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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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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붕대는 왜 했어? 많이 다친거야?"
"아니. 조금 다쳤대."
응
끄덕끄덕
역시나 할말은 특별히 많지 않다.
왜일까.
나름 우리도 사귀는 사이인데.
"맞다! 곡은 정했어?"
"대충~?"
"대충이 뭐야. 연습은 잘되는거야?"
"너무 잘되서 탈이지."
피식하고 웃어넘기는 진도원.
가소롭겠지.
노래못하겠다고 난리법석이던 때가 엊그제 같으니까 말야.
"노래 뭐하기로 했는데? 알려줘~"
"숨길 수 없어요랑 미드나잇 레디오..그리고..뭐드라..영어라서 기억안나."
"크크..열심히 해. 내가 몰래 나갈 수 있으면 검사하러 갈거야."
도원이의 눈빛이 너무 반짝거린다.
그렇게도 좋은가.
녀석들이 하나같이 밴드부 생각하는 마음은 유별나네.
"나 방 구했다 ~"
"방?"
"어."
"방?"
"어!"
"그 형이랑 따로 사는거야?"
끄덕끄덕
부끄럽게
좋아해주네
호호
쟤를 보면 좋기는한데..
건사를 떠올리자니 마음 한구석이 착찹해.
착잡해.
"걔가 나가지 말라고 말라고 하는데 나간다고 했지."
"그 형도 취향 참 독특하다."
"뭐냐. 그 말 뜻은?"
"내 취향이 독특하다는 뜻이야."
"꼬마아가씨도 취향 참 특이하더라."
"...?..."
너가 특이하다는 말이시다.
난 혼자 실실대며 냉장고를 열어 토마토쥬스를 깠다.
"먹을래?"
............
........
...............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건사와 마주치는 일이 없어졌다.
대화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그저 갑갑해.
그래.
오늘은 대화에 시도해보자.
건사는 자기방에 있는건지
오늘도 어두운 거실을 지나 일단 방으로 들어왔다.
얘가 소심한거야?
아님...
머리아프다.
똑똑똑..
"한아준. 안에 있어?"
"..............."
"할 얘기 있어."
"................"
"......들어 간다?"
벌컥.
"엄마야!"
문을 벌컥 연 것은 내가 아니라 한아준이시다.
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아준이 피식 하고 웃었다.
웃었다?
호호
웃었다...
"맥주나 한잔 하자."
내 말에 긍정도 아닌 부정도 아닌..
그러니까 대답없는 아준이를 뒤로 하고
난 냉장고에서 캔맥주와 마른 안주를 찾았다.
슬그머니 거실 불을 밝히고 쇼파에 앉은 아준이.
내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그저 기쁜 나는 맥주와 안주를 들고 팔랑 팔랑 거실로 달려갔다.
"자. 먹고 못다한 이야기들도 좀 나누고."
여전히 나 혼자만 지껄여댄다.
일단 한모금씩 목을 축이는 우리.
적막함.
가만히 캔맥주에 써있는 글씨들을 눈으로 읽어 내려간다.
"방은 구했냐?"
"...어?...아...어."
"..............."
"미안.."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쳐져버린다.
진심으로 난 미안했으니까.
생각보다 다행이다.
목소리높여 화내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고
단지 축쳐진 네가 걱정스럽긴 해.
"내일 모레쯤이면 짐옮길 것 같아."
"어."
"가끔 놀러와도 되지? 연락도 자주 하고 그러자. 그리고.."
"알았어. 알았으니까...그만."
녀석이 힘주어 말을 뱉으니 난 기가 죽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널 보고 뭐 이런 얘가 다 있나 싶더라."
실소와 함께 계속 말을 차분히 이어가는 아준이.
"룸메이트로 고딩 여자가 찾아올 줄도 몰랐는데
본지 오분만에 바락바락 대들고 싸우고.."
"우리가 그랬었나?"
"솔직히..처음 넌 어두운 얼굴이라 가엾기도 했고."
나도 덩달아 실소가 나온다.
덤으로 눈물까지도.
생각이 난다.
집을 나와 처음 만난 사람이 건사, 한아준이였고.
겁도 없이 나보다 나이많은 남자와 같이 살겠다고 하고.
"난 주위에 여자도 넘쳐나고 사내같은 넌
룸메이트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여자는 아니였는데.."
"하..듣자하니 내 욕하는거야?"
"몰랐지. 그때는. 내가 널..많이.."
말을 아끼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서운함을 표정으로 나타내는 아준이.
티슈상자를 나에게 슬그머니 내민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무슨 소리야."
"내 앞에서 늘 웃고만 있어서 나만 늘 생각한 것도 미안하고."
"지랄하지마. 새꺄."
"..여자맞네. 쳐울기도 잘하고. 한미소."
아준이 앞에서는 왠만해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나는
건사말대로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날 것 같은 여자.
나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아준이를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아준이를
그런 아준이를 떠나
마음대로 내가 찾아와서 마음대로 떠나
미안함이 넘쳐나고 서운함도 넘쳐나서
눈물도 콧물도 넘쳐난다.
생각없이 살았다.
내가 떠나게 된다는 생각.
"난 여자많으니까 니 자리 채워줄 여자도 있겠지. 어딘가."
"잘났어.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도 생기고 하는 일도 생겨서."
끝까지 녀석은 나만 생각하고
아빠처럼 또는 엄마처럼 그렇게 날 보살펴준다.
그동안 바보같이 몰랐어.
벌써 떨어져 지낸다는 거 막막해.
사실 나도.
"그래도 넌 돌아서면 안돼.
아무리 내가 다른 친구가 생기고 일이 생겨도.
나도 안 돌아서니까 너도 나한테 등돌리면 안돼. 알지. 한아준?"
"알았다. 알았어."
"넌 내 친구고 가족이니까....내 기억에 절반은 너니까."
...
다행이다.
그 날밤은 싸우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 솔직한 우리들의 대화였단 걸
몰랐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담았다.
울다 지쳐 그렇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준이도 울었을까?
아준이에게도 내가 소중했을까?
지내며 혹여나 귀찮지는 않았을까?
난 최악의 룸메이트였을지도 몰라.
넌 최고의 룸메이트.
...
너도 최고의 룸메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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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렇게 많이 울고
또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해도
웃고 그렇게 마주보고 있을 수 있어서
오늘만큼은 자꾸 웃음이 난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시비를 걸어오는 손님에게도 웃어보인다.
짐을 쌓야 한다는 핑계로
밴드부 연습을 한시간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난 웃음이 났다.
다행이다.
건방진 사진작가.
한아준씨랑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게되서.
"아준아!! 나왔다! 빨리 나가자! 술먹으러!"
마지막 날이다. 오늘 밤.
한잔 기울이며 정리할 것도 정리하고
이야기도 더 나누고 그리고.. 또..뭐..그리고..
흠...........
......
마지막날.
뭘 하는게 좋을까.
모르겠다.
*
"자! 쨘~!"
무조건 세잔은 빠르게
말도 안되는 나만의 법칙을 외치며
난 건사와 술집에 들어간지 삼십분도 안되서
빈병이 나왔다.
"천천히 마셔. 술도 못먹는게."
"알았다. 알았어 ~"
말을 그렇게 하면서 난
또 잔에 술을 채우고 있다.
왜냐고?
할말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고
아준이의 눈도 마주칠 자신도 없고
..또..뭐..
"어제 할 얘기를 다해서 할 얘기가 도통 없네."
건사는 그런 말을 뱉으며 피식 웃는다.
뭐 난 특별히 한 얘기는 없지만 할 얘기도 없다.
왜일까.
일년 반을 넘게 같이 살면서도
내가 감정을 감춘 적이 많아서일까?
진실되지 못해서일까?
만난지 육개월도 안된 진도원에게
오히려 진실되게 행동했었던 것 같다. 난.
"미안해. 돈도 조금 내면서 살면서 집안일 제대로 안한 거."
"미안하면 진작에 잘하지."
"미안해. 그리고..나보다 나이많은데 까불어서."
"그러면 오빠라고 불러."
"미안해. 그건 죽을 때까지 못하겠다."
"예상했어. 듣고 싶지도 않아. 토나와."
우리의 대화는 쉼표없는 듯
무미건조하게 툭툭툭 자동으로 흘러갔다.
웃긴다.
늘 건사랑 대화를 하면 이렇게
건조하고 싸움같고
..
어쩜 난 이리 애교가 없을까.
괜찮아.
대신 난 섹시하니까.
휴
"집은 십분거리야. 먼 거리 아니니까.."
"알았어."
"알기는 개뿔."
술을 한잔씩 꺾으며
우린 건조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왠지 술이 달다싶더니..
슬슬 취기가 오른다.
"남자친구는 잘해주냐?"
"...응..뭐.."
"능력있네. 한미소. 어린 놈이랑 잘사귀고."
"내가 쫌."
속마음은 그러했다.
난 정말 능력이 뛰어나다고.
연상, 연하. 어디 나에게 끌리지 않는 남자가 있더냐?
이렇게.
(큰 착각. 남자는 단 둘 뿐.)
"나없이도 살 수 있지?"
"엄마, 아빠없이도 잘 살고 있는 내가 너 없다고 못사냐?"
"하긴..나도 그래. 엄마, 아빠도 없는데 건방진 사진작가 없다고 못살겠어?"
내 말에 잠시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건사의 엄마, 아빠는 옆동네에 있겠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윗동네에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널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됬을까?"
"넌 다른 룸메랑도 잘 살았을거다."
"그랬을까?"
"당연하지. 티격태격 살고 있겠지."
"외로워서 죽어버리진 않았을까?"
"..무슨 말이 그러냐?"
"죽고 싶은 마음으로 가출한거였어."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난 태연하게 말을 뱉었다.
내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
별다른 의지도 생각도 없던 그 시절.
어쩌면 아준이를 만났기 때문에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 정도는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눈이 무겁다.
"눈 풀렸어. 너."
"알어. 좀..취했나봐."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그래도 걱정스런 너의 눈빛은 자알~ 보여.
멍청한 한아준.
넌 대체 왜
대체 왜
날 좋아하게 됬을까?
머리나쁜 고딩에다가
소매치기였던 나를... 왜..?
한미소.
