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4/02/12 00:00
*부모이름 못쓰는 대학생 많다/일상한자어 뜻몰라 잘못쓰기 일쑤/ 국교
교사-젊은문인 다수가 기초글씨도 "감감"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유행
어는 토사구팽 . 어느 정치인이 이 말을 던지고 정계를 은퇴하자 신
문사에는 무슨 뜻이냐 는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유방과 한신의
중국고사에서 나온 유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자 자체를 못읽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우리 문화재 조선왕조의궤 가 파리에서 돌아올 때도
비슷했다. 이중 의 는 부의 축의 등으로 사용빈도가 극히
잦은 글자다. 결혼식장이나 상가에 봉투 를 들고 가면서도 겉봉에 쓴
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한심했던건 UR협상으
로 신토불이 가 등장했을 때다. 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조어
에 가깝지만 한자 1백자만 제대로 공부했다면 뜻을 물어볼 필요가 없는
기초자로 된 성어다. 그런데도 너무 많은 사람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
다. 우리 국민의 한자실력이 형편없다는 얘기를 할때 흔히 대학생을
예로 든다. 최고학부를 다닌다는 미래의 동량 들이 신문하나 제대로
못읽는 고학력 문맹 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불행하게도 실상은
더 참담하다.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전국의 17개 대학 1~3학년생 1
천5백명을 대상으로 평가한 대학생의 한자실력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우선 자신이 다니는 학과를 제대로 못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의예과
교육학과 화학과 행정학과 . 이런 기상천외한 전공자가 절
반을 넘는 54%나 됐다.읽기에서 항복 을 맞춘 학생은 38%였으며
, 한자쓰기에서 자매 를 제대로 쓴 경우는 고작 9%였다. 전체평균
은 54.2점. 주최측이 다룬 한자는 교육용기초한자 1천8백자 가운데
서도 기초중 기초 라고 고른 1천자 범위내였다. 더욱이 이들은 거의
명문대생 이었다.또 다른 조사결과는 더욱 놀랍다. 7개대 신입생
1천3백49명을 대상으로 부모의 이름을 한자로 쓰게했더니 아버지 이름
을 못쓴 학생이 23%, 어머니 이름을 못쓴 학생이 29%나 됐다.
부모이름조차 못쓰는 우리 대학생 이라는 일부의 우려가 결코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 등 외국연예인의 이름은
영어로 척척 쓰면서 부-조의 합자조차 못쓰는 사실은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서울 모대학 한문교육과의 어느 교수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문을 전공하겠다는 학생들의 한자실력이 워낙 형편없어 신입생에게 내
주는 첫 과제가 사자소학 10번 써오기"라고 말했다. 4자소학
은 조선시대 요즘의 유치원생 또래가 공부하던 생활윤리서로 부 모
충 효 같은 기초한자 4백57자가 반복해서 나온다. 일본의 유치
원생이 론어선집 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우리 대학생이 짐작이나 할지
궁금하다.그렇다면 기성세대는 괜찮은가. 한글전용세대인 30대 중반 이
하는 대학생과 다를 게 없다. 이들의 실력은 일상생활에서 예사로 틀린
어법을 구사하는 데서 짐작할 수는 있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로송나무 아래서 남은 유산 물에 빠져 익사한 화인은 전
기누전 시 모음집 대상을 수상했다 부상당했다 간단히 요
약하면 . 한자세대에겐 더 없이 거북한 표현이 유행가에서부터 신문
잡지에 이르기까지 예사로 등장한다. 국민학교 저학년때 어법이 정확해야
한다면서 선생님이 예로 드는 역전 앞 류의 홍수다. 우리 말은
약 70%가 한자어여서 한자를 모르면 구조적으로 바른 말과 글을 쓸
수가 없다.한자문맹은 말과 글의 달인이어야 할 한글세대 문인들에게까지
번져있다. 패하 강변에 군사를 매복하여 숨겨두었다가 날카로운
유시가 심장을 꿰뚫었던 개선하여 돌아오던 . 어느 소설가가 한
페이지 분량의 원고에서 뜻을 몰라 잘못 사용한 한자어다. 프랑스가 미
국문화유입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세계 각국이 국경없는 경제
전쟁과 함께 문화전쟁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이 올바르지 못
한 국민은 결코 문화선진국이 될 수 없다.그러나 진짜 심각한 건 대학
생과 회사원이 아니다. 청주교대 안승덕교수(국어교육)가 국민학교 남자
교사 2백3명 여자교사 82명 등 모두 2백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들의 실력을 보자. 나이는 남자가 평균 38세(26~54세), 여자
는 31세(25~44세)였으며, 근무연수는 14년(3~30년)이었다.
