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환상곡
허 정 균
1991년 33km 방조제를 착공할 무렵 새만금은 임해공업단지였다. 갯벌을 메워 공업단지를 만들어 잘 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새만금은 ‘세계최대의 골프장’, ‘동아시아의 두바이’ 등으로 ‘자체진화’를 하다가 최근에는 ‘대한민국 녹색성장의 전진기지’로 홍보되고 있다.
새만금간척지의 용도를 두고 이같은 장밋빛 청사진이 펼쳐지는 가운데 전북 도민들의 머리 속에 새만금은 하나의 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이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꺼냈다가는 ‘전북 발전 음해 세력’으로 몰린다. 이 글은 새만금 사업을 두고 정치권에서 도민들에게 틀어댄 ‘새만금 찬가’를 총정리하였다.
‘세계 최대·최장’이 목적
정부와 새만금간척사업 추진세력이 새만금간척사업과 새만금방조제 앞에 접두사처럼 즐겨 쓰는 말이 ‘세계 최대’와 ‘세계 최장’이라는 수식어다.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는 스스로 ‘보통사람’이라 강변했지만 호남 인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보통’ 개발공약으로는 안되었다. 경천동지할 개발공약이 필요했다.
‘세계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품고 노태우 후보는 전북지역 유세에 나섰다. 1987년 12월 10일로 선거일을 불과 엿새 앞둔 시점이었다. 군산 유세를 마치고 무개차에 올라 유세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돌멩이와 벽돌조각이 날아들고 사제폭탄이 터졌다. 도망치듯 군산을 빠져나온 노태우 후보는 전주로 향했다. 그러나 유세장인 전주역앞 광장은 이미 돌멩이와 화염병이 난무하고 있었다.
노 후보는 연단에 서보지도 못하고 전주 시내 모호텔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어 ‘새만금간척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빅카드를 발표하였다. 이 사업은 이로부터 1개월 전인 87년 11월 11일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후보가 전북도민의 숙원을 수렴한다며 발표했었으나 경제기획원 등 관계부처에서 ‘경제성이 적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군산․장항광역산업단지’ 건설사업이 끝나는 2000년 이후에나 재론키로 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뒤집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전주유세 무산’ 기사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언론에 대서특필 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노후보의 전주 발표 이튿날 당시 김주호 농림부 장관은 노 후보의 전주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해안 시대의 개막에 발맞추어 동진강 만경강 하구에 4만 2,000ha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대중국 무역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내용의 새만금지구간척사업을 시행한다고 확정 발표한 것이다.
이 때 발표한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산업기지에서 출발하여 오식도-비응도-야미도-신시도-비안도-가력도-변산의 대항리를 연결하는 길이 34km로 세계최장인 네덜란드의 주다찌 방조제 32.5km보다 더 길었으며, 현재의 방조제에서 바깥쪽으로 4km 떨어진 비안도를 경유하고 있다. 당시 내초도와 오식도, 비응도를 포함한 지역은 토지개발공사에서 군장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지로 계획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만금방조제의 출발은 비응도에서 출발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비안도를 경유해야 세계최장이 도출된다.
그러나 91년 방조제공사가 시작될 무렵의 조감도에는 방조제가 비안도를 거치지 않고 신시도에서 가력도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최장을 위해 방조제가 지나치게 외해로 멀리 나가있어 사실상 공사가 불가능함을 알고 이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장’은 완전히 물건너 간 꼴이다.
1구간:변산면 대항리-북가력도(4,694m)
2구간:북가력도-신시도(9,936m)
3구간:신시도-야미도(2,693)
4구간:야미도-비응도(11.436m)
전부 합해도 28.759km이다. 세계최장 주다찌 방조제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서 토지개발공사가 매립한 군장국가산업단지 내초도-비응도 구간 5.1km 구간을 포함하기로 하여 현재 새만금방조제의 길이는 공식적으로 33.8km이다. 이처럼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억지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방조제란 바닷물을 차단해 둑을 쌓는 것인데 비응도-내초도 구간은 육지와 담수호를 구분하는 것으로 방조제로 볼 수 없다. ‘군장국가공단개발사업 실시설계 보고서’(한국토지공사, 1991.10)에는 “공단의 외곽시설인 서측호안공(연장-2,548m), 남측호안공(연장-5,205m) 및 부대공에 대한 설계계획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어 시행주체인 토지공사는 방조제 공사가 아니라 호안공사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전북 인터넷신문 <참소리> 7월 26일 보도). 농촌공사의 주장대로라면 방조제는 비응도에서 군장산업단지 서측 호안공과 북측 호안공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계산하면 새만금방조제는 33.8km보다 훨씬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새만금간척사업은 ‘세계 최대’, ‘세계 최장’을 목적으로 태어난 사업이며 어떤 제동장치도 듣지 않고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와도 같다. 그 동력은 정치인들이 전북 도민에게는 심어준 ‘새만금=전북발전’이란 환상이다. 지난 15년간 무수한 정치인들이 ‘새만금환상곡’을 부르며 자신의 정치 목적 달성에 이용해 왔다. ‘국내최대의 국가산업단지’, ‘세계최대의 골프장’, ‘세계최대의 타워’ 등이 여과없이 언론에 굵직한 활자로 박혀 전북 도민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다우코닝사와 마이클 잭슨과 스미스 박사
95년 지방선거에서 새만금지구 개발에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유종근 전 도지사는 96년 초에 다우코닝사의 투자유치에 나서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미국 미시간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실리콘 제조업체인 다우코닝사는 당시 미국, 영국에 이어 아시아에 제3공장 후보지를 물색 중이었다.
