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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수능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불과한데
대학에서의 학문 능력보다, 고작 그 수능 몇점 그걸 더 열심히 바라보는 애들이 많다. 에휴
많다기보다는 솔직히 거의 대다순데
너무나 뿌리 깊게 학벌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것 같아서 답답하다 ㅇㅇ
아래는 니들이 혐오하는 대학평준화 관련글이다.
길어서 읽기 귀찮겠다만
볼 사람은 보고 열이나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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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의 고등학교 시절, 기억나시나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수능시험 또는 다른 대학입시(대학입학‘시험’)를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독서실을 전전합니다. 우리의 존경스런 스승들은 점수와 등수를 올리는 길만이 너를 증명하는 길이라 외칩니다. 왼손엔 문제집, 오른손엔 매를 들고 말이죠. 점수와 등수, 등급이 나의 인격과 능력을 내보이고 비교하는 날의 연속이며 늦은 밤 11시 12시까지 켜진 교실의 형광등이 학생의 착실함을 증명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풍경을 ‘입시지옥’ 이라고 부릅니다. 맞나요?
그런데 신기합니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던 입시지옥을 탈출하는 순간 우리는 지난 날의 기억을 미화합니다. “생각해보면 고3 때가 정말 좋았어.” 내지는 “그 때 난 정말 열정적이었는데…” 따위의 말로 말이죠. 우리가 겪었던 그 모든 상처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결국 그것을 학창시절의 추억 정도로 미화하려는 경향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낮은 정도의 방어기제로 말하기도 하지요. 여러분의 고등학교 시절, 정말로 기억나시긴 하나요?
어떤 사람들은 입시경쟁 속의 치열함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연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껍데기만 남은 치열함은 열정이 아닌 희생에 가깝습니다. 혹시 그 희생의 과정에 알맹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공교육의 ‘정상적’인 커리큘럼을 따라 문제유형을 암기하고 해답지가 정해준 정답을 고르는 방법을 학습해온 것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요. 학창시절 그 건강한 욕망과 상상력, 감성들을 무시하고 벌인 점수따기 경쟁이 우리에게 그 어떤 성장을 베풀었습니까? 만약 티끌만한 보상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숫자의 노예가 되어 황폐해진 우리 감수성, 굳어버린 상상력에 버금가나요. 돈과 안정성 그리고 서열 말고는 보지 못할 정도로 좁아진 우리의 시야에 값할 만한 것인가요. 그것이 교육이었다고, 내 안의 숨겨진 능력을 발굴하게 해준 그런 교육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분, 혹시 여러분 중에 단 한분이라도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xx대학이라는 간판일 뿐 입니다.
2. 우리 공교육은 어디에 있나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세계적인 학습시간과 강도를 자랑합니다. 게다가 1등부터 60만등까지 일일이 등수가 매겨지는 치열한 경쟁과정은 일면 교육자들을 흐뭇하게 하지요.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치열하게 하는군.” 이러한 세계적인 경쟁체제를 거쳤음에도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인문학적 소양이나 정치·사회적인 교양은 빈약합니다. 이상하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공교육의 목적은 학생의 잠재능력을 일깨워준다든가 인문·사회적인 교양을 키워주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교육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우리 교육의 목표는 대학 진학에 있습니다. 단순한 진학이 아니라 명문대 입학에 있지요. 사회가 노골적으로 대학서열을 조장하고, 대학간판으로 개인의 능력과 인격을 진단하는 현실에서 초·중·고 교육이 대입에 종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공교육에 참교육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욕심과 무지 탓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겸손과 교양 그리고 예의입니다.” 따위와 같은 허울보다는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고등학교의 목표는 서울대 몇 명 더 보내기입니다.” 지금 우리 공교육은 대학입시 대비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풀이식 교육과 암기형 학습이 그 설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며 0교시나 야간학습 등이 학생의 의무로 여겨지는 것이지요. (심지어 일부 중학교들까지도 보충수업과 야간학습을 시작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볼 때 정부와 언론이 주장하는 “공교육의 붕괴” “천문학적 사교육비의 비합리성”은 자기기인입니다. 공교육을 입시대비체제로 만든 것은 오히려 지배계급인 그들이며, 그들이 원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에서의 ‘사교육’은 가진 자들이 누리는 정당한 권리일 테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은 막연한 답답함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이건 좀 아니지.”의 심정일 테지요.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대학입시에 종속된 지금의 중등교육은 교육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 어떤 참스승이 단 하나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 등수를 따내기 위한 교육을 진짜 교육이라고 믿고 있겠습니까. 그 높은 등급에 학생의 잠재능력 발굴이나 인문학적 소양의 도모 등 교육의 참가치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 학창 시절은 그 어떤 교육적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소모적인 과정입니다.
