 음악을 들으며 천만의 부처님은 모두가 진금색眞金色이며 나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줄 것이다. 나는 상품왕생을 얻었다.” 말을 마치고 가부좌하여 목숨을 마치니 광명이 그 사찰을 비추었습니다.----『왕생전往生傳』
단양丹陽의 도원道瑗스님이
부처님을 뵙고 왕생하였습니다.
단양의 비구니 스님 도원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성장해서 계를 받은 후에 삼장三藏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그 요점을 더욱 크게 얻었고, 불상을 조성하여 복업을 증진시켰습니다. 금으로 무량수無量壽상 일구一軀를 조성하고 그 복에 의해서 서방에 태어나길 원하였는데 다음해 사월 불상의 미간에서 대광명을 놓아 절 안을 모두 금색으로 비추었습니다. 그 금색광명 가운데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도원스님에게 수기를 주었습니다. “그대가 이 업보신을 버릴 때 반드시 나를 의지하면 내가 잘 호지護持하리니 의심하거나 교만심을 내지 말라.” 도원이 그 수기를 얻고 기쁜 마음이 더욱 깊어지더니 그 달 보름날에 그 불상 앞에 나아가 단정하게 앉아서 입멸하였습니다.----『왕생전往生傳』
낙양洛陽의 오성悟性스님이
중품中品에 왕생 하였습니다.
비구니 오성스님은 낙양 사람인데 형주에서 조사리照闍梨를 만나 염불수행을 발원하였습니다. 어느 날 여산에 들어갔다가 홀연히 병이 들었는데 공중에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스님이 말하길, “나는 중품상생을 얻었는데 함께 염불한 사람을 보니 모두 서방의 연화대에 있는데 몸이 모두 금색이다.” 그때 나이 스물 네 살이었습니다.----『왕생전往生傳』
비구니 대명월大明月스님이
향기를 맡고 왕생하였습니다.
분주 도탈사度脫寺의 대명월大明月 비구니스님과 현중사玄中寺의 작선스님은 염불삼매를 익혀서 이를 진리의 극치로 여겼습니다.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고자 할 때는 항상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을 머금고 온갖 이름난 향을 살라 거처하는 방에 향냄새를 피웠습니다. 이렇게 삼 년을 끊이지 않고 했는데 임종할 때 온 절의 사람들 모두가 거룩한 무리와 기이한 광명을 보았습니다. 광명 가운데서 침수향沈水香을 맡고 바로 목숨을 마쳤습니다. ----『왕생전往生傳』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위와 같이 비구니 스님들의 왕생을 설하였으니, 오늘날 비구니들은 마땅히 발원해야 합니다. <항상 삼보에 귀의하여 받들고 항상 다섯 가지 장애를 제멸하리라.> 세밀하게 관상하면 오래지 않아 부처님을 보고 이 업보신이 다하면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 다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
지심귀명례 제사불提沙佛
지심귀명례 명요불明耀佛
지심귀명례 지만불持鬘佛
지심귀명례 공덕명불功德明佛
지심귀명례 시의불示義佛
지심귀명례 등요불燈曜佛
지심귀명례 흥성불興盛佛
지심귀명례 약사불藥師佛
지심귀명례 선유불善濡佛
지심귀명례 백호불白毫佛
지심귀명례 견고불堅固佛
지심귀명례 복위덕불福威德佛
지심귀명례 불가괴불不可壞佛
지심귀명례 덕상불德相佛
지심귀명례 라후불羅睺佛
지심귀명례 중주불衆主佛
지심귀명례 범성불梵聲佛
지심귀명례 견제불堅際佛
지심귀명례 불고불不高佛
지심귀명례 작명불作明佛
지심귀명례 대산불大山佛
지심귀명례 금강불金剛佛
지심귀명례 장중불將衆佛
지심귀명례 무작불無作佛
지심귀명례 진보불珍寶佛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이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오장국烏長國의 왕이
부처님을 뵙고 왕생하였습니다.
