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 멀리는 천마산, 그 앞은 축령산, 그 앞은 매봉산, 그 앞 왼쪽은 칼봉산
서울 근교 가평군은 아름다운 산이 유난히 많은 천혜의 고장으로써 군 전체가 대부분(2개리
제외) 청정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화악산은 경기 최고봉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남
한) 10번째 고산으로 소백산(1,439.5m) 보다 28.8m가 더 높고, 경기 오악(화악산, 운악산,
관악산, 송악산, 감악산) 중에서도 으뜸가는 명산이며, 산나물이 많다. 중봉은 정상인 신성봉
(1,468.3m) 다음으로 높고(1,450m) 중봉 남쪽에는 주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태고의 큰
골계곡이 있고, 북쪽에는 비경의 조무락골계곡이 있으며 ……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의 화악산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19년 6월 16일(일), 맑음
▶ 산행인원 : 2명(캐이, 악수)
▶ 산행거리 : GPS 도상 13.3km
▶ 산행시간 : 9시간 35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 타고 가평역에 내려,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미룡
터 가는 따복버스 타고 삼팔교(조무락골 입구)에서 내림
▶ 올 때 : 관청 마을에서 군내버스(18 : 10 용수동 출발) 타고 가평읍에 옴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5 - 상봉역
07 : 24 ~ 07 : 40 - 가평역
08 : 23 - 삼팔교(조무락골 입구), 산행시작
09 : 20 - 복호동폭포
09 : 58 - Y자 갈림길, 왼쪽은 석룡산 2.2km, 오른쪽은 중봉
09 : 10 - Y자 계곡 가운데 능선 진행
12 : 07 ~ 13 : 20 - 주릉 1,330m봉, 점심
13 : 54 - 화악산 북봉(1,440m)
14 : 22 - 화악산 군부대 정문
15 : 10 - 화악산 중봉(1,446.1m)
15 : 57 - 1,146.5m봉
17 : 00 - 묵은 임도
17 : 08 - 가마소폭포
17 : 58 - 관청 마을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20 : 40 - 가평역
1.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나는 스타벅스 커피보다 봉지 맥심커피나 자판기 커피가 훨씬 더 맛있다. 상봉역 춘천행 전
철 출발시각이 약간 여유가 있어 승강장 자판기의 500원 하는 고급커피를 마시려고 1천 원
짜리 지폐를 넣는데 들어가지 않는다. 동전은 될지 몰라 그 옆의 Story way 편의점에서 동전
을 바꿨다. 그런데 동전은 넣자마자 걸리지 않고 흘러 나온다. 그 옆에는 작동이 되는 밴딩
머신이 있다. 밴딩 머신은 나에게 별맛이 없는 캔 커피와 캔 음료수만을 취급하면서 가격은
1천 원 이상이다. Story way가 영리한 상술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평 가는 전철 창밖은 망우역을 지나자마자 파노라마의 산풍경이 펼쳐진다. 와이드 화면을
꽉 채운, 속도 빠르게 전개되는 아이맥스 산악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운무 휘감은
불암산, 수락산, 수리봉, 천마산이 심산유곡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이어 나타나는 고동산과
화야산, 뾰루봉은 일출을 배광하여 한층 신비롭다.
가평역. 이곳에 혼자서 종종 오는 캐이 님의 동선이다. 역사 화장실을 들르고 대로 건너 버스
승강장 앞쪽에 있는 편의점에서 큼직한 블랙커피 1개 사서 실외 탁자에 앉아 느긋이 마시고
나면 미롱터 가는 07시 40분 출발 따복버스가 들어온다. 일요일 이 시간은 버스 좌석을 서로
차지하려고 미리 줄서지 않아도 될 만큼 한산하다.
막연히 화악산을 간다고 했지만 어느 코스를 오를 것인지 딱히 정하지 않았다. 화악산 자체
도 유동적이다. 가평팔경의 하나인 적목용소(赤木龍沼)를 보고 개이빨산을 오를까, 무주채
폭포를 보고 국망봉을 오를까도 생각했지만 요즘 가물어서 그 수량이 보잘 것 없으리라 예단
하여 조무락골로 간다. 골의 경치가 수려하여 새가 춤추며 즐긴다는 조무락골(鳥舞樂-)이다.
기실 노래하며 춤추는 것은 새가 아니라 와폭이다. 경염하듯 포말 이는 층층 와폭은 행인의
구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낭랑한 노래한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숲속 계곡이다. 조무락골
입구인 삼팔교에서 거의 1시간 걸려 등로 약간 벗어난 복호동폭포(伏虎洞瀑布)를 들른다.
호랑이가 엎드린 모양(伏虎)이라고 한다. 그다지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복호동폭포의 미려
한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복호동폭포를 밑에서 올려다보고 중턱 암반에 올라 똑바로 보고 가다가 뒤돌아본다.