3. 무엇이 교육을 교육에서 멀어지게 할까요.
모두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왜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마치 대로 한 복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시민의 심정입니다. 문제점을 고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누군가의 아이는 또 누군가의 친구는 그리고 누군가의 동생은 입시교육에 짓밟혀 옥상 난간에 또는 자기 방 책상 앞에 신발을 벗어놓겠지요.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며 느낄 거부감과 그 뿌리를 같이합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데올로기의 내면화겠고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이미 사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길들여진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물론 많은 관점들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입니다.
국내의 모든 대학에 서열이 매겨져 있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행복은 대학서열 순이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하여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생겨났습니다. 중등교육의 본래 의미를 부끄럽게 하는 줄 세우기식 교육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대학서열체제 아래서 교육은 필연적으로 상대평가를 요구하지요. 다시 말해현재 우리 공교육의 문제점인 “입시교육”을 발생시킨 원인은 대학서열체제입니다.
4. 이유 있는 반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로 인한 가정의 재정적 압박, 대학서열로 인한 사회적 부의 대물림 등은 차치하고 위에서 계속해서 말해온 사실, 황폐화된 중등 공교육만을 들더라도 대학서열체제는 비합리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대학서열체제를 물리 치려하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에게 내면화된 학벌주의가 힘을 발휘합니다. “대학에 서열이 없으면 어떻게 사람들을 줄 세우지?” 같은 물음이 여러분 안에서 이는 것은 그러한 탓입니다.
대학서열체제가 만들어낸 입시경쟁(흔히 입시지옥이라고 표현되는)은 단순히 우리를 줄 세우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지 않습니다. 지옥은 우리의 야만성을 일깨웁니다. 그 야만성이란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가 비판한 ‘지적 인종주의’의 일종입니다. 학업 성적의 차이가 직접적으로 차별을 낳는 사회적 모순을 뜻하지요. 어찌보면 한국에서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우리는 19년 동안 등수를 매김 받고 끊임없이 상대를 등수로 평가해왔습니다. 고된 입시경쟁은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아래 서열을 절대적으로 배척할 정당성을 선사해주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이쯤 되면 이는 세뇌와 다를 것이 없지요. 19년 간의 긴 세뇌 후에 우리는 학력에 의한 차별을 너무나도 당연시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지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선물을 더 쥐어 줍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상위계급이 자신의 지배력을 대물림하고 정당화하는 기제에 다름 아닌 “입시 경쟁”은 이에 대한 다른 계급의 분노를 탐욕으로 길들입니다. 예정된 패배로 신음하는 사회구성원들은 비합리적인 구조를 타파하려는 움직임보다는 상위계급에 끼어 들어가길 갈망하며 모순적인 기존 구조에 순응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세련된 지배장치는 어쩌면 ‘매트릭스’와도 닮아있습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영화 속 네오와는 다르게 우리는 언제나 파란 약을 먹고, 진실을 회피합니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진실을 깨닫고 싸움에 참여하게 되는 빨간약과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파란약 중 전자를 집어듭니다.)