그런 넌 왜 진도원을 좋아하게 됬을까?
..응?..
글쎄..
이 와중에도 진도원 생각이라니.
"픽.."
"차라리 잘됬다."
"뭐라고?"
"너가 나가면 널 잊기는 훨 편할테니까."
"응? 뭐라고?"
웃고 있는 것 같긴한데..
아 아준이의 목소리는 왜 이중창으로 들리나요. 응?
"생각보다 넌 내 눈에 꽤 이쁜데.."
"어?"
"꼭 나가야 되겠냐? 꼭? 꼭 나는 안되는거지. 그렇지?"
"..............."
"아, 참.. 뭐같네. 씁쓸해."
잠이 들었다.
그 날도..
그 마지막날 밤도
...
난 아준이의 등에 업혀 집에 들어갔다.
술을 먹으며 그렇게
참 허무하게 우리 둘의 밤은 끝나버렸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니...정오가 거의 다되어갈 그 쯤.
눈을 겨우 뜬 나는 거실에 있는 아준이를 보았다.
"오늘 일 안나가?"
"그러는 너는?"
"나야....오늘 일 뺐지."
"나도."
아준이는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앉아. 마지막으로 해주는 밥이다."
"응?..아..응."
"너 혼자 살면 밥은 해먹겠냐?"
"해..해먹지!! 살라면 뭐든 못하겠냐?"
"어이구. 진작에 살려고 좀 해보지."
아준이의 말에 그냥 마음이 따뜻해진다.
난 히죽거리며 식탁앞에 앉았다.
따끈한 콩나물국과 하얀 쌀밥.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헤헤헤..고마워. 아준아."
"짐 혼자 못옮기잖아. 도와줄게."
"쩝쩝...것때문에 일 뺀거야? 에이..미안하게시리.."
오물오물..
입 안에 밥을 떠먹으며 난 바보같이 웃었다.
아니면 난 곧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왜지.
그냥 왜일까...
이 따끈한 콩나물국이 너무 따끈해서랄까?
아니면 밥이 너무 희기 때문이랄까?
그런데 난 계속 웃고싶으니까.
처음은 어두웠으니까 끝은 밝고 싶으니까.
바보같이 그렇게라도 웃어.
"마..맛있다."
"짜겠다."
고개를 떨구고 난 밥만 입에 쑤셔 넣었다.
녀석은 그 말을 뱉고 조심스레 자리를 비켜주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입에서도 울음소리가 조심스레 새어 나온다.
"흡......으...흐...흑......하....흐...."
하얀 쌀밥을 입에 계속 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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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도구는?"
"챙겼어."
"다시 싹 검사해."
"나중에 또 오면 되잖아. 놓고 간 거 있으면."
"..그러든가."
커다란 가방하며 상자까지.
생각보다 짐은 싸다보면 많다는 걸 느꼈다.
건사가 도와준답시고 일단 대문까지 옮겨주기는 했는데..
이걸 들고 거기까지 옮기기란...
우리 둘의 막노동..
간만에 다리근육, 팔근육 무리 좀 하겠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도 빌려오는건데."
"왔다갔다 하기가 좀 그렇지? 이휴.."
"왔다갔다 하지 뭐."
"풉."
간만에 아준이와 마주보고 웃었다.
모든 짐을 빼내 대문 밖으로 드디어 나가려 하는 순간.
"누나!!!!!!!!!!!!!!!!"
저만치 누군가가 통통 튀어오고 있다.
목소리를 듣자하니...깡은이 같구나.
그럼 옆에 있는 녀석들은..
보자...
"니네들 왜 왔어?!?!?!?!?"
"건방지게 진도원이 시켰다."
우엉이는 역시나 날 보자마자 툴툴대기 시작했다.
진도원이 시켜서 짐옮기러 왔다는 아이들.
강은태, 남우형, 김하진. 이외로 유나은까지.
"너네 학교는?"
"오늘 방학했는데."
딱딱한 우엉이의 대답.
녀석은 대답과 동시에 아준이와 날 번갈아 본다.
무슨 사이야고 묻고 싶은거냐. 지금.
"얘네는..내가 말했던 밴드부 친구들."
"아..어."
"그래서 너네 짐 옮겨주러 온거야?"
우엉이는 저 작자는 왜 소개안해주냐는 듯
초울트라슈퍼간지 눈빛을 쏘아댔지만
난 바로 무시해버렸다.
"이게 다 짐이야. 너네가 네명이니까..."
잘만 들고가면...뭐...
"내가 안도와줘도 되겠네."
"어?.."
"..왔다갔다 안해도..되겠다."
뭐지..이 아쉬움은?
난 한동안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냥 두 눈을 질끈 감고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때문에
그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적막을 깨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자."
겨우 눈을 뜨고 한 말은 고작 이거였다.
또 눈물이 차오를까 무서워 눈에 힘을 주었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아준이는 한손으로 날 끌어 안았다.
진심어린 우정의 포옹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아이들의 표정이 어떨지는 잘모르겠다.
어쨋너나 저쨋거나
마지막인사를 우린 진하게 하고..
항상 티격태격해서 이렇게 민망한 인사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잘 지내. 아준아."
"잘 가. 난 들어갈게."
마지막이다. 진짜.
연락해서 언제든 볼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은 너와 난 룸메이트가 아니구나.
영원한 룸메이트는 역시 좀 무리지?
.....
대문이 굳게 닫혀버리고
난 눈물이 말라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뒤를 돌지 않았다.
겨우 뒤를 돌아 웃으며 아이들에게 가자고 부추겼는데..
"누나의 바람피우는 장면 목격했다. 오바."
깡은이는 진도원이와 전화통화를 남몰래 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깡은이의 등에는 최신 유행인 손바닥 문신을 선물해주게 되었다나 뭐래나.
.......
"여기야. 이리로 들어가서 이층에서 첫번째 문."
"아까 그러니까 걔랑 살았다는거야?"
"남우엉아..그러니까.."
"그러니까 동거아냐. 동거. 근데 그걸 진도원도 알고 있다고?!?!"
"아이씨!!!!!"
내가 앞으로 사게 될 집.
작은 원룸이지만 내눈에는 마냥 아늑한 집.
짐을 안에다가 던져 놓으면서 우엉이는 쫑알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이상 묻기만 해봐. 너네는 잘 모르는 그런 게 있다니까!"
"그러고보니..우리가 누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어...."
"그런 건 차차 알아가면 되잖아!"
"그럼 오늘 소주 한 잔에 밤을 지새볼까요?"
"야! 깡은태!!"
이 지긋지긋한 것들.
고양이도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구나. 오늘은.
그 건조한 입을 열 생각을 도통 하질 않네.
그저 저 사내녀석들만 귓방망이 아프도록 쫑알쫑알..쫑알..
대체 얘네들은 정체가 뭐야?
"그냥 그럼 오늘 집들이를 하세요. 서로를 알아갈 겸."
고양이가 으뜸이다.
제길.
"그래도..도원이가 없는데 우리끼리 집들이를 하기는.."
"응?!?!?!? 너도 오고싶지만 참겠다고?"
"뭐야."
"난 못가도 우리끼리 친해져보라고?"
"쟤 지금 누구랑 통화해?"
"도원이요."
난 녀석들이 참 무섭다.
........
....
..........
"야 이것들아!!!!!!!!!!!!"
지금 시각 밤 10시.
오늘 처음 방문한 우리 집.
내가 산 중화요리로 저녁을 먹은 뒤
내 가방을 뒤져 이불까지 하나씩 덮고는
이제는 술까지 얻어먹겠다고 난리치는 녀석들.
"내가 밥 샀잖아!!!!!!!!"
"집들이잖아요~ 그럼 주인님이 사주셔야죵!"
"그럼 너네 집들이 선물내놔."
"치사하긴."
기가막히다.
치사하다고 말한 것은 누군지 아는가?
믿기지 않겠지만 꼬마싸가지다.
얘네가 똘똘 뭉쳐다니는 이유를 알겠네.
"난 갑부가 아니야. 그러니까 술은 너네가 사.
그럼 내가 안주를 사줄게. 어때. 명쾌한 해답이지?"
"그럼 액면가 높은...형이 술을 사와!!"
"나도 증검사해. 액면가는.."
"언니가 최고지."
개후레질..
년이나 놈이나 다 똑같애.
짐심으로 고양이 넌 내가 나름 이뻐했건만.
나 역시 쟤네들을 아직 다 몰랐던 것이다.
"너네 다 내쫓기기 싫으면 닥쳐."
나의 굳어진 안면근육.
군말없이 우엉이는 동네슈퍼로 술을 사러 나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이 먹고싶다고 소리를 치는
족발, 깐풍기, 양탕, 피자를 시켜주었다.
대체 피자랑 술을 어떻게 먹겠다고.
막무가내니. 깡은아.
사람이 다섯인데..안주는 십인용이냐.
다음주부터 만원의 행복이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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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부어라 마셔라
아이들은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난 한손에 커다란 족발을 들고서
십분째 안주삼아 뜯고 있다.
"진실게임 고고고고"
"무슨 진실게임이야. 그냥 물어보면 대답해줄게."
"게임이 재밌잖아요!"
가위바위를 하려는 듯
깡은이가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부추겼다.
결국 모두 중앙으로 손을 뻗어 가위바위보를 크게 외쳤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보
보
보
"잉? 내가 졌다!!!!!!! 말도 안돼!!!!!!!"
혼자 떠들기 바쁜 깡은 군.
휴.
딱히 할 질문은 생각나질 않는데...
"질문들 해보세용."
"좋아하는 여자있어?"
"난 모든 여자를 좋아하지 ~"
"첫키스."
"몰라. 몰라."
미친놈
왜 귀여운 척이지.
아이들의 질문에 술을 먹고 가볍게 떠넘기는 깡은이.
...흠...
"누나 언능 물어봐요."
"아...그래.....흠..."
.......그래..흠...
"넌 정체가 뭐야?"
*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습관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우리.
취기가 슬슬 올라오는 이 판에
여전히 난 걸리지 않았고
마침 그 때 이제야 걸렸다는 듯
보자기 속에 있는 나의 주먹을
반기는 아이들.
"왜 노래를 못했었던거야?"
다짜고짜 질문을 던진 건 우엉이.
