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리언 - 33. 교칙위반의 모범생들
민서우
- 33.
리유에게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그간의 부드러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양부모를 언젠가는 죽이고 말리라는 복수심에 불탄 리유의 모든 것은 윌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로 되돌려놓았다. 그것은 첫 번째 변화에 불과했다.
“리유, 요즘 무서워. 순식간에 변했어.”
“저런 모습 처음 봐요.”
“응.”
레오날드의 말에 카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방의 윌을 제외한 모두는 리유의 차가움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윌이 온 지 얼마 안 되어 리유의 얼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헌데 그 얼음이 약 50일 만에 다시 붙어버린 것이다.
“리유는?”
“몰라. 저녁 먹고 외출증 끊어 나갔대.”
유미의 물음에 윌은 어깨를 으쓱였다. PT로 수십 번 연락을 넣어봤지만 꺼져 있다.
“어딜 간 거야, 도대체.”
유미는 걱정되는 마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잠시 후, 계단이 살짝 울리면서 리유가 휴게실로 올라왔다. 반가움에 자리에서 일어선 윌 일행의 얼굴은 이내 굳어졌다. 리유의 긴 귀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왼쪽 귀에 세 개나, 오른쪽 귀에는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충격에 휩쓸리던 중 유미가 제일 먼저 중얼거린다.
“피어싱(Piercing)?”
“리유, 어딜 다녀와?”
유미의 중얼거림을 들은 마리엔은 그녀를 바라본 뒤 물었다. 경찰 만났을 때만큼 눈이 커져 있다.
“응, 잠깐 좀.”
“너 귀 뚫었어?”
“응.”
윌의 말에 리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자그마치 네 개라니……. 쉬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허나 윌 역시 요즘 머리를 기르는 중이라 안 그래도 풍성한 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회장! 귀 뚫었어?”
“세상에. 회장이 귀를 뚫다니 볼 장 다 본 거네?”
“근데 왠지 멋있다.”
같이 휴게실에서 놀고 있던 남학생, 여학생들 역시 놀란 듯 입을 벌렸다.
학교 내에서 일명 ‘모범생’ 이라 불리는 그들이 지켜야할 규칙 중 가장 큰 것 두 개를 어기고 있는 것이다. 피어싱을 보던 카즈마는 새삼 윌의 긴 금색 머리가 눈에 띄는 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러는 선배는 이발 안 해요?”
“응, 안 해. 나 머리 기르는 중이야.”
이번에는 리유가 눈을 크게 뜰 차례다. 어쩐지 자를 생각을 안 한다 했더니 머리, 기르는 중이었구나. 카즈마는 안경을 고쳐 쓰며 흘리듯 중얼거린다.
“이제 레오 선배가 담배만 피면 게임은 끝인가요?”
허. 윌과 마리엔, 유미는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까지 그럴 거니?
그렇다. 카즈마 저는 프로그램 만든다는 명목 하에 중간 중간 수업을 빠지고 있으니 교사들의 눈이 고울 리 없다. 모범생이던 그들이 교사들 눈 밖에 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대변하듯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에 리유의 귀를 본 담임, 호통을 거하게 친다.
실망의 기운을 한 가득 담아서.
“너 지금 그게 무슨 짓이야! 사내 녀석이 계집애처럼 귀나 뚫고! 당장 빼!”
“싫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너 학년회장이야! 잘리고 싶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교실 안에서 리유는 담임과 당장이라도 한 판 붙을 기세였다. 그가 제발 좀 학년회장 자리에서 잘라달라는 식으로 말하자 담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너 정말 그럴 거야?”
“뭐가 어때서요? 남자는 귀 뚫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그런 법은 없다. 어째 반발이 더 심해진 리유다. 그 날 이후로, 이전에 비해 더 차가워진 것처럼 느끼는 윌 일행이다.
“리유 선배 너무 변했어요.”
“응, 정말 적응 안 되고 있어요.”
카즈마의 말에 레오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건 알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던 그들이다.
살벌함이 지나간 조회 후.
“당장 가서 사과해.”
