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이 글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헬렌 켈러의 작품이다. 시각과 청각의 중복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훌륭한 문필가이기도 했다.
"누구든 젊었을 때 며칠간만이라도 시력이나 청력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계획표를 짠다.
방금 숲 속에서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더니 "뭐 특별한 것 못 봤어,"라고 답하더라면서 켈러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질문한다.
"보지 못하는 나는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봄이연 혹시 동면에서 깨어나는 자연의 첫 징조, 새순이라도 만져질까 살며시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아주 재수가 좋으면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갈망에 사로잡힙니다. 촉감으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제일 보고 싶은지 생각해봅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겁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날 나는 ......"
이렇게 이어지는 켈러의 사흘간의 '환한 세상 계획표'는 그 갈증과 열망이 너무나 절절해서 두 눈 뜨고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는 내게는 차라리 충격이다.
그래서 오늘같이 햇빛 화사한 날 업적 0점짜리 신문 칼럼이나 쓰고 있어도 헬렌 켈러가 꼭 사흘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이 세상을 나는 사흘이 아니라 석 달, 3년, 아니 어쩌다 재수 좋으면 30년도 더 볼 수 있으니 나는 마음은 백 점으로 행복하다.
ㅡ 장영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https://m.cafe.daum.net/gsparkgolf/ki0D/204?q=%EC%82%AC%ED%9D%98%EB%A7%8C+%EB%B3%BC+%EC%88%98+%EC%9E%88%EB%8B%A4%EB%A9%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