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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23
씬1 더미, 준희의 방
더미, 스케치 노트를 챙기는 준희를 본다.
(더미의 속마음 소리) 강희 언니..나, 준희야. 기억이 나는 순간..나,
언니가 제일 보고 싶었는데. 언닌..내가 그립지 않았어?
준희, 문 쪽으로 돌아선다. 더미, 준희를 한 번 만져보고 싶다. 더미,
떨리는 손을 내밀어 본다. 준희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다.
준희,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다.
준희: ..왜?
더미: ..
더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준희를 와락 안는다.
준희, 놀라고 당혹스럽다.
준희: 왜 이래.. 더미씨..
더미: (목이 멘다) 꼭, 한 번만 안아 보고 싶었어요...
준희: ..(더미가 왜 이러지? 불안한..) 이거 좀 놔 줄래? (더미에게서 벗어난다)
준희,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더미를 바라본다. 더미의 눈가에 맺힌 눈물.
준희: 우리 이렇게 다정한 사이 아니잖아?
더미: 미안해. (가만히, 준희를 보다..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오늘..참
힘든 날이었는데...준희씨한테 위로 받고 싶었나봐..
준희: 데이트 나간 거 아니었나?
더미: 우리, 처음 만난 날도 그랬고. 그래, 선생님 드레스 망친 날 도와준
것도 그랬어. 준희씨와 내가..만난 그 모든 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준희: 그게 오늘날 이런 결과를 만들 줄 알았다면, 안 도와줬을 꺼야.
그런 운명은 사양하고 싶네.
준희, 스케치 노트를 들고 나간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더미.
씬2 앙상블, 이층 복도
준희, 스케치 노트를 들고 올라온다. 실습실 쪽으로 가려다가 마당을 본다.
더미, 큰 가방을 들고 나와 차연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준희: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씬3 앙상블, 마당/이층 복도
더미, 차연에게 야단맞고 있다.
차연: (눈에 쌍심지를 켠다) 내가 노처녀라, 질투 나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구 들어!
더미: 오해 안 해요, 선생님. 야단맞을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면목이 없어요.
차연: 원장님께선 너 외박한 거 한 마디두 하지 말라구, 연애두 해
보구, 실연두 해 보구,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감정은 다 맛봐야
예술이 깊어진다 말씀 하시는데. 건 그거구, 이래 가꾸야 기숙사
풍기 단속이 되겠니!
더미: 죄송합니다.
차연: 너 기숙사서 나가는 게 어떠니? 너희 어머니 서울 오셨대메?
그냥 방 얻어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애. 아주, 내가 넘 힘들어.
더미: ..
차연: 시장 가는 길이라니까, 일단 일 보고. 함 잘 생각해봐.
더미: 예..선생님.
더미, 인사하고 대문 쪽으로 나간다. 차연, 그 모습 못마땅하게 흘기고.
준희, 문 쪽으로 가는 더미의 뒷모습을 본다.
준희: ..(생각하다, 계단 쪽으로 뛰어 내려간다)
씬4 앙상블, 의상실 앞
더미, 걸어가는데. 준희, 달려와 더미를 부른다.
준희: 더미씨!
더미: (돌아본다)
준희: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해. 부자재 사러 가는 것 같은데,
시간 많이 뺏진 않을께.
씬5 국수집 안
준희,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신다. 더미의 앞에도 채워진 막걸리 사발이
놓여 있다. 더미, 준희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준희: 좀 전에 더미씨 행동 아무리 생각해두, 이해하기 힘드네.
어제 오늘 사이 더미씨 느낌이 달라..
더미: ..
준희: 무슨 일인지,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줬음 싶네. 괜히,
찝찝하고 바보 되는 기분 질색이야.
더미: ..
준희: (더미를 뚫어지게 본다)
더미: (놓인 막걸리를 마시고, 슬픈 듯)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준희: 뭐?
더미: 처음엔 준희씨, 날 좋아했었지.. 나도 그랬고..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 처음보다 더 많이 준희씰 좋아하고 있어.
준희: 내가 남자였음 감동할만한 애정 고백이네. (더미를 빤히 보다)
그랬지..자길 좋아했던 것도 맞고..지금, 이런 관계가..나 스스로두
너무 힘들어..
더미: 사람은.. 누구나 다 아파. 나도.. 준희씨처럼 실은.. 아파. 누구에게든
다.. 자기 몫의 아픔이 있는 거잖아. 준희씨가 아픈 만큼..한더미도
아프다 생각하고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전처럼 웃으면서..
지내면 안 될까?
준희: (한숨쉬고) 관계는 변해. 시간이 지나면..어떤 식으로든 변하기
마련이야. 그냥, 우린 이 정도라고 생각하자. 운명이니..뭐니,
그런 말 하지 말구, 우리관곈 이게 다라구.
더미: ..(막걸리를 마신다)
준희: 나한테 뭔가 특별히 할 말이 있나 했는데....
시간 뺏어서 미안 (일어나서 몸 돌리려는데)
더미: (준희의 손을 잡아챈다) 또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
준희: (본다)
더미: 준희씨 말대루, 시간에 따라 관계가 변하는 거라면.
우리 지금은 이렇게 서먹 해도, 좀..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질 수 있는 거잖아..
준희: (손 빼고) 글쎄. 왜 그래야 하는데?
더미: (뭐라 딱히 말하기가 힘들어서) 준희씰..좋아하니까. 준희씨
속마음도 그렇다고 믿고 있어.
준희: 내가 원하는 건...더미씨를..몰랐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그게 다야.
준희, 문 쪽으로 간다. 더미,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씬6 김포공항, 일각(저녁)
(공항 안내 방송) 홍콩발 대한항공 246편이 18시 30분
정시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오신 손님들은 입국장 2번 게이트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영, 서둘러 입국장 쪽으로 간다.
씬7 김포공항 입국장(저녁)
(공항 안내 방송)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홍콩발
대한항공 246편이 18시 30분 정시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오신 손님들은 입국장 2번 게이트를 이 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빈, 오른손으로 불편하게 가방을 들고 게이트를 나오고 있다.