“뭘?”
“담임선생님의 잘못이 아니잖아. 왜 대들어? 너 왜 이렇게 삐딱해? 얼른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게 완전 북해의 얼음이다. 하지만 유미는 침착하게 그를 설득시키려 애썼다. 교실로 들어가려는 리유의 손목을 잡으며, 유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리유가 아니야. 너답지 않아, 이러는 거.”
“나다운 게 뭔데? 집에 콕 처박혀서 그 작자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 아니면 헤실 거리면서 웃는 거? 차가움이 도는 통솔력, 이게 바로 나다운 거야. 몰랐어? 내 인생이야, 내 거란 말이야. 너란 녀석이 상관할 일이 아냐. 더 이상 간섭하지 마.”
“-!”
충격에 물든 유미의 손을 뿌리친 리유는 차가움이 감도는 보라색 눈으로 그녀를 잠시 동안 빤히 바라본 뒤 교실로 들어갔다. 그 잠시라는 짧은 시간에 유미는 그의 눈동자를 통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잃어버렸구나, 너의 모든 걸. 되찾을 생각이 없구나. 복수심 말고는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어. 학교로 오기 전의 외로운 너로 돌아간 거구나. 감싸주기를 거부하는 너로 돌아간 거구나, 그렇지? 그런 널… 되돌릴 수 있을까?’
생각을 정리한 유미는 그대로 교실로 향했다. 저녁 식사 후 양호실에 들러 체중을 재본 유미와 마리엔.
“어-! 1키로 빠졌어.”
“난 2키로 쪘어.”
체중에 민감한 시기의 하이스쿨 시절이다. 하지만 마리엔은 체중이 늘건 말건 상관없는 모양이다. 유미는 볼에 바람을 넣으며 투덜거렸다.
“1키로밖에 안 빠지다니 말이 안 돼. 정말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빠진 게 어딘데. 할 거야?”
“지금은 안 해도 충분히 빠질 것 같아. 리유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어.”
“너무 신경 쓰면 대머리된다?”
마리엔의 말에 유미는 얼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진짜야?”
“윌한테 들은 건데 확실하진 않아. 대머리는 유전인 것 같거든.”
쿵- 유미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은 느낌을 크게 받았다.
“그게 정말이야?”
“윌 외할아버지께서 대머리이신 모양이야. 근데 윌 말로는 그 분이 평소 신경과민이라는, 약도 없는 병을 앓고 계신다는 거야. 너한테 꼭 전해 달랬어.”
유미의 볼에 들어있던 바람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양호실을 나섰던 마리엔은 유미가 돌아오지 않자 다시 돌아왔다.
“왜?”
“친할아버지께서 대머리셔. 근데 신경과민이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야.”
마리엔은 유미를 끌고 양호실을 나오며 덧붙였다.
“정 뭐하면 카즈마한테 확인해보는 게 어때?”
“그럼 되겠다!”
방으로 돌아온 유미는 당장 PT를 꺼내 문자를 보냈다.
-카즈마, 신경을 너무 쓰면 대머리된다는 게 맞는 말이야? 윌이 그랬다면서? 난 친할아버지께서 대머리이시거든? 걱정 되니까 좀 알아봐줘.
카즈마가 그녀의 문자를 받은 건 양치를 한 직후다. 윌 선배가? 카즈마는 책상 위의 노트북을 켜고 화장실로 왔다. 레오날드는 세수 중이고 윌은 양치를 하고 있다.
“윌 선배, 마리엔 선배한테 뭐라고 했어요?”
“응. 유미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
“유미 선배가 그 얘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에요. 씻고 나오세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있어요.”
말을 마친 카즈마는 노트북을 두드려 화면 몇 개를 띄운 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고, 세면을 끝낸 둘은 이내 방으로 돌아왔다. 리유는 양치 직후 사라졌다.
“*대머리는 유전 현상이 20%~30% 정도에요.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있는 편에 속하죠.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그리고 신경과민으로 인해 대머리가 된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상태에요. 부계에 의한 유전이 대다수이고, 모계에 의한 유전은 거의 없어요. 여자는 대머리 유전자를 받아도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죠.”