오장국의 왕이 왕의 업무를 보던 여가에 군신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짐이 인주人主이긴 하지만 생로병사와 무상의 괴로움과 육취에 윤회함을 면하지 못한다. 여기에 무슨 귀천의 구분이 있겠는가. 들으니 서방에 불국토가 있다 하는데 그곳에 정신이 깃들도록 서원하겠다.” 이로부터 밤낮으로 정근하여 염불하고 도를 닦고 보시를 널리 행하여 중생을 이익 되고 안락하게 하였습니다. 매일 백 명의 스님에게 재齋를 베풀었는데 왕과 왕후가 친히 음식을 날랐고 때때로 이름난 스님을 청하여 묘한 법을 청하여 들었습니다. 이렇게 삼십여 년을 오로지 정진하여 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궁중에 아미타부처님께서 나타나시고 서방의 성중聖衆들이 맞이하러 왔는데 상서로운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기쁜 얼굴빛으로 단정하게 앉아서 입멸하였습니다.----『왕생전往生傳』
학사學士 장항張抗이
과제를 수지하여 왕생하였습니다.
진의 한림학사 장항은 평생 적선하고 불문을 믿고 존중하였는데, 대비심주 십만 번을 과제로 삼아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였습니다. 과제를 마치자 나이 육십이 지났는데 홀연히 병들어 누워 아미타불만을 염하여 부르면서 안사람에게 말하였습니다. “서방정토는 원래 집안에 있을 뿐이다. 서쪽 틈 안에 아미타불께서 연화대 위에 앉아 계시고 옹아翁兒가 연화지에 있는데, 금으로 된 연못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말을 끝내고 염불하면서 목숨을 마쳤습니다.----『왕생전往生傳』 (옹아는 손자의 이름인데 방년 삼십이 세에 죽었다.)
진晉나라 유유민劉遺民이
마정수기를 받고 왕생하였습니다.
동진東晉의 일사逸土 유정지劉程之는 혜원법사에게 의지해서 함께 정토를 수행하고 좌선에 전념하여 관상법을 하였습니다. 바야흐로 반년이 지나자 삼매 가운데서 부처님의 광명이 비추고 땅이 모두 금색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에 십오 년을 거처하였는데 말년에 또 부처님을 상념想念하던 중에 아미타불신에서 자금색의 백호광명을 비추고 손을 드리워 그 방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정지가 위로를 받고 다행으로 여겨서 그 자비로움에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진술하여 말합니다. “어떻게 여래께서 저를 위해 이마를 만져주시고 옷으로 덮어주실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이에 그 이마를 만져주시고 가사를 가져다가 덮어주셨습니다. 다른 날에 상념想念하던 중 또 몸이 칠보로 장식된 큰 연못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꽃이 맑고 깨끗한데 그사이에 있는 물은 담담해서 가이없는 것 같았습니다. 언덕에 한 부처님께서 계셔서 목에는 원광圓光이 있고 가슴엔 만자가 있는데 연못물을 가리키며, “팔공덕수八功德水이니 마셔라.”하자 유정지가 그 물을 마시니 감미로움이 입에 넘쳤습니다. 깨어났는데도 도리어 기이한 향기가 털구멍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말하길, “정토의 연이 이르렀다.” 여산의 모든 스님들이 와서 모였고 유정지劉程之가 불상 앞에서 향을 살라 재배하고 축원하였습니다. “석가여래의 남기신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께서 계신 줄 알았습니다. 이 향을 먼저 석가여래께 공양합니다. 다음에 아미타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다시 법화회중의 불보살님께 공양올리고,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들께 공양합니다. 원하건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함께 정토에 태어나도록 해주십시오.” 축원을 마치고 대중들에게 이별을 말한 다음 서쪽을 향해 단정하게 앉아서 손을 거두어들이고 숨을 거두었는데 나이 오십구 세였습니다.----『왕생전往生傳』
청신사淸信士 목경牧卿이
깃발을 잡고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의 청신사 정목경鄭牧卿은 집안 전체에 부처님을 받들어 모셨으며 모친과 자매와 함께 서방정토에 태어나길 기도하였습니다. 개원 이 년에 이르러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의원과 동도들이 모두 권유하여 말하였습니다. “어육魚肉을 먹어서 마른 몸을 회복시킨 후에 정계淨戒를 수지해도 되지 않겠는가.” 목경이 말하길, “슬프다. 이 부생과 같은 몸이 고기를 먹어서 낫는다 해도 끝내는 마멸된다. 부처님께서 금하신 것을 받들지 않고 이 미미한 목숨을 아껴서 무엇 하겠는가.” 하고는 굳게 허락하지 않고 불사佛事를 근엄하게 지키면서 손으로 깃발과 다리달린 향로를 잡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불렀습니다. “대장부 일심으로 퇴전치 않겠으니 원컨대 서방정토에 태어나길 바라나이다.” 하고는 엄연히 먼 길을 갔습니다. 기이한 향기가 정원에 가득 차서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며, 삼촌이 꿈에서 보배연못에 꽃이 피고 목경이 합장하여 위로 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의 나이 오십구 세였습니다.----『왕생전往生傳』
경조京兆의 방저房翥가
다른 사람에게 왕생을 권하였습니다.