정말 궁금했는 모양이다.
미간을 다 찌푸리며 공격적으로 질문을 한다.
"그야 못하겠으니까."
"그 이유말이야. 이유가 있었을텐데."
"누나 학교는 왜 안다녀요?"
"한명씩 좀 질문해라."
깡은이가 툭 끼어들자
우엉이가 깡은이의 머리를 톡하고 내려쳤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 이유.
그렇다고 숨길 것도 없는건데.
"난 어렸을 적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렸을 적부터 새엄마는 노래를 못하게했고
때리면 맞고 욕하면 욕듣고 그리고 뭐..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고 새엄마랑 살 이유없어서
집나오고 학교관두고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되게 무섭고 돈은 필요하고
그래서 못된 짓도 배우고 그러다가 너네 만났고."
술 김에 주절주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정작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듯
그렇게 감정없는 목소리로 내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정적이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였다.
이외네- 라는 짧은 우엉이의 말까지.
"밝아보여서 몰랐어요. 언니."
아, 난 하진이....
그래 고양이..의 언니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버린다.
익숙해지려면 멀었겠지....휴
"행복해요?"
혀가 반쯤 꼬인 듯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는 나은이.
난 웃음을 꾸역꾸역 참았다.
"응. 뭐 나름."
미안하게도
난 지금 꽤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너희들을 만나고
아준이를 만나고
도원이를 만나면서부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
........
정신이 없던 우리들의 그 따땃한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후아..
긴 시간이였지만 난 버티고 버텼다.
정신을 놓을 수 없기에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우리의 긴 시간이 끝나가는데.....
"나은이 취했다. 취했어."
눈이 풀려서 힘없이 고꾸라질 듯한 유나은이 눈에 들어왔다.
왠만해선 풀리지 않는 저 눈이 힘이 없어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혼자 연달아 들이키더니 저런 꼴 나지.
"술도 다 먹고 이쯤에서 끝낼까?"
"술은 너네가 다 먹었지."
멀쩡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우엉이와 고양이 커플에게 던진 말이다.
어찌나 주량도 똑같이 세던지...감당할 수 없다. 쟤들은.
"얘는 그냥 여기서 재워."
"우리도 같이 자고 갈까요?"
퍽.
깡은이는 맞을 짓만 골라서 한다.
우엉이는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는다.
"내가 나은이랑 여기서 자고 내일 갈게."
그래.....고맙다. 고양아.
아무래도 이 꼬마아가씨와 둘이 있는다는 건 불안해.
알았다고 말하며 우엉이는 깡은이를 거의
때려 밀치듯 그렇게 우리 집을 나섰다.
난 멀리 나가지는 않았다.
방을 정리하고 이불을 폈다.
이불도 그렇고 배게도 그렇고 이 공간에서 잘 낑겨서 잘 수 밖에.
어쨋든 힘이 들어보이는 유나은부터 우린 이불 위에 옮겼다.
힘들게 눈을 뜨며 유나은은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날 노려보고 있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당신이 싫어하는 게 없어진 게 아냐."
이걸 술주정이라고 봐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진심이 담긴 말 같아서 말이지.
잠이 들면 한대 쥐어박을까?...
털썩.
힘없이 누워버리는 유나은.
정말 어울리지않게도 그대로 정말 잠이 들어버렸다.
"아 나도 이제 취기가 몰린다."
"신세 좀 질게요. 언니."
아직도 언니란 말이 어색하구나.
하진이는...아니..고양이는..
날카롭고 튀는 외모보다는 무척 따뜻하고 착한 아이같다.
난 옅은 미소를 지었고 대충 정리 후 자리에 누웠다.
불을 끄고 고양이까지 자리에 누웠다.
술기운에 두통이 살짝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아무런 말이 오고가지 않고,
이대로 잠이 들겠지.
입을 연다. 하진이가.
"나은이가 싸가지는 좀 없어요."
".....응?.."
"그런데 정말 나쁜 아이는 아니예요.
그저 감정이 솔직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어려울 뿐이니까.."
"..............."
"그러니까 이해..해주세요. 더구나...저 녀석도 마음고생 중이니까."
"...어..알아."
"나쁜 얘 였으면 우리도 같이 못다녔겠죠."
하진이의 말에 생각을 한번 더 아니 두어번 더 생각해야만 했다.
.
두통이 있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니...어렵고 생각이 많아서 잠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역시나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모르는 것처럼
하루 이틀 봐서는 일년 이년 본 것처럼 볼 수 없는 것처럼
아주 오묘한 것이 사람이고..
.....감정이고.....
그런거고..
그런거지......
"감정을 감추는 게 더 무섭고 나쁜걸지도."
*
이런 젠- 장.
녀석들때문에 짐정리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이 밝았다.
아침도 먹이지 못하고 보낸 고양이와 꼬마아가씨가 몹시 걸린다.
허나 나도 아침도 못먹고 출근을 했으니까.
지금에서는 누구도 좋다할 사람이 없다.
"이사는 잘했어?"
"아..네. 친구들이 도와줬어요."
"맞다. 언제 한번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자기네 밴드부 공연도
우리 카페에서 해보는 건 어때? 하하 실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공연할 실력이 못되는데요?"
"풋풋한 고딩의 청춘 좀 느껴보자. 미소."
이상한 날이다.
사소한 대화인데 가슴 한켠이 왜이리 따뜻하지?
풋풋한 청춘이라.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던가.
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웃을 줄 아는 아이였던가.
열아홉에 난 많은 걸 얻은 행복한 사람이 다 되어있었다.
아직도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 내 감정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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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을 일찍 끝내줬어."
"그러니까 남자친구 병문안 가라고 인심을 써줬단거네?"
학교로 연습을 가기 전에 내가 찾은 곳은
진도원이 있는 병원이다.
하루에 한번 또는 이틀에 한번
꼭 보는 얼굴이지만 역시나 병원에서 보는 진도원은
왠지 오랜만에 만난 것만 같다.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
"나- 두."
"그니까 다치긴 왜 다쳐."
내 성격상 피곤해지는 이 상황.
진도원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곤 입을 아 - 하고 벌리고 있다.
내가 사 온 죽을 꼭 먹여달라고 십분을 귀찮게 하는 바람에
죽이 식을까 결국 떠먹여주고 있는 나다.
정말 단지 죽이 식을까봐다. 젠장할.
"어제 나없으니까 재밌었지?"
"응."
"으응?"
"응!"
넌 노려봐도 하나도 안무섭다구.
오히려 귀엽다면 모를까.
요즘 들어 기분이 좋기만 하다.
걱정거리가 사라져서 그런걸까?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기분이 좋아.
"도원아."
"응?"
"나 좋아?"
"새삼스럽게 그런 걸 왜 물어?"
"난 좋아."
기분이 좋은거야. 바보야.
그렇게 얼굴을 붉혀버리다니.
난 또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감정 표현이 솔직해지는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예전에 귀찮다고 하던 한미소는 어딜 갔을까요?"
"그래서 싫어?"
"나도 좋아. 특히 웃는 한미소."
"아- 하기나 해. 마지막 숟갈이다."
나도 좋아. 특히 웃는 진도원.
마냥 이 행복한 순간이 또 언제 멈춰버릴지 몰라
불안하긴 해.
늘 행복하고 늘 웃을 수 없는 것처럼.
너와 나의 끝도 있을까?
..
"연습 늦었다!!!!!!!! 나갈게. 진도원!"
"이따 또올거야????"
"짐정리해야되!! 내일 봐!"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난 그때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좀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연습실 안에 발을 들이니 무언가 소란스러웠다.
내가 마지막으로 연습실에 도착.
"무슨 일이야?"
"곡때문예요."
"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릴 노래를 해야한대서.."
우엉이는 고민하는 듯 손을 턱에 괴곤 말이 없다.
저럴때는 정말 무섭다.
카리스마가 천둥을 뚫고 갈 것만 같다.
내가 늦고 안늦고는 관심없군.
"됐어. 바꾸긴 뭘 바꿔. 하던 연습이나 해."
크리스마스 이브가 다가올수록 예민해져가는 우엉이를 느낄 수 있었다.
덩달아 나까지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
그 때 생각이 났다. 어제 내 귀에 속삭인 깡은이의 말.
"아무래도 우리 밴드부 컴백무대가 될 듯해요.
우리 학교에 소문도 많이 돌고 돌아서 기대도 크니까..그래서 더 예민한거예요."
밴드부에도 경쟁이 있는건가.
이런 남모르는 세계가 있을 줄이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뒤흔드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중압감. 나에게도 찾아온지 오래였다.
"연습시작하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우형이 했던 말처럼 난 그간 망설이는 일이
버릇처럼 있었는데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늘 어둠속에 진도원을 그렸고
그렇게 노래를 했다.
집에서도 컴퓨터를 키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연습하고 연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공연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
"원투쓰리포..!!"
♪♩♬♬♩♪♬♩♪♪
연습실 안은 여느때와 같이 악기소리로 가득했다.
덤으로 내 목소리까지.
갑자기 눈물이 나고 -
왜 갑자기 또 - 기뻐지나요
이런 모습의 나-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아아아아아
이제는 더이상 숨길 수 없어요-
사랑하고 있어-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이렇게 에에에에에
이제는 더이상 멈출 수 없어요
사랑하고 있어-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아- 아아아아아
아무말도 아- 소용없어
아아아아아아
이제는 더이상 숨길 수 없어요-
사랑하고 있어-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이렇게 에에에에에
이제는 더이상 멈출 수 없어요-
사랑하고 있어-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아아아아아아
..
♪♩♬♬♩♪♬♩♪♪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자!"
드디어 끝이 났다.
닷새정도 남긴 오늘
세시간이란 연습 끝에 겨우 끝이 났다.
우엉이의 의지에 너무 확고했기 때문이랄까.
점점 우린 서로 맞춰가고 있다.
언제나 난 내가 제일 부족한 것 같지만
아이들은 칭찬을 해준다.
시간은 어느덧 아홉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목이 조금 아픈 것 같아 며칠 전부터 목도리를 둘둘 감고 다니는데..
오늘은 왠지 더욱 더 힘들어 한다. 내 목이.
뭐 보통 날과 다를 것 없이 학교 앞에서 제각기 헤어지는 우리.
