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 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도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으며,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456년(세조 2) 신미(信眉)와 수미(守眉)가 중건하여 전부 966칸에 달하는 당우가 들어섰으며, 부속암자로 상동암(上東庵)·하동암·남암(南庵)·서부도암(西浮屠庵)·동부도암·미륵암(彌勒庵)·비전암(碑殿庵)·봉선암(鳳仙庵)·대적암(大寂癌)·상견암(上見庵)·중견암·하견암 등이 있었다.
최근에는 1977년 명부전과 해탈문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점차 옛 전각에 대한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大雄寶殿)·명부전(冥府殿)·미륵전(彌勒殿)·국사전(國師殿)·해탈문(解脫門)·일주문 및 요사인 세진당(洗塵堂)이 있다.
이 중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해탈문은 1473년(성종 4)에 중건하였으며,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미륵전 안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물 제89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1134호로 지정된 도갑사소장동자상이 있다.
이밖에도 대웅보전 앞과 뒤에는 보물 제1433호
인 오층석탑 및 삼층석탑 등 고려시대의 석탑 2기와 보물 제1395호로 지정된 도선·수미의 비가 있다. 이 중 도선·수미비는 비문에 의하면 1636년(인조 14)에 건립을 시작하여 1653년(효종 4)에 완성한 것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하여 주목을 끈다.
또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된 수미왕사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된 석조(石槽)가 있다. 이 절의 주위에는 국보 제144호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도선이 디딜방아를 찧어 도술조화를 부렸다는 구정봉(九井峰)의 9개 우물, 박사 왕인(王仁)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슬퍼한 제자들이 왕인이 공부하던 동굴입구에 새겼다는 왕인박사상 등이 있다. 절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갑사 일주문
도갑사 해탈문
국보 제50호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도갑사 해탈문내
도갑사 해탈문내
도갑사 경내
도갑사 범종각
도갑사 누각
도갑사 석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도갑사 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물을 담아두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였던 일종의 돌그릇이다.
길쭉하고 네모난 돌의 안을 파내고, 각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는데, 아랫부분을 둥글게 반원모양으로 깎아 놓아 옆에서 보면 작은 통나무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때 쓰이는 작은 배수구멍이 뚫려 있다.
표면에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숙종 8년(1682)에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갑사 요사
도갑사 요사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제1433호
고려시대 석탑으로 도갑사 대웅전 앞에 있다. 2층 기단의 5층으로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처음에는 하층 기단이 없는 1층 기단의 5층탑이었으나 세진당(요사채) 북서쪽에서 하층 기단부가 발견되어 2002년 2월 2층 기단의 5층탑으로 새로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탑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위치와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면에는 네모서리에 기둥이 모각되어 있으며 지붕돌(옥개석)에는 지붕돌 받침이 1~3층은 5단, 4층은 4단, 3층은 3단씩 조각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급격한 체감률을 보이기는 하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잘 계승되어 있어 고려 초기의 탑인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대웅보전
도갑사 대웅보전내
도갑사 국사전
도갑사 국사전내
도갑사 수미왕사비
시도유형문화재 152
도갑사 경내에 서 있는 비로,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수미는 조선시대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였고, 불교를 숭상했던 세조 임금이 그 스승(왕사)으로 모셨던 인물이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형식적으로 조각된 거북받침은 머리가 용의 머리처럼 바뀌었으나, 목이 짧다. 앞발과 뒷발의 발톱이 다섯개씩이다. 거북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이 매우 두껍게 조각되어 있다. 비몸 위에 놓인 머릿돌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구름 위로 중간과 양 모서리에 다투듯 뒤엉킨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았다. 선조 14년(1581)에 비가 넘어져 새로 세운 것으로, 인조 7년(1629)에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에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초에 세운 석비로서는 특이하게도 고려시대 유행하였던 양식과 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갑사 수미왕사비
도갑사 천불전
도갑사 천불전내
도갑사 명부전
도갑사 명부전내
도갑사 산신각
도갑사 산신각내
월출산 용수폭포
도갑사 미타전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89호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의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기법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를 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도드라진 눈덩이,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은 강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 단순한 몸의 굴곡 등은 생동감이 없는 경직된 모습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쳐 입고 있으며 몇가닥의 옷주름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갸름한 타원형 광배의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꼭지와 머리 양 옆에 각각 작은 부처가 표현되었다. 광배에 새겨진 조각은 대체적으로 생략이 강하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좌(臺座)는 밋밋한 4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본래는 연꽃무늬를 새긴 8각형의 대좌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다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얼굴표정에서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도갑사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
보물 제1395호
조선시대의 비석. 통일신라시대의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고승인 수미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조선 인조 14년(1636)부터 효종 4년(1653)까지 18년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1500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원래의 도선국사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웠다고 적고 있다. 석비는 거북받침돌(귀부)과 비몸, 머릿돌(이수)을 잘 갖추고 있다. 머릿돌 양 측면의 운룡문(구름과 용 문양)의 사실적 묘사 등 조각기법이 우수하다.
도갑사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
도갑사 부도
도갑사 대웅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