홍콩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동영, 뛰어오다 빈을 본다.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무표정한 빈의 모습.
동영, 먼저 빈의 왼팔을 본다.
빈, 왼팔을 어정쩡하게 주머니에 집어넣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걷고 있다.
동영: ..(마음이 아프다)
빈: .(동영을 못 보고 왼쪽으로 간다)
동영: (그제야 표정 밝게 바꾸고) 장빈!!
빈: ..(무심코 동영이 부르는 소리에 본다)
동영: 빈아!!
빈: 어, 형!
빈, 습관적으로 왼손을 들어 인사하려는데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들고 있 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오른손을 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동영, 또 마음이 아프다. 동영, 빈에게로 걸어간다.
빈: (씨익- 웃는다)
동영: (웃는다) 많이 탔는데. 잘 놀다왔어?
빈: 뭐 그냥. 심심하진 않았어.
동영: (웃고)
빈: 정보력은 여전한데? 연락도 안했는데, 박철호 오는 건 어떻게
알고. 마중씩이나 나왔어?
동영: (짐짓 밝게) 짜식~ 넌, 이 형님 손바닥 안이라니까!
빈: 형 때문에 항공사 여직원 좀 설??겠는데. 그 죽이는 목소리로
매일, 입국자 확인한다고 전화통 붙들고 살았을 꺼 아냐.
동영: 어서 와라.. 주말 지나면 너한테 가려고 했다.
빈: 영, 못 견디겠더라구. 날은 덥지. (오른손 내밀며) 이따만한
바퀸지, 향량잔지 방안을 붕붕 날아다니지. 그거 잡아먹겠다고
도마뱀들은 내 배 위로 슬슬 겨 다니지.
동영: (웃음기 거두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빈아..
동영, 빈을 꽉 끌어안는다. 빈, 왼손은 여전히 주머니에 넣은 채로,
오른팔로 동영을 마주 안는다.
씬8 대한상사, 해외영업 2부(저녁)
동영과 빈, 자신의 물품들을 챙기고 있다.
빈: 이걸루 가발회사 직원두 짤린 건가? 또 백수네? 퇴직금두 없구 말야~
뭐, 이래.
동영: (웃으며) 퇴직금 대신 훈장으로 어떻게 해봐야 될 것 같은데?
보국훈장 광복장을 주신다는군. 비공식적이지만.
빈: 흠. 블랙은 훈장도 비공식이군. 훈장, 금이야? 팔면 한 재산 되나?
동영: 녀석.
동영, 자신의 물건 다 정리하고 보면 빈, 한 손으로 불편하게 물건을
챙긴다. 동영, 다가와서 같이 챙기려고 한다.
빈: (낮게) 그냥 둬.
동영: 얼른 하고 나가자. (물건 챙기는)
빈: 그냥 두라니까!! 형이 내 팔이 돼줄 수 없댔잖아! 언제까지
나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 해줄 꺼야!
동영: ...
빈: (머리통을 쓰다듬고) 미안해, 형. 차차 나아지겠지..
동영: 그래.. 나아져야지.
빈: (물건 집어넣다) 더미한텐 아무 말 안했지?동영: 그래.
빈: 영원히 말하지 마. 더미를 양보하겠다는 생각도 말고.
나, 동정으로 사랑을 구할 만큼, 쭈굴스러운 놈은 아냐.
더미한테 동정 받느니, 차라리 영 사라지는 게 나아.
동영: (가만히 보다) 빈아..
빈: (본다)
동영: .. 꼬맹이 준흰 생각나니?
빈: 뜬금없긴. 요새, 준희도 그렇고..형도 그렇고. 왜 자꾸
꼬맹이 얘길 하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동영: ..아니..그냥 궁금해서.
씬9 동양 상회(저녁)
목폴라 셔츠가 색상 별로 몇 개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목폴라 상품이 들어오고 있다. 태을방직, 셔츠를 입은 남자 직원들,
폴라티 를 옮기고 있다. 최비서, 동양 상회 박사장과 더미와 이야기 한다.
더미: 아직 시제품 원단 값도 못 드렸는데, 물건부터
주시구.. 고맙습니다.
최비서: (장난스레) 준희 아가씨 친구 분인데, 설마 원단 값
떼먹겠어요?
더미: 그래두요..(웃고)
박사장: 걱정마라, 더미야. 목폴라티 값은 내가 딸라 이잘 내서라두
내일 당장, 태을방직에 갖다 드릴 테니깐.
최비서: 내일 당장은 안 가져오셔도 됩니다. (웃고, 더미에게)
더미씨. 목폴라티 추가 생산 문제로 회장님이 내일 좀 뵙자고
하시던데요.
더미: ..(마음이 무겁다) 내일은 그렇구요..제가 전화 드리고 갈께요.
최비서: 그래요, 그럼. (동양 상회 사장에게) 목폴라 여기 방산에서
부터 크게 인기몰이 하세요. 나중에 세부 사안은 다시 연락해서
의논하죠.
박사장: 예~ 살피 가이소. 고맙습니데이!
최비서, 더미에게 인사하고 나간다.
더미: 장사 잘 됐음 좋겠어요~ 메리야스 시장이 쫌 그러니까,
목폴라라두요.
박사장: 잘 되믄, 좋구. 안 돼두, 니 성의가 고맙데이.
(더미 손을 덥석 잡는다)내사, 더미 니가 참말로 이걸 맹글 줄은
생각도 몬 했다.
더미: ..(따뜻하게 웃는)
씬10 앙상블, 기숙사 앞(저녁)
동영, 빈 대신 윌리스를 운전해서 왔다. 동영, 시동 끄고 내린다.
빈, 내려서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아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동영: ..(그 모습을 본다)
빈: (동영과 시선이 마주친다. 씨익- 웃는다)
동영: 자- (키를 준다)
빈: (지프를 보고) 이거, 형 가져라.
동영: 말 안 되는 소리 할래?