피곤에 쩔어 눈이 감겨오는 느낌이다.
따뜻한 집으로 언능 뛰어들어가고 싶은데..
횡단보도 앞.
이상하다. 오늘따라.
"뭐하고 있을까."
진도원에게로 가야만 될 것 같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망설임이랄 것도 없었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발이 천천히 병원 쪽으로 향했다.
'똑똑'
도착한 병원 안은 나름 훈훈했다.
밖이 너무 추워서랄까.
난 바로 병실 문을 노크하곤 살짝 문을 열었다.
어둡네.
"도원아, 자?"
침대로 가까이 갔다.
어두운 병실에 혼자 누워 있는 진도원.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안쓰러워 보인다.
쌔근쌔근 잠을 자는 도원이의 조그마한 숨소리.
하악.
나 변녀야?
하얀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손을 대면 마술처럼 내 눈 앞에서 사라질 것 같은 이 몽롱함.
"봐서 기분은 좋은데.."
못나가겠잖아. 젠장.
이 어두운 방 안에 도원이를 홀로 두고 가기가
왠지 껄끄럽다. 정말.
한 십분 정도 침대 옆에 앉아 난 가만히
녀석을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해서
난 어쩔 수 없이 병실을 나오긴 했지만
마냥 껄끄러운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냥 기분이 좋은 줄만 알았지만
난 피로가 무척 쌓여있는 것 같다.
연속된 일상에서 ..물론 행복했지만
심적인 부담과 노동이 어쩌면 나답지 않다는 생각.
그래서 절로 진도원을 떠올렸는지 모른다고.
내 가슴 한켠에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도원.
슬플때나 기쁠때나 힘들때나 지칠때
생각나버리는..
녀석은 정말 나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존재였다.
............
미소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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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온다고?"
- 연습실!!!!
천방지축이다. 진도원이란 녀석은.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가 한다는 말이..
"무슨 연습실을 와! 퇴원도 안했으면서!"
"나 외출 허락맡았단 말야!"
"정말이야? 나가도 된다고 했어?"
"응! 그러니까..곧 갈거야. 연습실에서 봐. 내사랑."
뚝.
전화를 끊는 것도 자기 멋대로.
근데..내가 잘못들은거지?
..내..내사랑?
풉.
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 정색을 했다.
"진도원이가 곧 연습실에 온다네."
다들 한결같은 반응.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그 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모두들 싫지는 않은 모양.
더 신이 나서 열심히 연습을 이어 갔다.
...
"거기에서는 딱 끊어준 다음 반박자 쉬고."
"아..맞다. 오케이."
쉴 틈도 없이 우린
이 한겨울 연습에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반가운 목소리가 지하 연습실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나 왔다~~~~~~ 야호야호!!"
"저런 미친."
아이들은 요란법석인 도원이에게 욕을 퍼부었고
어느때보다 반가운 도원이는
환한 미소로 연습실 안을 달려 들어왔다.
"헉헉.."
"힘들게 왜 뛰어와. 병딱."
"자자. 음료수 마시고들 하자!"
하얀 편의점 봉투에서 음료수와 종이컵을
하나 둘 꺼내는 진도원.
그 옆에서 깡은이는 먹을 건 안사왔다고 툴툴댄다.
주는대로 쳐드시지. 깡은군.
"근데 이렇게 막 나와도 되는거야?"
"안되는 게 어딨어. 하면 다 되는거지."
너의 그 긍정적인 마인드.
예전부터 느꼈지만 그래서 늘 좋아보인달까.
"이거 먹고 연습 얼마나 했나 검사할거야."
"하여간 아픈 놈이 할 건 다한다니까."
"에이. 형. 나 이래봐도 매니저잖아!"
"어련하시겠어."
어쨋거나 오랜만에 모두 모여 분위기는
여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실은 이브가 얼마 남지않아 모두들 마음을 조려하고
많이 지치고 힘들어 했었는데 말이다.
나에게만 자양강장제가 아니라
트리움에 있어서 저 녀석은 자양강장제같은..
"자양강장제..."
"응?"
"아..아니야."
도원이는 나에게 싱거운 미소를 보냈다.
하하 호호 떠들며 휴식을 맛본 우리.
깡은이가 갑자기 혼자 심각하게 생각을 하더니
흥분을 하며 목소리를 높혔다.
"다들 크리스마스에 뭐할거야????응???"
쌩뚱지존.
급질문에 모두들 생각하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눈치를 서로 살피기만 하는데..
"형은 하진이 누나랑 보내겠지?"
깡은이의 말에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않는 우엉이.
녀석들. 은근히 잘 어울린단 말야.
근데 난 크리스마스에....뭘 하지?
이번 크리스마스는...
....흠..남자친구와..아흑 남사스러워.
.....진도원이랑...
"도원이 너는 뭐할건데?"
"물을 걸 물어라."
깡은이와 우엉이가 티격태격하는데..
진도원의 답변이 살짝 궁금해진 난 태연한 척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나..그 때...흠..."
조그마한 녀석의 목소리에 왜 내가 긴장하고 있지.
"여행갈거야."
"여행?!?!?!? 여행?!?!?"
그 여행.
누구와 간다는거니.
나랑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단거니?
난 김칫국 마시기 일인자.
어쩃거나 조심히 웃는 도원이는
여행을 간다고는 했지만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무엇을 하러가는지
또 누구랑 가는지
그것까진 대답하지 않았다.
..
기대하고 있어도 되겠니. 이 멍청한 누나가.
허허허허허..
아무튼 난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크리스마스가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자 그럼 연습한 것 좀 보여줄래? 내가 관중이다 생각하고!"
짧지만 최고의 휴식을 즐긴 우리는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 연습한 걸 보여주게 되니 왠지 모를 뿌듯함.
그리고 좋아해줄까 하는 기대감.
그간 못보여준 실력 발휘에 들떠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어둠 속에서 굳이 널 그리지 않아도
내 앞에 있으니까.
늘 그랬듯이
난 진도원을 생각해며 노래를 부르니까.
날 이렇게 변하게 해 준
진도원을 위해 노래를 부르니까.
...
....
*
"연습 정말 많이 했구나. 나 감동의 도가니탕탕탕."
"충분하지. 우리."
우엉이가 그간 한번도 뱉은 적이 없던
만족감의 표현.
은근히 녀석은 우리의 연습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우린 다같이 학교를 나왔다.
다같이 집으로 가기 전 도원이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려는데..
"잠깐 나 가기전에.. 하고 싶은 거 있는데."
"외출했다고 아주 신이 났구나."
"어렵게 승낙받았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쉽잖아."
녀석은 은근슬쩍 내 어깨에 팔을 얹는다.
딱히 나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난 자그마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뭐냐고 물었고
녀석은 정반대로 소리높혀 외쳤다.
"사진찍으러 가자!!!"
라고.
무슨..무슨 사진이냐고.
촌스럽게.
녀석은 멋진 밴드부 포스터나
자켓용 사진같이 근사한 이미지 사진을 찍자고 졸랐다.
다들 미친거 아니냐며 날뛰었다.
특히 깡은이가.
"오늘 쌩얼이란 말야!!!!!! 누구 비비크림이나 컬러로션 있는 사람없어?!?!?"
주책이다. 정말.
잠시만. 그러고보니 나도 쌩얼인데.
괜찮겠지. 요즘 과학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다들 싫다면서 머릿속은 사진찍을 생각이 가득.
"사진관으로 고고!"
그런데 문득..
사진관?
이런 생각에...
"나 사진작가 아는데."
혼잣말을 좀 크게 읊조렸다.
모두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랬다.
순간 건방진 사진작가가 떠올랐다.
아준이.
아는 사람이 찍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 건사는 좀 알아주는 건사인데.
...
"갑자기 너가 생각나서.."
- 바빠죽겠는데. 돈아끼려고 그러냐??
"야!! 너 친구맞냐????"
- 이래봐도 스케줄이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
"와, 너 그새 더 치사해졌다? 와..안찍어!"
- 삼십분 안으로 와라.
뚝.
"이..이자식아!"
전화는 끊어진지 오래.
찍어줄거면서 튕기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들자
모두들 날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작가랑 아는사이맞지?"
미안하게도 아는 사이가 맞습니다.
게다가 일년반을 같이 산 룸메이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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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저번에 한 번 가 본 기억으로
아이들과 난 아준이의 스튜디오를 조심스레 찾아왔다.
"와..여기 사진관이야? 되게 좋아보인다."
"연애인들도 촬영하러 오는 곳이거든.
너네는 쉽게 오지 못하는 곳이란다."
난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두들 잘난척한다고 욕을 해댔지만 알 바 없다.
난 내가 자랑스럽거든.
호호호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다 장점이 되는구나.
"근데 여기서 우리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 거 맞아?"
"그러게요. 여긴 동네 사진관같은 곳이 아닌 것 같은데.."
얘들 말을 계속 듣고있자니..
그제서야 우리가 못올 곳을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덜덜
"어떻게 오셨죠?"
마침 그 때 어떤 직원같은 사람이 우리에게 물어왔고
난 조심히 아준이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앞에 등장한 아준이.
표정은 그리 썩 내키지않는 듯.
"안뇽. 건사."
"또 건사래지."
녀석은 툴툴대며 나와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은 이사를 도와줄 때 본 기억으로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게다가 어찌나 시선이 따사롭던지.
하지만 모든 아이들과 달리
"형! 어라! 미소 룸메이트~"
"한미소 애인이네."
진도원은 오지랖도 참 넓다.
건사도 뒤질세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나누더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너네는 한 때 날 가지고 다투던
라이벌 관계다. 라고 난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하고 싶다.
허나 너희들은 지금 나에 대한 소유욕이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결과적으로..
내가 그간 헛살았구나 싶다.
...
허허허 어쨋거나 저쨋거나 바쁘다니까
저 자식이 바쁘다고 엄청 튕겨대시니까
우린 서둘러 사진을 찍기로 했다.
자기는 비싼 사진작가라고 궁시렁대는 건사는
카메라를 멋지게 만지며 위치를 정해주었다.
"내가 뒤에 설래! 얼굴 커보이기 싫어!"
"아 밀지마!"
"쉿! 다들 조용히 쉿!"
사진 한장 찍는데도 말들이 워낙 많으시지.
