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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두 여성법무사
우리가 살다 보면 부득이 변호사나 법무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사안이 복잡하지 않고 경비도 적게 드는 경우에는 보통 법무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래서 법무사의 자격이나 역할에 대하여 관련 자료를 조사한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1990년 1월 13일 제정 공포된 '법무사법'에 의하여 종전의 사법서사司法書士가 법무사로 개칭되었다.
법무사의 업무는, ① 법원과 검찰청에 제출하는 서류의 작성, ② 법원과 검찰청의 업무에 관련된 서류의 작성, ③ 등기 기타 등록신청에 필요한 서류의 작성, ④ 등기 ·공탁사건의 신청대리, ⑤ 작성한 서류의 제출대행 등이다.
자격은 ① 7년 이상 법원주사보 검찰주사보 이상의 직에 있던 자 또는 5년 이상 법원사무관 검찰사무관 이상의 직에 있던 자로서 대법원장이 그 능력을 인정한 자, ② 법무사시험에 합격한 자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법원 검찰청 일반직원의 퇴직자 중에서 임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격독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1992년에 60여 명을 시험으로 선발하였다. 법무사가 업무를 개시하고자 할 때에는 대한법무사협회에 등록을 하여야 한다.
일반인들이 헷갈리기 쉬운 변호사와 법무사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변호사는 위촉자를 대신하여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하고 위촉자의 승소 또는 무죄를 주장 할 권한이 있으나 법무사는 서류만 작성해 주고 법정에는 위촉자가 스스로 나가 주장을 하여야 한다는 점이 제1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내 어느 지방법원정문 앞 같은 건물1층에 법무사라는 간판을 달고 두 여성법무사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법무사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나이가 동갑으로 같고 시험으로 등용된 것도 같고 합격한 것도 한날한시여서 같을 뿐 아니라 같은 건물 1층에서 벽하나 사이를 두고 영업을 한다는 것도 인연이어서 천생연분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대인관계나 법무사 본연의 업무수행에서의 차이점은 천양지판이었다.
편의상 두 여성법무사를 A와B로 호칭해 본다.
먼저 A 이야기를 해보자.
A는 명문여자대학교 법대를 나와 대학원에서도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이어서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법무사 자격을 취득했다.
거기에다 금상첨화로 용모도 계란형의 미인이어서 “한번보고 또 보고 싶네”의 가사처럼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뒤돌아서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스타일이어서 어지간한 탤런트는 저리가라이었다. 사람은 옷이 날개라고 하는데 옷도 하늘하늘 날아갈 듯 하는 우아한 양장이나 한복만을 입는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 아주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유행하는 청바지나 잠바 등 간편한 옷을 한번쯤은 걸칠 만도 한데 그런 종류의 의상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밝은 옷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보시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B는 남쪽에 있는 농촌에서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집에서 가사 일을 돕다가 서울에 있는 어느 보세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여공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매파의 소개로 가세가 넉넉지 않은 청년과 결혼을 하였다. 중곡동 부근에서 전세로 보금자리를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겪어보니 남편이라는 사람은 가정생활을 전연 도외시 하면서 겉돌고 있어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람이었다. 기름과 물처럼 겉도는 생활 중에서도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두었으니 이제는 아이들이 억지로 부부를 묶는 족쇄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렁저렁 하루하루를 넘기는 따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남편은 미운오리새끼처럼 점점 더 미운 짓만 하고 다녔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 매일을 취생몽사로 생활하던 남편이라는 자는 수렁에 빠지듯 무엇이든지 퍼다 주는 사이비 종교에 홀딱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더니 결국에는 가정과는 장벽을 쌓았는지 발길을 끊고 거처까지 그곳으로 옮겨 종교집단에서 같이 뒹굴고 있었다.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아이들을 본인이 맡아 기르는 걸로 하고 둘이 갈라서서 각각의 길로 나섰다.