당나라 방저房翥는 경조京兆 사람이다. 갑자기 죽어서 저승에 이르러 염라왕을 뵈었습니다. 왕이 이르되, “명부를 조사해보니 그대가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염불을 권하여 이미 정토에 왕생하였다. 그대도 이 복으로 또한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불러와서 서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방저房翥가 말하였습니다. “먼저 『금강경』 만권을 독송하고 오대산을 순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직 정토에 왕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왕이 말하길, “경을 독송하고 오대산을 순례하는 것이 진실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일찍 정토에 태어나는 것만 못하다.”
왕이 그 뜻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다시 방면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정토수행을 권하면 서방에 왕생할 뿐만 아니라 유명幽冥까지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미타감응도彌陀感應圖
송宋나라 소희문邵希文이 꿈에서
신이神異하게 노닐고 난국을 벗어났습니다.
진강鎭江 소희문邵希文은 아직 급제하지 못한 선비였는데 어느 때 꿈속에서 한 관부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안무사라고 불렀습니다. 소희문이 기뻐서 생각하길, ‘아마도 내가 급제한 후에 안무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 나아가서 한 관원을 만났는데, “그대는 그대가 급제하지 못하는 원인을 아는가?” 모른다고 대답하니 그가 소희문을 이끌고 가서 참조개를 삶는 큰 솥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개들이 소희문을 보더니 사람소리를 내어 소희문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소희문이 바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니 염불 일성一聲에 조개들이 모두 황금 새로 변하여 날아갔습니다. 소희문이 그 후에 정말로 급제하여 벼슬이 안무사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살생은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으므로 경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부처님의 힘은 광대무변하므로 공경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관직은 본래 분수가 정해져 있어서 억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용서문龍舒文』
참군參軍 중회仲回가
의문점을 묻고 왕생하였습니다.
왕중회王仲回는 광주의 사사참군司士參軍이었는데 무위無爲郡군 사람들이 본군本郡의 수리 시설을 해달라고 진술하므로 대사농大司農이 그 실정을 알고 조정에 은혜를 내려줄 것을 청했는데 이 명령이 있자 그가 갔습니다. 사람이 믿음이 두터워 일찍이 다른 사람과 장단점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천의회天衣懷 선사가 철불도량鐵佛道場에 주석하고 있을 때에 일찍이 청문請問했으며 향리鄕里 사람들이 선인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이윽고 정토를 믿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다만 깊은 마음을 갖추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에게 질문하기를, “경전에서는 대개 아미타불을 염하면 정토에 태어난다고 가르치는데 조사들은 마음이 바로 정토이니 새삼 정토에 태어나는 것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 가르침이 같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답하기를, “실제의 이치에 있어서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즐거운 것도 없고, 고통스러운 것도 없고, 오래 살거나 요절하는 것도 없으니 무슨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겠으며, 어떻게 마음이 생긴다, 안생긴다 하겠는가. 이것은 이치로 실제 현상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에 처해 있는 사람은 중생인가, 부처인가. 만약 이곳이 부처님세계라면 중생이 아니니 또 무슨 희노애락이 있겠는가. 시험 삼아 스스로 잘 생각해보십시오. 혹 중생의 경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경전을 믿고 지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청정하면 더러움이 없고, 즐거우면 괴로움이 없고, 수명을 누리면 요절함이 없습니다. 무념 중에서 망념을 일으키고, 생사가 없는 가운데 생을 구하는 것은 실제현상으로 이치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마경』에서 말하기를 [비록 모든 불국토와 중생이<공>한줄 알지만 항상 정토문을 수행하여 중생들을 교화한다.]고 한 것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간단없이 염불할 수 있습니까?”