빈: 누가 영 가지래? 잠깐만 맡아둬. 차란 게 그렇거든. 오래 안 쓰고,
그냥 세워두면 망가져. (차를 쓰다듬으며) 이 놈까지 망가지면,
내 기분이 영 그럴 것 같거든. 닦고, 조이고, 기름 쳐줘.
동영: (키를 빈의 주머니에 넣어준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건
너도 할 수 있어. 내일 데리러 올께. 두시에 국방부 들어간다.
빈: 가야지, 훈장 준다는데. (동영을 보다) 말 안 해줄 꺼야?
동영: 응?
빈: 내가 말야, 짧은 블랙 생활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눈치거든.
우리, 가능하면 꼬맹이 얘기 입에 안올리려고 했었잖아. 무슨 일이야?
동영: (더미하고 약속했다. 잠시 망설이다) 그냥..너한테 그 아인 어떤
존재였을까..궁금해서. 다른 뜻은 없어.
빈: 내 첫 키스 상대~
동영: 첫 키스?
빈: 응~ 꼬맹이가 이별의 선물로, 나한테 찐하게 키스를 했었지..보고 싶다
..꼬맹이..그때, 내가 데리고 부산으로 가야했었는데..늘, 후회가 돼.
동영: ..들어가. 내일 보자.
동영, 빈에게 웃어주고 간다. 빈, 그 모습을 본다.
씬11 앙상블, 마당(저녁)
빈, 한손으로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차연, ‘저녁 아직 안됐어?!’ 소리 지르고 나온다.
빈: 이모? 여전히 목청은 끝내주는데~
차연: (보고) 빈아!! 언제 왔어!! 출장 갔다 오는 거야!
빈: 응~
식당에서 앞치마 입고 나오던 연경과 상희, 피에르 보고 놀란다.
피에르: 형!!
연경: 어머 어머, 어머! 빈씨!! 나의 우상 빈씨!!! 이제 오는 거예요!
상희: 지금 온다잖아.
연경: 어머, 어머. 웬일이니! 어젯밤에 똥 꿈 꿔서 횡재할 일 있다
했거든요~빈씨가 올 줄 몰랐어요!!
빈: 누나, 너무 반가워해주네? 기분 좋긴 한데. 똥 꿈은 좀 아닌 것 같은데~
연경: 아무렴 어때요!! 이렇게 왔음 됐지~
연경, 빈에게 달려오다 빈의 팔을 툭-친다. 그 바람에 박스가 떨어져서
물건이 우르르- 쏟아진다. 연경, ‘어머! 어떡해!’ 놀라고. 장봉실,
내려오다 빈을 본다. 준희, 자신의 방에서 나오다가 빈을 본다.
장봉실: ! 빈아..왔니..
빈:하이? 여사님.
장봉실: ..좀 야위었구나..
빈: 워낙 더워서요. 식사들 하세요.
차연: 너두 먹어야지.
빈: 나? 아직 생각 없어. 들어가서 식사들 해요. (연경에게)
누나두 들어가서 밥 푸던 거 마저 푸지~ 이건 내가 할 테니까.
장봉실, 아들을 바라보다 식당 쪽으로 간다. 원생들, ‘반찬은 뭐야?
카레 냄 새 나는데~’ 하면서 간다. 준희, 빈을 본다.
준희: 안 오나 했는데, 왔네?
빈: 어. 고준희 보고 싶어서.
준희: 흐흥. 동영씨랑 한바탕 소동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는데.
더미에 대한 사랑보다 우정이 깊은 모양이지?
빈: 실망했냐? 형이랑 사생결단 안 해서?
준희: 뭐..쪼끔. 원래 자기가 싸우는 건 싫어두, 대리전은 통쾌하잖아.
빈: (피식- 웃고) 더민?
준희: 시장 갔어. 오겠지. (바닥에 늘어진 걸 보며) 도와줘?
빈: 들어가서 카레나 드시지 그래. 더미 껀 남겨 놓고~
씬12 앙상블, 근처 거리(저녁)
동영, 생각에 잠겨 걸어가다 귀가하던 더미와 만난다.
더미: 오빠.
동영: (본다. 반갑게 웃고) 좀 잤어?
더미: (고개 젓고) 밀린 과제 하느라 잘 시간두 없었어요. 오늘은 일찍 자야지.
동영: ...생각은..여전히 그대루야?
더미: (고개 젓는다) 아침에 엄마 만났어요. 엄마두 만나구..강희
언니두 보구. 얘기도 해보구, 생각도 많이 해봤어.
안 하려구 해두, (머리를 만지며) 여기에 생각이 달라붙어 있으니까
안할 수가 없잖아.
동영: 내가...강희 어머니를 만나두 될까?
더미: (놀라서) 건 안돼!
동영: ..
더미: 나... 엄말 잃구 싶지 않아요.
동영: 강희 어머니가..아실까..지금 더미가 뭘 희생하면서까지..그 분을
지키려고 하는지..
더미: ..(말 바꾸는) 나 보루 온 거예요?
동영: 빈이하고 같이 왔어. 데려다주러.
더미: (놀란다) 빈이 오빠가.. 왔어요?
동영: (웃는) 그래, 얼른 들어가 봐.
더미: (고개 끄덕이고) 고마워요. 내가 누군지 알게 해줘서..
내 가슴 깊숙이 묻어둔 사람들이 누구라는 거..알게 해줘서.
동영: (고개 끄덕인다)
더미: 아빠를 찾게 해주고.. 나조차 잃어버린 날,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오빠.
동영: 널..찾은 것이..우리..모두한테 기쁨이 될 날이..올 꺼야.
그렇게 될 꺼라고 믿자. (더미를 한 번 안아준다)
더미: ..
씬13 앙상블, 마당(저녁)
빈, 마지막 물건까지 박스에 다 넣었는데 들기가 버겁다.
문 열리고 서둘러 더미, 들어온다. 더미, 빈을 본다.
더미: 빈씨..
빈: (씨익-웃는다) 잘 있었어?
더미: ..
더미, 빈을 본다. 저 사람이, 어린시절 나를 살려주고, 좋아해줬던
사람이다. 더미, 어린 시절 빈을 떠올린다.
