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최근 제주 지역의 태풍 피해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제주의 생태와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어볼 예정이다. 필자 박상희님은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환경교육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 9월말,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강타하여 열 명이 넘는 사망자와 함께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지도 2주가 넘어가고 있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처럼 그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도민들의 충격은 더욱 컸으리라. 제주 지형의 대부분이 현무암질 다공층이기 때문에 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침투율이나 속도가 타지방에 비해 높아서, 이번과 같은 수해는 제주에선 일어날 리 없는 일로 인식되어 왔다.
이번 일로 인해 그간 도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제주도 ‘환경’이 새로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민들 사이에서도, 이번 태풍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골프장”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번 수해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의 문제, 무분별한 도로 건설의 문제, 하천 관리와 설비 시설의 문제, 제대로 된 기상예보의 미흡 등 많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수많은 골프장 건설 또한 피해의 원인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역환경 파괴하는 골프장 37개 허가해줘
골프장을 짓기 위해서는 골프장이 들어설 지역의 흙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흘러 만들어진 40~70cm 두께의 흙을 모조리 걷어내고, 그 곳을 생명체가 거의 살아갈 수 없는 모래, 마사토 등으로 채워 넣는다. 그 위에 잔디를 깔아 비료와 살충제, 제초제를 듬뿍듬뿍 뿌려줘야 비로소 한 겨울에도 파릇파릇한 ‘녹색사막’ 골프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도의 골프장 잔디들은 타 지역의 골프장 잔디들과는 달리, 제주도민의 식수원인 지하수를 맘껏 마시며 자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빗물이 흡수될 수 있는 토양 층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이번처럼 한 시간에 500mm라는 어마어마한 비가 내린다면 그 엄청난 양의 빗물은 다 어디로 가겠는가. 하천으로 모이다가 하천 수위를 넘어선 빗물이 주변으로 범람하여 마을을 덮치는 건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제주도내 골프장 현황을 살펴보면 2007년 6월 현재 운영중인 골프장은 21개에 달한다. 또한 승인을 받은 골프장이 12개, 절차 이행 중인 골프장이 2개, 예정자 지정된 골프장이 2개로, 제주도는 총 37개 골프장을 허가해줬다.
문화관광부 고시를 살펴보면 ‘골프장의 입지 기준 및 환경 보전 등에 관한 규정’에는 총 임야면적의 5% 범위 내에서 조성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현재 제주도내에서는 최대 4천5백72만2천㎡까지 골프장이 가능한데, 현재 총 37개소에 4천3백38만7천427㎡가 골프장으로 허가되어 있다. 도내 초지 면적의 4.78%에 해당한다. 제주도 총 면적의 2.34%에 해당하는 면적이기도 하다.
미래의 공간을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 것인가
즉, 이미 제주도는 골프장 건설 총량에 육박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장 이해당사자들은 골프장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들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고, 고용창출 또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물론 명목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은 지가 상승이나 수억 원대의 회원권 판매 등과 같이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골프장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과 조세특례 제한법에 따라 각종 세제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타 지역보다 더욱 많은 업자들이 모이고 있는 형편이다.
특별소비세와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부가세 등과 같은 세금을 면제 받아 수백억 원대의 이익을 보고 있는 도내 골프장들. 차라리 제주도정이 환경보호세와 같은 다른 항목을 잡아서라도 세금을 받아내서, 개발에 따라 훼손된 환경을 복구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나마 덜 원성을 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도는 앞으로도 도민들의 후대가 살아나갈 삶의 터전이고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삶의 토대에 ‘아무런 생명도 살아갈 수 없는 황폐한 녹색사막’이 잠식해 들어가도록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일이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고 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 때보다 현저히 높아가고 있는 지금부터라도, 무분별하게 계획되거나 예정되어 있는 골프장 개발 사업에 대해서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이미 운영중인 골프장에 대해서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사후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