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탈출기 12,37-42 마태오 12,14-21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이사야서 42장 1-4절에 나타난 ‘주님의 종’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목 대상은 갈대처럼 약하면서 그중에서도 으깨지고
부서지고 짓눌린 이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소외된 이방인들
(‘민족’이라는 낱말은 ‘이방인’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입니다.
그분께서는 짓눌린 이들,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이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벌을 받은 자로 여겨졌던 병자들도 받아들이셨습니다.
“부러진 갈대”, “연기 나는 심지”(마태 12,20)에서 우리는 부러졌다는 사실과 불이 거의 꺼졌다는
사실에 집중하지만, 그분께서는 아직 잘려 나가지는 않았다는 것, 아직 불기가 조금은 남아서
연기라도 난다는 사실에 마음을 두십니다. 그분께서는 아주 작은 것을 소홀히 하시지 않고
그것이 자라서 커다란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내하며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먼저 믿고 희망을 두셨기에 그 갈대와 심지, 곧 이방인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부족함과 죄보다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음을,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보십니다.
나를 믿으시고 나에게 희망을 걸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 내 이웃을 향하는 나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결점에 있습니까,
아니면 가능성에 있습니까? 나를 믿어 주시고 희망을 두시는 그분의 시선을 바라보고 느낄 때,
자신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시선도 그분의 것처럼 바뀔 것입니다.
우리도 희망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12,21). 아멘.
/ 성 바오로 수도회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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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훈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탈출기 12,37-42 마태오 12,14-21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과 삶의 경험치에 따라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러한 판단이 반드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워 주는지가 기준이라면 그러한 판단은 보류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오랜 친구나 사랑하는 이를 쉽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의 처지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고민해 볼 것입니다.
함부로 내린 판단이 우리를 미움과 오해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으니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어기고 하느님의 율법을 무시하며,
그동안 율법을 통하여 얻었던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빼앗아 가려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없앨 모의’를 합니다.
군중들 또한 자신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좋은 사람’ 또는 ‘필요한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릅니다. 그렇게 그들은 쉽게 열광하지만,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그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돌아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는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지 말 것을 ‘함구령’을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사야 예언서에 기록된 ‘주님의 종’에 대한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려 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원망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내 기도만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고,
행복보다는 불행과 아픔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때, 절망과 함께 예수님에 대한 원망만이 남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쉽게 판단해 버리는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의 뜻과 가치,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원망이 아닌 희망으로 그 시련과 아픔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주님 안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노력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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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탈출기 12,37-42 마태오 12,14-21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누룩을 넣어 반죽을 부풀릴 시간조차 없이 황급히 이집트를 떠나야 하였습니다.
머뭇거릴 수 없어 양식도 장만하지 못한 채 그들은 이집트 땅을 빠져나와야 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뒤로 돌아설 수 없습니다. 오직 약속된 땅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끊임없이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방해할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파라오도 있지만, 이스라엘 스스로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를 잊지 못하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한탄을 쏟아 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방해물을 제거하시고 이스라엘을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종 메시아가 백성에게 올바름,
곧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리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 곧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드디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 그들에게 영원한 나라,
곧 젖과 꿀이 영원히 흐르는 하느님 나라를 선사하셨음을 선포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양의 피가 필요합니다.
문설주 상인방에 발라 이스라엘의 첫째 아들만 살려 주던 그 어린양의 피가 아니라,
모든 이를 구원할 어린양의 피가 필요합니다.
그 피는 바로 예수님의 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흘리게 할 예수님의 피가 결국 온 세상을 구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이렇게 보니 바리사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데 쓰이는 도구가 됩니다.
/ 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