답하였습니다.
“한 번 믿은 후에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간단없이 염불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중회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십이월 초하루 저녁이었습니다. 내가 단양군의 태수로 있었는데 홀연히 꿈속에서 왕중회가 말하길, “지난번에 지시해주신 은혜를 입어 지금 이미 왕생을 얻었습니다. 특별히 찾아와서 감사를 표합니다.”하고 두 번 절하고 물러갔습니다. 그 후 수일이 지나서 왕중회의 아들인 진사 술애계術哀計를 만났는데 믿을 만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또 들으니 사사는 죽기 칠 일 이전에 시각이 이르러 옴을 미리 알고 향리의 친구들에게 작별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나의 동생 오仵도 또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여러 차례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사는 결정코 정토에 태어난 것입니다. ----『왕생전往生傳』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위에서와 같이 남중들이 왕생한 것을 설하였으니 지금 청신사들은 마땅히 스스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광음은 신속하고 환신은 보존하기 어렵다. 매일 아침 짧은 시간의 여가에도 서방정토의 법문을 수행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서방정토의 법문을 수행하면 현세에서는 재앙을 소멸시킬 수 있고 몸이 죽은 다음에는 다시는 괴로운 갈래에 태어남이 없습니다. 만약 대보리심을 발하고 이로써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교화하면 그 복의 과보를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몸이 죽은 후에 반드시 정토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니 다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
지심귀명례 칠불七佛
지심귀명례 시방십불十方十佛
지심귀명례 삼십오불三十五佛
지심귀명례 오십삼불五十三佛
지심귀명례 백칠십불百七十佛
지심귀명례 장엄겁천불莊嚴劫千佛
지심귀명례 현겁천불賢劫千佛
지심귀명례 성수겁천불星宿劫千佛
지심귀명례 시방보살十方菩薩
지심귀명례 십이보살十二菩薩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수隋나라 문제文帝의 황후皇后가
기이한 향기를 내며 왕생하였습니다.
수나라 문제의 황후는 비록 왕궁에 거처했지만 여인의 몸을 매우 싫어해서 항상 아미타불을 염송하였습니다. 임종할 때에 이르러 기이한 향내음이 공중으로부터 와서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문제文帝가 사제삼장闍提三藏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상서입니까?”
답하였습니다.
“서방에 명호가 아미타인 부처님께서 계시는데 황후皇后의 업이 높고 신비로우니, 저 국토에 태어나실 것이며, 성인의 가르침은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왕생징험전往生徵驗傳』
형왕荊王의 부인이
선 채로 천화하여 왕생하였습니다.
형왕荊王의 부인이 비첩들과 함께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정진수행 하였는데 유일하게 한 사람의 첩이 게으름을 피워서 부인이 쫓아냈습니다. 그 첩이 후회하고 깨우친 바 있어 정진을 오래하고는 다른 첩에게 말하길, “내가 오는 밤에 서방에 왕생하리라.”
이날 밤 기이한 향기가 방을 가득 채우더니 아픈데도 없이 목숨을 마쳤습니다. 다음날 함께 수행하던 첩이 부인에게, “어젯밤 꿈에 죽은 첩이 머물 곳을 부탁하면서 ‘부인이 가르치고 책망해준 덕분으로 서방정토 업을 닦아서 이제 왕생하게 되었으니 그 은덕에 감개무량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이 “나에게도 꿈을 꾸게 해야 믿으리라.”라고 말하니, 그날 밤에 부인의 꿈에서 죽은 첩이 나타나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았습니다.
부인이 묻기를, “서방에 갈 수 있겠느냐?” 첩이 대답하길, “갈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기만 하십시오.” 부인이 따라서 광대한 연못을 보니 홍련화·백련화가 피어 있는데 크고 작은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은 싱싱하고 어떤 것은 시들고 갖가지여서 같지 않기에 부인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으냐?”