이게 트리움이라는 밴드부란다.
하여간 정신없는 판국에 사진촬영은 시작됬다.
플래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정말 유명 밴드라는 느낌이라도 된 듯
우린 신나게 촬영을 했다.
"정말 가수가 되면 이런 곳에서 사진을 찍겠지?"
"나 연애인 된 기분이야! 와와와우!!"
다행이다.
모두들 기분이 좋아보여서.
생각보다 도원이는 얌전해 보였지만
결국엔 크게 웃으며 다함께 기뻐했다.
"다 됬어!! 사진 최대한 빨리 해다 줄테니까 휴식실에 가있어!"
건사의 외침에 우린 하하호호 떠들며 휴식실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은 우리.
앉자마자 우엉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까 너 저번에 저 사람 얘기는 안해줬다?"
"안물어봤잖아."
"안물어보기는! 진도원. 넌 어떻게 아냐? 저 놈."
"놈이라니. 우리보다 형이예요."
"룸메이트야. 단순한 룸메이트."
역시나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산다는 것은
의심할 요지가 있는 점이지.
그래서 이렇게 나왔잖아! 그럼 됐지!
그게 일년반이 지나서지만..
"내가 저 형 밉다고 해서 미소가 이사한거야."
"도통 알 수가 없다. 난 모르겠다. 에이고.."
아이들도 합창을 하듯 한숨릴레이.
난 그저 머리만 긁적긁적.
"사진 잘나왔으면 좋겠다."
"메이크업을 못해서 엉망일거야....제길."
"넌 얼굴 그냥 자체가 엉망이야."
"이씨..누나!!"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긴 기분이다.
연습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렇게 웃고 떠드니
한결 마음도 가뿐해지고 무언가 시원하다.
도원이는 그걸 잘 알아서
어쩜 정말 매니져로써 우릴 생각해주는 걸까?
궁금한 것이 있는데..
정말로 트리움의 공연은 도원이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고작 초짜인 나에겐 어려운 의미이다.
이제 알고 지낸지 꽤 됬다고 느껴지는 진도원은
알수록 모르겠는 신비한 생명체다.
*
"휴.."
집에 들어와 목도리만 훌러덩 풀고는 이불 위로 누워버렸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기진맥진하다.
그리고 바로 건사가 찍어 준 사진을 꺼내 들여다 보았다.
"이야.. 역시 과학의 기술이란!"
그럴싸한 우리들의 사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정말 무슨 그룹이라도 된 것 마냥 신기하다.
비쥬얼이 좀 되는 우리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좀 간지가 난다.
이 사진.
정말 찍기 잘한 듯.
엄마와 아빠사진 다음으로 나에게
또 소중한 보물 하나가 생겼다.
학교다닐때도 없던 친구가 다 생기고.
내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했나보오.
*
다음날.
...
"난 찬성!"
"돈도 준다는데 나도 찬성!"
그냥 꺼내 본 말이다.
실은.........말이다.
내가 일하는 카페에서 이번엔 정말로!
사장님이 나에게 바로..
바로 내일!! 공연을 한 번 해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냥 내가 몰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냥 한 번 아이들에게 뱉어 본 말인데..
"도원이한테 문자왔는데, 할 수 있으면 해도 좋대!"
좋은 경험도 되고 연습이 될 수 있다며
모두들 대찬성.
그로인해서..
"이브 공연 전날인데도 하겠다고?"
"응!!!!!!!!!!!"
못말린다.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린 바로 내일 카페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고..
고작 두곡이지만.
내일 모레가 공연날인데..
나만 이런거냐.
무진장 부담스러운데. 제길.
제길.제길.제길.
녀석들이 방학을 해서인지 내가 아르바이트 중인 시간에도
지들끼리 연습을 하고 또 해왔다.
허나 정작 부족한 나는 일만 죽어라고 했는데...
"난 불안한데.."
초조한 것은 나뿐.
녀석들은 그냥 신이 난 듯.
공연을 밥먹듯이 즐거워라 하는구나.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연습을 더 하는 게 좋겠다."
나의 걱정따위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
우엉이는 그렇게 연습을 더 시켰다.
이런 사악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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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면서도 연습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눈을 깜빡일때마저
난 온통 한가지 생각.
"말도 안돼...말도 안돼...."
미리 공연을 하는 게 어디있어.
게다가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무슨 공연.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나.
잠자는 진도원을 깨워 통화를 하는 내내 난 툴툴대기 바빴다.
비몽사몽.. 잠을 잔건지 만건지..
연습실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겁다니.
공연하랍시고 오전에 일을 빼주면 내가 좋아라 할 것 같나?
사장님..직원여러분들.
내 심장이 지금 콩알보다 더 작아지겠소.
"빨리 빨리 와! 노래도 지뿔 못하는게 늦기는!"
"뭐?!?!? 야! 우엉탱이야!! 나 안한다??!?!? 가뜩이나 미치겠는데.."
"아..알았어. 알았어! 그니까 왜 늦어!"
니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지.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은 여유로운 듯.
저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으나..
여유로운 척이 맞겠다.
"망치면 어때요. 우리가 틀려도 사람들은 몰라요."
하진이답다.
대충대충 말해도 틀리면 뭐라 할거면서.
네시간 뒤. 일곱시타임. 노래 두곡.
그리고 내일은 중요한 공연.
그래.
이왕 하는 거 마음 편히 먹고 연습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해야지. 뭐.
처음만 힘든거다.
처음에는 죽어도 노래를 못할 뻔 했던 내가
지금은 쉽게 노래를 부르게 된 것처럼.
공연도 처음은 어렵겠지만 두번째, 세번째는
내가 꿈꾸던 그런 공연이 되겠지.
그래. 나 한미소야!
이런 초조함이 말이 되냐고!!
"연습하자!!"
통화에서 그랬다.
아, 여기서 통화란 도원이랑 한 통화를 말한다.
자다깨서 그런지 분명 가라앉은 목소리의 도원이는
날 다독거려주듯 그렇게 말했다.
'늘 이겨내고 결국은 웃었던 사람이잖아. 믿어. 나는..'
'내일은 내가 보지 못하지만 핸드폰 열어두고
깡은이가 생중계해준다고 했으니까 잘해!'
'연락할게. 내일.
아니다. 공연끝나면.....연락해.'
연습! 연습!
공연 멋지게 하고
이브날도 멋지게 하고
그 다음날은 도원이랑 여행을.
(호호 정말?)
가자고 안하면 삐져야지. 호호
잠깐만 환자랑 여행을 어떻게 가?
...
.............
"누나 화장하니까 되게 이쁘구나?"
"시끄러!"
"준비 다 됐어?"
"응."
"마음의 준비는?"
"글쎄다."
지금 시각 6시 45분.
하진이의 손길이 닿은 나의 얼굴.
거울을 보니 어색해서 미칠 지경.
것보다 공연이 얼마남지 않아 두근거림.
"겨우 두곡이야.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 함께 하는거니까.."
순간 우엉이는 울컥한 듯 말을 잇지 못했고
나보다는 녀석들에게 더 긴장되고 중요한 무대라고 생각되니..
마음 한켠이 살짝 쓰려왔다.
오랜만에 함께 한다라...
"내일이 분명 더 중요한 무대지만
우리에게 지금은 어느 무대든지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릴 기다려주는 사람들은 참 많으니까
보답하고자 늘 해왔듯이 잘하자."
"네!!"
깡은이의 큰 대답에
모두들 작지만 미소를 보이고
대기실에서 우린 다함께 두 눈을 감았다.
"지금 나가세요! 악기 튜닝하시고 준비하시면 되요!"
대기실에 있는 연정언니가 우리에게 나가라는 지시를 해주었다.
아주 천천히 심호흡과 함께 우린 무대 위에 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밝은 우리 무대가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악기를 연결하고 튜닝을 하기 시작했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애써 침착하려 애쓰며 마이크를 체크했다.
"트리움이라는 고교밴드입니다.
저희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한미소양이 새롭게 보컬로..."
사장님이 인삿말도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속으로 그저 가사만 읊조리기 시작했고
침착하자를 수백번 외쳐댔다.
"한미소!"
우형이가 작은 목소리지만 힘있게 나를 불렀고
그제서야 난 정신이 확 드는 듯.
녀석과 난 눈을 마주했다.
아이들과도 눈으로 신호를 하듯 시작을 하려 했다.
관중석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손님들로 가득 찬 테이블을 보자
곳곳에 자주 오던 단골 손님도 눈에 들어오고
다들 일은 잠시 미루고 구경을 하러 몰려 온 직원들도 보이고
우리 카페에서 가수로 일하고 있는 녀석도 보이고
난 안되겠다 싶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녀석들의 악기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없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간주를 듣자니
또 이러네. 또 망설이려고 하잖아.
이런 생각에 난 고개를 내저었다.
♪♩♬♬♩♪♬♩♪♪
"당신은 알고 있었- 나요-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
이런 모습의 나 - 믿을 수- 가 없어요-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어떻게 해-
아아 - 아무- 말도 아아- 소용- 없어-
예에에에 이제는 더이상 숨길 수 없어요 -
사랑하고 있어 -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이렇게 -"
음악이란, 노래란,
그저 쿵쾅거리는 박자에 맞춘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행복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그래서 미칠 것만 같아서..
딱히 뭐라고는 못하겠지만
지금 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지금
부끄럽지도 무섭지도 않아.
그냥 미칠 것만 같다.
노래하는 내 모습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만 같다.
꼭 다른 내가 되는 기분.
..........
가끔 살아가면서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보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안기도 한다.
공연은 기대 이상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공연이란 것보다 공연의 재미는 너무 좋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교밴드의 공연보다 너무 좋다고 했다.
...
"나 중독될까 봐 너무 겁나!!!"
벅차오르는 기쁨을 누르지 못하고
공연 후 아이들에게 울먹거리며 내가 꺼낸 말이다.
"손님들이 고등학생들이 실력이 너무 좋다고 난리였다. 글쎄!"
생각보다 멋진 우리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직원들과 옹기종기 나에게로 다가와 사장님이 꺼낸 말이다.
"한미소는 무대체질이던데?"
