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3. 불날. 날씨: 아침나절 미세먼지가 나쁨이더니 낮부터 좋음이다. 바람이 불지만 해가 나서 겉옷을 벗게 된다.
아침열기-수학(그래프와 미지의 수, 입체도형 전개도, 분수의 나눗셈)-점심-청소-대나무 자르기, 우리나라 알기(고려 말과 조선건국)-마침회-5, 6학년 영어-교사회의-우리말 글 연수
[선생 욕심이 슬며시 난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란 낱말을 날마다 확인하는 때다. 8시 50분, 아침 걷기는 초미세먼지 때문에 가지 않고 교실에서 영어동화 듣기로 대신한다. 가장 일찍 오던 채민이가 검사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라 못 오고, 정우와 민주가 지각을 했다. 학교에서 가장 집이 먼 거리에 있는 두 어린이라서 늦는 구나 했더니 씩 웃는 아이들이다. 학교 바로 앞이 집이지만 늦을 때도 있는 법이다. 아침열기를 영어 동화 듣고 따라 말하기, 천자문 암송, 피리 불기로 시작되는데 두 어린이 모두 영어 단어장을 부지런히 쓰고 있다. 채민이 자리가 비니 어째 교실이 휑하다. 벌써 작은 수 넷이서 사는 익숙함에서는 빈틈이 금세 보일 수밖에.
아침나절 수학은 선그리기 공책에 지난해 알찬샘에서 일 년 간 기록한 태양광발전기 발전량을 그래프로 그려보며 표와 꺾은 선 그래프, 막대그래프를 견주어본다. 6학년이니 발전량 평균을 계산해보고 다양한 그래프 보기를 들어본다. 잘 정리해 놓고 마지막에 휙 글씨를 쓰는 정우는 선생 잔소리에 다시 지우고 천천히 정리를 한다. 두 번째 활동 꼭지는 입체도형 전개도다. 정육면체 전개도 11개를 만들어 찾아내는 과제를 교구와 같이 준다. 놀랍게도 9분만에 두 어린이가 11개 전개도를 모두 찾아내버린다. 방법은 정육면체를 만든 뒤 다시 펼치며 다른 꼴을 찾아간다. 일머리가 있는 어린이들이다. 11개 정육면체 전개도를 완성하고 선그리기 공책에 전개도를 다시 그려본다. 겉넓이와 면적 공부도 금세 속도가 나겠다. 수학 영재들이라니 씩 웃고 만다. 세 번째 수학 활동은 분수의 나눗셈을 익히는 시간이다. 반복해서 익히는 과정이라 통분과 역산으로 풀어가는 분수의 나눗셈이 쉬워간다. 봄, 여름 학기면 초등과정 수학 진도가 거의 마무리될 듯 보이는 속도다. 계획대로 탐구하고 깊이 있는 수학 주제로 들어가도 될 만하니 선생 욕심이 슬며시 난다. 욕심을 잘 누르며 재미난 수학 수업 구성을 해야 한다.
낮부터 미세먼지가 좋음으로 바뀌었다. 얼른 밖으로 나와 노는 우리 아이들이다. 숲속 놀이터 텃밭 정리를 하고 농사 채비를 한 뒤 대나무를 찾아서 자르고 있는데 청소 시간에도 줄곧 자르게 됐다. 선생이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은 금세 달려와 묻고 도와주려고 한다. 톱질하는 걸 보던 한주엽 선생이 몇 개 대신 해준다. 손목이 아픈 줄 알고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다. 이준이는 잘라진 대나무통 하나만 달라고 하는데 공부로 쓸 거라니 더 조르지는 않는다. 낮 공부 시작하고 30분 정도 깊은샘 6학년은 대나무를 자르고 깎고 사포질을 한다. 깊은샘 학교살이에서 쓸 대나무꽃이와 대나무자를 만드는 게다. 1학년 때 같이 대나무자를 만든 걸 기억하는 두 어린이다. 수업 때 쓸 대나무자를 하나씩 금세 만들고, 긴 대나무꽂이를 다듬는데 집중력이 대단하다. 다음 주 불날 학교살이 때 포장마차를 끌고 꼬치를 파는 것을 제안한 어린이들답다. 한 백 개쯤 만들자는데 그걸 사먹을 사람이 없으면 자기들이 다 먹겠단다. 그런데 대나무로 깎아서 만들 줄은 몰랐다며 웃으며 손을 놀린다. 그냥 사서 쓰는 소비보다는 뭐든지 만들어보는 생산의 보람과 즐거움을 경험해야 한다는 선생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뭘 해도 잘 해 낼 깊은샘 어린이들이다.