이처럼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거치는 ‘세뇌’공정을 통해 우리는 ‘이것, 저것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숨은 지배자들이 의도하는 바들을 내면화합니다. 이뿐인가요. 언론과 대중매체는 위의 대국민정신교육을 강화하고 허술한 곳을 정비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웁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한손으로는 “학벌사회는 문제다.” 쓰지만 다른 한손으로는 적나라하게 대학 서열을 조장하고 파급합니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법조계인사 출신대학별 숫자” 등 번뜩 떠오르는 것만 해도 벌써 여럿이지요.
이 같은 몇 가지 기제들로 인해 학벌주의는 창궐합니다. 학벌주의는 다시 입시 경쟁을 더욱 가열하고, 이는 다시 대학 서열을 공고히 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용하지요. 이에 더해 내면화된 ‘학벌이데올로기’는 색안경처럼 우리 시야를 편견으로 칠하고, 학벌사회의 충성스런 파수꾼으로 우리를 무장시킵니다.
5. 고정관념
간단히 말해서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고정관념과도 같습니다. ‘학벌주의가 그리고 대학서열체제가 비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고정관념의 내용입니다. 고정관념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부정적 의미를 띄는 것은 고정관념이 편견을 불러오는 과정에 있지요. 고정관념은 그 틀을 벗어나는 생각에 편견을 덧씌우고 금기시합니다. 고정관념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는 과정입니다.
학벌주의도 이와 같습니다. 사회는 그리고 사회구성원은 이미 학벌주의를 성공적으로 내면화했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는 생각에 대해서 금기의 낙인을 찍고 선입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기로 해요. 이 테스트는 우리가 고정관념 보균자인지 아닌지를 알려준답니다. 아래 문구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어떤 가요. 이 문구를 보자마자 거부감이 끓어오르지 않나요. 테스트 결과가 어떤 지는 각자 생각해보기로 하고 다음 얘기를 계속 할게요.
대학평준화는 학벌사회에서 가장 금기적인 주장이 아닐까 합니다. 대학서열이 철폐된다는 것은 곧 지적 인종주의자들에게는 ‘반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 분명하지요. 학벌주의의 물질적 기반인 대학서열이 사라지는 것은 곧 학벌사회가 뿌리 채 뽑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학벌이 사라진 후의 사회, 대학에 서열이 없어진 후의 사회. 걱정되시겠지요. 그 불안감 잠시 덮어두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기로 해요. 학벌사회가 그렇게도 ‘금기’시하는 대학평준화, 과연 정말로 금기일 필요가 있나요?
6. 대학평준화 그렇게도 불온합니까?
대학평준화란 ‘대학의 서열을 없게 함’을 뜻합니다. 이를 이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 중 많이 논의되는 방법은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입니다. 이 방법은 북유럽 교육제도를 모델로 하여 ① 기존 국립대들의 통합네트워크 구성 ② 사립대의 국공립화 ③ 대학 사이의 공동 졸업장 인정 ④ 입학방법론으로써의 ‘입시’ 폐지와 대학 입학제도의 전면 개선(중등교육의 참의미를 되찾는 방향으로의) ⑤ 대학교육의 업그레이드(진급 기준의 상향조정 등) 등을 내용으로 합니다. (*1 제도적인 방법론과 실천안을 자세하게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이 글의 기획의도와 방향을 달리하기에 그에 대해서는 후단에 참고문헌과 참고웹사이트를 달아놓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대학평준화 그거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녀?” 라고 되뇌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그러나 이미 1968년 68혁명 이후로 유럽국가의 대부분은 대학평준화를 꾸준히 국가 정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 1999년부터 심지어 유럽 국가 내에서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대학을 평준화하고 있는 국외의 현실은 국내 학벌주의자, 대학서열론자들이 주장하는 ‘대학평준화의 비현실성’을 무색하게 합니다.