(인서트) 2부 씬60
어린 빈이, 준희에게 엄마, 아빠를 찾는다는 나무 판대기를
해주던 장면.
준희: (빈의 목을 끌어안는다) 고마워, 오빠. 살려줘서 고맙고.
저것도 고맙구. 너무너무 고마워.
빈: (준희를 꼭- 안아준다)
준희: (빈의 뺨에 뽀뽀-한다)
더미: ..(빈을 바라보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빈: 어~ 뭐야? 그 표정은. 내가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뻔 했단 얼굴인데?
더미, 빈을 바라본다.
(인서트) 2부 씬 62
비 오는 봉화여인숙 앞에서 트럭을 타고 떠나는 빈의 모습.
빈: 나중에 아빠, 엄마 찾으면 부산으로 와!! 오빠한테루 와, 준희야!!
준희: 응! 알았어!! 꼭, 가께!!
빈: 준희야!!!
더미: ..(눈물이 고인다)
빈: 진짠데, 이거. 떨어져 있어보니까, 진짜 네가 사랑했던 건 형이
아니라, 나란 걸 알게 된 거냐?
더미: (자기도 모르게 툭, 떨어진 눈물을 닦는다)..
빈: 그 눈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설마 나, 보고 싶어서 운 건아니지?
더미: .. 많이 걱정했어요.
빈: 그냥 걱정만 한 거냐? 그래도 조금은 나, 보고 싶었지?
더미: 건강하게 돌아와서 기뻐요. 잘 왔어요. (웃는)
빈: .. 들어가. 저녁 먹어야지.
빈, 박스를 들고 일어선다. 더미, 보고 있자니 어딘가, 이상하다.
더미: 왜 그래요? 팔 다쳤어요?
빈: 아니. 그냥, 장난치다 좀 삐었어.
더미: 병원은 갔어요? 어디 봐요. (다가가 보려고 한다)
빈: 괜찮아. 암 것도 아냐.
더미: 안 괜찮아 보이니까 그렇죠? 어디 봐요?
빈: (버럭) 괜찮다니까! 아무 것도 아니라잖아!
더미: ..빈씨..
빈: 미안. 갑자기 너, 이렇게 다정한 연인처럼 굴면,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잖아..혼란스럽잖아. 들어가서 밥 먹어.
(더미를 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널, 다시..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더미..
빈, 박스를 들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더미, 불안한 시선으로
그런 빈을 본다.
씬14 빈의 방(저녁)
빈, 상자를 내려놓는다.
빈, ‘젠장!!’ 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문지른다. 빈, 주머니에서 더미의
코끼리를 꺼내 들고 침대에 앉는다.
빈: 널 돌봐 주고 싶었지..네가 돌봐주는 남자가 되고 싶진 않다.
한..더미.. 나, 너한테 짐 되기 싫은데...떠날 용기도 없어..
붙잡을 용기는 더더욱 없고..
빈, 코끼리를 쥔 채 그 자세대로 벌렁 뒤로 눕는다.
씬16 고창회의 집, 서재(아침)
고창회, 유언장에 증인 두 명의 사인을 받고 있다. 가정부, 이름 적고
준비한 도장을 찍는다. 최비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인서트) 고회장의 자필 유언장
유언장
본인 고창회는 누구의 강요나 압박 없이 오직 자의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합니다.
본인 유고시 본인 고창회 명의의 태을방직과 자회사인 숙녀복 뷰티,
기타 가회동 집 및 금전 신탁, 예금 전부를 고준희에게 상속합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 7번지
날짜: 1969년 8월 8일
고창회 (이름과 도장)
증인: 김순덕
최창호
창회: 고마워요, 옥천댁.
가정부: 아이구, 회장님. 별 말씀을요. 준희 아가씬, 집에 통 안 오시네요.
창회: 일이 좀 바빠서. 얼른 준비해줘요. 준희 갈아입을 옷도 좀 챙기고,
밑반찬도 좀 챙기고.
가정부: 예, 회장님. (인사하고 나간다)
창회: (최비서를 본다) 증인 안 서줄 건가?
최비서: (울화통이 터진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회장님. 태을방직도
뷰티도, 전부 다 아가씨한테 남기시면, 친 따님한테는 도대체,
뭘 주시려구요?
창회: (웃으며) 이 고창회가 그렇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나?
최비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회장님. 만에 하나..친 따님을 못
찾으신다면..어차피 아가씨한테 돌아갈 유산입니다.
이렇게 서두르실 이유가 없습니다.
창회: 강희한테..내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네. (웃으며)
이 사람아, 강희사업 감각이 있어. 어려서부터 내 옆에서 배웠는데
태을방직 잘 이끌 꺼야.
최비서: 회장님.
창회: 준희를 찾는다면 말일세. 마음껏 사랑해 줄 꺼야..이젠,
다 자라서, 이 아빠의 사랑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두 팔을 벌리고) 이 팔에 꽉 안고 그 긴 세월..못 안아준 만큼..
안아줄 걸세.
최비서: ..
씬17 고창회의 집, 마당
가정부들, 밑반찬과 준희의 짐들을 차에 싣는다.
고창회와 최비서, 이야기 나눈다. 운전사, 차에 시동 걸어 놓고 차 안에
타고 있다.
창회: (최비서에게, 유언장이 든 서류를 주며) 오변호사한테 갖다 주고,
저녁에 나 좀 보자고 하게.
최비서: 알겠습니다. (차 뒷좌석 문을 열어준다)
창회: (차에 오르면서) 가능하면, 준희하고 점심 같이 먹고 공장으로
바로 가겠네.
최비서: 예, 회장님. (문 닫아준다)
최비서와 가정부들 인사한다. 고창회가 탄 차, 떠난다.
씬18 앙상블, 식당(아침)
준희, 상희와 차를 마시고 있다. 흘금거리면서, 보는 연경.
상희: 저번에 내가 원장님한테 말씀드린 거 못 들었어요? 나, 디자이너
되려고 공부하는 거지, 준희씨 도우려고 여기 온 거 아니거든요.
