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미소
김지명 만나러 간다. 아내를 만나려고 약속한 장소로 가다가 승용차가 배가 아프다고 퍼지고 앉아버렸다. 약속 시각은 엄청나게 빨리 밀려오는데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다림을 줄이려고 자동차를 도로 언저리에 주차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장소로 달렸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보험회사 전화하여 차를 정비업소에 가져가라고 부탁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아내는 보이지 않고 빈 의자 언저리에 낙엽만 뒹군다. 볼일을 마치고 뒤늦게 찾아온 아내와 맞닥뜨렸다. 나들이 간다고 기분이 아주 좋다며 반가워 손을 잡고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드라이브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아내가 놀라면서 이유를 묻는다. 승용차가 아파서 병원에 갔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내는 아쉬워하면서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맛 나는 것을 먹으로 가자고 한다. 낙지와 전복으로 입맛을 돋우는 음식점으로 가자고 한다. 아내는 엷은 미소를 보이면서 공원에서 나와 식당까지 짧은 거리에도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춘다. 며칠 후 수리한 회색 쏘나타 승용차를 가져와 을숙도 철새도래지에 가자고 했다. 아내는 평소에 그곳에 가고 싶었다고 하더니 아주 좋아한다. 철새가 많이 모여드는 계절이라 승용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철새를 보기 위해 기다림은 계속된다. 많은 시간을 기다림에 낭비하고 입구에 도착하여 걸었다. 관광객이 넘쳐나니 입장하려고 아주 길게 늘어선 줄이 보기만 해도 지루함을 느낀다. 누구라도 약속했으면 그 장소에 먼저 가 기다려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다. 먼저와 기다리면 상대의 기분을 돋우지만, 뒤늦게 도착하면 그날의 기분을 망가뜨리며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은 짝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처녀와 총각은 머무는 인연을 만나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린다. 가족들에게 안타까움을 주면서도 인연을 만나려는 기다림은 어쩔 수 없이 길어진다. 성격이 급한 부모는 대리만족을 위해 혼례를 재촉하지만, 자녀는 태연한 자태로 기다린다.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태연히 기다린다. 평생을 함께할 인연도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순리처럼 인간들에게도 순리가 있으므로 순응해야 한다. 못 살던 시대에는 인연의 기다림이 짧았던 만큼 수명도 길지 않았다.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면서 동지의 걱정이 없기 때문에 혼례가 늦어진다. 후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즐기려는 젊은 사람이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섭리에 따를 뿐이다. 요즘은 기다림이 긴 만큼 삶도 길다. 한적한 공원으로 데이트하다가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가 공포 속으로 끌고 간다. 소낙비에 물세례를 받아도 피할 곳이 없었다. 외출에서 기상이변으로 생긴 일이라 웃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온몸이 비에 젖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덜덜 떨면서 하늘이 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내는 엷은 블라우스 양쪽에 자주색 유두가 비치어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짜서 말리는 기다림은 길기만 하다. 가을비에 젖은 피부는 닭살처럼 토실토실하다.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갑자기 구름이 사라지고 하늘이 개더니 햇볕이 내려와 젖은 옷을 말려준다. 의복에서 안개가 피어나는 긴 시간에 옷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림으로 보내야 하는 딱한 심정이다. 공원 언저리에서 비를 맞았지만, 승용차 안으로 들러 옷을 벗었다. 아내는 차 안에서 옷을 짜서 말리고 앉았지만, 내가 입은 옷은 공원 언저리 개울가 바위에 늘어놓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옷이 마르는 동안 기다림이 지루하여도 어쩔 수 없다. 모처럼 가족끼리 나들이 나갔다가 자연에 알몸을 노출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옷이 마를 때까지 초라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해는 빠르게 서산으로 기운다. 