공연 후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해주고
나름 만족하는 듯한 표정으로 남우형이 나에게 꺼낸 말이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내가 너무 고민하고 힘들고 하던 것보다
만족스럽다. 대만족이다.
내일도 정말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랑해야지. 도원이에게.
....
- 잘했다니 다행이야!
"나 지금 완전 좋아. 돌아버리겠어."
- 뒷풀이 간대?
"아니! 내일 공연이 있는데 뒷풀이는 무슨!
연습은 내일 오전에 하기로 했고 헤어졌어. 그냥.
아무래도 쉬어야 할 것 같다나. 뭐래나.
뒷풀이 같은 건 내일 해도되니......어....어??!!..."
내가 정말 미친건가.
집으로 돌아오며 기쁨을 도원이에게 쏟아붙는 이 시점.
저 녀석은 누구여.
"이사 간 집주소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더라."
"뭐야..너."
"이 길로 올 거 알고..기다렸지!"
"미쳤어..미쳤어! 어우. 내가 너때문에 미치겠다!"
저 녀석은 누구냐고.
환자복을 입고 내 앞에 서있는 저 녀석.
바로 멍청하고 융통성이 좀 떨어지는 내 남자친구란다.
핸드폰을 닫고 난 서둘러 도원이에게로 다가갔다.
"추운데 바보같이 그냥 기다렸다고?"
"괜찮아."
"진짜 너 바보같다. 왜 그러냐."
다행히 집이 가까워서 망정이지.
얼른 새 집으로 도원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얇은 환자 복에 점퍼 하나 걸치고..
사람 속상하게 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안해. 맨날 속상하게만 해서."
"누가 사과듣고 싶어서 그래? 이불덮고 있어. 차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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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컥 화가 났다.
여리여리해서 아픈 척 환자복이나 입고서
언제나 속상하게 하고 안타깝게 해서
그래서 조금 화가 났다.
그래도 어쩔까.
이젠 눈에 넣어도 안아플 남자친구라는 녀석인데.
물을 펄펄 끓여 도원이를 위해 유자차를 타기 시작했다.
괜히 안쓰러운 도원이 생각에 살짝
눈물이 날 것도 같아서
일부러 시선따위는 주지도 않고 바쁜 척 물 끓기를 기다렸다.
스르륵..
뒤에서 갑자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부끄럽게도 뒤에서 날 안은 녀석은
그렇게 가만히 말이 없었다.
따뜻하다.
머리에서 은은하게 좋은 향이 난다.
"뭐하는거야."
"몸이 차보여서."
이 두근거림은 뭐지.
근데 그것보다 마음 한켠이 왜이러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난 결국 녀석에게서 몸을 비틀었고
이내 팔을 풀어버리는 녀석은 작게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듯 했다.
뜨거운 물을 잔에 또로로 따르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뭐지?
"자, 마셔. 유자차야."
"와....상큼한 향 ~"
평소처럼 다시 밝은 모습으로 좋아하는 도원이.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구나!
"근데 진짜 너 병원 왜 뛰쳐나왔어!! 제정신이야?"
"제정신이야."
"허락맡고 온거야? 몰래 나온거야?"
"비밀."
너가 아픈 몸만 아니라면 벌써 등짝을 후려쳤을거다.
입은 살아가지고 베시시 웃기는.
"근데 진짜 갑자기 왜 왔는데? 왜..나보고 싶었냐?"
"맞아 ~"
"뭐야..진짜로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할말이.. 있어서 왔어."
녀석은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한마디 던지더니
유자차를 한모금 마신다.
그 할말이 대체 무엇이냐.
난 그렇게 녀석을 뚫어지게 응시할 뿐.
그런데 진도원은 무슨 대단한 말이라도 할 듯
뜸을 확실히 들이고 있었다.
녀석이 웃는 듯 보이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볼을..
그리고 속눈썹을 볼 수 있었다.
점점 불안해지는 내 마음.
녀석의 눈을 피해 난 유자차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유자차를 한모금 마시려는데..
그제서야 녀석은 입을 뗀다.
"기억나? 음....처음 사귀자며 내가 했던 말."
"응?...글쎄...무슨 말을 했었지?"
내가 잔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 예전 상황을 떠올리려 애썼다.
녀석과 내가 사귀게 된 게 언제쯤이더라?
그러고보니..시간가는 줄도 몰랐는데..
"한미소가 사람 천명 앞에서 노래를 하게되는 날."
"...응?..."
"그 날까지 나랑 만나줘요...."
"................"
"라고 내가 말했었지. 아마?"
차근차근 떠올리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허나 정확히는 난 기억나지 않아.
그렇다면 내가 들을때도 중요하게 듣지 않았다는거야.
그런데 너는 왜 그런 말을 기억하고 있지?
"내일 공연장에는 어쩌면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올지도 몰라."
"잠깐..너 지금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거야?"
"내일..그러니까 내일..무사히 공연을 하고나면.."
".................."
...
"우리.... 그만 만나요."
진도원이 하려던 대단한 그 말을 정말로 나에게 하고나니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침묵이 이어진다.
지금 얘가 무슨 말을 뱉고 있는거지?
지금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서 난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데.
..
"그러니까..내일 내가 천명 앞에서 노래를 하니까.... 헤어지자?"
"그만 만나야지...약속이니까."
"..약속이란 핑계대지마. 그러니까 뭐하자는거야? 헤어지자는거야?"
"....................응.."
"그 이유말고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기억난다..그래, 내가 그래서 그런 건 계약같아서 싫다고 했어, 안했어?
사귈거면 그냥 사귀고 말지..라고 했어, 안했어?"
"난 그냥 사귀는거라고 대답안했어."
"제대로 말해. 내가 보컬이 되고나니까 여자친구로는 필요없는거야?"
녀석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그저 숙일 뿐이다.
정말로 내 병 고쳐서 사람만들고 나니까 필요가 없어진거야?
그런 이상한 것들을 기억해낼만큼 정말 안되겠는거지?
나만 지금 이렇게 흥분되는거야?
가슴이 뻥 뚫린 기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거지?
갑자기 찾아와가지고 한다는 소리가..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갑자기 이러는 니가 난 이해가 안된다."
"...................."
"웃기잖아..! 예전 일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날 너한테서 밀어내고 싶은거 아니니?"
"그런 거 아니야."
.....
"지겹니?"
"..................."
입을 꾹 닫고 있는 널 보니 더욱 화가 나.
지금 나더러 어쩌라는거야?
지금 분명히 헤어지자고 찾아온 네 앞에서
날 차버리겠다고 갑자기 찾아온 네 앞에서..
난 쪽팔려서 울고 싶지않은데..
말도 더듬고 싶지않은데...
더러운 기분을 안고 내가 지금 뭘해야하니.
"말 똑바로 해. 진도원...
그럼 내가 내일 공연에서 노래를 못하게 되면 사귀는 기간이
연장이라도 된다는거야? 재밌니?"
"그렇지 않아요!....그런 거 아냐.."
"그럼 왜 굳이 오늘이야...! 차라리..다음에..
아니 내일 말하면..공연에서 내가 노래하고 나면...
니가 말하는 천명 앞에서 내가 노래하고 난 다음 얘기하면 되잖아!!!"
"..오늘밖에 시간이 없었어."
"니가 그렇게 말하면....내가 공연이 망설여지는 건 아니?"
"제발..제발..그러지마요."
"그만큼 난 널 잃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건 알아?"
".................."
"너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많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였나보구나."
그렇게도 진심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꺼내지 못했었는데..
왜 난 이런 자질구질하게 이별하는 순간
진심을 말하게 되는걸까.
더 구차해지게 진심을 말해버리는걸까.
어쩜 지금 나 한 번 널 잡아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 한미소가 말야.
그런데.. 넌..아무말도 하지않아.
나에게 화 한 번 못내던 그 여린 네가
나에게 상처주는 법도 몰랐던 네가
지금은 상처를 주네.
"............헤어져줄게. 나 싫다는 사람 잡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
"...................."
"그런데 너 이렇게 갑자기 이러는 너..!
진짜 최악이야. 진짜 재수없어. 너..알아??"
"미안해요."
"대체 맨날 뭐가 그렇게 미안한건데!!!!"
참을 수가 없다.
난 지금.
성질도 드럽고 참을성 없는 나에게
넌 지금 뭘 바라는거야.
자존심도 드럽게 세고 지기 싫어하는 내가
대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거야.
"미안해요..다."
"......................"
"미안해..정말."
".......그만해. 미안하다는 말 한번만 더 하면..나..."
심한 말을 뱉고 싶지만
그것도 이젠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어..
한번만 더 하면 끝이다 라는 말도
지금은 무색해져버리게 됐다고.
"미안해요. 내일 멋진 노래 꼭 부탁해요. 진심이야."
"............끝났니? 할말?"
"갈게요..나."
"......택시타고 가. 그리고...내일 공연보러 오지마."
"못가요. 병원에 있어야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녀석은 그렇게 내 집을 나서버렸다.
난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지만..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에
기다렸다는듯이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흐른다.
믿을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에
실소가 터져나온다.
"뭐야..쟤.."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그간 하루도 아닌 그 긴시간을
진심으로 서로 대한 것 같았는데
결국 오분이란 시간 안에 모든 게 부서지고 말았다.
.....결국은..
끝인거야?
너와 나 사이에는 끝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역시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걸까?
끝이 없는 건 정말 이 세상에 없는걸까?
오늘 나 잠들 수 있을까?
아파.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눈이 아프고 손발이 너무 아파.
가슴이 아파.
..
너무 아파서 숨쉬기가 힘들어.
아프기 싫어서 잠들고 싶어.
유자차가 아직 반이나 남겨진
너의 잔과 내 잔.
두 컵을 옆에 두고서
난 그대로 쓰러진 듯 잠드려 해.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오는구나.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꿈만 같고 믿을 수 없는 지금 이 현실이
날 아프게 할 줄은 몰랐지.
.......
....잠에서 깨어나면 아플것 같아..
일어나고 싶지않아.
눈을 뜨고 싶지않아.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너와 나 끝이라면..
난 좀 더 신중하게 시작할 걸 그랬나봐.
너에 대한 내 사랑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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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못하겠어."
"한미소. 너 오늘 왜이래. 연습도 안와서 제대로 못해놓고..
정신 차려. 멍해가지고 대체 왜 그러냐구."