문제는 국민학교 1~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 가운데 왕자
교실 고국 태극기 등 사용빈도가 높고 널리 쓰이는 1백개를
한자로 쓰기. 안교수는 "기초한자 1천8백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쉬운
9백자 범위 내에서 문제를 냈다"고 했다.놀랍게도 모두 정답을 쓴
한자어는 선생 과 대학 둘뿐이었다. 교사업무와 관련있는 방학
수업 교실 도 부지기수로 틀렸으며, 수십명은 소년 소녀
마저 엉뚱하게 썼다. 태극기 를 제대로 쓴 교사는 19%(54명)
밖에 안됐다. 한자세대 교사를 빼면 결과는 이보다 훨씬 나쁠 것이다.
이 조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서의 기초 한자어도 제대로 못쓰는 교
사들이 2세교육을 맡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통문제가 아니
다.80년대 들어 대학교에 첨단공학을 배우는 제어계측과 란게 생겼다
. 생소하지만 제어계측과 라고 쓰면 무슨 공부를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러나 한글전용 인 우리 정부의 교육부 문서 등에는 이 한
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은 한자로 가르친다. 이래 가지고서는
일본과의 발전거리가 점점 멀어져갈 뿐이다.70년 한글전용정책 이후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문화-과학-국제 등 온갖 분야에서 이미 충분히 나
타났다. 그런데도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문민정부가 이 문제에는
묵묵부답이다. 남상균 기자
입력 : 1994/02/13 00:00
*고전강좌 일반인 몰려 학습지도 불티 경쟁국 일본은 말할 것도 없
고 북한, 심지어 구미에서까지 관심을 갖는 한자교육에 오불관언의 자세
로 일관하는 정부. 70년 한글전용정책이후 교육부(과거 문교부)장관
을 지낸 인사의 70%를 비롯, 학계 정계 언론계 등 1만명이 넘는
각계인사들이 수십차례나 한자교육강화를 건의했지만 요지불동인 교육현실은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 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사회
, 어느 조직이건 남보다 앞서 뛰는 사람은 있게 마련. 당국의 수수방
관속에서도 한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 빌딩의 20평 남짓한 강의실. 50여명이 강의에 귀를 기울
이고 있다. 수강생은 주로 대학생이지만 직장인도 더러 보인다. " 부
모재시면 부원유하며 유필유방이니라 , 부모가 계실때는 멀리 나다니지
말며, 혹 먼데 갈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가는 장소를 말씀드려야 한다
는 뜻입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말라는 가르침이지요." 명심
보감 사서삼경 등 고전을 통해 인격을 닦으며 한자를 익히는 전통문화연
구회의 고전강좌다. 87년 7월 성균관대 안병주교수 등 뜻을 같이하
는 인사 20여명이 문을 연 이곳을 거쳐간 수강생은 지난해까지 약 4
천명. 이계황부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중수교가 이뤄지고 국제화
라는 단어가 회자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졌습니다. 여성들도 관심
이 부쩍 높아져 동몽선습 등을 가르치는 기초반은 거의 주부들로 자
리가 찹니다." 그는 "한자를 배우겠다는 열기는 교재판매량으로 짐작
할 수 있다"면서 " 사자소학 은 군부대와 각급학교에서 꾸준히 무더기
주문이 들어와 3만부 넘게 나갔으며, 론어 와 맹자 도 각각 1
만5천부 이상 찍었다"고 말했다.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도 이같은 강좌
가 계속되고 교재가 나오는 것은 기초반의 경우 월 수강료 1만원만 받
는 전통문화연 관계자들의 영리를 떠난 사명감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
다. 독학파도 늘고 있다. 학습지 매일한문 을 발행하는 매일영어사