따지고 보면 매사가 그렇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평소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여 의외로 그 덕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 초반 산행은 그 일단이다. 캐이 님은 어
제 설악산 무박산행을 13시간이나 다녀와서 오늘 아침밥을 거르고 나왔다. 복호동폭포 보고
내려와서 허기지다며 동네 편의점에서 사온 술떡으로 요기하는데 나로서는 내심 쾌재를 부
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산다.
노부부 등산객을 만난다. 그들과도 낯을 익힌 캐이 님이 그들은 매주 이 시간에 이 길을 다닌
다고 한다. 산행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 넘었다. Y자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석룡산 2.2k
m, 오른쪽은 화악산 중봉 가는 길이다. 중봉 가는 길로 든다. 잘난 길이다. 그렇다고 그 길로
중봉을 오르는 건 재미가 적고 GPS 지형도를 살펴 Y자 계곡 가운데 능선을 오르자고 한다.
3.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뽀루봉과 화야산(오른쪽)
4. 복호동폭포
5. 복호동폭포 하단
6. 복호동폭포
7. 계곡 길 주변
8. 화악산 북봉 서릉 오르는 능선
9. 함박꽃
10. 붉은인가목, 화악산 정상 주변에는 붉은인가목이 무척 많다
11. 명지산
계곡에 들러 첫 휴식한다. 명경지수 옥담 가에서 늦은 입산주 탁주 분음한다. 캐이 님은 알탕
하고 나는 선녀들이 몰래 보고 감출라 캐이 님이 벗어놓은 옷 지킨다. 물이 매우 차가웠으리
라. 물속에 첨벙 들어가는가 싶더니 금방 나오고 그뿐이다. 생사면 잡목 헤친다. 우리에겐 익
숙한 길 없는 길이다. 잔 너덜 지나고 가파른 사면을 한 피치 길게 오르면 통통하게 살 붙은
능선이다.
메마른 흙길을 가다 키 작은 풀숲이 펼쳐진 너른 초원을 지나기 반복한다. 큰앵초와 눈 맞춤
하다 박새와 단풍취 무리 속을 누빈다. 눈에는 금방 가깝던 공제선이 자꾸 뒤로 물러나고 이
윽고 지쳐 장기전 공략으로 바꾼다. 주릉이 가까워지고 초원 벗어나니 밀림이다. 함박꽃나무
와 붉은인가목 숲이기도 하다. 희고 붉은 화판에는 우리 오기를 기다리느라 지친 기색이 역
력하다.
군사 교통호 넘고 주릉 1,330m봉에 올라선다. 하늘 가린 숲속 평평한 공터가 점심자리로 아
주 명당이다. 몇 걸음 나아가서 나뭇가지 헤치면 대성산, 복계산, 복주산의 유장한 한북정맥
과 그 뒤로 아직은 금족인 적근산과 오성산이 보인다. 캐이 님이 산상 셰프의 비기를 시전한
다. 오징어볶음에 가깝다. 냉동오징어에 육수, 고추장, 깻잎, 양배추, 설악산 곰취와 표고, 오
뎅 등을 한데 끓이다가 라면사리 넣어 꺼내 먹은 다음에 밥을 볶는다. 반주는 마가목주가 알
맞다. 식후 입가심은 마가목주 약간 넣은 알알한 커피다.
화악산 북봉을 향한다. 길 좋다. 석룡산 넘고 방림고개, 삼일봉을 지나오는 능선 길이다. 다
만 키 큰 나무숲속이라 조망은 없다. 그러던 중 등로를 살짝 비킨 인적이 보이기에 따라갔더
니 오르내리기가 제법 까다로운 암봉이 나온다. 경점이다. 가깝게는 운악산, 국망봉, 광덕산,
상해봉, 멀리는 고대산, 금학산, 복계산, 대성산 등이 분명하게 보인다.
교통호 넘고 두 차례 가파른 바위 슬랩을 가느다란 고정밧줄 잡고 오르면 화악산 북봉이다.
여기도 사방이 훤히 트이는 경점이다. 실운현 지나 응봉과 그 너머 촉대봉, 몽가북계, 삼악
산, 구절산, 대룡산이 반갑다. 이제부터 엄중한 철조망 울타리를 돌아 화악산 군부대를 벗어
날 때까지 발소리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죽이며 간다.
여느 때는 군부대 확성기에서 “여기는 군사보호구역이니 어서 나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시끄럽고 귀찮을 정도로 반복하여 나오는데 오늘은 조용하단다. 그래도 우리는 다소곳하여
간다. 풀숲에 덮인 길이라 발로 살금살금 더듬거리며 간다. 간혹 가시철조망이 발에 걸려 엎
어질 뻔한다. 한편 주변은 산상화원이기도 하다.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괴불나
무, 조경과 교수인 캐이 님이 헷갈리는 꽃개회나무, 붉은인가목, 고광나무, 털쥐손이 ……. 그
원로를 간다.