"못하겠는데 어떻해!"
"이제 우리 차례 십분도 안남았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내가 잔건지 만건지 몽롱하게 자리에서 일어선건
공연 시작 한시간 전이였다.
다짜고짜 내 집 문을 두드려대는 녀석들때문에 일어났다.
한낱 꿈을 꾼 것 같지만..
누운 자리 옆에 놓여있는 두 컵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나때문에 트리움이라는 밴드에 피해를 준다.
우여곡절에 찾아 온 공연장은 생각보다 너무 컸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난..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난 대기의자에 앉아 아픈 머리만 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왜 노래를 할 수가 없는지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은 걱정이 되겠지.
단지 공연만.
"너 노래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 생각은 안해?
너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그동안 도운거야.
니 꿈 한번 이뤄보라고. 여러사람 앞에서 노래해보라고.
알아? 단지 사람하나 살려보자. 그런게 아니야! 알아?"
"남우형! 조용히 좀 해줘. 지금 내가..내가..!!!..됐다..말을 말자."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들려줄 수도 있는데 너 이래야 되겠냐?"
"마지막이라니..."
"..그건 됐고..마음 추수려. 추수려서.....하.. 곧 우리 차례라구!!"
"누가 몰라!!!!!!!!!!!!!"
"............................"
"이 공연을 하고나면..노래를 다 하고 나면.....끝이란 말야!!!!!!!!!"
참고 있던..
애써 억누르고 앉아있던..
내 감정이..생각이..펑 하고 터져버렸다.
자존심 있다고 매달리고 울고 아파하고 싶지 않았는데...
헤어진단 생각을 당연스럽게 생각한 그녀석과
나도 헤어져주고 싶은데..
"이 공연이 끝나면 진도원이랑도 끝이야..
내가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순간 난 진도원이랑 헤어진다구!!!!!!!
골때리지? 웃기지? 뭐 이런게 있나싶지? 나도 숨이 막혀. 미치겠다구!!!!!!!"
하진이가 해준 메이크업이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펑펑 쏟아져나왔다.
많이 좋아했다.
나도 나에게 놀랄만큼
그 아이를 좋아했다.
하루 아침에 바뀌어버린 녀석이
다짜고짜 예전에 했던 얘기를 빌미로 나와 헤어지겠다는데..
화가 나지만 무엇보다 난 헤어진다는 사실이 싫은데...
"노래하고..노래하고..그리고 얘기해.
도원이 공연 보러오기로 했어. 들려줘야 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남우형의 말은 내 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 말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무시해버렸다.
녀석은 공연에 오지않는다고 했다.
소리치고 미친듯이 울어대는 나를 보며
아이들도 사뭇 놀랐지만 아무도 위로는 해주지 않았다.
꼭 모두들 아파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무엇이 더 좋은 해결책일까.
그 이후로 공연 전까지 남우형은 나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그저 신중한 생각을 해보라고 그렇게 나를 냅두는 것만 같았다.
그간 기대하고 긴장하게 만든 공연이 오늘인데
그래서 즐겁고 그저 설레임만 가득할 줄 알았던 오늘이
즐길 수 있기는 커녕 초조하기만 할 뿐이다.
노래를 하지 않아도 오늘 내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지 않아도
진도원은 아무렇지 않게 나와 헤어질 것을 안다.
어제 나에게 말을 하는 진도원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난..
무대에서 노래를 하지않고서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미 녀석은 혼자 이별을 준비했고 당연스레 말을 뱉고 있었다.
분명했다. 너무 당연스레..자연스레.. 그랬으니까.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처럼.
역시나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생각했다.
너만큼 나에게 노래도 중요했던 적이 있었어.
그렇게.
무거운 발거음으로
무거운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서버렸다.
"트리움의 백만년만의 공연을 시작합니다."
웅성웅성.
정신이 혼미했다.
무대 위에 선 난 눈이 부셔
관중석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짐작으로
정말 많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난 오분전만 해도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끝은 싫었으니까.
말을 아끼던 남우형이 마지막에 한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최선을 다해 노래해줘.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야. 넌.
공연이 끝나면 말해줄게. 너가 아파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첫노래의 간주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초조해진다.
난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벌써부터 눈물이 차오르려 한다.
힘겹게 눈을 떴을 때였다.
관중석에서 그 녀석이 보였다.
"..진도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히 진도원.
사람들 틈에 진도원이 서있다.
멈춰버린 간주.
허나 녀석들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간주를 처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노래해줘. 후회하지 않을거야. 넌.'
'미안해요. 내일 멋진 노래 꼭 부탁해요. 진심이야.'
........스르륵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 어둠속에서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그렸고
가장 예뻤던 웃는 진도원을 그렸다.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이런 모습의 나 -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 어떻게 해"
난 입을 열었다.
목이 메여 처음은 살짝 흔들렸지만 침착하려 했다.
모든 걸 잠시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노래를 몇 마디 내뱉자 그제서야
관중석의 웅성거림이 환호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이였다.
간지러운 저 환호들이 이렇게 황홀하게 느껴질 줄이야.
"아 ~ 아무 - 말도- 아~ 소용- 없어- 예에에에
이제는 더이상 숨길 수 없어요-
사랑하고 있어
당신과 나만의 비밀이 되나요-
이렇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저 표정으로 슬픔이 나타날 정도로
일그러져만 갔다. 내 표정은.
끝이라는 것이 이렇게 두려울 줄 몰랐다.
사람들은 지금 두 눈을 감은 초라한 내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눈물이 나고-
왜 갑자기 또- 기뻐지나요
이런 모습의 나-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아 ~ ~"
음을 높히려는 순간 난 다시 눈을 떴다.
잠시 환한 빛에 어지러웠지만 노래를 하면서
눈은 재빨리 녀석을 찾고 있었다.
분명 저 위치에서 나를 보고 있었는데.
보고 있었는데.
...........듣고 있겠지?
봐라. 진도원.
나는 노래를 무척 잘한다.
너가 없어도.
듣고 있겠지?
....
"안녕하세요. 트리움 기타리스트 남우형입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오늘.
새로운 보컬을 처음으로 소개드립니다.
하늘에 있는....진도...명을 잇는 훌륭한 보컬입니다.
들어보셨으니 실력은 충분히 아셨을테죠."
숨이 턱턱 막히는 우형이의 인사말.
난 여전히 축쳐진 어깨로 고개를 숙인채..
그저 관중석의 환호에 살짝 놀라있을 뿐..
아이들이 인사를 하라고 부추겼지만 난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난 이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야.
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진씨네 형제를 위해 오늘 하루 연주하겠습니다."
나 대신 우형이가 인사를 마치고 바로 두번째 곡을 이어갔다.
진도명씨가 보컬이였을 때 트리움이라면 항상 빠지지 않았다는 곡.
'midnight radio'
한동안 내가 홀릭되었었던 그 노래.
영화 헤드윅을 보며 이 노래를 들으며
구질한 눈물을 흘렸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녀석들은 내가 아닌 진도명과 공연하는 순간을 생각하고 있을까?..
I AM CANDY:D
I LIKE C.
http://cafe.daum.net/candy12345 - 71
"Rain- falls- hard -
(비가 세차게 내려)
Burns dry-
(모든 것을 태워 증발하고)
A dream- Or a song -
That hits you- so hard Filling you up
(당신을 감동시키고 가득 채우던 꿈과 노래는)
And suddenly gone - "
(갑자기 사라집니다)
이젠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지않는 너..
그래..진도원..그 녀석을 위해 부르는 마지막 노래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쨋든 내가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건 그 녀석때문이였으니까.
노래를 부르는동안 그간 녀석을 만난 그 순간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다.
"Breath- Feel- Love-
Give Free-
(숨쉬고 느껴보세요 자유를 주던 사랑을)
Know in you soul-
(당신의 영혼은 알고있어요)
Like your blood knows the way-
From you heart to your brain-
(마치 혈류가 심장에서 뇌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듯)
Know that you're whole"
(당신의 모든것을 알고 있어요)
녀석의 지갑을 훔쳐 달아난 그 날
주민등록증 사진이 더없이 예뻐보였던 그 순간
어쩜 너와의 시작이 이미 정해져있었던 걸까.
"And you're shining - Like the brightest star-
A transmission On the midnight radio-
(한밤중의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당신은 가장 밝은 별과 같이 빛납니다)
And you're spinning- Like a 45
Ballerina- Dancing to your rock and roll-"
(그대는 rock and roll에 맞취 춤추는 45명의 발레리나와 같이 춤추고 있지요)
구질구질한 나의 영어발음.
열심히 굴려보고 굴려보지만 너무 슬픈 발음이야.
..
술에 취해 노래하는 내 목소리를
넌 예쁘다 해줬고 날 미운 오리라고 불렀지.
아침마다 추운 날씨에 내 집 앞에서 늘 기다리는 넌
정말 구제불능이였는데.
그래서 더 내 마음이 아프다.
너무 아프고 슬프다.
눈을 뜨고 관중석을 내려다보면 모두들 슬픈 눈이야.
내 손에 의해 검게 번진 마스카라때문일까.
내 슬픈 영어 발음때문일까.
"Here's to Woo hyung-
And Ha jin-
And Na eun-
Eun tae -
And Do myung -
And Do..Won -
And me-
(여기 모인 우형, 하진, 나은, 은태, 도명, 도원 그리고 나를 위해)
And all the strange rock and rollers"
(그리고 다른 모든 rock and roll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사실 며칠부터 준비했던 애드립.
못할까 봐 무서웠는데 자연스레 입을 타고 흘러 나온다.
사람들도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로큰롤을 부르는 난
아니..오늘따라 로큰롤이 슬픈 난
"You know you're doing all right
(당신이 하는 일은 모두 옳으니)
So hold on to each other
(모두가 모여)
You gotta hold on tonight"
(이 밤을 함께 보내요)
난 한미소다.
트리움의 보컬 한미소.
.....................
............
..................
"하..........하.........."
모든 공연이..아니..우리의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난 기절과 흡사하게 대기실에 쓰러져버렸다.
미친 여자처럼 번져버린 화장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이 호흡을 몰아쉬는 나.
다른 고교밴드는 날 피해다니지만
트리움 아이들은 날 둘러싸고 가만히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누나..괜찮아요........?