또 한 가지 꼬리표가 대학평준화의 본질을 가리려 합니다. ‘국가 경쟁력의 저하’가 바로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대학의 평준화가 곧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게 하여 국가 경쟁력을 낮추는 하향평준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일견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우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대학은 한 국가 교육의 근간을 담당합니다. 과연 지금의 대학교육은 국가경쟁력에 보탬이 되고 있습니까? 대학평준화의 본질은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쉽게 입학하고 어렵게 졸업하는” 대학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1위 서열의 대학은 나름대로 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찍혀진 ‘1위’의 등급표시 때문에, 100위 서열 대학은 그 나름의 ‘100위’ 등급표시 때문에 대학입학 이후 학문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유가 이뿐입니까. ‘논스톱’의 대학생활을 꿈꾸던 학생들에게 대학교란 입시지옥을 거치면 등장하는 천국과도 같습니다. 우리네 어르신들은 노는 대학생들을 보며 혀를 차시지요. 그러나 뭐 어떡합니까. 자녀에게 “대학가서 실컷 놀고 지금은 죽어라 공부나 하렴”이라 말씀 안 해보신 학부모 이 땅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오히려 대학평준화는 입학 경쟁보다는 졸업과 학문에서의 경쟁을 유도하여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국가경쟁력’에 훨씬 도움이 되는 제도입니다.
또한 평준화가 곧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거라는 수구언론의 위협 섞인 경고는 그들 자신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다는 점에서 실소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것이 하향평준화 된다는 말입니까. 대학입학시험에서의 점수? 그들이 하향평준화라 칭하는 현상에 담겨있는 ‘고민’은 단순히 대학입학시험에서의 평균점수가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 뿐 입니다. 앞서 말한 ‘입시’ 자체의 전근대성과 교육적인 무의미함은 둘째치고서라도 그들은 한 대학의 입시결과와 그 대학의 학문수준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들의 무지함 또는 뻔뻔함을 만방에 알리고 있습니다. 아무런 교육적 의미도 담지 못하는 입시점수와 대학교의 교육수준, 학문수준을 동일선 상에서 바라보는 것에 그 어떤 합리적인 논거가 스며 있습니까.
여러분은 위에 쓰여 있는 대학평준화에 관한 내용 중에 단지 그 자체만으로 금기가 되어야 할 만한 위험요소를 발견하셨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대학서열체제와 대학평준화체제 중에 무엇이 더 인간적이고 바람직합니까? 어떤 것이 우리에게 더 해가 됩니까? 교육을 교육으로 존재하게 하여 자신의 참가치를 계발하게 하는 체제와, 교육을 입시대비로 치환하여 학생을 문제풀이와 등수의 노예로 만들고, 폐쇄적인 학벌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중 어떤 것이 금기시되어야 마땅합니까. 여기에 덧붙여 후자는 그를 신봉하는 대부분이 가지는 ‘경쟁만능주의’의 덕목 중 하나인 “국가 경쟁력”에서 조차 뒤지는 후진성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7. 선글라스를 내려놓기
위와 같이 너무나 낙관적인 대학평준화의 상상은 되려 우리의 거부감을 사기에 충분하지요. 또한 대학평준화라는 제도에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불온하다 알려진 이 주장에서 불온함을 증명하는 그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까? 한번 쯤 생각해보기로 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대학평준화’라는 단어를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보아오셨나요. 학벌사회가 대량생산한 “금기”색깔의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지는 않으셨나요. 기울어진 시각으로 대학평준화를 금기시해 온 것은 아닌가요?
지금까지 학벌이데올로기가 비합리적인 금기를 생산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쓰는데 이 글은 대학평준화가 시급하니 도입하자는 류의 글은 아닙니다. 다만 기울어진 우리 시각을 인정하고 조금은 더 균형 있게 대상을 보자는 글입니다. 이 글을 “오바”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한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평형에 맞추려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주는 방법이 옳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곁에는 어떤 금기들이 있습니까. 또 우리 사회에는 어떤 금기들이 있나요.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요. 그 금기는 합리적인가요. 그 금기는 누가 만들어낸 금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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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반댈세
반대임
조또 공부 안하는 꼴통들하고 같은 학교 다니고 싶지 않다....난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부터 예전처럼 비평준화로 해서 서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나도 반대// 대학평준화면 어떤쇄키가 고등학교때 공부해... 난 고등학교 평준화도맘에 안듦 설사 대학평준화가 된다고 해도 말로만 평준화고 사실상은 암암리에 서열이 존재할거라 사료됨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ㅇㅇ 그리고 너는 대일본제국이 한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 망상가고 ㅇㅇ
좀비 아고리언 떴다ㅇㅇ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대일본제국을 찬양하는 씨발새끼가 이런말도 할줄아냐?(피식)
내가 어릴때 먼나라 이웃나라 읽을때만해도 프랑스가 대학 평준화제도 였는데 하다보니까 좆 망해서 요즘에 바뀌구잇다든데.?