준희: 알아요, 아는데..난 상희씨 도움이 필요해요.
상희: 내가..왜 필요한데요?
준희: 작년 가을에, 상희씨 아버님.. 오봉철 선생님이 염색 하신 모시
작품들 전시봤어요. 나, 이번 패션쇼 작품에 천연염색 하고 싶어요.
상희: 글쎄, 그걸 왜 내가 도와야 하냐구요?
준희: 관곈 다 기브 앤 테이크죠. 상희씨가, 날 도와주면..
태을방직에서 하는 염색 공정 일부를 상희씨
공장에 맡길께요.
상희: ..(입술 빼물고 생각하는)
준희: 부탁해요. 상희씨. 이번 한 번만 도와줘요.
씬19 앙상블, 실습실(아침)
원생들, 전부 자리에 앉아 있고. 방육성과 차연,
한쪽에 서서 보고 있다. 장봉실, 더미와 준희에게 팀에 대해 묻고 있다.
장봉실: 그래, 팀 구성은 끝났니?
준희: 네.
더미: ..
장봉실: 그래? 그럼 준희 팀부터 들어볼까?
준희: 오상희 선배하고, 방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방육성을 본다)
더미: !! (놀라서 눈이 뚱그레진다)
방육성: (놀라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킨다) 나?
차연: 어머머! 어머!! 세상에! 간도 크지. (방육성을 보며)
선생님이 필요하데요! 세상에 원장님 파트너를..
어머..기 막혀.
장봉실: 팀은 원생들 중에 꾸리라고 했지 않아? 마음에 안 들면
뷰티에서 데려와도 좋구.
준희: 원생들 중에서는 제 디자인을 재단해 줄 사람이 없어서요.
뷰티도 부족해요. 제 디자인을 백프로 살려 줄 프로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장봉실: ..(고민하는)
준희: 부탁드려요. 원장님.
장봉실: 좋아. 그렇게 해. 방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인정하겠어.
준희: (방육성에게) 부탁드립니다..선생님. 선생님의 재단이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방육성: ..(곤란한 듯 더미를 보고, 준희를 보다) 좋아. 그렇게 하자.
준희: 고맙습니다...
장봉실: 더미는 아직, 팀을 못 꾸린 거니?
차연: (혼잣말로) 퍽하믄..기숙사 밖으루 나가는데, 뭔 정신으루
팀을 꾸렸겠어.
더미: 지난 번 (상희를 보며) 오선배가 원장님께 말씀드린 게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들, 디자인을 하고 있고, 작품 준비하기도
버겁다는 거잘 알아요.
상희: ..(좀 미안한)
더미: (원생들을 보며) 두 분만 절 도와주세요. 제가 누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 보다는..혹시라도, 제가 만드는 옷을 좋아하시는
선배가 있다면..절..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원생들: ..
장봉실: 흠.. 그래, 더미가 이렇게 말하는데, 너희들 중 도와줄 사람 없니?
원생들: ..
더미: ..(연경을 본다)
연경: ..(곤란한 듯 눈을 내리깐다)
더미: ..(피에르 방을 본다)
피에르: ..(시선을 벽 쪽으로 돌리며 딴청 한다)
장봉실: (더미를 보고) 어떡하니? 널, 도와줄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어쩔 꺼지? 포기할 껀가?
더미: (야무지게) 아뇨. 저, 혼자 하겠습니다.
장봉실: 괜찮겠어? 기한까지 해낼 수 있겠어?
더미: 네. 기한까지, 틀림없이 완성하겠습니다.
장봉실: 완성도 중요하지만, 너희들 패션쇼에 초대한 앙상블 고객들,
기자들 눈에 허술한 작품 내보이지 마.
씬21 장봉실의 방
지난 번 더미와 준희가 발표한 옷 중. 준희의 가장 화려한 드레스와
더미의 가장 개성적인 옷 한 벌씩이 마네킹에 걸려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장봉실과 방육성, 차연, 이야기 나누고 있다.
차연: 게임 끝났네요, 뭐. 볼 것도 없이 고준희가 선생님 따라
오사카 가겠네요.
장봉실: 확신할 수 있어?
차연: 옷을 만드는데 재단이 얼마나 중요해요. 방선생님이 고준희
팀인데, 더미가 상대가 되겠어요.
방육성: 더미..의상도 제가 도우면 어떨까요? 그게 공정한 것 같은데요.
장봉실: 팀을 꾸리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이야. 방선생은 준희 작품에만
몰두해야 하지 않을까?
방육성: 아무래도..더미가 불리하겠군요..
장봉실: 글쎄, 건 두고 봐야 알겠지. (준희와 더미, 의상 디스플레이 된 것을 보고)
준희 옷을 봐. 프라이드가 넘치지?
방육성: 도도하고, 화려하고, 매혹적이죠.
장봉실: 그래두..왠지 정감이 안가잖아? 쇼윈도우에 내걸어야 할 옷이지,
현실의 고객들이 입을 수 있는 옷 같지가 않아.
차연: 건 그래요. 선생님. (더미 옷을 힐끔 보며) 그래두..전,
더미 옷보단 나아요.
장봉실: (더미의 옷을 만져본다) 개성이 너무 강해. 너무 앞서가면
부서지기 쉬운 건데..더민 아직 그걸 몰라. 다른 예술과
달라서 옷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없지..입어줘야 하는 거야..
차연: 아마두요. 앙상블 고객들은, 한더미 의상을 좋아하진 않을 꺼예요.
장봉실: (두 아이들의 옷을 보며) 더미와 준희를 반씩만 섞어 놓을 수
있담..얼마나 좋을까..
(소리) 전화벨 울린다.
차연: (받고) 네, 장봉실 선생님 방입니다. (사이) 응, 그래? (사이) 알았어.
차부터 내드려. (끊고, 장봉실에게) 고회장님이 오셨다는데요?
씬20 앙상블, 강의실
더미, 스케치를 하고 있다. 연경과 피에르 방, 슬금슬금 다가온다.
피에르: 미안해요. 더미씨.