지난날을 추억하면, 그때도 기다림은 끝없이 이어졌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공항 대기실에서 탑승을 기다렸다. 이륙 후에도 고공에 떠 있는 기체가 어서 육지에 착륙하길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나 지루했다. 약속된 단체생활은 가는 곳마다 대다수가 기다리므로 보내야 했다. 잠시 움직이고 또 기다렸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여행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다림으로 입장하여 관람을 마치고 다시 뭉쳐져야 움직였다. 여행은 항시 기다림이 기본이며 계획된 시각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고통이었다. 자유로움이 없는 여행의 절반이 기다리므로 이어졌다. 특이한 곳으로 둘러보았으나 외국이라 말이 통하지 않아 안내자가 오기를 멍하니 서 있었다. 여행은 날마다 기다림으로 시작하고 즐거움으로 끝났다. 내가 젊었을 땐 교통수단이 별로 좋지 않아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약속하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일찍 서둘러야 그 장소까지 제시간에 나타날 수 있었다. 약속 시각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 수가 아주 적었기에 가능했다. 요즘은 자동차 수보다 도로가 아주 부족하여 막히고 밀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 없다. 좁은 도로에 나홀로차량이 너무나 많다. 경제적으로 낭비가 늘어나도 소비를 억제하지 못한다. 잘 살기에 만남도 자자 저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내는 젖은 옷이 다 마르지 않아도 입고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부부가 모처럼 나들이의 일진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바닷가에 낚시하고 있는 연락을 받고 가는 길목이라 잠시 들렀다. 친구가 회를 대접하려고 낚싯대를 짊어지고 바닷가로 나왔다고 한다. 친구의 부인은 승용차에 대기하고 혼자서 낚시에 열을 올리다가 심심하여 불렀다고 한다. 내가 낚싯대를 잡고 바위에 퍼지고 앉아 낚싯바늘에 대어가 걸리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낚시꾼은 날마다 해변의 장소를 옮겨가며 대어가 잡히길 기다린다. 출퇴근 시간에는 도로에 자동차가 밀려 서 있는 시간만큼 기다리는 마음은 조급하다. 평일 낮이면 30분 거리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두 시간에 가깝도록 지루함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만성이 되어도 부산은 짜증스러운 여름의 도로 사정이다. 전국에서 휴가차 피서지를 찾아온 자가용들이 부산의 도로를 꽉 메운다. 부산 사람은 여름이면 타지의 계곡을 찾아 멀리 떠난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반에 이를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은 어쩔 수 없다. 사회생활의 일부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만, 약속은 행복한 기다림이다.
내가 만든 수필집 소개합니다.
김 명 수필집 (필명) 지명이 생각
울산 범서출신 부산문인협회 회원 부경문인협회 회원 문학도시 등단 메일 kimk33@daum.net
『지명이 생각 』 : 생활의 발견과 외로움의 미학 박양근 (문학평론가 , 부경대 명예교수 )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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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문학을 공부하면서 1)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2) 배움의 장소 3) 야간 수업 4) 종강 시간 5) 그날의 소묘 6) 작가 준비 7) 초대받은 날 8) 취미 생활 9) 문우와 쫑파티
제2부 산이 주는 고마움 1) 계곡을 지나면서 2) 버스 안에서 1 3) 버스 안에서 2 4) 숲속의 집에서 5) 연화봉 가는 길 6) 안개 낀 청량산 7) 가학산의 공포 8) 부산의 알프스 9) 산에서 만난 여자 10) 앨범을 넘기면서 제3부 아내의 주변 인물 1) 자매가 피운 꽃 2) 부부가 피운 꽃 3) 동서의 미소 4) 아내의 미소 5) 환갑선물 1 6) 환갑선물 2 7) 주당 1 8) 주당 2 9) 선풍기 바람 10) 아내가 대신
제4부 삶의 행로 1) 해변에 앉아서 2) 즐거운 추억 하나 3) 즐거운 추억 둘 4) 일용직 근로자 5) 마지막 주막 6) 볼링에 빠졌다. 7) 근무자 8) 양봉 관리자 9) 혼례예식장 제5부 휴일을 즐기자
1) 차는 죽어도 나는 살았다. 2) 구절리역이다. 3) 아우라지에 간다. 4) 행운을 놓쳤다. 5) 행자의 미소 6) 잃어버린 신발 7) 한개마을에서 8) 고사리 초등학교 9) 경포호수에서
제6부 함께 즐기는 휴일
1) 친구 병문안 2) 등대 박물관 3) 파도 소리 4) 친구와 낚시 5) 옻 독에 놀랐다. 6) 벚나무 7) 이무기를 살펴라 8) 노송
하움 출판사 발행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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