"한미소...잘했어..정말..."
"...언니.."
다들 목이 메인 목소리로 날 달래는 듯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하지만 난 지금 그 무엇도 생각할 힘이 없다.
차가운 이 바닥에 눈물을 떨굴 뿐.
나은이와 하진이의 미세한 울음소리도 귀를 타고 들어온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고 버티다가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우형이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나.....나...힘들..어..우형아."
"한미소...."
"나 이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잘하구.
겁내지고 않는다구. 말해주고 싶은데....."
"................."
"네 덕에 나 너무나도 변했다고 고맙다고..
말 못했어...........나 ..생각보다 되게 많이 좋아하는데..."
나의 흐느낌은 곧 아이들의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우형이는 힘없는 나를 조심히 일으켜 세워준다.
"..강하잖아..한미소...너 강하잖아..
약하지 않잖아..너....슬픈 거....힘든 거 다 알아..."
"...........힘들어...아파.."
"녀석이.. 이건 말하지 말라고 했어."
"...................."
"...당장 오늘 한국을 떠나..도원이.."
"........그건.. 무슨 소리야.."
"오늘 공연장에서 멋진 트리움의 노래를 듣다가
가겠다고......그러니까 힘내달라고...."
갑자기 뜸금없는 우형이의 말.
난 커진 눈으로 녀석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흐느끼지도 못한 채.
다들 뭐라도 알고 있는 듯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어.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녀석이 많이 아프잖아..
그래서 어떻게든 일단 치료해보겠다고....."
"...................마..많이 아파..?"
"........!!!!!!........."
"도원이가......어디가 많이 아파..? 그래?"
"그..얘기 듣고 오늘 그런 거 아니였어?......."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게 정확한 말이다.
도저히 설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헤어지자는 이별선고보다
더 충격적인 이 말은 대체 뭐야.
난 고작 이별선고에 그토록 힘들었던 것 뿐인데.
....
"대체...대체......뭐야!!!!!!!!! 뭐야 대체!!!!!!!!!!!!!!!!!!!!"
나의 고함소리는 바깥까지 울려버린다.
더 가파라진 숨소리. 그리고 눈물.
"......아프다는 건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이 녀석...너..모르게 하려고........"
"..분명....헤어지자고만 했어....
단지 내가 지겨워져서!!!!!!!!! 필요가 없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구!!!!!!!!!!! 근데...근데......."
하....
기가막힌 이 상황을
머리나쁜 난 해결하는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어.
당장 진도원이 보고싶어.
"부탁할게.
제발 그 녀석 좀 내 눈 앞에 보이게 해줘."
내가 엉금엉금 바닥에서 기어가듯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대답없는 우형이 옆을 지나......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원이가 있을 그 곳으로 가야겠다.
내가 직접..
도원이는 내가 단순히 지겨워진 게 아냐.
필요없는 게 아냐.
"한미소!! 쓸데없는 짓이야...
........곧 비행기탈거야............"
"....왜.....왜 일찍 말해주지 않은거야!!!!!!! 왜!!!!!!!
다들....다 알면서...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던거야???"
"한미소!!!!!!!!!!! 정신차려!"
"많이 아프다며...죽어? 설마 죽지는 않지?"
"............................"
"..죽을 병이라도 걸렸다는거야????왜 말을 안해!!!!!!!!!"
"그만 좀 해!!!!!!"
우형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쉴새없이 나오기 시작한다.
녀석은 참고 있었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날 보며
차근차근 말을 이어간다.
"니가 좋아하는 녀석이기 전에
우리한테도 소중한 친구고 동생이야........알아?
너에겐 고작 몇 달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했던 놈..
우린 몇 년을 바라보고 함께 하고 아꼈다고.
지금 너만큼 슬픈 사람이 없는 줄 알아!!!!!!!!!!!!"
"........................"
"우린 이미 한사람을 일년 전에 잃었어.
똑같은 아픔을 겪게 될까 얼마나 두려운지 알기나 하니?"
"......................"
"똑똑히 봐. 널 달래주기엔 다들 너무 힘든 녀석들이니까."
우형이의그 말에 난 그제서야 다른 아이들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고 하나같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녀석들을 보니..
힘이 빠지고 이 상황이...이 현실이...사실이라고
새삼 느껴져서 또 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하......대체..왜..........
이런 큰 아픔을 슬픔을 뜬금없이 주는걸까.
이제 나도 겨우 행복한 사람이였는데.
".....지금 공항으로...가보면 안될까?.."
"곧 비행기에 오를거야...."
"전..전화라도 해야겠어..나.....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라도 해야겠어!"
"우리 전화로는 받지않을거야.
그리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두고..."
목소리도 이제 크게 나오질 않아.
가슴 한쪽이 너무 아파 숨을 쉬기엔 너무나도 쓰려.
우형이의 말은 듣다가 그만 관두고
조심히 옆에 보이는 사람을 부여잡고..
핸드폰을 빌리기 시작했다.
"저기요....나 전화해야 되요..빌려줘요..핸드폰 좀.."
핸드폰을 빌려 난 천천히 번호를 누르려해도
떨리는 손과 다리..
온 몸이..
날 힘들게 해.
"제발...제발 받아라......제발....제발............."
어느새 모두 나에게 다가온 녀석들은 날 둘러싸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유난히도 길게만 느껴지는 신호음은 멈출 줄 모르고....
타들어가는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한결같데.
딸칵..
건너편으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오고..
난 다짜고짜 소리를 치기 시작해.
"도원아!!!!!!!!!!!"
"........................"
"도원아..도원아!!!!!! 끊지마!! 절대 끊지마!!
나........미소야.......한미소............꼭 해야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
"......................."
"듣기라도 해줘.....제발...부탁이야.....
다 들었어...얘들한테 다 들었어...나...나......................."
분명 하고싶은 말들은 잔뜩이고..
빨리 말하고 싶은데..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고
버거운 숨소리만 너에게 들려주는구나.
니가 대답하지 않아도 너라는 게 이렇게 느껴져.
아직도 난 널 느끼면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바보야..왜 말하지 않았어!!...
끝까지 바보같은 짓은 혼자 다하고.............
거짓말은 싫어! 싫다구! 너 아직 죽지 않았잖아.
근데..뭐가 그렇게 문제야!!..."
"......................."
"..살아서...살아서 만나.
도원아? 다음에...........살아서 돌아와서..
그리고 살아서 만나자..응?"
"......................."
"..이 새끼야.. 너따위랑 헤어져줄테니까!!!!!!!!!!!!!!
제발 살아서 만나자구!!!!!!!!!!!!"
정말로 내가 이렇게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니.
사실 알고보면
난 너에게 너무나도 부족했던 여자였어.
넌 힘든 날 위해 많은 걸 해줬지만..
난 힘든 널 위해 안아주는 일 밖에 해줄 수 없었으니까.
내가 다시 살게끔 해 준 널
다시 살게끔 해주지 못해서....
난 지금 죽을 것만 같아.
"......사랑해....사랑해....사랑해..많이..
사랑해! 사랑해!! 도원아!!!!!!!"
"........................."
"나 너 잊으려고 할거야...그러니까 잊혀질 때 쯤
살아서...찾아와.. 꼭 그러자...도원아....도원아....!!!!"
제발 듣고 있길 바래.
점차 커지는 내 목소리에
점차 늘어나는 주위의 이목에
원을 그리고 있는 트림움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대는 지금.
다행이 전화를 끊지않은 넌..
".............미안해요.."
라고.
".........도원아................"
"나..그럴게. 꼭 그럴게. 그러니까 울지말고 있어요....."
..
딸칵..
"도원아!!!!!!!!!!!!!!!!!!!!!!!!!!"
한마디 하기도 힘든 그 목소리
그래도 들려줘서 고마워.
"진도원!!!!!!!........"
내가 슬퍼할 준비도..
헤어질 준비도..
아무런 준비도 못했는데..
넌 그렇게 급하게도 가버리는구나.
사람을 잃는다는 거
내가 얼마나 무서워하는 줄 몰랐었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거
내가 얼마나 지겨워하는 줄 몰랐었어?
너만 마무리지으면..다 되는거라고 생각해?
늘 내가 이기적이였는데
왜 이번엔 니가 이기적이여야 하는건데.
왜이렇게 못났어. 너.
...
아직 난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그러니까...
...그러니까..도원아...
돌아올거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지?
"........제발..도원아.."
..가장 예쁘게
우리 둘다 웃으면서 만나.
.....
.................
.....
* 에필로그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천천히 기억해내고 할 것도 없이 너무 짧아서
일분 일초를 모두 기억해내도
너무 부족해서..
너의 흔적과 너의 온기를 찾아
찾고 또 찾아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두 기억하려 애쓰며 지내도
..
넌 돌아오지 않았어.
잊어버릴새라 모두 찾아내서 기억한 너에 대한 기억들을
이젠 하루하루를 잊으보려 애쓰며 지내볼까해.
..........................
............
도원아.
내 남자친구 도원아.
오늘이 너와 마지막 통화를 한지 벌써 이년 째 되는 날이다.
..살아서 만나기로 했는데..
앞으로 이년 후엔 어쩜 내가 널 다 잊을지도 모르니까.
그땐 앞에 나타나 줄거지?
"제가 듣기로는 보컬 미소씨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특이한 분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네. 사실이예요."
"누나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웃겼는데요! 정신병이라고..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이상했죠. 이런 사람도 있나."
"노래듣기 진짜 비쌌지."
"하하..그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라...저보다 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혹시 옛 남자친구인가요??"
"흠...첫사랑 쯤으로 해두죠."
...
.........
난 여전히 트리움 밴드의 한미소.
고교밴드 트리움이 아닌 인기스타 트리움의 자랑스런 보컬.
나에겐 여전히 옆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고
하늘에서 지켜보는 아빠와 엄마가 있고
..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그 녀석을 그리는 버릇이 있다.
...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출장을 간 그 녀석을 기다리는 중이다.
괘씸한 남자친구를 잊고 싶지만 아직은 노력중이다.
끝을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젊다랄까.
게다가 나 혼자서는 끝을 말할 수 없기에
아직도 난 홀로 진행형이다.
오늘도 난 첫사랑을 어둠 속에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