첩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세간에서 일념으로 서방정토 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념이 되자마자 연못에 바로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납니다. 만약 서원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면 꽃이 하루하루 싱싱하게 피어나서 큰 것은 수레바퀴처럼 됩니다. 만약 서원하는 마음이 물러나면 꽃은 하루하루 시들어서 소멸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연꽃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니 그 옷이 표표하게 흩날리고 보관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있어서 부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첩이 말하길 양걸楊傑이라 하였고 또 한사람이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첩이 말하길 마우馬玗라고 하였습니다.
부인이 묻기를 “나는 어느 곳에 태어나느냐?” 첩이 인도하여 몇 리를 가니 멀리 한 금단이 있는데 금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보이자 첩이 말하였습니다. “이곳이 부인께서 화생할 곳이니 상품상생입니다.” 부인이 깨어나고 나서 양걸과 마우가 있는 곳을 방문해 보니 양걸은 이미 죽었고 마우는 아무일 없었습니다. 이로써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비록 몸은 사바세계 안에 있어도 그 정신은 이미 정토에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부인이 생일날에 향로를 잡고 향을 사르면서 관음각을 바라보면서 있고 자손인 방구가 수명을 누리라는 의식을 올리는데 이미 선 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용서문龍舒文』
부인 풍씨馮氏가
병이 나아서 왕생하였습니다.
풍씨 부인은 진선사陳宣使에게 시집을 갔는데 진선사陳宣使가 사랑하고 공경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는데 시집가고 나서 병이 더욱 심해져 의사가 치료할 수 없다고 하자 자수심慈受深 선사를 찾아뵙고 병을 치유하는 방법을 물으니 심深선사가 청정하게 계를 지키고 염불하라고 시켰습니다. 부인은 오신채와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모두 버리고 나서 탑을 청소하고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전념하였습니다. 가고 앉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것 모두에 서방정토를 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찰나에 털끝만큼이라도 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물을 뜨고 꽃을 바쳐 송경誦經과 도를 행함이 한결 같았습니다.
이로써 서방으로 가는 공덕으로 삼아 십 년간 나태함을 용납하지 않자,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건강해졌으며 신기가 왕성해져서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였습니다. 하루는 홀연히 게송을 써서 말하길,
인연을 따라 업 지음이 그 몇 해인고.
늙은 소가 헛되이 밭을 갈았네.
신심을 거두어 일찍 돌아갔으면
사람들에게 콧구멍 뚫림은 면했을 것을.
가족들이 괴이하게 생각하자 부인이 말하길 “가면 서방으로 가는데 무슨 괴이함이 있으랴” 하고는 이내 병들어 누웠는데 미미한 천식 기운이 있었습니다. 홀연히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 말하길, “나의 정신이 정토에서 노닌다. 면전에서 아미타불께 예를 올리는데 왼쪽에는 관음보살께서 계시고 오른쪽에 대세지보살께서 계시며, 돌아보니 백천만억의 청정한 불자들이 머리를 조아려 내가 이 국토에 와서 태어남을 경축해주고 있다. 궁전과 숲과 연못에서 나오는 광명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화엄경과 십육관경에서 설한 것과 동일하다.”
