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시향 사태'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수사 결과 때문에 언론은 '막장'이라 떠들었고, 피해 직원들은 한순간에 대국민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전을 거듭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疲勞感) 역시 한계점에 달했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향 직원인 제가 이 글을 쓰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펜을 들었다가 놓기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제게 펜을 들게 했습니다.
우선, 다섯 달 된 제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이고 싶습니다. 저는 출산 직후 100시간 이상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몸조리도 못 한 채 삶은 망가졌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가장 힘들고 억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침묵했습니다. 임신 중에 압수수색 과정에서 몸수색까지 당했고, 피해자인 동료직원에게 오히려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면서 그동안 더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아기만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지고 하염없는 눈물만 흘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들이 옳은 것은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밀알 같은 노력이지만 당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두 번째, 경찰 조사결과는 자위를 위한 반박조차 하기 공포스러울 만큼 진실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비현실적 상황 속에서 과연 저와 동료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상식적인 수준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그 상식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서울시향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직장 내 폭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직장 내 폭언의 대한민국 현주소
경찰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직원들에게 잦은 질책을 했던 것은 맞지만, 직장에서 용인될 정도의 업무상 질책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이미 언론에도 공개된 "저능아, X랄, 새끼, 년, 처먹다" 등의 언사가 과연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에서, 아니 일반적인 직장에서도 용인되는 수준의 것입니까. 누구를 지칭한 발언이었건 말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 이상을 고성과 폭언에 시달려도 참아야 했던 것입니까. 그것이 맞는다면 저와 동료들은 대한민국 일반직장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배후설이 정말 있었다고 믿으시나요?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30~40대 성인들이 형사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거짓으로 대표를 무고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서울시향은 문화계 최고 직장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동안 직원들이 보장된 직장도 없이 무작정 퇴사한 것 또한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들은 박 전 대표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조용히 회사를 떠났던 것입니다.
한 두 번도 아닌, 수십번을 장기간에 걸쳐 자행된 학대행위가 어떻게 감춰질 수 있겠습니까.
2014년 12월 8일자 <조선프리미엄> 기사를 통해 박 전 대표의 폭언은 이전 직장에서도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프리미엄은 "박 대표가 원래 막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인터뷰를 보니 기가 막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후'는 박 전 대표가 근무했던 예전 직장에서도 존재했던 것입니까.
단지 우리들의 잘못이 있다면 미리 조금 더 조직적으로 '학대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녹음과 영상증거로 다수 확보하지 못한 점입니다.
구순열 여사와의 문자 메시지가 증거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
박 전 대표의 심각한 인권유린에 대해 직원들은 저를 통해 정명훈 전 예술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명훈 감독님의 부인인 구순열 여사 또한 저희를 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저와 구 여사가 개인적으로 나눈 메시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자 내용 어디에도 사건을 조작하고 없는 죄를 꾸며서 뒤집어씌우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박 전 대표에 대해 함께 분노했던 내용이 전부입니다.
사주가 성립되려면 어떤 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단 한 명도 구 여사와 연락을 하지 않고 인사도 못 나눠 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저 또한 전혀 직원들에게 지시 할 수 있는 지위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무슨 이득이 있어 한 사람의 말만 믿고 그 수많은 사람이 거짓을 도모하겠습니까?
이는 서울시향 직원들을 꼭두각시 거짓말쟁이로 치부하는 대단한 모욕입니다.
허위사실?
호소문에 대해 직원들이 거짓을 모의한 증거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피의자를 제외한 대다수 직원 진술에 의하면 박 전 대표의 폭언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인 서울시 시민 인권 보호관이 2014년 12월 '출연기관 대표에 의한 성희롱 및 폭언'(사건번호 14신청-151, 2014.12.19) 사건을 조사한 결과 30명의 직원 중 21명의 직원이 박 전대표로부터 언어폭력, 성희롱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인사 전횡 역시 서울시 감사를 통해 박 전 대표에 대해 징계조치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는 언어폭력도 없었고 인사 전횡도 없었다고 합니다. 서울특별시라는 행정기관의 행정행위와 결과는 왜 인정되지 않는 것일까요?
박 전 대표의 언행에 대해 진술서까지 써주었던 퇴직 직원들의 목소리는 왜 반영되지 않았을까요?
호소문 발표 훨씬 이전부터 지속적인 상사의 폭언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직원의 진료기록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요?
그동안 저는 언론에서 정명훈 서울시향 전 예술감독의 비서, '백 비서'로 알려졌습니다. 저는 당시 서울시향 공연기획팀 과장이자 예술감독 보좌역으로서 공연기획 업무와 예술감독 업무를 동시에 담당해왔습니다.
서울시향의 편제상 예술감독 비서는 어디에도 없으며 그동안 저를 비서라고 부른 사람 역시 없었습니다. 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굳이 저를 언론에 '백비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덕분에 10년 이상 쌓아온 커리어는 통째로 사라진 채 저는 지휘자의 부인과 내통하며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를 사조직화한 '유명 지휘자의 비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어떤 이들은 영화 <내부자들>이 따로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두려움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떻게 양심을 팔고 합리화 해가는지를 지켜봤습니다. 소설과도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 세상에 얼마나 힘없이 당한 억울한 사람들이 많을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이 사건 전까지 사소한 법적 분쟁은커녕 평생 경찰서 문턱에도 가까이 가보지 않은 평범한 소시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저희의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는 '진실' 뿐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절을 되뇌며 사법부의 공의롭고 지혜로운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첫댓글 유전무죄 무전유죄 , 유력무죄 무력유죄는
예나 지금이나 어느 곳에서나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리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파묻히는 진실도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