우리나라 알기 시간에는 고려 말과 조선의 건국 상황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사회과부도를 펴서 고려와 조선의 지도를 보고, 큰 역사 사실을 읽어본다. 마무리로 지도를 그려서 표시해 우리나라 알기 공책에 붙이고, 다음 시간에 조선 역사를 본격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 역사 교육 정신과 방법을 다시 새겨본다.
[한국 교육의 큰 이정표를 세우신 이오덕 선생님은 역사 교과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렇게 잡아주셨습니다.
“역사 부문에서는 인간이 흘린 땀의 역사를 알게 해야 한다. 인간은 옛날부터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왔으며, 어떤 문명을 만들어왔는가? 인간이 일한 도구는 어떻게 바뀌었고, 일하는 방식· 과정· 결과는 어떤 사회를 만들었고, 그 사회는 어떤 원인으로 어떻게 변천하였는가?
지리 부문에서는 사람의 일함과 자연의 관계를 밝히고, 국가와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교통은 어떻게 발달하였는가? 자연은 어떻게 정복되고 침해당하고 변형되고 있는가? 자연을 보존하고,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게 해야 하겠다.
공민 부분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으며, 그 조직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불합리한 조직은 없는가? 어떤 일이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것들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하기의 역사와, 온갖 모양의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알게 함에는, 그러한 학습 자체를 또 일을 통해 하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 향토의 지도를 실제로 답사해서 만든다든지, 역사의 유적을 찾아다니면서 조사한다든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장을 방문하여 실제로 보고 실습까지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참교육으로 가는 길』이오덕 / 한길사“]
1> 역사책을 바라보는 관점
우리가 보았던 역사책, 우리가 들어 온 역사 지식은 ‘과거 역사’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역사는 역사사가 자신의 역사관을 가지고 ‘과거 사실’을 다시 구성한 역사입니다. 따라서 누가 썼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가가 역사를 보는 관점은 ‘그런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에 의해 어떤 처지에 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럼 지금까지 역사를 글로 써온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권력을 쥐고 있던 지배계층이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국사 교과서입니다. 국사교육을 국정으로 바꾼 것이 1974년 유신 시절입니다. 유신시절 장학목표인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참다운 새 한국인’,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한국인’을 육성하는 것이었습니다. 1990년에 바뀐 교과서는 1987년 이후 정치의 민주화가 추진되어 노동운동도 활발해진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국사 교과서와 역사 교육은 국민들을 순한 양으로 길들여 권력을 자진 자들이 자기들의 힘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려고 했고 함께 해야 하는 이들의 삶이 빠진 채 힘을 갖고 있는 이들과 힘들 갖고 있는 이들에 기대서 사는 사람들에게 이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진 것이 국사 교과서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고장 사람, 세계 사람은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왕족과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역사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뿌리, 우리의 조상, 우리 민족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 역사 교육 방법
그럼 어떤 방법으로 공부해야 할까요? 공부 목표는 나라에서 만든 것이나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들 좋은 말들이지요. 교육방법을 통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의지가 보여야 할 것이고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일과 놀이로 배운다.