다음 달 편안하게 숨졌고 집안사람이 미묘한 향내음을 맡았는데 인간 세계의 것과 같지 않았으며 삼일이 지나서 다비를 하였는데 시체는 살아있는 것과 같았습니다.----『용서문龍舒文』
관음현군觀音縣君의
시녀가 왕생함
관음현군의 성은 오씨吳氏이며 그의 남편인 여굉呂宏도 또한 불교의 이치를 깨달아서 부부가 각각 재계하고 정진수행 하였습니다. 오씨에게 두 시녀가 있었는데 그들도 또한 고기와 오신채를 끊고 부지런히 힘써서 훌륭한 업을 도왔는데 그 중 한 시녀가 자못 선리를 좋아하더니 병이 들어서도 기쁜 듯이 웃고 말하며 숨졌는데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중 한 시녀는 계율을 받들어 고행을 하였는데 어떤 때는 한 달 내내 먹지 않고 물만 마시는데 오씨가 송주하는 관음정수 한잔을 마실 뿐이었습니다. 홀연히 금련봉金蓮捧의 다리가 셋 달린 것을 보았는데 수일이 지나자 그 무릎이 보이고, 또 수일이 지나자 그 몸이 보이고, 다시 수일이 지나서 그 얼굴과 눈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아미타불께서 계시고 좌우측에 관음, 세지께서 계셨으며 집과 국토가 밝아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과 같아서 그곳이 정토임을 알았습니다. 그 자세한 것을 물으니 “그곳에는 모두 청정한 선남자들만 즐거이 노닐면서 경행하고 악인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부처님은 무엇을 설법하는가?”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천안天眼은 얻었지만 아직 천이天耳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만 묻고 대답하고 지시하고 돌아보는 것만 볼 뿐 그 설법하는 것은 듣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삼년 동안 일찍이 눈앞에 한 순간도 나타나지 않은 때가 없었는데 홀연히 병이 들었고 스스로 말하기를 왕생한다 하면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오씨吳氏는 신령스러운 관음을 모셨는데 항상 깨끗한 방에 가마솥과 그릇을 수십 개 줄지어 세워두고 물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손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송주를 하면 언제나 관음이 놓은 광명이 가마솥과 그릇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환자가 그 물을 마시면 문득 치유되었습니다. 송주를 한 물은 몇 년을 두어도 썩지 않았고 대한에도 얼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관음현군이라고 불렀습니다.---『용서문龍舒文』
청신녀 양씨梁氏가
눈이 밝아져서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의 청신녀 양씨梁氏는 괄주括州 사람이다. 숙세의 재앙으로 나면서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았는데 스님을 만나 염불을 하도록 권유받았습니다. 한 번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이 계합하여 정념正念이 상속되었습니다. 그런지 삼년 후에 두 눈이 환하게 열려서 다시는 티끌만큼도 가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질환이 나은 뒤에도 부지런히 간절하게 정진하였는데 정관貞觀 삼년 이월 중에 이르러 알리지 않았지만 스스로는 업보신이 다하여 임종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대사들이 깃발과 꽃을 들고 내려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 목숨을 마쳤습니다.----『왕생전往生傳』
온문정溫文靜의 아내가
어버이에게 하직하고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온문정溫文靜의 아내는 선천적인 질환으로 반신불수여서 침상에 누워 지냈습니다. 그 남편이 말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염불하지 않는가?”
그 아내가 물었습니다.
“어느 부처님을 염하지요?”
“아미타불을 염하도록 하시오.”
아내는 가르침을 받들어 이년 동안 정진하여 뜻이 끊어지지 않게 하니 죄장이 소멸되었고 아미타부처님께서 누 앞에 나타나시어 금색광명을 환하게 비추시니 모두가 이 성스럽고 신묘한 일을 보았습니다. 이때에 서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 남편에게 지극히 감사하면서 말하길, “오랫동안 병이 들어 고뇌와 환난이 적지 않았지만 가르쳐주신 염불의 은혜를 입어 특수하고 기이한 감응을 보았으니, 후일 업보가 다하면 저 국토에 왕생할 것입니다. 청컨대 부모형제와 모든 친척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이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문정文靜이 처음에는 믿기기 않았지만 간절히 청하는지라 시험 삼아 친척과 손님을 모았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신녀信女가 작별의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부처님의 뒤를 따라 서방으로 왕생합니다. 바라건대 부모님과 친척권속들도 부지런히 마음으로 염불하여 후에 와서 왕생하십시오. 염불 일문一門의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말을 마치자 곧바로 서쪽을 향해 정좌하여 스스로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여 불렀고 온 가족이 함께 염불하면서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시는 것을 보는 가운데 고요히 목숨을 마쳤습니다.----『왕생전往生傳』
오늘 이 도량의 대중이여, 위에서와 같이 비구니스님의 왕생을 설하였으니 오늘날 비구니 스님 된 이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거하면 욕심이 중한 사람이 부녀의 몸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미 선업을 짓지 않았는데 만약 자성하지 않고 다시 질투하고 탐욕을 부리면 업연이 더욱 깊어지니 과보가 가히 두렵다.> 만약 능히 마음을 돌려 참회하고 잘못된 생각을 끊어서 비첩婢妾을 인자하게 대하고 위아래 사람에게 온화하게 예를 갖추며 항상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면 결정코 극락세계에 태어나며, 만약 나아가 친척과 비첩婢妾을 교화하면 그 복이 무궁하여 반드시 상품에 왕생할 것이니, 다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
또다시 시방진허공계의 무량한 현상인 우전왕금상과 전단상과 우육왕등상과 오중석상과 사자국옥상과 제국토중칠보상과 진주상과 마니보상과 자마상색염부단금상께 귀의합니다.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여래의 모든 발髮탑과 치齒탑과 아牙탑과 조爪탑과 정골頂骨탑과 일체신중제사리탑과 가사탑과 시발匙鉢탑과 조병澡缾탑과 석장錫杖탑등 모든 불사에 귀의합니다.
