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애의 온도'
눈물의 품사 / 강영은
눈의 주파수는 버전에 따라 달라져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당신을 바라보았는지
오늘의 버전은 동굴,
중심부와 주변부를 끌어안는 동굴에서
강물의 역사가 흘러나와요.
강물 속에서 최초의 물무늬를 불러낸 건
당신인가요?
눈꺼풀과 속눈썹 사이 팽창하는 동굴,
내 눈 속의 새들은 깜빡이는 찰나에 우주를 왕복해요.
울지 마, 울지 마,
세상의 꼭 다문 입술들이 벌어져요.
그럴 때 당신은 눈이 낳은 감탄사
언젠가 나도 벽이라는 버전을 바꿀지 모르지만
찢어진 벽지처럼 나부끼는 나를 당신은 파문하지 않네요.
눈의 주파수가 반짝거려요.
파동이 길어진 나를 날개가 길고 짧은 꼬리를 가진
도요새라고 불러 주세요.
방금 하느님의 눈동자 속으로 날아갔거든요.
새장처럼 울기에 적당한 동굴을 가진
당신과 나!
ㅡ 시집 『너머의 새』 (한국문연, 2024.03)
--------------------------------
* 강영은 시인
1957년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교육대학,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詩論)』 『너머의 새』 등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집 『산수국 통신』.
2015년 한국시문학상, 2016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 2023년 서귀포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