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얍복강 기도
창세기 32:23-32
얍복강의 야곱의 기도 응답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28)입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란 뜻으로 부정적인 이름입니다.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은 야곱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승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복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다투다가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눈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밧단아람으로 도망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종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그가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려고 7년을 라반을 섬겼으나라반의 속임으로 레아와 결혼하고 다시 7년을 종살이하고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창29장).
라반의 가축을 치며 종으로 섬겼으나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여 주지 않았습니다(31:7).
형을 속이고 눈 어두운 아버지를 속인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고 빼앗기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셔서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습니다(31:12).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가 모은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을 끌고 라반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갑니다(31:17-20).
그런데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심히 답답하고 두려워했습니다(7).
야곱은 20년을 깊은 죄의식으로 살았습니다. 에서가 온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형의 보복을 강하게 느겼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9).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9)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으로 부른 것은 일찍 조상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11)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하나님께 몸부림치며 절박하게 매달리며 애원하는 기도였습니다.
두 아내와 열두 아들들과 그의 모든 가축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야곱은 홀로 얍복강 가에 남았습니다. 야곱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1,2).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정체를 씨름 후에 ‘하나님’이라고 밝혔습니다(30).
‘씨름’은 단순히 육체적 힘겨루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영적 씨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기도가 마치 실제로 씨름하듯 밤새도록 매달리고 울부짖으며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간구의 모습을 의미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어떤 사람’을 붙잡고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이란 말은 도움을 호소하는 야곱의 간구를 뿌리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26).
야곱은 그와 함께 씨름한 그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특별한 신적 존재 즉 자기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는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었고 ‘야곱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으로부터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옛 이름인 그의 이름을 야곱에게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음’을 의미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은 인간적인 실패의 이름이 영적인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는 교활한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합법적인 상속자 ‘이스라엘’로 바뀐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이름으로 ‘이스라엘’이라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그의 가족과 가축과 소유물을 얍복강 건너로 먼저 들려 보내고 혼자 얍복강 가에 남아 하나님께 생사를 걸고 처절하리만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자기의 생각과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살도록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으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변화된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받은 백성이 되었음을 뜻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새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앞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우리(나)의 구원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작은 야곱입니다.
얍복강의 야곱의 기도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전환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야곱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11)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은 치므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습니다(25).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부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힘과 자신의 지혜만 믿고 살아온 야곱을 완전히 꺾음으로써 인간의 무기력함과 연약성을 철저히 일깨우고, 이후로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자식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형 에서 앞에 나아가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가까이 갔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입맞추고 서로 울었습니다(33:3,4). 오랜만에 만난 형제의 기쁨과 눈물의 장면입니다.
형 에서가 자신의 장자의 축복을 속여 빼앗은 증오의 대상인 야곱을 이처럼 반갑고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야곱이 보낸 예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배후에서 에서의 증오의 마음을 눈처럼 녹이신 하나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족장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남을 속이고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오늘의 야곱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된 우리는 세상 욕심대로 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장차 들어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려고 오신답니다. 그때 우리 모두 주님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며 삽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잠 26:10).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향기로운 차 한잔의 여유로움속에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며,,,,,,
서늘한 날씨가 가을의 맛을 느끼게 하는데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기분 좋은 날이 되시고
건강 잘 챙기시며 사랑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행복을 만드는 멋진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