다우코닝은 2003년까지 60만평의 공장 부지가 조성되어야 하고 연간 100만달러의 임대료로 99년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4만톤급의 전용부두 및 5만평의 항만 배후부지 사용, 메탄올 등 수입원자재에 대한 관세 면제, 보세공장 지정, 전기료 등에 대한 혜택, 항만에서 공장까지 파이프라인 건설 허용 등도 함께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공사 진행 상황은 방조제가 겨우 10여km 뻗어나간 상태였다. 예정대로 2004년까지 공사를 마치려면 당시 기준으로 매년 3,300억원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였다.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던 정부는 마침내 1998년까지 끝내기로 한 방조제 축조를 2004년으로 늦추고 내부개발은 2011년까지 완공하기로 하였다.
IMF 관리체제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외환위기를 맞아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는데 다우코닝사의 최고위경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총액 28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현지공장을 한국에 건설할 경우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98년 2월 다우코닝사는 부적격 판정을 유종근 도지사에게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투자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이유였다. 투자후보지였던 새만금 지역 토지비용이 말레이시아의 300배, 중국의 5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도 망망한 대해를 보고 여기에 공장을 짓겠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1998년 2월 25일,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여의도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있었다. 세계 도처에서 취임을 축하하러 온 사절들로 호텔들은 ‘취임특수’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 취임 축하차 서울에 온 인사들 가운데에는 미국의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도 들어있었다. 영화배우 엘리자베드 테일러도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파서 못 왔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했다.
이 때 인천매립지를 관광, 물류단지로 만들어 땅장사를 하기 위해 용도변경에 절치부심하던 동아건설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세계적 재벌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이미 소문이 난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에 노심초사하는 새 정부는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 할 것이고 거부인 마이클 잭슨이 인천매립지에 투자를 하겠다면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동아건설의 계산이었다.
인천매립지는 동아건설이 1980년 농림부로부터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갯벌을 메워 만든 인천시 서구 경서동과 연희동 일대 총 1천1백만평의 땅으로 이 가운데 6백만평은 쓰레기매립장으로 용도 변경됐고 나머지 5백만평 중 3백80만평이 동아건설 소유로 돼 있었는데 용도변경을 해달라는 동아건설과 애초 매립목적인 농지로만 써야 한다는 농림부의 주장이 맞서 8년동안 끌어오다가 농지로 사용하기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이같은 결론이 나는 데에는 시민단체의 영향이 컸다.
마이클 잭슨은 취임식 전날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집에서 만찬을 가졌으며 취임식 직후에는 인천매립지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은 이 같은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마이클 잭슨이 투자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최회장과 마이클 잭슨이 투자 범위, 시기, 방법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 협의를 계속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동아건설의 주식값이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농림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간척농지의 용도변경 땐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농림부장관이 승인하도록 되어있는데 동아건설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같은 시기에 간척사업을 벌인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도 용도변경을 요구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정부의 김성훈 농림부 장관은 용도변경을 허락하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문제라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천하의 이재가들인 이들이 타산이 맞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 거금을 들여 간척사업을 벌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관과 유착하여 용도변경한 후 땅장사를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결국 동아건설이 띄운 마지막 승부수는 수포로 돌아갔고 동아건설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뇌물을 받아먹은 백아무개의원은 이로 인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취임식이 끝난 후 국민들은 마이클 잭슨의 행보에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쌍방울그룹이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 공동으로 전북 무주리조트에 테마파크인 ‘네버랜드 아시아’를 건설하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일단 무주리조트에 대해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건설비용 등 추가 투자 규모는 이르면 다음 달 중에 매듭을 짓기로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당시 실세로 알려진 유종근 당시 전북 도지사의 작품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유종근 지사를 따라 테마파크 조성 예정지인 무주리조트를 방문하였고 덤으로 새만금갯벌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마이클 잭슨의 투자는 어떻게 불발로 그쳤는지 그 뒤로 자세한 언론 보도가 없으니 국민들은 잘 모른다. 다만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유종근 지사는 ‘수완가’로 도민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으리라. 이 탓인지 마이클 잭슨을 재탕으로 울궈먹은 유종근 지사는 이해 6월에 있은 선거에서 무난히 도지사에 재선되었다.