그래서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아이들 양육비와 위자료로 챙겨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망우리 고개를 넘어 팔당으로 가서 전세를 얻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갔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활을 하여야 하니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요구르트 아줌마, 우유배달, 가사도우미 등 닥치는 대로 해서 가정을 꾸려갔다. 아이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어서 그나마 큰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매일 만나 같이 고생하는 이웃 아줌마로부터 법무사라는 직업이 있는데 자기 아는 사람이 고등학교만 졸업했는데도 학원에서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서 돈을 아주 잘 벌어 잘 살고 있는데 젊은 아낙도 이런 고생하지 말고 한번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말을 듣자 무언가가 가슴에 쿵하고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법이라고는 ㅂ자도 모르고 살았는데도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구미가 당겼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심하여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은 시골의 친정에 맡기고 전세보증금을 빼서 서울대학교 부근의 쪽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원에 등록을 하여 교재를 받고 보니 내용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종일 학원에서 강의를 들었으나 무슨 말인지 단어 하나하나가 생소하여 제멋대로 춤추며 놀았다. 그런데도 낮에는 열심히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는 밤늦게까지 복습을 하고 새벽에도 일어나서 배운 곳을 다시 복습하는 식으로 매일매일 법률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법무사 시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떨어져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모하게 도전을 해 보았으나 그 자격증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었기에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고서 다시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러기를 해마다 반복하여 무려 8년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7전8기의 입지전적인 쾌거요, 아무에게나 떳떳하게 내보이고 자랑 하고 싶은 자격증이었다.
A는 결혼을 하여 아이들도 있다는데 법무사 간판을 걸고 개업하는 좋은 날에도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오지 아니하고 축하객이라고는 남동생이라는 젊은이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뒤 남동생을 사무원으로 앉혀놓고 업무를 개시하더니 얼마 후에는 사무원에게 지급할 만큼 수입이 나오지 않는다고 동생을 해고 시켰다. 그 얼마 뒤에 보니 법무사가 앉아있는 의자 뒤에 아령, 역기, 투포환 등 운동기구를 몽땅 구비해 놓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다는 말씀 “여자 혼자 있다고 깔보거나 우습게 보는 자가 있으면 나도 운동을 하여 몸을 단련하고 있으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라는 말을 듣고 좀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피해망상증 환자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외양과는 달리 영업을 잘못하는 것 같았다. 대개 억울하게 당하거나 피해를 입어 호소할 곳이 없어 찾아오는 서민들인데 방문객에게 “나는 당신네들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니 말을 간단히 짧게 하라” “그것도 모르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그런 일은 변호사에게 가보라”는 식으로 말을 못하게 막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말을 하여 찾아온 손님을 내쫓고 있었다. 그 덕분에 덕을 보는 것은 곁에 있는 B법무사이었다. 새로 장만한 그물이 찢어져서 고기들이 옆으로 새 나오고 있었다. 모두가 좋아하고 반기는 장미꽃에도 가시가 있고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는 없다는 말과 같이 학벌 좋고 미모까지 갖추었는데도 좋은 대인관계까지 기대할 수 없는가 보다.
B법무사는 옆집에서 망신만 당하고 쫓겨 온 손님에게 우선 커피 한잔을 권하고 나서 손님의 지루한 이야기를 싫증을 내지 않고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다 들어 준다. 그러고 나서 결론을 내린다. “이건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한다거나 “한번 열심히 해 볼게요” 라고 말하면 고객은 우선 시원해서 좋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믿음이 가는지 일을 맡기고 간다. 그러고 보니 옆에서 먹기 싫다고 버리는 걸 힘들이지 않고 잘 챙겨먹고 있으니 A는 B의 은인인 셈이다. 이렇게 되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고 보니 B의 사무실은 항상 문전성시여서 일이 쌓인다. 이렇게 되자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들어붙듯 돈도 덩달아 모인다. A사무실은 파리 날리는데 B사무실은 사무원도 두고 여유가 생기니 1년에 한번 꼴로 10일에서 20일 동안 외국 관광을 가거나 에베레스트로 원정등산을 다녀오는 등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심신을 단련하는 행위를 하면서 사람 사는 것 답게 살고 있다.