또 다시 제불생처탑과 득도탑과 전법륜탑과 반열반탑과 다보불탑과 아육왕이 조성한 팔만사천탑과 천상탑과 인간탑과 용왕의 궁중에 있는 모든 보탑에 귀의하옵니다.
또다시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제불께 귀의하며,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존법에 귀의하며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현성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계를 범한 웅준雄俊스님이
갑자기 죽어서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 웅준雄俊스님은 강설을 잘했으나 계행을 지키지 않아서 시주물을 법답게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일찍이 환속하여 군대에 들어가 살육을 하고, 재난을 피해 달아나서 다시 스님이 되었는데 대력大曆 연중에 갑자기 죽어서 염라왕을 만났는데 지옥으로 들어가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웅준은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웅준雄俊이 만약 지옥에 들어가면 삼세제불이 허망한 말을 한 것이 됩니다. 관경觀經에서 말하기를 ‘하품에 태어나 오역죄를 지은 자라도 임종할 때 십념十念을 하면 왕생할 수 있다’ 하였는데 웅준은 오역죄를 짓지도 않았고, 염불로 말하면 헤아릴 수 없이 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서방정토에 왕생하여 대를 타고 숨을 거두었습니다.----『왕생징험전往生徵驗傳』
소 잡는 사람 선화善和가
십념하여 왕생하였습니다.
당나라의 장선화張善和는 소 잡는 것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임종할 때에 소 여러 마리가 사람소리를 내면서 <네 놈이 나를 죽였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화善和는 크게 공포심을 느껴 아내에게 말하길, “급히 스님을 청하여 나를 구해주오.” 스님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십육관경』에서 말하기를 [만약 사람이 임종할 때 지옥상이 나타나도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염하여 부르면 즉시에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선화는 향로를 찾을 겨를도 없이 왼손으로 불을 잡고 오른손으로 향을 들어 서쪽을 향해 전심으로 간절하게 염불하였는데 십성을 채우기도 전에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미타불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시어 나와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목숨을 마쳤습니다.----『왕생전往生傳』
원귀冤鬼를 본 중거仲擧가
급히 칭념하여 왕생하였습니다.
중거仲擧는 용서군龍舒郡 망강望江사람입니다. 일찍이 잘못하여 살인을 하였는데 후에 원귀가 나타났습니다. 중거는 두려워하면서 급급하게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니 귀신이 감히 중거를 가까이하지 못했으며 염불이 끝나지도 않아서 귀신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에 항상 염불하여 임종할 때 앉아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반년 후에 본가의 손녀인 묘광妙光에게 부附하여 말하길 “나는 아미타불을 염하였기 때문에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라고 하는데 거동과 언어도 평소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삼일 후에 집안사람이 말하길, “안타깝구나. 네가 살아 있을 때에 일찍이 귀신을 기꺼이 공양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거仲擧가 몸을 나타냈는데 엄연儼然하여 평소 살았을 때와 같은데 다만 얼굴에 조그만 얼굴 덮개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서방에서는 장생하므로 부처님처럼 머리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용서문龍舒文』
혹이 나는 병에 걸린 오경吳瓊이
잠깐사이에 왕생하였습니다.