우리 학교 교육방법의 가장 큰 바탕인 일과 놀이로 배웁니다. 석기시대를 공부하며 질그릇을 만들어 토기의 변천사를 공부했던 것처럼 손과 발을 열심히 놀리며 공부합니다. 움집부터 나무, 벽돌까지 집을 지어보며 또는 농사를 지어 옷감을 준비해 시대마다 옷을 만드는 재료로 옷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합니다. 집살림, 밥살림, 옷살림과 손끝 홛동으로 인류가 생존 방식의 변천사를 익히도록 돕습니다. 다시 말해 일과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을 큰 줄기로 하되 그 여러 갈래는 모둠 선생의 준비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제로 어린이들이 손발을 놀려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역사의 중심이고 중심이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책읽기와 글쓰기로 배운다.
초등과정에서 선생이 준비하는 일과 놀이 중심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공부는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합니다. 백성의 삶이 중심이 된 역사책을 읽고 어린이들이 시대마다 왕조마다 일과 땀, 문화와 기술들과 같은 필요한 것을 찾아보고 정리해내서 스스로 공부하는 힘도 키웁니다. 역사보고서 쓰기, 알맞은 책을 읽고 자기 방식으로 정리하기, 토론하기, 강의 듣기 모두 역사 공부를 하는 방법입니다.
▶ 스스로 공부로 배우고 협동해서 배운다.
우리학교는 일-놀이를 교육활동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일-놀이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랍니다. 주인으로 사는 일, 동무들과 더불어 사는 일, 자연의 중요성, 일하는 것의 뿌듯함 따위를 몸과 마음에 배이게 하듯이 역사 공부도 이를 돕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사람이 돈 보다 귀하다.’ ‘일하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불어 행복한 삶이어야 한다.’ 같은 가치가 담긴 공부여야 합니다. 천박한 상품, 소비, 자본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 생명,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역사 공부여야 합니다. 어린이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가치들이 몸에 배여 평생 살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협동과 협력은 인류 생존 방식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경쟁과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협동, 함께 살아가는 역사의 큰 줄기처럼 공부 방법 또한 모둠마다, 서로 힘을 합쳐 조사하고 발표하고 배우는 방식으로 합니다. 함께 지도를 그리고, 함께 역사 보고서를 꾸미고, 함께 박물관과 역사유적지를 가서 겪어보기들 모두 중요한 원칙입니다. 저마다 특별하게 관심이 가는 경우는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가꿔야 함을 잊지는 않습니다.
▶ 견학, 박물관, 답사, 조사, 기록으로 배운다.
자연속학교는 철마다 나라 곳곳을 찾아가서 배우는 공부를 합니다. 남부, 중부, 북부 지역, 동쪽과 서쪽을 알맞게 나눠 자연 속 기숙학교를 하면서 자연속학교 앞뒤로 조사하고 견학하고 발표하고 정리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하동 고소산성, 주문진과 강릉, 많은 박물관들을 다니며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살핍니다. 방학에는 부모님들과 함께 박물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수천 년, 수백 전에 사람들이 만들어 쓴 유물들을 살펴보며 지역과 환경과 사람살이 관계를 더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힘을 길러 다시 새기는 공부를 놓치지 않도록 합니다.
▶ 때마다 맞는 근현대사 공부를 한다.
3.1, 4․3, 4․19, 5․18, 6․10, 6․25, 7․17, 8․15, 10․3, 10․9, 11․3 때마다, 달마다 기념하고 기억하며 되새기는 날을 맞아 모둠마다 알맞은 수준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합니다. 책읽기, 글쓰기, 역사 현장 가기 따위 방식과 함께 갑니다.
첫댓글 저녁을 먹는데, 서연이가 유관순 언니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뿌리샘이 역사, 우리나라 이야기를 배우는구나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전해준 이오덕 선생님의 역사는 제가 배운 역사가 아니네요. 문득 중3 국사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국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다. 인과가 확실한 사건의 나열들이니 외우려하지말고 이해해라. 뭐 이런말씀이셨는데.. 그때 그 분의 수업은 참 좋았습니다.
우리 맑은샘아이들이 배우는 역사수업..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