“아, 정말?”
“예. 인간의 몸은 70%가 물로 채워지고, 나머지 중에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게 단백질이에요. 머리카락도 단백질이 80%를 차지하고 있죠. 뇌 활동에 가장 좋은 게 당분, 단 음식이에요. 흡수가 빠르고 뇌 활동을 빠르게 도와주거든요. 단백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물 다음으로 필요한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럼 단백질을 사용하는 게 많아지면 머리카락으로 가는 것도 작아지겠네요?”
“응, 레오 선배 말대로 그런 원리에요. 몸에 필요한 량만큼 먹어주면서 섭취를 하면 대머리가 안 되게 할 수 있죠. 신경과민이라는 건 단백질 소모가 심한 걸 의미한다 할 수 있어요. 조상 중에 대머리가 있다고 너무 신경 쓰면, 그야말로 대머리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되요.”
“으흥. 참고가 됐어, 고마워!”
윌은 씩 웃으며 답례했다. 레오날드 역시 웃음으로 답했다. 카즈마는 안경을 고쳐 쓰며 PT를 들었다. 유미한테서 온 문자에 대한 답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윽고 다시 답장.
“…욱.”
그 답을 확인한 순간 카즈마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보충수업이 있으나 수업을 안 들어도 되는 윌과 레오날드는 복습 준비를 하다가 그를 돌아봤다.
“왜 그래?”
“유미 선배, 문자 끝에 하트…….”
카즈마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그의 이마에 서슬 퍼런 오로라가 선 걸 본 윌과 레오날드는 각자의 책상에 앉았다.
‘모르는 척 하자.’
한편.
저녁식사 후 사라졌던 리유는 취침시간이 가까워져서야 기숙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란히 복습을 하고 있던 윌 일행은 그가 진한 땀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자 동시에 코를 막았다. 그 냄새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예상이 가능하다.
‘여태 검도부실에 있었구나.’
레오날드가 벌떡 일어나서 창가에 쳐둔 커튼을 젖히고 문을 열었다. 기숙사 전체에 설치된 냉방시설이 가동 중이지만 괘념치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리유가 몰고 들어온 땀 냄새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미안.”
방충망만 남겨두고 창문이 모두 열리는 것을 본 리유는 옷장에서 옷을 챙기며 작게 중얼거린 뒤 화장실로 향했다. 사과를 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한 모양이다.
복수심에 불타 아무것도 안 보일 줄 알았더니.
환기를 통해 땀 냄새가 어느 정도 빠지자 윌이 창문을 조금만 남겨놓고 닫았다. 그리고 온도도 적당히 조절했다. 소등시간이 가까워지자 윌과 카즈마, 레오날드는 책상 위를 정리하며 잘 준비를 했다.
리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눈치다. 2층으로 올라간 카즈마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선배들 좋은 밤 보내요.”
“좋은 꿈꾸고-. 레오도 좋은 꿈 꿔.”
“잘 자요, 윌. 잘 자요, 카즈마.”
레오날드가 올라간 것을 확인한 윌은 바로 옆의 작은 스탠드를 켰다. 큰 형광등은 곧 나올 리유가 끄리라 여기며. 그의 생각대로 화장실에서 나온 리유는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의 불에 의지해 침대로 들어왔다.
밤 인사는… 없었다.
*중간에 나온 대머리에 대한 내용은 제가 아는 것을 정리하여 낸 것이므로, 현실에서의 과학적인 증명과는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검색사이트를 이용해서 알아봤지만 자세히 나오지 않더군요.
Ace.Star.Light
|
첫댓글 잘읽었어~ㅇ-ㅇ/ 근데 리유도 성격은 엄친아인가..-_-;; 그건 그렇고 글틀 빼니깐 좀 읽기 힘들어지네;; 글틀 올릴때 테이블 길이 600정도로 맞춰서 올려줘~ㅇ_ㅇa
...뭐하자는 거야..^^;; / 글틀 600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