철조망이 느슨한 틈을 타서 돌담을 오르면 군부대 정문 앞이다. 군사도로 따라 내린다. 도로
주변 역시 화원이자 걸음걸음이 먼 데 산첩첩을 조망할 수 있는 경점이다. 너른 공터가 나오
고 이정표는 중봉을 안내한다. 대개 화악산 산행은 이 중봉을 말한다. 공터 가장자리에 서면
천마산 등 서울 근교의 산들이 아스라하니 보인다.
12. 명지산, 오른쪽 뒤는 운악산, 그 뒤는 고대산과 금학산(오른쪽)
13. 왼쪽은 명지산, 그 뒤 오른쪽은 귀목봉, 가운데는 운악산
14. 화악산 북봉 서릉, 가운데가 석룡산, 왼쪽은 국망봉, 그 오른쪽 뒤는 명성산
15. 괴불나무
16. 괴불나무
17. 고광나무
18. 고광나무
19. 쥐손이풀
중봉 오르는 길이 수직으로 가파른 슬랩이다. 고정밧줄을 붙잡고 한참을 오른다. 이 고정밧
줄이 닳았으니 부디 조심하시라는 안내문이 있어 더 힘들다. 긴 한 피치 오르고 평탄한 숲길
을 돌아가면 테크광장으로 만들어 놓은 중봉 정상이다. 키 큰 나무숲이 빙 둘렀으나 난간에
올라 발돋움하면 세상의 한가운데에 선 것처럼 사방 조망이 트인다.
중봉(화악산)의 안내문이다.
“화악산이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지도를 볼 때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을 잇는 국토자오선(동경 127도 30분)과 위도 38도선을 교차시키면 두 선이 만
나는 지점이 바로 화악산이다. 현재 화악산은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으므로, 이를 대신하는
중봉이 한반도의 중심이란 뜻이다.”
어디로 내릴까? 이 또한 계획이 없다. 중봉 남릉을 타고 애기봉 쪽으로 가다 해질 무렵이면
오른쪽 산릉을 골라 내리려고 한다. 중봉 정상을 벗어나고 골로 갈 듯이 뚝뚝 떨어진다. 두
차례 ┣자 갈림길을 지나친다. 가파름이 수그러든 1,146.5m봉 오른쪽 사면으로 관청리로 내
리는 ┣자 갈림길이 보인다. 어느덧 16시가 가까웠다. 관청리로 내린다.
예전에 캐이 님이 깊은 눈 속에서 여기를 올랐다가 뜻하지 않게 생고역을 겪었다고 한다. 눈
속 아니래도 그럴만하다. 가파른 사면을 바글거리는 잡석에 쓸려 내린다. 어렵사리 능선 마
루금에 올라서면 다시 절벽에 막히고 오른쪽 사면을 미끄러지듯 쏟아져 내리기를 반복한다.
암벽 밑을 길게 돌아 한풀 꺾인 능선에 든다. 마침내 거친 풍랑이 멈춘 것 같은 잔잔한 숲속
길이다.
그래도 한 차례 시행 착오하여 큰골 묵은 임도에 내려선다. 아직은 계곡이 깊다. 화악산 명소
중의 하나인 가마소폭포는 임도에서 십여 미터 벗어나 있다. 물색이 달라 보이는 깊은 소에
큰골 계류 와폭이 흘러든다. 관폭대에서 내려다보는 소와 폭포, 주변 수림이 그림 같은 비경
이다. 바라만 보아도 흥건하던 등줄기 땀이 식는 느낌이다.
관청리가 가까워지고 계곡 쪽의 철조망문을 몰래 들어가면 ‘작은 가마소폭포’(?)가 나온다.
소 주변은 암반이 둘렀다. 알탕한다. 수온은 목까지 잠겨 1분을 버티기 어렵게 차다. 자맥질
몇 번 하다 암반에 나와 덥히고 한 차례 더 입수한다. 이 맛이 여름산행의 이유이다. 금계국
꽃길인 관청리 관청마을 고샅길을 내리면 길 건너가 버스정류장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대사이다. 영화에서는 기택이
의 비감하고 무거운 말이지만, 산행에서는 무계획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한다. 계획하지 아
니하였으니 길을 헷갈릴 염려가 없고 길을 잘못 들 리 없고 하산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다. 오
늘 우리 산행이 그러했다.
20. 산조팝나무
21. 오른쪽 멀리는 천마산, 그 앞 왼쪽은 축령산, 오른쪽은 서리산
22. 가운데는 연인산, 오른쪽은 명지산, 왼쪽 멀리는 천마산, 그 앞은 축령산
23. 백당나무
24. 가마소폭포
25. 술패랭이
26. 관청 마을 고샅길 금계국
27. 관청 마을 고샅길 금계국
첫댓글 좋은데 다녀오셨네요. 저는 밤중에 큰골로 내려와서 알탕도 못하고 좋은 와폭도 제대로 못봤읍니다ㅠㅠ
무계획을 계획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고수들의 여유였네요.
알탕도 하시고, 요즘같이 메마른때에...
부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