더미: 칠호씨가 미안할 게 뭐 있어요. 괜찮아요.
연경: 나두 미안해, 자기야. 우리 사실, 원생들 다 너랑 준희씨 팀
안 되기루 약속 했었걸랑? 상희 기집애가 배신 때려서.
쫌 그렇긴 한데..이해해 주라.
더미: 충분히 이해해, 언니. 아마, 내가 선배들이었어두 맘
안 내켰을꺼야.
연경: 그치? 건..그런데 어떡하니? 준희씬, 막강한데. 상흰 뭔 도움
되는지 모르겠지만, 방선생님까지..돕구.. 더미야, 너 넘
불리해서 어떡하냐?
더미: 언니, 있지. 옷두 마음이잖아. 이 옷을 손님에게 입히구 싶다는
디자이너의 마음. 재단하는 분의 마음. 그게 다 합쳐서
작품이잖아.
피에르: 그렇죠.
더미: 그래서 그래요. (연경을 보면서) 애기 손이라두 빌리고 싶긴
하지만. 선배들이 억지루 돕는 건..건, 나두 내키지 않아.
연경: ...작품..주젠 잡은 거야?
더미: 응! (고개 끄덕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연경: 뭐?
더미: 내가 우리 고향에서 봤던..그 사계절의 느낌을 옷으루
표현해 볼 꺼야. (웃는)
씬22 앙상블, 의상실 안
먼저 기다리고 있던 고창회, 장봉실과 인사한다.
장봉실: 앉으세요, 회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창회: (앉고) 딸아일 맡겨 놓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영 인사가 아닙니다.
장봉실: 호호~ 회장님도. 준흰, 성인이구, 자기 갈 길을 아주
영리하게 가고 있답니다. 이러다 준희, 파파걸이 되겠는 걸요.
창회: (웃고,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탁자에 놓는다)
장봉실: ? (의아한 시선으로 본다)
창회: 일전에 우리 준희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여사님, 원생들
가르치고..기숙사도 사비로 운영하시고. 힘이 많이 드실 거라고.
아빠가 좀 도와드리라구요. 제가 이제야 생각이 미쳐서요.
장봉실: (웃다가, 밀어 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제 기쁨이라서
하는 거구요. 장봉실, 이대로 버틸 만 합니다.
창회: 여사님.
장봉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릴께요. 준희, 기다리고 있을 꺼예요.
들어가 보세요.
씬23 더미, 준희의 방
준희, 초조한 듯 기다리고 있다. 노크 소리 난다.
(고창회의 소리) 준희야, 아빠다. 좀 들어가마.
준희, 문득 더미와 양자의 사진에 시선이 간다. 얼른, 뒤집어 놓는다.
고창회, 들어온다. 고창회, 가방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잠시 말이 없다.
창회: (가방을 내려놓고) 우선 급한 대로 옥천댁이 챙긴 거다.
갈아입을 옷이야.
준희: (서운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본다) 뭐하루 오셨어요?
창회: 우리 딸이 집에 안 오니까. 자식은 부모를 안보고 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 안보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준희: 그건..저한테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껴두셨다 준희한테 하세요.
창회: 준희야.
준희: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두 번 다시, 아빠한테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창회: 어떻게..하면.. 아빠를..용서해 주겠니?
준희: 준흴 잊을 수 있으시겠어요?
창회: !
준희: 이대루, 절 준희라고 생각하고..아니, 준희라고 믿고 사실 수 있겠어요?
창회: ..(준희를 와락 끌어안는다) 아빠가, 널..이렇게까지 상처 입혔구나..
미안하다..준희야.
준희: (품에서 야멸차게 빠져 나온다) 그렇겐 못하시겠죠?
창회: 네가..사랑하던 동생이야.. 아빠가..미운 건 알겠지만,
너희 둘 친...자매처럼 지내던..그 때를 생각해서,
준희를...찾게 해다오.
준희: 그래요. 찾으세요. 근데, 아빠..세상은..그렇게 많은 걸 주는 게
아닐 꺼예요. 하날..얻음 하날 잃게 돼있는 거라는 거,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창회: ..
준희: 이대루...아빠...준희..엄마..나. 이건 아니잖아요. 아빤,
아빠 길로, 강흰, 강희 길로..갈 때가 된 거에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준희, 차갑게 돌아서서 책상에 앉는다. 고창회, 그런 딸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준희의 어깨를 한 번 살며시 쓰다듬어 준다.
창회: 또..오마.. (나간다)
준희: ..(꼼짝 않고 앉아있다)
씬24 앙상블, 마당
고창회, 침통한 표정으로 분수대를 짚고 서 있다. 이층, 실습실에서
내려오던 더미, 고창회를 본다.
더미: ! (자기도 모르게 아빠..라는 소리가 나오려 한다,
입 모양으로) 아...빠
창회: ..(듣지는 못했고, 인기척에 돌아본다. 더미다)
더미: 회장님..오셨어요..?
창회: (애써 미소 짓는) 응..더미양..안 그래도..나, 더미양을
좀 보고 가려 했는데.
씬25 제과점 안
더미와 창회, 빵과 우유를 놓고 앉아 있다.
창회: 목폴라티를..완제하고 싶다는 의견이 제품 개발실에서
자꾸 올라와서 말야.
더미: 예..
창회: 왜? 태을방직에서 만드는 게 마음에 안 드나?
더미: 아뇨. 시제품에서 일차 사백 벌 전부 회장님께서 만들어 주셨는데,
너무 감사한데 싫기는요.
창회: 그럼 우리 회사에 맡겨주는 거지? 오늘이라도 계약서 보낼께.
더미: 저한테 보내지 마시구요. 최비서님이 아세요. 동양 상회 사장님
한테 보내주세요. 그 분께..만들어 드린다고 약속했거든요.
창회: 음..더미양한테..상당한 이익금이 돌아갈 텐데.
그렇게 해두 정말 괜찮겠어?
더미: 네.
창회: (미소) 얼른 들어요. 돌아서면 배고프고, 출출할 나인데.
