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본문 주해)
1~2절 :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이 되었다.(사울은 40세 때 왕이 되었다.) 그는 앞서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 후에 3천 명을 상비군으로 주둔시키고 나머지 백성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상비군 중 2천 명은 자신과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주둔하게 하고, 천 명은 아들 요나단의 주관하에 기브아에 주둔하게 하였다.
3~4절 : 그런데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선제공격한 것이다. 이 정도는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블레셋 사람들이 들었고, 곧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기에 사울 왕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히브리 사람들을 소집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을 따르기 위해 길갈에 모인다.
5~7절 : 블레셋의 군대가 압도적인 병거와 기병과 백성들의 숫자로 모여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진을 친다. 이 모습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도 두려워하여 숨고 도망함으로 사울 곁에서 흩어지기 시작한다.
적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왕을 구하였지만 적의 숫자 앞에서 도망가기에 바쁘며 두렵고 떨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세워 의지한 인간 왕의 무능함을 보여준다.
8~12절 :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삼상10:8)
사무엘의 이 말은 사울에게 처음 기름 부을 때에 한 말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 말을 한 것은 전쟁이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이방의 왕처럼 독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고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허락을 받도록 한 조치임을 알 수 있다.
약 2년이 지난 때이지만 그래도 사울은 사무엘이 오도록 7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7일이 되었는데도 사무엘은 오지 않고 백성들을 두려워서 흩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못하였기에 부득이하게 번제와 화목제를 가져오게 자신이 제사를 드린다.
이렇게 사울이 번제를 드리고 났을 때에 사무엘이 도착하니 사울이 자신이 제사를 드린 이유를 사무엘에게 변명한다.
(나의 묵상)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늦게 와서 사울로 제사하게 하는 빌미를 준 사무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가 약속을 잘 지켰으면 됐을 것을 자기가 늦어 놓고.....
제사 없이 전쟁하는 것이 잘못이지....그래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전쟁하고자 하는 사울이 뭐가 잘못이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사울의 마음을 본다.
과거에 암몬과 전쟁하여 대승을 거둔 때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왕 되게 하셨으니, 내가 나가서 싸우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스스로 왕 됨에 대한 생각이 없는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이스라엘을 이끌게 하셨고, 암몬을 이기게 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전쟁하게 하셨고 또 승리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새 사울은 마음이 높아져 있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전쟁을 시작한 것은 블레셋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먼저였다. 그리고 상황이 다급해지자 사울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가 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마치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궤를 들고 전쟁터에 나타난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삶에서 하나님께 가지는 경외감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제사함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승리하게 해 주실 때,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고 백성들 앞에서 다시 한번 추앙받는 왕임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절의 ‘이 년에’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2년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월’이라 할 만큼 긴 시간이 아니다. 정말 ‘세월’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란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짧은 기간이다.
이 시간 동안 사울의 마음이 높아졌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두려운 일이다.
왕이 되고 흐른 2년의 시간 동안은 별다른 전쟁이 없이 평화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동안 사울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는 마음(10:22)이 사라지고 어느 새 왕 자리에 익숙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2년 만에......
왕의 자리에 익숙해진 마음이 문제이다.
그 자리에 익숙해지면 두렵고 떨렸던 그 처음 마음을 잊어버리기 쉽다.
복음을 모르고 생명으로 살지 않았을 때는 철저히 내 힘으로 이룬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또 감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했다!’ 하는 것이 내 마음의 주제곡이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누리는 이즈음, 모든 것을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다. 다만 나는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 앞에 머무는 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로서 주님의 긍휼만을 바라는 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나 자신을 달아보고 재어 보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군사들은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 앞에서 다급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마음이 뭐가 나쁜가 싶지만, 이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된 자신에게 집중하는 마음인 것이다.
사울에게는 오늘 이 다급한 상황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했던 짓이 더 큰 잘못이 되고 만다.
나의 현실은 어떤 상황이 아니라, 항상 주님이시길 기도한다.
내 눈에는 맨날 주님만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 나의 다급함을 나보다 먼저 보시는 주님이 계심을 확인한다.
내가 처한 모든 곳이 어느 새 익숙해진 왕의 자리가 아니라, 날마다 생소하고 날마다 무력함을 느끼는 자리이므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 지난 번 전쟁에 대승을 거두었지만, 지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묵상 기도)
주님,
2년 만에 높아진 사울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셔서
2년이 아니라,
하루만이라도 잘도 높아지는 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삶의 모든 자리, 익숙해진 그 자리에서 내려와
날마다 순간마다 십자가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전적 무능의 말간 아기의 눈동자처럼
주님만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