김형중총무부장은 "91년 3월 2천부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1만2천부
를 발행하고 있다"면서 "한자를 몰라 사회생활에 애를 먹는 30대 직
장인이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역시 한자학습지를 발행하는 양우출판사
대표 김영선씨는 "문화센터-외국어학원 등에서 출강요청이 잦아 대학원
생 20여명에게 한자교습법을 가르쳐 강사로 파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그만큼 한자인구가 늘고 있다는 증거다. 제자들의 한심한 한자실력
을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교수들도 있다. 성균관대 인문-사
회분야 교수 30여명은 지난해 한자사용 권장을 위한 교수모임 (간사
이대근경제학과교수)을 만들어 학생들이 과제물을 내거나 논문을 쓸때
일정수준 이상의 한자를 사용토록 지도하는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학마저 한자를 외면하면 학문발달과 전통문화 계승은 물론 국제화시
대의 요구에 부응할수 없다"고 강조하는 이들은 "대학신문 같은 교내언
론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방법이 한자교육정상화의 관건이나 난관이 많다"
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국민들의 한자교육을 위해 단기로 동분서주하
는 인물도 있다. 예비역 육군중장인 이재전씨. 한자와 전혀 무관해 보
이는 그는 10년 넘게 각급 학교와 단체를 다니며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관련책자를 나눠준다. 그는 국방부가 20만부 가까이 발행하
는 일간지 국방일보 ( 전우신문 후신)와, 장교용월간지 국방 을
한글전용에서 한자혼용으로 바꿔놓는가 하면 한국천주교를 상징하는 명동
성당의 사제들을 설득, 한자교실 을 개설토록 했다. 무관출신인 그가
왜 한자교육에 열성을 보이게 되었을까. "군단장때 영관장교가 신문을
제대로 못읽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장교들의
필독서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삼략 같은 병서를 이해하겠
습니까. 한자문맹은 국방력 저하와도 직결됩니다." 국민들의 한자실력
을 전반적으로 올리려면 어문교육을 과감히 개혁, 국교서부터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조기교육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자체를 기피하는 당국의 보신주의가 두터운 벽
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소신껏 한자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자들도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올 3월 신학기부터 4~6학년을 대상
으로 한자시간을 편성키로 결정, 현재 심성교육에 도움을 주는 교재
한자학습지도서 를 만들고 있다. 물론 광주시교육청발행이다. 편찬위원
장인 장희구교사(서림국교)는 "첫 해인 올해는 3백4자를 가르치는 4
학년용 교재만 만들지만 점차 늘려 국교과정에서 1천자는 가르칠 계획"
이라고 말했다. 광주지역은 일찍부터 학교단위로 한자경시대회를 여는등
한자교육에 앞서 왔다. 다소 경우는 다르지만 (주)농심 신춘호회장은
국교한자교육을 위해 2억7천만원을 들여 한자가 섞인 국교국어교과서
를 만들어 전국학교에 참고용 으로 보내기도 했다. 현재 절대다수의
국교교사들은 교육당국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제자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연말 있었던 한자한문교육학회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국교 가운데 86.6%가 자습 등의 명목으로 교사재량하에
하루 1~2자를 가르친다.일선교사, 일선교육행정가 들이 인정하는 한
자조기교육.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남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