임안부에 오경吳瓊은 먼저는 스님이었다가 후에 환속하여 전처와 후처 두 아내를 얻었는데 그 둘을 앉혀놓고 고기를 잡고 술을 마시면서 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요리를 하면서 오리와 닭 등을 죽일 때마다 손에 잡고 아미타불을 부르게 하였으며, 너는 이 몸을 벗어나서 좋겠다. 하고는 드디어 죽이고 연속해서 여러 번 아미타불을 염하여 불렀습니다. 고기를 자를 때마다 한편으로는 고기를 자르고 한편으로는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며 항상 염하여 부르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경을 염송하고 참법을 닦게 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권하였습니다.
후에 눈에 닭과 같은 혹이 생겼는데 이것을 크게 근심하고 공포를 느껴 초암草庵을 하나 짓고, 처자妻子를 분산시킨 다음 주야로 염불하고 참법을 닦았습니다. 소흥紹興 이십삼 년 가을에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경吳瓊이 내일 술시에 죽는다.”고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가지고 쓰던 그릇과 발우와 솥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주고 다음날 늦게 도반인 행파行婆에게 말하길, “오경吳瓊이 떠날 때가 거의 이르러 왔다. 나와 함께 큰 소리로 염불하여 서로 돕자.”하고 포삼으로 술을 마시고는 즉시에 게송을 써서 말하였습니다.
술처럼 모든 것이 <공>하구나.
선종의 깊은 이치를 묻노라.
오늘을 소중히 여길지니
명월과 청풍이로다.
단정하게 앉아서 합장하고 염불을 하였는데 열 번을 부르자 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오셔서 즉시 숨을 거두었습니다.----『용서문龍舒文』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이상에서 설한 것과 같이 악업을 짓고 흉한 일을 행하여 원업을 지어 병고에 걸려도 또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죄악을 지은 사람에게 권하니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평생에 죄악을 많이 지었으니 하루아침에 눈이 어두워진 후에는 장차 어찌하겠는가.>
시급히 참회하고 마음을 돌려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고 이와 같이 대원을 발해야 합니다.
<원하건대 제가 부처님을 뵙고 도를 얻은 후에는 태어난 이래로 피해 입은 중생들을 정토에 왕생하도록 모두 제도하겠습니다.>
다 같이 지극하고 평등하며 한결같고 간절한 마음으로 오체투지하며 세간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교주석가모니불教主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서방아미타불西方阿彌陁佛
지심귀명례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
지심귀명례 화일불花日佛
지심귀명례 군력불軍力佛
지심귀명례 화강불花光佛
지심귀명례 인애불仁愛佛
지심귀명례 대위덕불大威德佛
지심귀명례 범왕불梵王佛
지심귀명례 양명불量明佛
지심귀명례 용덕불龍德佛
지심귀명례 견보불堅步佛
지심귀명례 불허견불不虛見佛
지심귀명례 정진덕불精進德佛
지심귀명례 선수불善守佛
지심귀명례 환희불歡喜佛
지심귀명례 불퇴불不退佛
지심귀명례 사자상불師子相佛
지심귀명례 승지불勝知佛
지심귀명례 법씨불法氏佛
지심귀명례 희왕불喜王佛
지심귀명례 묘어불妙御佛
지심귀명례 애작불愛作佛
지심귀명례 덕비불德臂佛
지심귀명례 향상불香象佛
지심귀명례 관시불觀視佛
지심귀명례 운음불雲音佛
지심귀명례 선사불善思佛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청정대해중보살淸淨大海衆菩薩
또다시 이와 같은 시방진허공계의 모든 삼보와 한량없는 현성께 귀의합니다(拜)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이상과 같이 왕생전往生傳 가운데서 설한 사람들은 이미 더러운 땅을 벗어나 서방정토에 나아가서 포태胞胎를 버리고 칠보의 연못에 꽃으로 피어났으니, 만약 삼 아승지 겁을 지나지 않고 곧바로 불도를 이루며, 속히 생사를 뛰어넘어 열반의 영원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 왕생일문보다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