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눈에는 그 당시의
천주교회는 초대교회 곧 바울서신에 의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영성도 성경에서
빗나간 것임이 틀림없다. 기독교가 로마 국교회가
되고 나니 교회가 권력화 되어 타락을 거듭했다.
그로 인해 일부 수도사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의
사막의 동굴 속으로 숨어 들었다. 참 교회를 찾지
못하여 개인의 영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영성이 반드시 성경적인
것으로 보긴 힘들다. 16세기의 교회는 타락했지만
그 당시 영성은 전승이 되어 미국에서 캐스린쿨만
같은 성령운동을 세기의 성령운동가라고 일컫는다.
베니힌에게 전수되어 지금은 전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나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영성을
껄떡거리는 이들이 상당수다. 약간씩 변화가 있지만
결국은 16세기의 영성이 그 뿌리인 것이 틀림없다.
그 이유는 캐스린쿨만이나 신사도운동하는 이들이
로마 교황과 우호적인 관계인 것이다. 16세기의
교회가 엉망인데 성경을 벗어난 개인의 영성이
과연 진리의 영에 의한 그리스도의 내적인 역사로
충만해진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거다. 현재교회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운동이 아닌 원리가 없이 주관적인
체험의 성령 운동 곧 표적이나 기사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큰 교회목사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2. 그들의 특징은 오직 예수이다. 그리스도란 말은
하긴 하지만 그건 보조언어일 뿐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예수동행, 예수를 친밀하게 등의 용어를
쓴다. 캐스린쿨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이심(요1:1)을 제대로 모르더라. 만일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하신 사실을 인정한다면
요단 강에 세례를 받기 전에는 능력이 없었으나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한 이후부터 비로소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메시지에 예수밖에 없더라.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다면 당연히 의, 생명, 형상, 영광, 능력
등의 메시지를 전하여 내적인 구원에 의해 드디어
충만에 이르러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지는 말씀을
전했을 것으로 본다.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신학체계가 갖추어진
사역자인가 묻는다. 혹자들은 바울이 만든 기독교라는
말들을 하지만 바울서신이 아니면 구원의 결과(롬8장)
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충만에 이르는 비밀인
에베소서를 알고 교제(빌립보서)로 말미암아 열매가
되는(골로새서) 비밀을 얻을 수가 없다. 물론 작자를
모르긴 하지만 히브리서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닿아 들은 말씀이 결부가
되어 온전함에 이르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거다.
3. 바깥에 나타나는 사역의 영(에피 성령)은 고린도교회
와 같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젖만 먹는 육체에 속한
성도들에게도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예수만 믿고 그
안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로 모시지 않아도 간절히
사모하며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하면 나타난다.
그게 중세교회 안에서 일어난 영성 운동이며 미국으로
건너가서 전 세계에 퍼진 성령운동으로 본다.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다면
왜 부분적인 은사에 매달리겠는가? 교회의 잘못이다.
한쪽은 성령의 내주역사가 없는 지식적인 신학이 있고,
그 반대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며 이적이나 기사 방언 등의 은사운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성적인 경건과 감성적인 열광주의가 대립된다.
성경으로 보면 갈라디아교회와 같이 육체의 행위를
강조하고 한쪽은 고린도교회와 같이 은사를 강조한다.
이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선 진리의 성령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밖에 서
계시는 형국이 되어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비밀이
없으니 그만 하늘에 앉는 믿음이 결여되어 답보상태의
영적 돌파구로 성령운동을 일으키다가 나타난 현상이다.
4. 로마서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을 따르는
믿음의 의인이 되는 과정을 진술한다. 그들의 믿음의
여정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을 뿐 이적과
기사는 없었다. 이는 아담의 범죄로 사망의 종이 된
인간들이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십자가의 사활의 공로
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이
어떤 표적이나 이적과 기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가 진리 안에서 거룩과
영광을 얻은 그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한 쇼킹한 사건이다. 진리를
전하는 이가 없고 그 진리를 인내로 듣지 않아서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16세기의 교회는 다 썩었다. 그래서
개혁 곧 원형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따라서 다 썩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영성이 성경이
보증하는 영성으로 볼 수가 없다. 그러나 1세기의
베드로나 바울이 만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사도행전역사를 일으킬만한 교회가 된다. 따라서
바울 서신이며 그의 신학사상이 망라된 로마서로
왜 구원을 받아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구원을
받는가 그리고 구원받은 결과가 무엇인가를 꼭
터득하길 바란다. 그 외 바울의 서신과 히브리서를
통해 그림자인 구약의 성전의 비밀을 실제화 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자. 반드시 1세기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면 또 수도원으로 숨어들었던 암흑기의
교회의 꼴이 난다. 아마 이꼴 저꼴이 보기 싫어서
봉쇄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 이들이 적지 않을
거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적인 교회를 구현해보자.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참 신비롭고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