비평준최고였던 경기고에서 열폭을 많이 한듯.
지금 평준화된 지역의 고교나 중교를 봐라. 어떤지. 완전 썡 양아치 놈들이랑 범생이랑 평범한 애들이랑 섞어놓으니 다같이 막장밖에 더 되더냐. 해답은 교육과정을 좀 줄이고 중학교, 고교를 모두 비평준화 한 다음 대학 수를 대폭 줄이는 거다. 사학이 일소되면 더욱 좋지.
대학수가 대폭 줄어버리면 아예 진학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됨. 그리고 다 평준환데 입시전쟁이 어딨음? 물론 이건 중고교 사학이 일소될 경우에 가능.
대학을 서연고랑 지거국 몇개만 남겨놓으면 찬성. 아니면 반대.
연고도 없애야 한다.
대학교 20개로 줄이고 대학 평준화 해라. 그럼 찬성한다. (참고로 난 연대인데 그렇게 한다면 당장 바꿔도 하나도 안 억울하다) 그런데 지금은 4년제 대학교 200개 넘어간다(기준에 따라서 170여개라고도 하던데. 우리나라 인구에 '대학교'가 이 숫자인게 미친거야). 이걸 다 똑같이 평준화하겠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 네 친구 B는 서울대가 옆이라서 서울대 가고, 너는 그리스도대학교(이런 예 들어서 미안하다)가 옆이라서 거기로 가고 하면 그게 공평하냐? 인프라 자체가 안드로메다 차이인데.
대학평준화 논의에 대해서는 반대이지만 지금 현재의 고등학교에서 이수하는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남는 것은 어렷을적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셧던 학창시절의 추억도 아니고 의미있는 자기계발의 시간도 아닌 인간=점수라는 세월을 보내고 나서 그 결과물로 얻게 되는 대학 간판이라는거...
반대 나도 고교 평준화로 들어왔지만 솔직히 비평준화로 바꿔야함
난 찬성이다. 단 개양아치들과 공부하려는자들이 섞이는걸 막기위해서 상위 20개대학 정도로 갯수를 제한하고 그 대학들에 입학하기위한 P/F 컷 형식의 시험을 봐서 학교를 골라가는거...
그럼 고등학교때 뺑뺑 쳐놀아서 지방잡대 간 개 병신새끼들하고 고등학교때 '공부 왜하냐' 병신소리들으며 묵묵히 공부해서 서울대 간 인간들하고 동급의 취급 동급의 대우를 받으란 소리네? 고등학교때 온갖 양아치 있는척 다하면서 인생을 즐긴 댓가가 뭔지는 확실히 보여줘야 그게 인간의 도리지 ㅉㅉㅉ
막장고 안가보셨죠? 막장고 하루만 다녀보세요. 대학평준화이전에 고등학교평준화부터 바로 폐지해야한다소리부터 나올겁니다.
이거 진짜 동감. 나 고등학교 야자 떄 너무 시끄러워서 공부할 소수의 애들은 복도에서 책상 빼서 공부하는 기현상이... 공부하려는 애들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할 거 아니냐. 이러다 소위 명문대라는 연대 들어오니까, 난 애들이 시험기간에 공부한다는 거, 그리고 수업시간에 안 떠든다는 거 이런 소박한 일에도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