(빵을 찍어준다)
더미: 드세요..회장님도..
창회: (웃고) 아니..난, 저번에도 말했듯이..빵을..안 먹어요.
더미: ..
더미,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왜 빵을 안 먹는지 이제야 기억이 난다.
(인서트) 2부 8씬.
고창회, 준희에게 페스트리를 들려준다.
창회: 엄마 화 좀 풀리면, 데리루 올께.
준희: (의심스럽다)...진짜?
창회: 그래. 이거 다 먹기 전에 데리루 올께.
배시시 웃더니, 페스트리를 받아들고 덥석 한 입을 깨무는 준희.
창회, 딸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큰 손바닥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다가, 딸의 이마에 뽀뽀를 해준다.
더미: (눈물이 울컥, 솟구친다)
창회: (놀란다) 더미양! 왜 그러나?
더미: 아니에요.. 암..것..두..아니에요..
더미, 그래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포크를 내려놓고,
입을 막고 뛰어 나간다. 고창회, ‘더미양!’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씬26 제과점 앞
더미, 돌아서서 울고 있다. 고창회, 다가와서 손수건을 내민다.
더미: (받아서 눈물을 닦는)
창회: 내가 나도 모르게, 더미양한테 실수..한 게 있나?
더미: 아뇨..아니에요. 회장님..
창회: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상의를 해요..들어줄 테니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더미: 그럴께요..고맙습니다.
씬27 앙상블, 앞
더미와 고창회, 서 있다.
창회: 준희가..요즘 나한테 섭섭한 게 있어서 힘이 많이 들꺼야.
더미양이 우리 준흴..잘 위로해주겠나? 응?
더미: ..제가, 위로가 될 것 같진 않지만..그럴께요, 저도..준희씨...
정말 많이 좋아해요.
창회: 고맙네..(더미의 손을 꼭 잡아준다)
고창회, 자신의 차에 오르고, 출발한다. 한쪽에 선 더미, 그 모습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으로 바라본다. 더미, 손에 든 고창회의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고창회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씬28 을지여인숙, 마당
준희, 힘없이 들어온다. 양자, 월남치마를 빨아 널다가 준희를 본다.
양자: 강희야.. 왜 그래!
준희: (한쪽에 기대서서 양자를 본다)
양자: 어디 아파!
준희: 몰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숨을 못 쉬겠어. 숨쉬기가 힘드네.
양자: ..
씬29 여인숙, 한 방
준희, 방을 둘러본다. 도처에 굴러다니는 소주병. 양자,
민망한 듯 쓰러진 술병을 주섬주섬 세워 한쪽으로 치운다.
준희: 아무래두 엄마랑 나, 신문에 나겠네. 딸은 심장 마비루 죽구,
엄만 알콜 중독으로 죽었다구.
양자: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야, 어찌 됐건 상관없다만.
너한테는 앞으루두 쭉, 좋은 일만 있어. 그런 험한 일이
너한테 왜 일어나!
준희: 더미가..안가겠다 그러지?
양자: 준희야...더민, 그냥...두구.. 너가 어디 다른 나라 가서 공부하면
안 되겠니?
준희: 유학 가라구? 엄마까지 이젠 내가 짐스러운 거야?
양자: 엄마랑 같이 가자. 정 괴로우면 너하구 나하구 같이 가.
고사장이 너, 모른 체 할 리두 없구. 잠잠해 질 때까지 우리 모녀,
딴 나라 가서 살면 안 될까?
준희: 그렇게 도망가구 싶음 엄마나 가! (생각하다) 더미구나?
더미랑 엄마 무슨 일 있었지?
양자: 무슨 일은..아냐.
준희: 아냐. 더미가...좀 이상했어. 자기가 누군지 아는 게 아닐까..
나, 어제 오늘 계속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양자: (눈치 보면서) 또 괜한 걱정한다. 더미가 알았으면 벌써
고사장도 알고, 일 터졌겠지.
준희: ..(고민하는)
씬30 빈의 방
빈, 재킷을 입으려고 한다. 오른쪽 팔, 셔츠만 입었는데 왼팔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빈의 팔에 통증이 온다. 책상 위에 놓인 약통을
열어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
꽃병에 꽃을 한 아름 들고 들어오던 장봉실, 아들을 본다.
장봉실: 빈아..(하려는데, 돌아선 아들이 심상치가 않다)
빈, 왼팔을 덜덜 떨며 진통제를 겨우 삼킨다. 빈, 식은땀을 닦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들어 옷을 입으려고 하지만 안 된다.
빈, 옷을 들어 패대기를 친다.
장봉실, 새파랗게 질린다.
장봉실: 빈아!! (화병을 떨어트린다.)
화병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
빈: ! (돌아본다)
장봉실: 어..떻게..된 거니...팔이..빈이, 너..어떻게 된 거야!!
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장봉실: 다친 거니..? (다가와서 왼팔을 올려보려 한다)
빈: ..(통증을 참다가, 억지로 장봉실에게서 팔을 빼낸다)
장봉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왜 팔이 움직이질 않아! 무슨 일이야!
빈: 걱정할 꺼 없어요. 아무 것도 아니랬잖아요.
장봉실: 그래? (약병을 들고) 아무 것도 아님, 내가 동영이한테 물어
봐두 되겠지? 이게 뭔지? 왜 내 아들이 이걸 먹는지,
알아봐도 되는 거지!
빈: 이리 주세요.
장봉실: 사실대루 말해!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가 알아야겠어!
빈: ..(어쩔 수가 없다) 언제까지..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근데, 좀 빨랐네요. 독립하구..시간 지나구, 제 자신부터 추스르고
나서, 알게 되셨음 했는데.
장봉실: ..(초조하게 본다)
빈: 앞으루...이 팔..못써요.
장봉실: !
빈: ..쓸데없는 희망 가지실까봐 미리 말씀 드릴께요. 현대의학으로
나을 희망이 전혀 없어요. 그냥, 이건..장식품이에요. 그래두 달려
있는 게 낫잖아요.
장봉실: ...(정신이 없다)
빈: 죄송해요.