이로부터 6년 반의 세월이 흐른 2004년 10월 13일 새만금에 대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가개발의 세계적 권위라는 데이비드 스미스 박사라는 사람이 새만금을 시찰하고 "새만금은 세계최고의 개발 적지이며 한국경제 도약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 마카오대 총장인 그는 전에 하버드대 법대 학장을 15년 동안 역임하였고, 현재 중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이집트, 사우디아라 비아 등 세계 10여개국의 개발, 금융담당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세계 30여 개국의 경제 고문을 역임한 바 있는 세계적 개발, 금융분야 전문가라고 언론은 소개하였다.
그가 어떤 연유로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 채 언론은, “스미스 박사는 특히 이날 "새만금의 광대한 사업 현장을 보면서 한국의 강한 국력과 한국민의 담대한 도전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새만금은 머지않아 한국 경제 재도약의 거점으로 각광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스미스 박사는 이날 군산에서 부안까지 이어지는 33km의 방조제 축조 현장을 둘러보면서 "방조제에 녹화를 하는 등 잘 개발하면 세계적 관광명소로 많은 재화를 창출해내는 명물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새만금은 주변 경관이 빼어나므로 이와 어우러진 친환경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스미스 박사는 "한국의 동북아 중심국가 도약은 고도의 기술 집적과 함께 중국과 호완하는 충분한 개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새만금 개발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국가 비전을 세우는 당연한 일"이며 "새만금은 국제적 개발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국가가 나서서 교통, 통신망의 구축 등 사회 간접 자본 투자를 서두르면 양질의 세계적 투자 자본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전북의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지금까지 전북의 언론은 새만금에 대해서 반대측의 주장은 축소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으며 찬성측의 주장은 크게 보도하는 방법으로 전북 도민들의 알권리를 막아왔다. 언론은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초청을 받아 스미스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새만금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고강도 '새만금환상곡'이 필요했을까. 스미스 박사가 끝물막이 공사를 2개월여 앞둔 2006년 2월 20일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언론은 왜 그가 한국에 왔는지, 누구의 초청으로 왔는지 밝히지 않았다. 언론은 그가 새만금을 중동의 오일달러를 끌어들이는 두바이에 비교하면서 “새만금 프로젝트는 중동의 두바이처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며 “새만금을 동북아의 핵심기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안목을 지닌 브레인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다. 또한 그는 “새만금의 광대한 사업 현장을 보면서 한국의 강한 국력과 한국민의 담대한 도전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새만금은 머지않아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거점으로 각광받을 것이고 중국의 만리장성과 한국의 새만금을 여행패키지로 만든다면 관광 수입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새만금을 두바이에 비유하며 '새만금 환상곡'를 작곡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이후 ‘새만금=두바이’라는 ‘환상곡’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동영 등 대선주자들에 의해 불리워지다가 2008년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며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두바이의 미래가 부정적으로 그려지자 ‘약효’가 소멸되었다.
새만금골프장과 새만금타워
2002년 유종근 전북도지사를 이은 강현욱 도지사는 처음에는 새만금에 기업도시론, 물류기지론을 내세우더니 방향을 급선회하였다. 강 도지사는 2004년 7월 30일 군산시 옥도면 새만금 야미도에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만나 "2006년말 방조제가 완공되면 동진강 수역 2천만평에 복합 레저 관광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이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 달라" 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1개월 후 전북도는 2006년 변산반도와 접한 동진강 수역 갯벌지역 800만평에 연차적으로 공사를 벌여 최대 540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골프장 경기부양론’을 내세우며 골프장 건설에 따르는 규제를 풀던 때였다.
전북도는 골프장 건설비를 대부분 민자로 조달하고 새만금 내부에 추진하고 있는 복합관광레저단지 조성사업중의 한 프로그램으로 골프단지에는 골프아카데미와 숙박시설 등도 함께 짓는다는 방침이었다. 또한 도는 새만금지역이 서해안 중심에 위치해 주 5일 근무제 확산으로 크게 늘고 있는 국내 골프인구를 대거 유치할 수 있고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는 중국과 인접해 급증 추세인 중국 골프 인구는 물론 다른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2015년쯤 새만금지역 관광객 수요가 연간 2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대로라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면서 “최근 정부에 추진계획서를 보내 조율중인데 사업이 추진되면 수천여명의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등 지역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11월 21일 전북 부안읍내에 만여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돼 날 세운 방패로 핵폐기장 결사 반대를 외치던 부안주민들을
첫댓글 처참한 글들 잘 읽었습니다.