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음달, 열나흘, 쇠날.
지질학을 공부할 때 갖고 싶은 게 하나 생겼습니다.
곤드와나나, 판게아와 같은 지질시대의 대륙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내게 현재의 지구 모양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지구의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마침 그 지구의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중고물품을 내놓는 유선 시장에서 그걸 보았고
거래를 하기로 한 날이 오늘,
아침나절은 집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가
오후에 길 나서서 물건 받고 돈 지불하면서
큰 소득이 있었다고 혼자 흐뭇해 하면서
박물관 찻집으로 갔습니다.
박물관 찻집에서 내다보면
서쪽을 바라보는 산자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침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였고
그렇게 해가 넘어가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와
또 다른 해지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아직 해가 비치고 있는 산 위쪽과
이미 해가 진 산 아래쪽을 건너다보며
조금씩 그림자가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산 위의 나뭇가지에 벌써 내려앉기 시작한 봄이 보였습니다.
문득 ‘겨울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봄’이라는 말이
몸속 저 깊은 곳 어디선가 밀려올라왔고,
그래서 해지는 걸 보다가 계절의 다가오고 밀려나는 모습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얼음 꽁꽁 언 도랑 가의 버드나무는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버들강아지 눈뜬 지도 한참,
계절은 바뀌기 시작해서 봄이라는 것까지 헤아리다가
해진 다음 박물관에서 나왔습니다.
저녁은 임성재 관장과 같이 먹기로 하여
아내와 함께 임관장을 만나 식당으로 갔고
모처럼만에 낯선 음식을 먹으며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진 다음
돌아와 자리에 눕는 밤,
누가 뭐래도 이제는 봄밤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