장봉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다. 눈물이 난다)
빈: 울지 마세요. 죽는 것 보단..그래도 낫다고 생각하세요.
장봉실, 빈을 와락- 끌어안는다. 빈, 잠시 멈칫한다.
장봉실: 엄마가..미안해.. 모든 게 엄마, 때문이야...언제나 불안했어.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아서 마음 졸였는데...미안해..빈아.
빈: ..(장봉실을 한 팔로 떼어 놓는다) 덥네요.
장봉실: (다가가려고) 빈아..엄마하구..어디 다른 데 가서 살까?
그러자, 우리.
빈: 나이가 들었나 봐요. 제가.
장봉실: (본다)
빈: 예전엔 분명히 여사님한테 안겨보고 싶은 날들도 있었는데...
안겨봤는데도..아무 느낌이 없네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나보네요.
장봉실: ...조금..더 연장해 줄 순 없겠니? 조금만..아주 조금만..
연장해 주지 않을래?
빈: (피식- 웃는) 집 알아볼께요.
장봉실: 빈아.
빈: 여기 있으면, 나 괴롭고..여사님 괴롭고. 조만간 독립해서 나갈께요.
빈, 약병(24부에, 김홍석의 집에서 더미가 빈이 팔을 다친 것을 아는데
필요한 소도구)을 주머니에 넣고, 재킷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간다.
장봉실, 의자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빈아..빈아..’ 부르며 흐느낀다.
씬31 김홍석의 국방장관 집무실
동영과 빈, 허진기 훈장을 수여 받고 있다. 김홍석의 비서관,
훈장 케이스를 들고 서 있고. 김홍석, 훈장을 달아준다.
김홍석, 허진기, 빈, 동영의 순서대로 훈장을 달아준다.
세 사람, 경례한다.
김홍석, 경례 받고, 빈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빈의 왼손을 두 손으로 잡는다.
빈: ....
동영: ..(빈을 쓰린 눈으로 바라본다)
씬32 동, 집무실(시간경과)
김홍석과 허진기, 동영, 빈 소파에 앉아 있다. (비서관은 자리 떠났다)
김홍석: 비공식적인 훈장이라, 각하를 대신해 내가 여러분들께
수여식을 주관했네. 서운하겠지만, 양해해 주길 바라네.
허진기: 별 말씀을요, 장관님. 이렇게 훈장까지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동영: 김중린 총책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습니까?
김홍석: 어제, 공식 루트를 통해 남북 축구 대결을 추진하자는 연락이
있었다. 그 제의가 남북교류의 첫 걸음이 될 게다.
동영: ..
빈: 전, 장관님. 김중린 총책을 암살하겠다고 난리 폈던 놈들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어떻게 대처를 하셨는지.
김홍석: (생각하다) 이주 전, 청와대 내에 몇 몇의 인사조치가 있었네.
여기까지만 얘기하세.
빈: 예..
김홍석: 세 사람 다, 잠시 휴식 기간을 가져.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게. 여러분들의 노력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후대에는..꼭 빛을 발하리라 믿고 있네.
씬33 김홍석의 집, 마루
동영과 빈, 들어온다.
빈: 뭐든 하고 싶은 일은 다 시켜주시겠다? 그런 뜻인가?
동영: 뭐가 하고 싶은데?
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나? 그냥 어영부영 노는 거지?
형은? 비서관으로 돌아가는 건가?
동영: 니가 백수로 지내겠다면, 나도 니 옆에서 놀아야지.
우리 가게나 할까? 스킨스쿠버, 해양 스포츠 훈련원 이런 건 어때?
빈: 김동영씨 우리 이러지 맙시다. 나, 형한테 내 인생 덤터기
씌워서 업혀 가기 싫은 놈이야. (주머니에서 훈장 꺼내 만지작거린다)
이거, 받은 걸로 됐어. 내 일에 대한 보상으론 충분해.
동영: 그래.. 나한테 말해봐.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네 미래..
더미에 대한 생각..다 듣고 싶다. 우리, 오늘은 솔직하게 얘기 해보자.
빈: 더미에 대한 생각? 내 생각을 몰라! 왜 갑자기 그게 중요해졌어!
두 사람은 두 사람 사랑을 해! 난 내 사랑을 할 테니까!
동영: (고개 젓는다)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빈: ...
씬34 공중전화 부스
더미, 양손에 천이 삐져나온 가방을 들고 걸어가다 공중전화를 본다.
씬35 공중전화 안
더미, 동영에게 전화 한다.
씬36 김홍석의 집, 마루
빈, 동영을 본다.
빈: 내가 모르는 게 뭔데?
동영: ....
(소리) 전화벨 소리.
동영: (전화 받는) 김동영 입니다.
(더미의 소리) 오빠..나 더미에요.
동영: (긴장해서, 빈을 본다)
빈: ..(동영을 본다)
씬37 공중전화 안/ 김홍석의 집, 마루
더미: 나 오늘, 아빠를 만났어..너무 힘들어서..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이) 오빠..나, 잠깐 오빠한테 가도 돼요..?
동영: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더미야 오늘은(하는데)
빈: 오라 그래. 나도, 형 있는 자리에서 더미를 보고 싶네.
동영: ..(빈을 보는)
씬38 앙상블, 마당
준희, 걸어 들어온다.
씬39 더미, 준희의 방
준희,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다가 문득 자신이 엎어 놓은 양자와
더미의 액자를 보고 바로 세운다. 준희, 모자를 못에 걸다가 실수로
걸려 있는 더 미의 가방(대구에 들고 갔던)을 떨어트린다.
가방,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물건이 쏟아진다.
준희, 별 생각 없이 주워 담다가 문득 수첩에 시선이 간다.
준희: ..(수첩을 열어본다. 군복바지 개수가 쓰여 있고, 돈이 끼워져 있다)
(플래쉬) 어린시절, 강희가 블록을 빼고 깡통을 밀어 넣던 장면이
섬광처럼 지나간다.
준희: !!
준희, 놀라 쓰러질 것 같은 표정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