원래 직업에 대한 시샘은 대단한 것이다. 옛날에 父子가 짚신을 삼아서 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이 있었는데 항상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값을 더 받았다. 그것이 궁금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 비결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던 아버지가 임종하는 마당에서야 아들에게 “털 털”하고 죽었는데 사후에 아들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은 짚신에 남아있는 털을 제거해서 보기 좋게 해야 상품가치가 더 있어 돈을 더 받는다는 이야기 이었다.
이와 같이 부자간은 물론 형제간에도 일에 대한 욕심으로 시샘을 하고 경쟁을 하는데 하물며 여자들끼리이니 말하여 무엇 하랴. 자기가 속 좁아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것은 생각지 않고 우선 B가 모든 조건에서 자기를 따라오려면 맨발로 뛰어도 어림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손님을 빼앗아 가는지 원인을 분석해 보지도 않고 우선 시기심부터 발동한다.
겉볼안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겉만 봐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인데 A법무사는 겉과 속이 다르다.
자기 눈을 가리는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은 잘 잘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A법무사는 속으로는 배가 아프더라도 원인은 자기에게 있는데도 그런 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치부하고 있는 듯하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다급한 손님에게 인기가 있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쭉쭉 뻗어가는 B법무사가 배가 아프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 B법무사의 흉을 본다. 전라도 깡촌에서 겨우 고등학교 박게 못나온 촌년이 제 주제파악도 못하고 돈 좀 벌었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안하무인이다. 입고 다니는 옷은 그게 뭐냐. 찢어진 청바지를 입지를 않나, 똠방 치마를 입어 팬티가 다 보이는데 누구 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무식한 것이 품위조차 없다.
그러더니 A법무사는 방향을 바꾸었다. 지역법무사회 이사를 맡기도 하고 법원의 조정위원 등을 맡아 공적인 활동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A법무사는 용모나 의상 등 누구든지 한번 보면 뿅 가는 자태이어서 어느 곳에서나 쌍수를 들어 환영하였을 것이다. 그런 공적인 활동도 좋으나 사무실의 운영비나 건물의 임대료 등을 제때에 납부하지 못하여 누적되고 있었을 것이다. 노래만 부르던 매미도 아침이슬이라도 받아먹어야 생존을 유지하는 법, 하늘거리고 다녀봤자 밥 나오고 돈 나오는 곳은 아니어서 항상 배가 고픈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엉뚱한 하소연도 한다.
두 여성법무사는 모두冒頭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공통점이 많고 누구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이기에 서로 애로사항을 터놓고 이야기도 나누고 잘 모르는 내용은 같이 의논도 하면서 서로 발전하고 향상하는 방안도 강구하는 등 다정하고 다감하게 지낼 법도 한데 두 사람은 닭과 지네처럼 서로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에 있다. 서로 말도 섞지를 않고 화장실을 오가거나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도 서로 모르는 체 외면하고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피곤하고 불편할 것인가.
명심보감에 이들을 충고하고 가르치는 좋은 글귀가 있다.
경행록景行錄에 이르되 은의恩義를 광시廣施하라 인생하처人生何處에 불상봉不相逢이랴. 은혜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선들 만나지 않으랴. 수원讐怨을 막결莫結하라, 노봉협처路逢狹處면 난회피難回避니라. 원수지간이 되지 말라. 좁은 길에서 만나면 피할 길이 없느니라.
이 금언을 명심하여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이들의 쇼가 어색하고 불편하고 괴로울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두 여성법무사시어! 그 많은 공통점을 앞에 내세워서 어느 날 탁주 일 배 나누면서 탁 털어놓고 화해의 두 손을 굳게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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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대가 머문 자리엔 향기가
넘넘 짙어서 내맘을 흐리게 합니다
그대는 요술쟁이 나의 꿈입니다
오늘도
사랑으로 가득한 날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