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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틴의지리와풍습/의복/동식물 스크랩 탕자의"쥐엄나무"
신동 추천 0 조회 376 09.03.14 17: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성경에서 나오는 식물들  탕자의"쥐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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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배고파 .. 꼬로록..  아버지는 부자인데... 아.. 돌아가싶어라. 

  아버지 재산  다 말아먹고 , 이젠 먹을 양식도

  없구나.~~ 쥐엄열매라도 실컷먹고 싶은데 주는자 없구나.~~ 주린배를 움켜진 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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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


 

<돼지치기가 된 탕자>

 ▲ [렘브란트]절망의 벌판 (소묘,1645-48)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 : 16~ 17 )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절망 가운데, 탕자의 눈물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장 11절~16절)

 

외로운 사나이가 지팡이에 기대어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다.

그의 곁에는 돼지들이 득실거린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악취는 안중에도 없다. 불결한 짐승이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망신창이가 된 청년은 부유한 집의 귀공자가 아니라 거지중에서도 상거지가 되었다.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탕자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 늘 그의 곁에 함께 지내던 친구들은 종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던 그들은 지금 온데 간데 없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자 꿀을 쫓는 벌처럼 다른 데로 달아나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그 나라에는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웠다. 그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던 돈도 없어지고 친구마저 잃었다.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타지에서 그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서성록교수님의 렘브란트 기행] (안동대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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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8절~ 19절)
  

성경에 나오는 식물들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 쥐엄나무(히브리어 '하롭', 영어 'Carob tree')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그 이름이 한번도 나오지 않고, 신약에 단 한 번 나오는데 (탕자의 비유, 눅 15:16) 누구나가 기억하고 보기를 원하는 나무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누가복음'쥐엄나무의 열매는 돼지만 먹는 것인데 그것을 탕자가 먹었다'는 말씀 때문에 돼지의 음식을 사람이 먹은 것처럼 생각하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시장에서 팔 정도로 그렇게 좋은 열매는 아니나 (한두 군데 파는 곳도 있다) 큰 콩깍지 모양으로 생긴 그 열매가 검게 익으면 사람들은 재미로 그것을 먹기도 한다.성경 시대에는 적의 포위로 성 안의 사람들이 굶주릴 때 비상 식량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열왕기하 6장 25절의 합분태(비둘기 똥)가 바로 쥐엄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바로 아람 왕 벤 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 했을 때 사마리아의 상황이 자식들을 잡아 먹는 지경까지 이르자 사람들이 쥐엄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20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1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2절)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3절)

하나님은 잃어버린자를 찾으시고

돌아온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돌아갑시다. 아버지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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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엄나무

 

쥐엄나무는 지중해 연안에 자생하는 흔한 나무이다. 옛날부터 있었음에도 구약에는 기록이 없으며, 눅 15:16에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라고, 탕자비유에 단 한번 나오는 돼지먹이로 지칭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주염나무와는 콩꼬투리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흔히 동일하게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다른 식물이다.

 

이 나무는 10m까지 자라는 상록수(주염나무는 낙엽수)이다. 줄기의 지름이 30cm나 되며, 수관은 둥근 모양이 된다. 잎은 호생(互生)한다. 짝수 우상복엽으로, 잔잎은 3~5쌍이며, 계란형의 혁질인데 광택이 있다. 지난해 자란 가지에, 붉은 색의 꽃술이 꽃으로 보이는 꽃잎이 없는 잔꽃이 이삭 모양으로 핀다.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양성화(兩性花)이다.

 

4~5월에 열매가 달린다. 콩꼬투리가 납작하고 폭이 3~5cm에 길이는 15~25cm나 되며,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익으면 갈색으로 변한다. 그 속에 동글 납작한 완두콩 같은 5~10개의 씨가, 단맛이 나는 과육에 파묻혀 있다. 날로 따 먹을 수도 있고, 즙을 눌러 짜내어 이용하기도 한다. 이 시럽에는 당분이 30~50% 들어 있어서,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가난한 원주민들의 식량이 되고 있다.

 

콩꼬투리는 익어도 벌어지지 않고, 마르면 그대로 떨어진다. 마른 것은 가루를 내어서 엿을 만들기도 하고 알콜의 원료로도 쓰인다. 지금도 아랍인들은 쥐엄열매를 각종 조미료로 요리하여 식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소, 말, 돼지, 닭 등의 가축 사료로도 훌륭하다. 특히 중동의 말타섬에서는 대량 재배되고 있으며 말 사료로서 영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쥐엄나무는 파종해서 결실하여 수확할 수 있을 때까지 20년 이상이 걸린다. 일단 다 자란 나무가 되면, 한 그루에서 200kg 이상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열매를 맺는 데에 긴 세월이 걸린다.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탈무드에 있다.

한 젊은 랍비가 지나가다가, 어떤 늙은이가 쥐엄나무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랍비는 노인에게 "30년이 걸려야 열매가 달리는데, 이제 씨를 뿌려서 무슨 소용이 되겠소? 열매가 열릴 때 쯤에는 당신은 죽고 없을 텐데요" 하며 비웃었다.

그러자 노인은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나는 남이 심은 쥐엄 열매를 먹어 왔으니, 나도 남을 위해 심는 것이란 말이요. 훗날 나의 자식 또는 그 자식의 자식들이 이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겠소." 하고 대답했다.

 

그 젊은 랍비는 얼마 안 가서 지쳤다. 그는 숲 속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70년이나 세월이 흘렀더라는 것이다. 그 때에는 그 노인이 씨를 뿌린 쥐엄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달았으며, 젊었던 랍비도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 뿐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라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쥐엄나무를 히브리어로 haruvim(carob)라 하고, 메뚜기를 hagavim(locust)라 한다. 마 3:4에 "세례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였더라."라는 대목의 메뚜기는, 성경을 옮겨 쓸 때 'r'자를 'g'자로 잘못 기록하여 성지(광야)에 흔한 쥐엄나무 열매가 메뚜기로 잘못 기록되지 않았나 하는 논란이 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쥐엄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금도 뉴욕의 시장에서 쥐엄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 하며 팔고 있다고 한다. 영명은 locust tree(메뚜기 나무)라 하는데, 세례요한의 식량인 메뚜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우리는 중국 성경을 번역할 때 콩꼬투리가 비슷한 주염나무를 연상하여 쥐엄나무 또는 주염나무로 붙였다 한다.

 

쥐엄나무 열매의 씨는 무게가 균일한 것이 특징이다. 옛날에는 무게를 다는 저울추로 쓰여서 무게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며 대개 0.2g이다. 보석의 중량 단위를 '캐럿'carat이라 한다. 그리스어의 Keration으로서 쥐엄나무의 학명인 Ceratonia와 어원이 같다. 1캐럿은 200mg이다.

 

쥐엄나무 열매는 소금물을 달게 하는 효험도 있다고 하는데, 실험해보지는 못했다. 쥐엄나무는 열대식물이지만, 감귤이 월동할 수 있는 지방이면, 재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육이 더딘 결점은 있어도 수명이 길므로 나중에는 거목이 된다. 제주도 등지에서 교회에 심어 보는 것도 뜻이 있을 성 싶다(최영전, '성서의식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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